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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건 수련의 목적이 아니다

글/ 스위스 대법제자

[밍후이왕] 제 수련을 되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그다지 큰 진보가 없었습니다. 저는 수련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많은 방면에서 ‘중간 정도’에 속했습니다.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중사(中士)가 도를 들음’에 속하므로, 연마(煉)해도 되고 연마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런 사람은 아마 힘들 것이다.”[1]

또한 가부좌할 때 더 깊이 입정(入靜) 상태에 들어가지 못한 건 제가 오랫동안 정진하지 못했다는 걸 설명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래 당신이 제고한 후, 당신이 돌아가 이 녹음을 들으면 당신은 끊임없이 제고될 것이고, 당신이 끊임없이 들을수록 당신은 줄곧 새로운 터득, 새로운 수확이 있을 것이며, 책을 읽으면 더욱 이러하다.”[1] 하지만 오랫동안 저는 ‘제고’나 ‘새로운 수확’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중사’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이해력이 너무 낮은 건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써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 사람의 본질을 불성(佛性)으로 전변시킬 수 없다.”[2]

사부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사부가 없으면 수련할 흥미가 없어지니, 마치 사부를 위해 수련하고 흥미를 위해 오는 듯한데, 이는 중사(中士)의 한 가지 큰 폐단이다.”[3]

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나 외부 요소에 너무 의지하고, 신사신법(信師信法)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9평 공산당’을 읽으면서 그중 일부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우리 집도 70~80년대 스위스의 수많은 가정처럼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도덕성이 떨어진 강대한 흐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는 저의 바른 믿음, 관심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능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이런 것들은 흔히 전통 가치관과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키워낼 수 있지만 사회주의는 거짓된 믿음과 배려였습니다. 이런 믿음은 사회, 유치원, 학교와 클럽, 직장과 인터넷에서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와 그것이 제공한 이른바 자유로 인해 저는 진정한 문화, 즉 가정과 조부모의 지혜에서 비롯되고 더욱 높은 가치와 신에 대한 믿음을 추구하는 문화를 잃었습니다.

학교 때 저는 늘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가치관을 배우지 못했고 삶의 의의를 몰랐습니다. 문화와 전통 신앙을 원시적이고 발달하지 못한 것이라 여겼고, 학교에서 사람이 본능과 수요가 있는 원숭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학교의 의식 형태 교육에서 저는 대부분 일이 상대적이고 의의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 외에 시험 때 컨디션이 좋고, 좋은 성적을 받으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누구도 우리에게 생활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저는 아주 수동적이었고, 사람들이 저에게 원하는 일만 했습니다. 마음속 고통이 밀려올 때는 현재 자유사회가 제공해 준 무엇인가로 회피하려 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자신에게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것에 더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전법륜’과 ‘9평 공산당’을 읽으면서 저는 사회주의 존재로 인해 우리가 가정과 더욱 높은 가치에 대한 신앙, 진정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는 능력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외에 세금, 보험과 사회적 지지가 많아지고, 자유를 선택할 폭이 더 넓어지며, 그룹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이로 인해 불신, 피해자 심리, 질투, 원망과 해결하기 어려운 충돌이 생긴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 믿음이 깨지고, 우리 진정한 인간성도 따라서 무너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학생이 학교와 선생님을 미신하지 않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으며, 어린이가 자신의 부모를 미신하지 않으면 교양(敎養)할 수 없고, 사람이 자신의 사업을 미신하지 않으면 사업을 잘할 수 없으며, 인류에게 신앙이 없다면 곧 도덕규범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에는 선념(善念)이 없으며 사념(邪念)에 점거당하게 된다.”[4]

제 개인으로 말하자면 스포츠와 각종 시합에 참가하는 것이 즐거웠고, 이렇게 하는 건 흔히 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사회주의 사상으로 인해 잃어버린 진정한 자신의 감성과 신뢰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물론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한 노력 때문에 굽은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수련에 들어서다

수련 초기에 저는 아주 부지런했고, 놀랄만한 일들도 좀 겪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일들이 차츰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고, 저의 행동은 갈수록 중사(中士) 수련자 같았습니다. 남의 인정과 중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었고, 몇 년이 지나서야 이 마음이 그토록 깊이 숨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 공법을 시연할 때, 법공부 팀에서 함께 법공부할 때, 각종 행사에 참가하거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저는 늘 기쁘고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흔히 진정한 제가 아니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저였습니다.

저는 외부의 압박이나 내심의 핍박을 받으면 연공과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고, 발정념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수련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중시해서가 아닙니다. 예컨대 몸이 불편하거나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이 정진하는 걸 보거나 제가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면 잠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더욱 정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온 마음을 다해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충분히 괜찮다’는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했고, 자신을 남과 비교했습니다. 오랫동안 저의 ‘충분히 괜찮다’는 표준은 매주 법공부와 연공을 서너 차례 하고, 최대한 현지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며, 제가 보기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항목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해 수련하면서 저는 자신이 늘 형식을 위해, 주로는 팀에서 남의 긍정을 받기 위한 만족감 때문에 일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였습니다. 저 혼자 또는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하거나 연공할 때 저는 피곤하고 소극적이었습니다. 남의 기대를 느끼거나 스스로 잘하지 못했다고 느끼면 적당히 얼버무렸고, 진정하게 안으로 찾아본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으로 찾은 목적이 대부분 표면적인 인정을 받으려고 수련생들에게 제가 깨달은 걸 얘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이걸 자랑하고 자아가 인정을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심지어 수련에서 뒷걸음쳤습니다.

방할

작년에 사부님께서는 바이러스에 관한 경문을 쓰셔서 정진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을 일깨워주셨고, 이는 저에 대한 방할이기도 했습니다. 스위스 제1차 봉쇄가 지난 지 몇 주 뒤, 저에게 여러 해 동안 없었던 엄중한 소업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간호 업무를 하던 아내가 어느 날 돌아와 환자들에게 바이러스 감염으로 의심되는 병례가 있다며 자신도 불편해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듣고 나서 무엇인가 제 목구멍을 자극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노력해 그걸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목이 여전히 불편했고 며칠 뒤에는 목구멍이 아팠습니다. 게다가 폐가 타는 듯이 화끈거렸고, 신체 기타 부위도 몹시 아프고 열까지 났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은 일이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을까 봐, 병에 걸렸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이러면서 제가 오성(悟性)이 정말 낮다는 걸 느꼈습니다.

며칠 뒤에 증상이 더 심각해지자 두 수련생이 찾아왔고 당시 그룹 모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법공부한 후 저는 몸이 너무 허약해 좀 쉬고 싶었습니다. 15분 뒤에 이러면 안 되고, 반드시 이 고비를 돌파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걸 하나의 시험과 좋은 일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온몸이 아팠지만 참고 일어나 제1장 공법을 연공했습니다. 그 후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고, 다시 다른 사람의 대열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에도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처음으로 자신이 정말 고비를 돌파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공포의 도전 앞에서 저에게는 수련의 결심을 강화할 기회가 생겼고, 두려운 마음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야 저는 그 중의 엄중함을 깨달았는데 이는 제 수련상태가 아주 부족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늘 신체 상태에 집착했기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수련하지 않는 속인의 각도에서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 제가 줄곧 육신의 상태에 집착한다는 걸 느꼈고, 우리들의 육신이 우리 모든 신체 중의 작은 한 층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모두 다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공간의 당신의 그 몸은 수술을 하지 않았으며, 연공은 그 몸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1]

머릿속에서 저는 이 물질적인 층의 신체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에너지가 더 높은 층차로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저는 자신이 중간 정도의 수련자처럼 신사신법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마지막에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법을 더 확고히 믿어야 하고, 엄격한 수련과 수련 체득을 통해 자신의 의지와 바른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진해 법공부, 수련과 발정념을 해야 하고, 안으로 찾는 걸 진정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그제야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모든 걸 얻으려 한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건 마치 사회주의가 우리에게 주입한 믿음과 같았습니다. 만약 제가 수련에서 진보하고 싶으면 반드시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저의 생활과 수련 및 일체 생각과 행동에 책임져야 합니다.

2019년, 더욱 정진하게 된 새로운 계기

2019년 말에 저는 ‘따지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 달간 훈련을 거친 후 근무일에 6시간 일하기로 했는데 매일 오후, 저녁과 심야였습니다. 제 리듬에 맞게 일하는 것이 습관이 돼 처음에는 이것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저는 자신을 중간 수준의 수련자로 여겼고, 새로운 작업 패턴이 가족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두려움이 다시 올라왔는데 실수할까 봐 두렵고,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우며, 체면이 깎일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 모든 걸 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아주 어려웠기에 겉으로는 차분해 보여도 마음이 늘 긴장됐습니다. 고객이 ‘따지웬’ 혹은 우리 직원들을 비평할 때, 심지어 우리에게 화를 내면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우리는 매주 회의에 참가해야 하는데 유럽 시간대로 말하면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입니다. 이러면 제 수면 시간이 매번 몇 시간씩 줄어들고, 며칠 지나야 머리와 몸이 다시 맑아집니다. ‘따지웬’은 참여하는 직원에게 요구가 아주 높은데 가급적이면 기록을 해야 하고, 법공부, 연공과 발정념 방면에서 매일 진보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비록 모두 자발적으로 하고 있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시험이었고, 경쟁과 자랑하려는 집착이 나왔습니다. 제가 늘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지 않았기에 망신당할까 봐 걱정했고, 피곤함을 감당하고 안일함과 게으름을 구하지 않는 능력도 크게 시험받았습니다.

가끔 가정환경도 관리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 칸 반짜리 아파트에 살고 서재가 없어 거실에서 일해야 합니다. 저녁과 심야 때, 딸과 아내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저녁마다 나무판자, 베개와 담요로 방음 박스를 설치했습니다. 이래도 아내는 저녁이나 밤중에 전화 소리에 깨어났고 늘 불평했습니다. 또한 딸이 한밤중에 깨어나면 달래고 보살펴줘야 하고, 가끔 박스 안이 더워 땀이 줄줄 흐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박스 안이 너무 좁아 대부분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요소들과 저녁과 심야 때의 피곤함은 저에게 큰 부담이 됐습니다. 가끔 폭발하거나 화를 냈으며 반격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이기적인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못 하게 하지?’ 그때에는 안으로 찾는 걸 잊어버렸고, 자신을 아내와 딸의 위치에 놓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간호센터에서 일하고 치매 환자를 상대하기에 반드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일 자체가 몸과 정신에 대한 요구가 높았기에 늘 동료들이 일을 잘하지 못해 직장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이것 때문에 아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더 많이 자거나, 음식이나 디저트, 케이크 혹은 초콜릿으로 이런 스트레스로 상처받은 제 집착을 보상해줬습니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더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유혹에 굴복하자 저는 더욱 피곤해졌고, 꿈에서도 시험이 있어 아침에 제때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또한 대화가 적극적으로 진행될 때는 몹시 기뻤지만 순조롭지 못하면 걱정됐는데, 이 배후에는 실패와 인정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비록 노력해 법공부와 연공을 했지만 늘 진정한 수련자의 표준에 도달한 건 아니었습니다. 항상 끝까지 안으로 찾지 못했고 고통을 기쁨으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 외 늘 법공부를 지식인이 새로운 지식을 얻기 갈망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남의 인정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차츰 저는 이런 시험을 인식했고 끝내 이 고비를 돌파했습니다. 집이나 일하는 중에서 선한 마음이 점차 안정됐고, 지금은 일상생활 속에서 가족을 지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연공,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하면서 진보를 가져왔고, 많은 업력이 제거된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가정생활은 더 화목해졌고 평온한 마음으로 고통을 감당할 수 있게 됐으며, 가부좌와 제2장 공법 시간도 더 증가했습니다. 예전에는 입정하기 어려워 신체가 충분히 느슨해지지 못하고 에너지도 더 많이 연화(演化)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좋기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저층차에서 연공할 때 기초를 닦아야 하는데, 이 기초는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며, 사람의 의념(意念) 활동은 일정한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의 공(功) 안에 어떤 것들을 넣는다면 당신이 연마(練)해 낸 그것이 좋을 수 있겠는가?”[1]

이 부분에 대한 저의 이해는 이 ‘기초’와 ‘생각이 없는’ 상태는 오직 확고히 바르게 믿고, 아무런 목적이 없이, 하지만 강대한 의지력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외 모든 고통은 사실 가장 좋은 선물이고, 법을 더 믿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인정이나 중시 받기를 원하는 느낌이나 생각들은 모두 제가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고, 진정한 가치를 이루어 더욱 선하게 변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도덕적 규범과 단속이 없는 가운데서 한 일은 곧바로 마성이다. 부처수련이란 바로 당신의 마성을 제거하고 당신의 불성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자비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5]

지금 저는 안으로 보고, 선한 시선으로 문제를 본다면 제 마성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비로운 에너지와 입자는 그 어떤 물건보다 더 강력합니다. 선한 마음을 품어야만 저와 다른 사람들이 제도될 수 있고, 진상 듣기를 가로막는 업력을 없앨 수 있습니다.

제가 법과 생명에 대해 더욱 경외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어린 시절에 우리에게 준 순수함과 믿음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집착을 많이 내려놓을수록 저의 이런 본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강화했는데, 이것은 제가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문은 사부님께서 열어주셨지만 길은 저 혼자 걸어야 하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견정(堅定)’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미신인가’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과 마성’

 

원문발표: 2021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8/4287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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