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람마다 대법을 얻은 길은 다른데, 길거나 짧을 수 있고, 어렵거나 쉬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인연 때문이다. 나는 2011년에 대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사존께서 나에게 이렇게 좋은 대법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걸핏하면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고슴도치 같아 누군가 건드리면 그와 끝도 없이 싸웠다. 어느 날 외근을 나갔다가 회사 관리부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차를 보내주지 못했기에, 나는 회사 사장과 수십 명 직원 앞에서 관리부장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고, 그가 고의로 나를 괴롭히려고 협조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심지어는 귀에 거슬리는 엉뚱한 말도 많이 했다.
그때 동료, 친구들은 나의 면전에서 ‘여장부’라고 말했고(물론 뒤에서 무엇이라 불렀는지 몰랐음), 나도 남들이 ‘여장부’라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무엇이 강한지 지금까지도 모른다. 집에서 늘 사소한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했고 끝이 없이 다투다가 남편이 지는 척해서야 멈췄다. 나는 매일 얼굴에 ‘자신감’이 넘친 미소를 지었고 머리를 쳐들고 큰 길과 작은 골목을 누볐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주 괴롭고 매우 피곤했다! 오랜 질병으로 심장도 좋지 않았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 이미 속효구심환(速效救心丸: 심장약의 일종)을 갖고 다녔고, 흰머리도 많이 났으며, 또 자주 전신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통증이 났고 두통이 나면 머리를 치료하고, 발이 아프면 발을 치료했다.
2010년에 몸이 불편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할 일이 없어서 온종일 인터넷에서 많은 것을 봤다. 신화나 사극 같은 걸 특히 좋아했다. 이상하게도 사극에서 형제들끼리 술을 마시며 환담하거나 전쟁터에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에게도 어딘가 형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달간 인터넷에 푹 빠져 중국의 몇천 년 역사를 드라마에서 한 번 보게 됐다. 내 마음도 왕조의 흥망성쇠와 역사 속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따라 흔들렸다. 몇 개월간의 드라마 관람을 통해 한 차례 만족을 맛보았지만, 그 웅장했던 역사적 사실, 인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역사책 속의 한 줄 한 줄의 문자로 변했다. 자신을 생각해보니 더 이상 작을 수 없는 보잘것없는 인물조차 못 됐는데 평소에 항상 ‘난폭한 체’만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한심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살려고 했다. 처음으로 출가 생각이 났지만 어디로 가서 출가해야 할지 몰랐다.
중공의 무신론 선전으로 주변의 친지 어르신 중 신불(神佛)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출가인은 틀림없이 어떤 충격을 받았고,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출가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들과 논의할 수도 없어 아예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나는 출가한 사람들은 모두 매일 가부좌를 하고 경문을 손에 들고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몰래 인터넷에서 각종 경문을 찾아 읽었고 어느 법문의 것인지 몰라도 찾기만 하면 읽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말법 시기에 미륵불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새로운 불법을 전수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자마자, 어쩐지 머릿속엔 ‘파룬궁(法輪功)’ 세 글자가 떠올랐다.
나는 보통 새로운 것은 첫째, 생명력이 매우 강하고, 둘째는 ‘새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파룬궁이 이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파룬궁에 대해 잘 모르고, 그저 공산당이 파룬궁을 용납하지 못하고 도처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하고 탄압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파룬궁은 어떠한 공법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누구도 나와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만났던 친구가 생각났다. 우리는 대면한 적은 없었지만 한담할 때 그가 좋은 사람이고 불법(佛法)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이 일을 말하고 나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대법을 반갑게 맞이하다
내가 그 친구를 찾아 이 일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나에게 ‘둥타이왕(動態網)’ 링크를 보냈다. 1~2분이 지나서 그는 어떻게 밍후이왕에 접속하고, 어떻게 ‘전법륜(轉法輪)’을 다운로드하는지 알려줬다.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 사당의 인터넷 봉쇄가 있어서 그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이 메시지를 전부 나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그 수련생의 용기에 매우 감격했다. 그의 용감하고 두려움 없는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오늘도 파룬궁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그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한번 보고 나서 이것은 수련 관련 서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은 물론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왜 공산당이 박해하고 금지하는지 궁금해하자 그 수련생은 책을 계속 여러 번 보라고 했다.
나는 호기심을 갖고 몇 번을 더 열심히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바로 내가 찾고 있는 책임을 깨달았다. 이 책은 체계적이며, 소박하고 간단한 언어로 어떻게 수련하는지를 이야기하셨고, 우주의 특성은 ‘진선인(真·善·忍)’이라고 이야기하셨으며, 사람들이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행하고, 또 연공하면 고급생명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우주의 특성과 같은 심오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덕이 타락한 사회에서 ‘진선인(真·善·忍)’ 이 세 글자는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명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일념을 발했다. ‘나는 난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이 되겠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앞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대원만법(大圓滿法)’을 다운로드해서 책에서 설명한 대로 연공 동작을 배웠다. 처음 연공할 때 나는 의자에 앉아서 제5장 공법을 연마했다. 나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가부좌를 틀지 않고 그저 호기심이 동해 시도해보려 했다. 내가 금방 고요해지려는 순간에 바르게 놓지 않은 원반에 앉아 있는 것 같았고, 원반은 불규칙하게 돌았는데 조금 ‘덜커덩 덜커덩’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의자가 움직이는 줄로 생각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의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조용히 앉아 있자 그 ‘원반’은 또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이것은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려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처음으로 열심히 가부좌해서 다리가 너무 아파 17분밖에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나중에 나는 기회가 있으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고, 다리가 아프면 다시 일어났다. 다리가 아파서 조금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처음에 가족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남편은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인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남편은 평소에 살벌했던 나와 ‘진선인(真·善·忍)’을 연관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한동안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밖의 온 길거리에 경찰들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인터넷에도 적혀져 있으니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은 또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집에서 연마하고 밖에 나가지 마. 집에서 신체를 단련하면 그만이지.”
이렇게 나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부 연공 동작은 ‘대원만법(大圓滿法)’ 서적에서 잘 알아보지 못했고,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공법을 가르치는 동영상은 항상 열리지 않았다. 나는 반복적으로 ‘대원만법(大圓滿法)’을 읽으며 연공 동작을 교정했지만, 나의 제4장 공법의 동작은 여전히 틀렸고, 허리를 굽혀 내려앉을 때 내 손가락은 땅바닥에서 원을 한 번 그렸다. 1년 후에 그 수련생과 교류했고, 물론 교류 과정은 아주 어려웠지만 나는 비로소 그 동작을 교정할 수 있었다.
나는 발정념을 해서 사악을 청리(淸理)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도 업력이 가로막는 것인지 아니면 사악이 교란하는 것인지, 인터넷에서 본 발정념 요령에 대해 잘 알아듣지 못해, 수련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번 각종 방법으로 알려줬지만 나는 여전히 틀리게 했다. 대법을 얻어서 5년간 발정념을 할 때 연화장을 하지 못했고, 어떻게 연화장을 하는지도 몰랐다. 발정념을 할 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것저것을 제거한다고 생각했고, 종이 울리면 ‘멸(滅)’자를 염했다.
수련을 심도 있게 함에 따라 나는 많은 것에 대해 의문이 생겼고, 많은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자주 위험을 무릅쓰고 인터넷을 통해 수련생에게 문의했고, 몹시 어렵게 교류했지만 결국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그도 직접 답할 수도 없었으며, 사부님께서 가지(加持)해주셔서 우리는 퀴즈를 푸는 것처럼 교류했다.
그때 혹시라도 수련생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나는 아주 걱정했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사부님께 수련생을 무사하게 보호해주시길 빌었다. 어느 날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제 아내가 세뇌반에 납치됐습니다!” 나는 즉시 충격을 받았고 여러 번 사부님께 그 아주머니를 보호해주시길 빌었고, 멍하니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후에도 이렇게 계속 위험하게 수련생을 번거롭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만약 그를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많은 것을 몰랐다. 이렇게 비록 아주 위험했지만 나는 늘 그 수련생을 찾아 이것저것을 물었다.
살벌한 ‘고슴도치’에서 ‘진선인(真·善·忍)’을 전심전력으로 수련하는 생명으로 변하면서, 나는 늘 수련과 생활 및 일을 하는 관계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수련생에게 문의해 위험하고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늘 베란다에 숨어 하늘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곳이 사부님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고, 사부님께서 바로 위의 하늘에 계셔 나를 보실 수 있고 내 말을 들으실 수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하루빨리 현지 수련생을 찾고 싶어 늘 근처에 있는 채소시장이나 여러 길거리를 거닐었다. 한 할머니가 작은 가방을 들고 맞은편에서 오시면 나는 천천히 걷거나 아예 핑계를 대고 멈춰 서서 할머니가 나에게 진상 자료를 건네주거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5년간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 용모가 온화하고 착해 보이고 대법제자인 것 같은 사람이 나를 스쳐 지나며 눈길도 주지 않을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거듭 빌었다.
수련 후 몸에 있던 많은 질병이 나도 모르게 나았다. 특히 얼굴에 6~7년 동안 난 건선은 예전에 많은 돈을 들이고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련 후 언제 좋아졌는지 흔적도 남지 않았다. 좋지 않던 심장과 몸이 시큰시큰 쑤시던 것도 많이 좋아졌다. 나도 더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여장부’로 군림하지 않았고, 최대한 평정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을 대했다.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다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남편은 늘 싱글벙글 웃으며 “안전에 주의해야 해”라고 당부했다.
박해가 다가오다
내가 늘 인터넷 차단을 돌파하는 것 때문에 그런지 사당인원은 우리 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 남편을 불러 남편과 가족이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협박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두려워하며 예전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보지 않았다. 비록 남편은 내가 수련을 통해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남편과 시댁 사람들이 모두 대법을 얻은 후의 나를 좋아했지만, 사당의 사악함에 못 이겨 모두 나를 외면하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남편은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은 더는 이런 불안하고 두려운 나날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나와 이혼했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아는 그 수련생은 이미 미국에 가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나를 보호하려는 목적 때문인지 그는 출국 후 연락이 뜸했다.
이혼 후 나는 다른 갈 곳이 없었는데 다행히 이혼 전에 교외에 구입한 아주 싼 집이 있었다. 그때 장사용으로 구입했고 임시로 거처했기 때문에 길거리를 떠돌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정작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려고 하니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두 힘들었다. 내가 대법을 얻은 시간이 짧고, 정(情)도 잘 버리지 못했다. 가정을 잃은 나는 독자적으로 많은 일을 마주해야 했다. 내가 혼자 사는 것을 알면 남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내가 가정이 없다는 것을 감히 알리지 못했다. 친정 사람들이 내가 대법을 수련해 가정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대법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거나, 혹은 나를 계속 수련하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친정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감히 알리지 못했다.
법리적으로는 아직 많이 깨닫지 못했지만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하나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금방 대법을 얻은 나는 늘 소업(消業)했다. 가장 많은 현상은 심장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져 수시로 쓰러질 것 같은 증상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사부님께 절대 외부에서 쓰러지지 않게 해주시길 빌었고, 만약 꼭 쓰러져야만 업을 갚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작은 집에 돌아간 후에 쓰러지게 해주시길 사부님께 부탁드렸다. 집에서 이런 상황에 봉착하면 나는 사부님께 만약 쓰러지면 꼭 다시 깨워주시길 빌었다. 비록 이런 상황이 잦았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정말로 쓰러지게 하시지는 않으셨고, 또한 나는 매번 하던 일을 끝내고 나서 집에 돌아가거나 휴식했다.
법리를 잘 깨닫지 못했기에 나는 늘 어떤 일에 봉착하면 어떻게 법리로 가늠하며 깨달아야 하는지 몰랐다.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었지만 찾아갈 곳이 없었고 확실한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이로 인해 생활에 많은 불편을 끼쳤고 나의 온라인 쇼핑몰은 장사가 시들해졌으며, 일자리를 두 번이나 찾았지만 장기적으로 근무하지 못했다. 내 생활은 궁지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과 친정어머니댁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궁지에 처했을 때 나는 어머니 댁으로 돌아갔고, 거기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안위가 더 걱정돼서 어머니는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가시며 다른 사람과 거의 말을 하지 못 하게 하셨다. 사람이 없을 때 어머니는 자주 오셔서 어머니 댁 근처에 있는 경찰들이 매일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납치한다고 말씀하시며 파룬궁을 더는 수련하지 말라고 권하셨다. 나는 어머니 댁에서 안정적으로 수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나의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2016년 새해를 앞두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 안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교외 지역에서 아는 사람과 지인이 아무도 없고, 게다가 현지인들은 방언을 사용해 표준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진상을 알릴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걱정하고 있을 때 여동생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타오바오점(淘寶店: 온라인 상점)을 양보하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가구를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들은 여동생은 내 가게로 가구를 팔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그 장사가 잘 안 되던 타오바오점은 나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타오바오점을 동생에게 양보하면 나에게 수입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았다. 이전에 두 번이나 찾았던 일자리에서 일을 잘하지 못해 나가서 일자리 찾는데 별로 자신감이 없었다. 나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여동생은 내 현재 상황을 모르니 그녀를 나무랄 수 없었다. 타오바오점을 양보하지 않으면 여동생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웠고, 양보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밤에 침대에 누워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했고, 눈물이 예전과 다름이 없이 베갯머리에 떨어졌다….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밥 못 먹게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느 날 밥을 먹을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속세의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는 때일 것이다. 나는 타오바오점을 여동생에게 양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동생은 그 뒤로 내 상점을 갖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수련생을 만나다
속세의 인연이 끊기면 대법의 인연이 생긴다. 나는 더 이상 친척과 가족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매우 운 좋게 현지 수련생을 찾았다!
그해 설날 며칠 전, 집 근처에 있는 몇 가구가 붙인 대련이 대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진상지폐 이외의 종이로 된 대법과 관련된 것을 본 것이었다. 대법을 얻은 후 나는 5년간 책이 없이 컴퓨터나 휴대폰을 보며 법공부를 했다. 대련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거듭 사부님을 불렀고, 아무도 없을 때는 달려가 그 대련을 만졌는데, 그 신성함과 친절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 중 어느 집이 대법제자의 집인지 몰랐다. 어떻게 찾아갈까 생각하던 차에 어느 날 내 자전거가 그들 중 한 집의 자전거 방울을 쳐서 부러뜨렸다. 나는 그 집의 문을 두드려서 방울을 부러뜨려 미안하다고 말했고, 나중에 새것을 사서 그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기어이 새 방울을 사서 갚으려 했는데 방울을 갚던 날 문을 연 사람은 나이 드신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방울을 받고 나면 문을 닫을까 봐, 서둘러 그녀 집안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가 그곳을 막았다. 이어서 나는 낮은 목소리로 “아주머니, 대련을 정말로 잘 쓰셨고 어디에서 구입하셨나요?”라고 물으며 머리를 내밀어 집안에 사부님의 법상이나 대법과 관련된 것이 없는지 살폈다. 그녀는 대련과 관련된 말을 묻자 나를 보며 빙그레 웃으시며 집안으로 안내했다. 이렇게 한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한 사람은 집안으로 이끌려 했다.
집에 들어서서 문을 닫자마자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파룬궁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녀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말을 나는 5년 동안 기다렸고, 5년 동안 찾아서 오늘 드디어 맞이했다! 우리는 모두 울고 웃으며 교류했다. 나중에 그녀는 나를 데리고 현지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를 했고, 함께 길거리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으며, 여러 곳에 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삼퇴(三退)를 권했다.
“유유한 만세의 인연은 대법이 한 줄로 이끈 것이네”.[1] 나는 드디어 이 인연을 이어나가게 됐고 대법을 얻은 지 5년이 지나서야 수련생을 만나게 됐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제도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대법을 얻게 이끌어주신 수련생 일가가 자비롭게 도와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신의 길은 어렵나니’
원문발표: 2021년 7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5/4286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