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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심을 닦아버리고 얼굴의 혹이 깨끗이 사라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달 전, 얼굴 왼쪽 관자놀이 부위에 검은 혹이 하나 생겼는데 갈수록 커졌습니다. 이 부위에 사람들이 편평사마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이 1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는데 서서히 커졌습니다. 종종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 심리적 부담이 좀 있었지만, 거울을 볼 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아프지도 않은 데다 별로 감각도 없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전 자전거를 타려고 헬멧을 쓰는데 이 부위에 압박감이 느껴져 손으로 한 번 만져보니 그 부분이 매우 돌출되어 있었습니다. 거울로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검은색 혹 모양으로 변해 있었고 집게손가락 살 볼록한 부분만큼이나 커져서 얼굴에 볼록 튀어나와 있었는데, 거울로 봐도 아주 뚜렷해졌습니다.

이번에는 갑자기 심리적 부담이 커졌습니다. 머릿속에 이것은 ‘흑색종’이며 갈수록 더 크게 자라 이대로 발전한다면 악성으로 변하게 된다는 등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한 장의 종이 위에 ‘혹’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좀 당황해서 반점을 제거하는 피부 관리실을 지나갈 때면 이것을 잘라내야 하지 않을까 또는 레이저로 태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수련을 이렇게 여러 해나 해왔고 이런 고비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밍후이왕에서 한 수련생 교류문장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수련생이 한 달 동안 발정념을 했는데 얼굴에 갈수록 크게 자라던 ‘사마귀’가 깨끗이 청리돼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깨우친 바가 있어서 발정념으로 혹과 그 배후의 사악을 청리하기 시작했고 가족 수련생들에게도 발정념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며칠 시작했을 때는 자신이 있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도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검은 혹은 계속 커지고 있었고 통증도 갈수록 뚜렷해져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강박관념이 매우 심하게 뒤집혀 나왔고 심지어 ‘이 모습은 자신의 진상 알리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왜 나를 도와주지 않으실까?’ 등의 사념(邪念)이 뒤집혀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문득 발정념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것 배후의 자신에게서 폭로되어 나온 일부 집착을 더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저는 우선 색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장기적으로 그런 색에 관련된 더러운 것을 잘 파악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또 저는 예전에 대량으로 수많은 해산물을 사서 먹은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유난히 해산물을 즐겨 먹었고 이미 일종의 강한 욕망과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검은 혹이 ‘급격하게 자라기’ 전, 저는 항상 이 부위가 가려운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혹의 배후에 있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중독성이 불러온 사악한 영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만 이 두 가지 표면적인 문제를 찾은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각한 상황이 생긴 후, 바로 이어서 또 무슨 집착과 사람 마음이 폭로되어 나왔는지 자세히 찾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이라고 여기는 관념, 체면을 위하는 마음, 허영심, 열등감 등등 어떤 것은 매우 분명하기도 했습니다.

병이라고 여기는 관념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이것은 혹이고, 악성화되고 있으며 암으로 변하고 있다는 …… 이런 관념은 사람의 두려움, 막막함, 근심, 걱정 등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정념을 해서 이런 관념을 깨끗이 제거하고 이 관념에 따라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피부 관리실에 가거나 병원에 가서 혹을 잘라버리겠다는 염두도 함께 깨끗이 제거했으며 이 방면의 ‘뒷길’과 염두를 철저히 끊어버렸습니다.

그 며칠 동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시시각각 의기소침하고 퇴폐적이며 갑갑해하는 기분이 튀어 올라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혹을 보이기 싫었고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족들이 이 혹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일종의 두려운 느낌이 들었고 마치 다른 사람이 이것을 보면 저는 살기 힘들 것만 같았습니다. 밖에서 자전거를 타야 했기 때문에 헬멧을 써야 했고 때때로 모자를 썼습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루는 잘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자세히 살펴보며 관심을 두면서 얼굴에 예전에 없던 이런 것이 자랐냐고 말했습니다 ……. 정말 무엇을 두려워하면 그것이 찾아왔습니다. 그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도 의기소침하고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가 행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누구나 다 피부가 매우 좋아보였습니다……. 실의에 빠져 있다가 문득 예전에 자신의 수련 상태가 좋았을 때 저도 피부가 윤이 나고 희고 불그레한 모습으로 매우 좋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수련생이든 속인이든 만나면 모두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이 헛된 명성에 집착하는 완고함과 가짜 나가 강하게 형성된 것입니다. 왜 지금 이렇게 상실감을 느끼고 근심하며 슬퍼할까요?

그 순간 저는 이틀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이 단번에 생각났습니다. 그는 왼쪽 얼굴 전반이 검은 혹 같은 것에 싸여 있어 보고 있으면 좀 무서운 느낌이 들고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오른편에 서서 본 것은 완전히 정상적인 한 얼굴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만났을 때, 마침 그가 한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고 저는 그의 오른편에서 본 것은 평온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떠한 열등감이나 당황스러움 등의 기색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은 이런 모습으로도 이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살아갈 수 없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내 얼굴에 검지 살 볼록한 부분 정도의 혹이 생긴 것에 이 정도로 괴로워하다니, 난 게다가 수련인이지 않은가. 어째서 한 속인보다도 못한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이 사람을 기억해보니 이 작은 도시에서 예전에 만난 적이 없었고 그 이후로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연화하셔서 저를 점화하시어 깨닫게 해주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문득 ‘그런 괴로움, 낙담, 억눌리는 느낌이 나일까? 그런 두려움은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전혀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체면을 위하는 마음, 허영심, 열등감이 괴로워하고 있고 명을 구하는 마음이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단번에 그것들과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모든 괴로움, 낙담, 억누르는 물질들이 사라졌고 내심 일종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자전거를 타도 거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 날 저는 오후 내내 상태도 기분도 아주 좋았고 발정념을 해도 매우 강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포륜(抱輪)을 할 때, 각종 부정적인 사유가 또 강렬하게 뒤집혀 나왔는데 너무 심해서 거의 연공을 견지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저는 이미 경험이 생겨 그것을 자신과 똑똑히 분리하는 것을 알고 ‘이것은 모두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사악이고 명을 구하는 집착과 사람 마음이다. 나는 더는 너희들에게 이끌려 움직이지 않겠다. 지금 철저히 제거해 버리겠다!’ 하고 필사적으로 그것을 배척했습니다. 잠시 견지하다가 문득 부정적인 사유와 상태가 단번에 전부 사라져 조금 전 머릿속에 기세 사납게 뒤집혀 나오던 것들이 일순간에 풍랑 없이 고요해졌습니다. 저는 그 순간 매우 분명하게 수많은 이런 집착과 인심에 관련된 사악한 생명과 요소가 모두 해체된 것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그 혹 배후의 실질적인 사악도 이미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상은 곧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때 저는 곧 일이 지난 후에 꼭 이 경험을 써내야겠다는 한 가지 염두가 나왔습니다…….

과연, 이틀도 채 안 돼, 제가 무의식적으로 혹을 만졌을 때, 혹이 터져서 피고름이 흘러나왔고 제가 손으로 한 번 잡아당기자 헐거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짜내어 안에 있던 피고름이 흘러나오게 했습니다. 그런 후, 화장지로 계속 닦으면서 가볍게 양배추 모양의 혹이 조금씩 떼어져 나오게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상처 하나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틀 후,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손으로 만지자 자그마한 흉터 하나가 있었습니다. 떼어낸 후, 이제 자국만 남아 손으로 만져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후, 한동안 일에 바삐 지내다 보니 저는 그 날 아침 이 경험을 써내야겠다던 염두를 잊어버렸습니다. 이틀 전, 그때의 그 염두가 머릿속에 떠올라 저는 ‘사부님께서 이 단락의 경험을 써내라고 나를 일깨워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심득을 쓰는 과정에서 한 가지 체험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시련이 나타나면 아마 수많은 마음이 조성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때 저의 그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련 배후에 수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이 반영돼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색욕심, 해산물에 탐닉하며 즐겨 먹는 중독성 등과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속에 가장 심했던 것은 자신마저 알아차리지 못했던 강렬한 명을 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명을 구하는 마음은 체면을 위하는 마음, 허영심, 자존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명을 구하는 마음이 건드려졌을 때, 노여움과 마음에 품고 있는 원한, 화와 원망이 그처럼 뚜렷해진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명예를 위하는 자 평생 화내고 원망하며”[1]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이러합니다.

어려서부터 예민하고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존심이 강한 제 모습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수많은 해를 거치며 형성됐던 집착이 이번 마난(魔難)에서 철저히 폭로돼 나왔습니다. 스스로 그런 색욕심, 해산물을 탐닉하며 즐겨 먹는 중독성 등등을 보면서 비록 다 없애버리지 못했지만 필경 스스로 그것들이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명을 구하는 마음은 스스로 수년간 오히려 줄곧 똑똑히 보지 못해서 계속 좌우지 됐고 이에 따라 희노애락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항상 그것을 자신으로 여겼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그 마난에서 사부님의 점화와 깨우침으로 스스로 마침내 그것들을 똑똑히 보고 그것들을 자신과 분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곧 깨끗이 청리됐으며 이에 따라 그것들로 인해서 생겨났던 마난도 해체됐습니다. 저는 ‘마난이 표현될 때 마난의 표현 자체를 해결하는 데 집착하며 조급해하면 안 된다. 고통이나 각종 교란과 병업 표현 같은 그것들은 단지 나뭇가지와 잎이며 진정한 ‘뿌리’는 마난 표현의 배후이며, 사악은 사람 마음의 집착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으로 찾아 ‘뿌리’를 파서 없애버리자 ‘뿌리’에 붙어살던 나뭇가지와 잎은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2]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 물질 자체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바, 진정 사람을 교란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3] 이로 보아, 우리가 마난에 처했을 때 그런 사람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똑똑히 가려내어 그것들을 제거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어떠한 사람 마음과 집착이든지, 얼마나 강렬하고 없애기 어렵다고 느껴지든 막론하고 자신과 그것들을 똑똑히 가려내고 분리할 수 있기만 하면 제거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이 이틀 동안 저는 한 가지 심성고비를 매우 빠르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어제 회사의 책임자에게 오해받고 억울한 처사를 받았습니다. 괴로워 견딜 수 없었는데 집에 돌아온 후 자신이 고비를 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억울한 말들이 끊임없이 제 귓가에 울려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재인식(再認識)’ 등의 경문을 끊임없이 외웠습니다. 한 번 외우면 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면 또 뒤집혀 나왔습니다. 게다가 문득 책임자가 저를 억울하게 만들었던 그 일의 일부 세부사항에 있어서 확실히 책임자가 말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폭발해버릴 것 같은 데까지 다다라서 사상 속에 ‘당장 그에게 전화해서 분명히 밝혀야겠다. 1초도 못 기다리겠다’라는 생각 등이 반영되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자신이 이 이틀 동안 작성하고 있던 심득원고가 떠올랐고 그때 명을 구하는 마음을 닦은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사부님의 법도 생각났습니다. “당신의 명리를 위해 당신은 다투고 당신은 싸울 것인즉,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3]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이것은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명을 구하는 마음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폭발하려는 것이다. 단호히 그것들이 깨끗이 제거하겠다!’라는 한 가지 정념이 단번에 사상 속에 나타났습니다. 일순간, 강렬하게 뒤집히던 모든 나쁜 생각들이 딱 그쳤습니다. 마음 상태가 단번에 평화롭고 평온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렬하게 변명하고 싶던 염두들은 마치 만 리 밖으로 격리되어 버린 듯, 말하는 것 여부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받은 감동은 정말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1초 전과 1초 후는 정말 천양지차입니다. 이는 제가 더욱 직관적으로 바로 파악할 수 있게 했는데, 그런 것은 정말 자신이 아니며 똑똑히 가려낼 수 있으면 정말 빠르게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하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평온하고도 선의적으로 그 일의 진실한 상황을 책임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오해는 구름 걷히듯 사라져 분위기가 평화롭고 조화로워졌습니다.

개인적인 인식으로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사람 되기(做人)’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슬퍼하지 말라(別哀)’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7/18/4276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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