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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을 버리고 잘못을 만회해 자신과 중생을 위해 희망을 되찾게 하자

사부님 평어 문장 ‘중국 수련생들은 온라인 법공부를 즉시 중단하라’를 읽고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평어 문장 ‘중국 수련생들은 온라인 법공부를 즉시 중단하라’를 읽고 문장에서 폭로한 여러 가지 난법 행위에 대한 본인의 인식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많은 난법 행위는 연설 난법의 연속이고 복사판이다

문장에서 언급한 ‘온라인 법공부’용 소프트웨어로 모인 그룹에 일부 현상이 나타났다. “그룹의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20년 동안 법 공부를 했지만, 여기에서 하루 동안 한 것보다 수확이 크지 못하다고 하고 어떤 수련생은 집에서 세 강의 설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여기서 잠깐 교류하는 것이 수확이 더 크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문장의 전후 내용을 보지 않고 이 말만 듣는다면 2013년 전국각지 연설 난법 현상 중 이지를 잃고 맞장구치고 칭찬한 말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단지 그때는 ‘현장판’이고 현재는 ‘전자판’일 뿐이다. 나는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언행은 ‘이지적이지 못하다’는 말로 표현하기보다 열이 나서 흐리멍덩해졌다거나 헛소리를 한다는 것이 좀 더 적절한 것 같다.

우리가 알기로는 그 소프트웨어는 확실히 대륙에서 8년 이상 사용해 왔었다. 대략 8년 전, 지역 수련생이 외지에서 온 수련생의 건의에 따라 적극적으로 이 소프트웨어에서 제공한 ‘온라인 법공부’에 참여했었다.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을 우리는 잘 모르나 단지 이상하다고 여겼을 뿐이다. 우리 대륙 지역에도 분명히 직접 모여서 하는 단체 법공부가 있고 집에서 조용히 법공부할 시간이 있는데 왜 또 온라인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대륙의 이렇게 엄혹한 환경에서는 안전하지 못하다.

일부 수련생이 그 속에는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들에게서 호기심, 과시심, 환희심 등 사람 마음이 폭로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관련된 수련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히려, 자신이 법공부를 중시하게 되었다는 등 ‘온라인 법공부’의 좋은 점을 떠들었다. 당시 일부 수련생이 지적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마다 우리에게 법공부를 중시하라고 알려주셨는데 왜 듣지 않는가, 외지 수련생이 무슨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당신들이 법공부를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수련생과 사부님의 위치를 어떻게 놓는가?” 관련된 수련생은 할 말이 없었다. 후에 이 지역의 ‘온라인 법공부’는 그 수련생이 박해받게 되어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오늘 보니 이런 소프트웨어는 이미 몰래 이렇게 오랫동안 유전되고 널리 보급되어 난법과 파괴 작용을 크게 일으킨 것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국내외 여러 가지 난법 현상은 종래로 멈춘 적이 없었고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 내가 보건대 이런 난법 현상은 아무리 방식과 모양을 바꾸어도 사실 모두 몇 년 전 연설 난법의 연속과 복사판이다.

전에 연설 난법하던 수련생은 줄곧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나는 여러 가지 난법 현상의 실질은 수련생에게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일부 수련생들에게 강렬한 자아, 명예심, 큰일을 하려는 마음, 자심생마,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다. 더욱 많은 수련생에게 사람을 숭배하는 마음, 호기심, 적막을 견디지 못하고 벅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마음, 무리로 떠들고, 밖을 향해 보고, 다른 사람을 보는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들이 서로 뒤엉키어 사악에게 틈을 주고 이용당해 많은 수련생을 도태시키는 여러 가지 난법 현상과 행위를 했다. 2013년에는 전국에 연설 난법이 ‘고조’에 이르렀고 2013년 밍후이왕에 편집부의 문장 ‘연설 난법’이 실린 후 대륙의 연설 난법은 표면상에서 잠시 잠잠해졌다.

당시 전국각지에서 유위적이든 무위적이든 연설 난법 행위에 가담했던 수련생 숫자가 놀랄 지경으로 많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밍후이왕 편집부의 문장을 본 후 심각하게 자신을 반성했고 진정으로 당시 난법 중에 폭로되어 나온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을 안으로 찾았는가?

오히려 많은 수련생이 그 일에서 무감각해져 마치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겼고 적지 않은 수련생은 이해하지 못해 억울해하고 원망하며 저촉하는 마음을 줄곧 버리지 못했다. 사실 그때 적지 않은 수련생은 연설 난법에 깊이 빠져 자신의 인식을 보류하기도 했다. 연설 난법에 대해 진정으로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철저하고 완전하게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그 난법하는 사악들이 그들이 인정하고 억울해하고 복종하지 않는 이 사상 중에 남겨진다. 그런 저촉 사상은 사실 난법하는 생명과 요소들이 보내온 것임을 수련생들은 잘 모른다. 그것들은 철저히 제거되려 하지 않고 살아남으려 한다.

난법 행위 뒷면의 사람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사악은 철저히 제거된 것이 아니기에 그것들은 조만간 뛰쳐나와 이런 수련생을 해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수련생들이 여러 가지 형식으로 다시 난법하는 행위는 ‘또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마치 그때 ‘청심논단’이 취소된 후 많은 사람이 얼마 뒤에 또 다른 것을 내놓고 한데 모여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소위 ‘온라인 법공부’ 한다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난법하는 사람 중에 그때 연설 난법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있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표면상 이런 수련생들이 극도로 이지적이지 않게 난법을 하지만 사실 사악이 악랄한 수단으로 집착심을 버리지 않는 그 공간을 파고들어 그들의 사람 마음을 확대시켜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세파에 미혹되었고 무신론과 당문화의 독해를 받은 우리 많은 사람은 난법의 엄중성과 무서운 후과를 잘 알지 못한다. 우주 대법을 교란하고 정법을 교란하는 그 죄는 정말 무생지문에 떨어질 죄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거대한 감당이 없다면 난법한 사람은 그 무슨 수련이고 성취고 말할 것 없이 세상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고 아직도 원망하고 억울해하고 복종하지 않는 많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나는 만약 한 생명이 진정으로 난법한 후의 무서운 결말을 본다면 때려죽여도 다시는 그런 난법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난법에 참여한 사람은 오직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람 마음을 버리고 과오를 미봉해야 자신과 중생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사부님 평어 문장 ‘중국 수련생들은 온라인 법공부를 즉시 중단하라’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난법 현상은 사악이 관련된 수련생과 그들이 대응한 무수한 중생들을 훼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고 우리와 중생을 구도해 주신다. 이 평어 문장을 포함해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안배한 것이다. 사람들이 청성하게 사악의 조종에서 벗어나 위험한 지경에서 멈추고, 사악의 죄악 안배를 부정하고 흐리멍덩하게 난법하는 큰 죄를 지어 만고의 기연을 놓쳐 극히 두렵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지 말기를 바란다. 이런 난법 현상을 폭로하는 것은 배후의 사악을 폭로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당신들에 대한 자비로운 구도이지 수련생들과 밍후이왕이 당신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기 바란다.

구세력이 우리에게 안배한 것은 훼멸되는 막다른 길이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은 끊임없이 폭로되어 나오는 집착심을 버리며 부단히 승화하는 길이다. 정법수련의 고난의 길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두렵지 않다. 잘못을 인식하고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길에 잘못 들어섰으면 용감하게 돌아오라. 사부님께서 줄곧 우리를 돕고 계신다. 제일 두렵고 슬픈 것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정시하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돕겠는가?

자신이 기술이 높고 공능과 능력이 대단하다고 보지 말라. 소위 ‘능력’이란 없다. 어떤 사람은 법을 파괴하는 일을 여전히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관련된 ‘기술’로 대법 정공 음악을 사사로이 고칠 능력이 없다. 사람의 그런 능력은 자만하거나 교만할 가치가 없다. 법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훼멸시키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공능은 본디 작은 재간이요 대법만이 근본이로다”[1]하고 말씀하셨다.

‘중국 수련생들은 온라인 법공부를 즉시 중단하라’ 문장 중에서 수련생이 지적한 대법 정공 음악을 사사로이 고치는 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누군가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DVD를 하나하나 단독적인 mp3로 고친 일이 있다. 그 수련생은 아마 ‘좋은 마음’에서 수련생들에게 법공부할 편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지 전혀 나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연설 난법하던 사람들은 줄곧 불복하는데 그들은 좋은 항목을 잘해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하고, 수련생들을 도와 ‘정체를 형성해’ 오성과 인식을 제고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악은 바로 이런 ‘좋은 마음’을 이용해 그들을 기만한 것이다.

또 자신이 이전에 대단하고 휘황찬란하게 일했고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여겨,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된다. 사악이 안배한 난법 중에서 혹시 이런 대단한 것 같은 경력이 당신더러 다른 사람을 더 미혹시키게 한다. 또 자신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지 말라. 수련생들이 대법을 떠나고 밍후이왕을 멀리하거나 경시하게 하는 소위 “플랫폼’의 교류를 당신은 좋은 일이라 여기지 말라. 사실 많은 것은 자아를 만족시키고 심지어 자심생마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다른 사람의 열광적인 사랑과 칭찬, 인정을 받을 때, 소위 ‘다른 사람을 도와준’ 그 마음 뒷면에 명을 구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얼마나 강렬한 마음이 들어있는지 당신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룹’에서 수련생들이 당신을 숭배하고 의뢰하고 의지하고 무슨 일이나 당신이 주견을 내세우기를 바라고 당신이 해결해주고 협조해주기를 바랐다. 그들이 밖에서 구하는 마도(魔道)를 걷게 했고 법에서 안으로 찾는 바른길에서 빗나가 수련의 기연을 잃고 많은 생명과 세계를 훼멸시켰다.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이 당신들에 대한 숭배는 이미 진정 그들을 구도하는 대법에 대한 존경을 초과했다. 그들은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잊고 완전히 이지를 잃은 말을 했다. “20년 동안 법 공부를 했지만, 여기에서 하루 동안 한 것보다 수확이 크지 못하다고 하고 어떤 수련생은 집에서 세 강의 설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여기서 잠깐 교류하는 것이 수확이 더 크다.” 당신들이 그들을 제도할 수 있는가? 대법 제자의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파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늘 같은 큰 죄이다. 모든 것은 정말 작은 일이 아니다.

정법 시간은 한계가 있어 무한정 연장할 수 없는바 만약 내일 정법이 끝난다면 모든 난법 죄가 있는 생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땐 울어도 이미 늦은 것이다. 자신의 최종 위치는 자신이 선택한다. 영원한 끝없는 후회와 고통 속에서 오늘 일에 대해 후회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 아닌가?

정법이 아직 결속되기 전 난법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는데 모든 난법 행위를 폭로하는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그것은 사부님의 우리에 대한 무량한 자비와 구도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명시한 바 있다. “만약 당신이 그래도 잘 걸을 수 있고 잘 수련할 수 있다면 이 죄는 모두 그 사악한 것에 속하며, 만약 당신이 여전히 잘 걷지 못한다면 죄는 바로 당신 자신에 속한다.”[2]

어떻게 할 것인가? 진심으로 사부님께 참회하고 당신이 범한 모든 난법의 죄과를 용서해 달라고 빌어보라. 당신에게 미혹되어 빗나간 수련생들께 자신이 법을 파괴하고 빗나간 언행을 최대한 분명히 말하고 그들에게 진실하게 사과하기 바란다. 진정으로 난법 행위를 하게 한 모든 사람 마음을 찾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만약 진실하고 심각하게 인식한 것을 밍후이왕에 발표한다면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이 제거될 것이다. 앞으로 모든 것은 대법으로 가늠하고 일마다 대법으로 대조해야 한다. 밍후이왕을 중시하고 존중하며 대법과 수련생 앞에서 겸손하고 모든 난법 행위를 제지하고 멀리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잘해야 당신을 훼멸시키려는 사악의 악한 안배를 부정할 수 있다. 당신과 당신의 무량한 중생들은 희망이 있고 광명으로 나아갈 것이며, 당신이 정진했던 휘황한 과거, 구했던 사람, 대법을 위해 한 모든 일이 당신 장래의 위덕으로 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잘못을 고칠 기회를 다시 놓치지 말고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수로 우리에게 연장해 준 수련의 시간과 기연을 절대 놓치지 말기 바란다.

개인 인식이므로 부족한 점은 수련생들 자비로 양해하고 지적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홍음-정법문을 구하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7/4287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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