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필자 미상
[밍후이왕] 2019년 노동절(5·1) 이후의 어느 날, 무의미한 항소 끝에 나는 빈하이(濱海) 교도소로 이송됐다. 나는 매우 두렵고 암담했다.
첫 주는 내게 ‘벽을 향해 서기’를 시켰다. 모든 시선을 차단당했고, 주위는 바오자(包夾, 수감 감시자)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들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며칠 지나 왕강(王剛)이라고 새로운 팀장이 왔다. 그의 이름이 기억나는 이유는, 그가 전기봉으로 내게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변태처럼 “나는 왕강이야 잘 기억해!”라고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수감자에게 이른바 ‘초면에 본때를 보여주는 회의’를 열었다. 나는 새로 입소한 이른바 ‘신입’이고 늦게 들어왔다. 왕강은 우리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 다만 그가 연단에서 “너희 파룬궁(法輪功)이 공산당과 대립했으니 곧 나와 대립하는 것이다! 그에게 뿌려라!” 하고 외치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뒤를 보니, 한 교도관이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다가가 얼굴에 고춧가루 물을 뿜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를 감시하는 바오자가 그 사람의 이름이 저우샹양(周向陽)이라고 알려줬다. 저우샹양은 고문하던 바오자에게 고춧가루 물이 갈수록 강력하지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임 팀장은 바오자를 시켜 내게 대량의 노예 노동 임무를 맡기게 했다. 그들은 ‘아오잉(熬鷹, 장시간 잠을 재우지 않기)’으로 나를 괴롭혀서 전향(轉化)시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교활한 마음으로 미루거나 피하려고 했다. 일하는 기회를 틈타 나는 주변을 관찰하고 직접 저우샹양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드는 것이 금지돼 있어서 계속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고개를 들기만 하면 구타를 당해야 했다. 나는 구타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저우샹양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는 네모난 얼굴에 네모난 검은색 테두리 안경을 썼는데, 안경 너머 눈빛은 매우 힘이 있었다.
매일 아침 저우샹양은 바오자에 의해 휠체어로 이동한 후, 죄수 작업 공간에 있는 관찰실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는 계속 단식투쟁을 하는 중이었으므로 우리와 함께 식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나는 작업 공간에 가서 청소를 시작했고, 기회가 되면 그와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낮은 목소리로 빠르고 간단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 그때 그는 나에게 “전향하지 마세요”라고 했고, 나도 그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문제 없어요”라고 말했다.
가끔 그는 내게 “법을 많이 외우세요”라고 했지만, 나는 부끄러워하며 “형님, 전 아직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마침 그가 바오자와 화장실에 오면, 나는 곧 휘파람으로 ‘보도(普度)’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음악의 멜로디를 들려주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중에는 그가 화장실에 오면 떠날 때까지 내가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이렇게 또 3~4일이 지나자 나의 노동 강도는 더 심해져서 하루 노동시간이 20시간이 됐다.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시간에 바오자에게 발로 차여서 깨어날 때까지 3~5초 동안 잠깐 눈을 붙였다. 저우샹양은 이를 보고 내 옆을 지나가면서 “그들에게 협조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괜찮아요. 견딜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며칠 후 그들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고, 나는 견뎌내기 어려웠다. 저우는 내가 그 옆에서 일하는 기회를 틈타 재빨리 홍음 구절을 외워줬다. “속인의 마음 내려놓고 법(法) 얻으면 신(神)이로다”[1]
좀 더 지나서 ‘영상 학습’이라는 저녁 수업이 시작됐다. 영상을 트는 사람은 저우샹양을 감시하는 바오자였다. 저우는 내게 “조금만 더 버텨요. 금방 지나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20일 전후가 지나자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바오자에게 전향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오자와 교도관은 전쟁에서 이겼다는 듯이 기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자랑하고 다녔고, 저우샹양도 내 상황을 알게 됐다.
밤에 내가 당직을 맡았을 때 그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문 앞을 지났을 때 그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나는 곧 철문 가까이 몸을 대고 그를 보았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는, 오른손의 주먹을 쥐고 집게손가락을 펴서 심장을 가리키더니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을 누르고 가운데 세 손가락을 펴서 ‘맹세’를 하는 동작을 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 또한 손가락으로 심장을 가리키고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른바 ‘전향’하고 난 후 나는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그에게 가족처럼 의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좀 더 많이 관찰했다.
그가 속옷을 입고 씻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두 다리가 무섭도록 마른 것을 보았다. 나는 그가 심각한 영양실조로 오랫동안 서서 지탱하는 힘조차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가 6월 초였는데, 교도소가 여전히 조금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얇은 옷을 입고 있을 때 그는 몸에서 열을 낼 수 없다는 듯 여전히 솜옷, 솜바지를 입고 솜 신발을 신었다. 부축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땐 그는 작은 걸음으로 천천히 앞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그는 다시는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나를 쳐다볼 뿐이었는데, 그의 눈빛은 아주 강렬했다. 그가 쳐다보는 것은 마치 사람을 힘차게 한번 미는 것만 같았다. 등지고 있어도 그가 나를 바라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를 감시하는 바오자가 알려줬는데, 저우샹양을 감시하던 바오자가 저우를 전향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더 독한 바오자로 교체될 예정이며, 바오자도 4명이나 될 거라고 했다.
나중에 단오절이 지나고 나서 교도소는 아예 전문적인 전향반을 열었고, 나도 그쪽으로 옮겨졌다. 후에 나는 6번 교도소 교도관이 1번 교도소 교도관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나는 그들 옆에서 일하고 있었다. 1번 교도소 교도관이 6번 교도소 교도관에게 저우샹양은 언제쯤 전향돼서 오냐고 물었다. 6번 교도소 교도관은 저우가 이곳에 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저우를 움직일 수 없다면서, 만약 저우가 온다면 여기가 불안정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중생을 널리 제도하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4/24/423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