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일 화인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지금 이 사회는 여러분이 보았듯이, 부면(負面)적인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사람을 이끌어 집착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과 혼(心魂)을 따라 움직이게 하며, 세인들을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대법제자는 수련하는 사람이지, 수련하는 신이 아니다. 수련 중의 사람이라, 많든 적든 교란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면 속인과 같은 것으로, 교란 중의 표현은 속인과 무슨 구별이 없다. 일부 수련생은 결코 무슨 마난(魔難)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정진하지 않게 됐는데, 실제로는 속인 사회의 각종 유혹에 집착이 생겨, 사회 중의 유인(吸引)에 끌려 내려간 것이다.”[1]
예전에 저는 자신에게 욕망과 집착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중에서 모두 자신들에게 각종 집착과 여러 가지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왜 집착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인가? 그런 일에 집착할 것이 뭐가 있는가? 어떻게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련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집착이 저에게는 없고 또 집착심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바로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자리가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난 가운데 어떤 것은 기세가 높지만 언제나 그런 난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매일 부딪히는 그런 의도적이 아닌 여러 가지 유혹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정념이 확고하지 않은 데다가 자신을 방종하거나 태만하게 하면 쉽게 수련의 길을 이탈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직장이 뮌헨이어서 출퇴근은 기차를 이용합니다. 하루에 12시간을 밖에서 보내니 집에 돌아와 메일을 확인하고 항목 일을 하면 이미 늦은 밤이 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연공하고 기차에서 법공부를 했으며 집에 와서는 매체 일을 했는데 처음 한동안은 견지했습니다. 주말에 진상을 알리는 활동이 있으면 휴가를 내서라도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침연공 시간이 두 시간에서 한 시간으로 바뀌고 기차에서 법을 볼 때 졸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와서 매체 일을 할 때도 그다지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주말 활동도 더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태만해진 것은 모두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몸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하룻밤 사이에 흰머리가 많이 났고 몸이 붓고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두 다리가 부어서 두 배나 굵어졌으며 심할 때는 가부좌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10분 이상 서 있으면 발목 부위가 매우 아프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숨이 턱턱 막히며 무릎 관절 부위가 뻐근해졌습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변화보다 더 큰 것은 심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처음 출근했을 때는 저는 말이 적었고 동료들의 잡담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까칠한 손님이나 속상한 일을 마주해도 웃으면서 넘겼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난처한 일에 부딪혔을 때 대부분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동료들은 저에게 무엇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성격이 나약해서 업신여김을 당하기 쉽다고 생각했고, 제 앞에서는 나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무례한 손님들을 어떻게 대해야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지 가르쳐줬습니다. 저는 동료들의 선의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제 마음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중국에서 온 손님들이 가게에서 할인 문제로 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화가 치밀어 올라 말투가 거칠어졌습니다. 제 태도가 갑자기 바뀌자 손님들의 태도는 오히려 수그러들었는데 그들은 물건을 사고 얌전히 나갔습니다. 동료들은 제가 화내는 것을 처음 보았고 저를 칭찬했습니다. 당시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수호했다는 마음에 가끔 화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생각은 이미 비뚤어지기 시작했지만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종했던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저도 모르게 자신을 단속하지 못했습니다. 늘 쉽게 조급해하고 화를 냈으며 작은 일을 갖고도 다른 사람을 난감하게 했습니다. 입을 단속하지 못하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속인의 문제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동료들도 제 앞에서 거리낌 없이 욕설과 농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는 경력사원이 됐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저에게 이것저것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괜찮다는 느낌이 들면서 귀에는 온통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부풀리는 의식과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실적이 괜찮고 능력도 약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임금 인상을 매니저에게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절됐을 때 불평과 불만이 나왔습니다. 동료들이 사석에서 그 매니저의 여러 가지 잘못을 이야기할 때도 함께 가담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이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치에 맞으면 천하를 누비고, 이치가 없으면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처럼 자신에게 이치가 있으니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이런 것을 방종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것은 ‘이치’가 아닌 ‘법’이었습니다. 속인은 속인의 이치대로 하면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이 어찌 속인의 이치대로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남과 다툰다는 것은 속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지 수련인이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기에 빠져들었을 때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속인의 생활 속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유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크게는 금전적인 유혹이고 작게는 음식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집착이 생겨 물질적으로 먹고 입는 것 말고도 육신을 각별히 의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몸무게가 몇 개월 사이에 30kg이나 늘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어디서나 몸매 좋은 사람을 주시했습니다. 자신의 체형에 신경을 썼는데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해졌고 각종 부러움과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교차했습니다. 그럴 때 마음속에서 ‘이것은 진실한 네가 아니다. 이것은 네 본래의 체구가 아니다. 이 몸은 단지 외형적인 가죽 주머니일 뿐이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속인으로 떨어진 저는 도저히 정념으로 그 문제를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다이어트에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수련인의 상태는 전혀 없었습니다. 수련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안으로 찾고 싶지도 않았으며 속인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할 생각뿐이었습니다. 음식부터 헬스까지 시도해봤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감량하든 시간이 지나면 요요 현상이 왔고 심지어 더 살이 쪘습니다.
어느 날 밤 어렴풋이 자신의 의식이 상승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아래에 있었고 갈수록 무거워져서 마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깨어난 후에서야 제가 그동안 정말 속인으로 떨어졌고 사람 몸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있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문제를 깨닫고 자신을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이전처럼 매일 아침저녁으로 연공하고 항목 일을 했으며,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기차에서 법공부를 했고, 주말에는 수련생들과 함께 공원에서 연공했습니다. 동시에 일부 수련생들과 약속하고 다른 항목에 참여해 제가 보기에도 아주 바쁘고 시간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거의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몸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심성 방면에서 수시로 조급한 마음이 나타났고 더 한심한 것은 한 번도 없었던 집착이 하나둘씩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동료에게 질투심이 생겼고, 예쁜 사람과 물건을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손님이 팁을 주면 욕심이 생겼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과식했으며, 생로병사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속인의 원망, 불평, 분노 등 각종 집착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분명히 예전처럼 했는데 왜 더 나빠졌을까? 나에게 있는 근본 집착을 찾지 못한 것일까?’ 제가 바로잡고 싶어 할 때의 마음가짐을 돌이켜보니 그 속에 많은 사람 마음이 섞여 있었고 심지어 탐욕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제 몸의 변화를 보면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속인과 같아질까 봐 두려워했고 병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으며 늙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수련을 통해 제 몸을 최상의 상태로 되돌려 몸매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생각들이 섞여 있었는데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사람의 외모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과 몇 차례 설법 중에서 구하는 마음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얻으려는 마음을 품고 도(道)를 배워서는 안 된다. 그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사부도 그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연공인은 꼭 心性(씬씽)을 굳게 지켜야 하고, 마음이 바르며, 얻고자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문제가 생길 수 있다.”[2]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아주 순정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니며, 아주 많은 잡념을 갖고 있고, 후천적으로 양성된 아주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심지어 당신이 간단하고도 간단한 한 가지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이 기점(基點)과 기인, 부대적인 것들은 모두 불순할 수 있다.”[3]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을 다시 공부할 때 저는 이전의 수련에서 홀시하던 문제와 지난 몇 년간의 수련에서 갈수록 법을 얻었을 때의 ‘초심’을 잃어 갔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특히 속인사회에 녹아든 뒤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갖 유혹에 빠져 수련 중이라 해도 마음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더는 순정하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저는 또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뿌리 깊은 집착이 바로 게으름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제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나태함을 깨닫게 됐을 때, 지난날을 생각하니 중학교 때부터 아주 게을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학업이 많다는 핑계로 늦잠을 자고 음식을 많이 먹으며 움직이기 싫어했습니다. 심장에 문제가 있어 체육 시간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갈수록 나태하고 산만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반에서 가장 뚱뚱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선생님과 학생들로 조직된 파룬궁 단체에 참가해 매일 아침 일찍 2시간씩 연공하고 저녁에 한 시간씩 법공부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체중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저를 보러 와서 깜짝 놀라셨습니다.
독일에 온 후, 비록 수련은 했지만 일부 항목에 참여한 후 서서히 느슨해졌습니다. 일이 없을 때면 잠을 실컷 자고 나서야 일어나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수련생들이 저에게 “다이어트를 해요. 뚱뚱해졌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저는 어색해서 웃으면서 “네”라고 말했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출근한 후, 처음에는 법공부와 연공이 뒤처지지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 마음은 이미 고요하지 않았고 예전에 비해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체중도 그때부터 갈수록 쪘습니다. 그동안 기복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뚱뚱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게으름, 사람의 각종 관념, 사회상의 난잡한 현상 앞에서, 사람에 대해 모두 각종 유혹과 교란을 조성했다. 그래서 ‘수련이 처음과 같으면 반드시 원만에 이른다.’라는 한마디 말이 있다.”[3]
이 단락 법을 읽었을 때 처음으로 그렇게 똑똑하게 ‘게으름’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제 게으른 마음은 원래 일찍 제 마음, 뼈와 핏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게으름은 아마 보이지 않는 난일지도 모르는데 제 몸에서 실질적으로 존재했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을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였던 것이었습니다.
제 몸에 수십 년간 ‘숨어있던’ 집착을 발견하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고 그 순간 마음이 유난히 맑고 든든해져서 오랜만에 ‘씬칭쓰위(心清似玉)’[4]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법을 얻은 초기에 있었던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제 다시 느끼니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상화함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있어서는 생사의 시험 못지않았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문제를 대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어떻게 하면 이 집착을 제거하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험입니다. 이번 교훈은 수련에 대한 저의 인식과 태도를 개변했고 수련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제 마음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수련은 쉽고 어려운 것을 떠나 엄숙한 것으로서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매 하나의 일사일념이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어갈지, 수련해 올라갈지 떨어져 내려갈지를 결정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이 장기간의 수련 중에서 줄곧 아주 강한 정념을 유지할 수 있고, 처음 법을 얻었을 당시의 심경(心境), 초기의 그 순정한 심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대단하며, 그 신이 보아도 당신을 대단하다고 말할 것이다.”[3]
수련의 길에서 저는 아직 초보자에 불과하므로, 초보자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법 공부하고 저 자신을 닦아야 합니다.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고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제거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좌절을 겪고 이런저런 집착이 생길지 모르지만 자신을 독촉해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착실하게 수련해나가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파룬궁-제1장 개론’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대원만법-2.동작도해(動作圖解)’
(2021년 독일법회 교류원고)
원문발표: 2021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7/4287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