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콩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1. 인내하기 위해서 인내하다
얼마 전 ‘싼싱두이(三星堆)’에 관한 뉴스가 아주 핫했다. 나도 ‘싼싱두이’ 문화가 이전 문명에서 남겨진 문화인지, 아니면 외계 문명의 개입인지 여동생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한참 즐겁게 토론하고 있었을 때 남편이 나중엔 듣고 너무 화가 나서 “당신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다른 주장의 객관성은 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잘 참을 수 있었지만 남편의 말이 갈수록 심해졌다. ‘싼싱두이’ 뉴스에서 인신공격까지 갔다. 나의 분노는 모든 이성을 지워버렸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수련인이다. 화를 내면 안 된다!’ 양손을 꽉 쥐고 마음속의 억울함과 분노를 억누르려고 했지만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나는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알았다. 사부님 법상을 마주 보았을 때 내 마음이 부끄러움과 무력감으로 가득 찼고 나의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에 한탄하고 깊은 반성으로 왜 화를 참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날 밤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사방이 모두 첨단 기술인 교실에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는데 꿈속의 사부님은 우람하고 친절하시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면서 교실 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셨다. 꿈에서 나는 억울하게 사부님께 왜 자주 참지 못하고 포용력이 없는 것인지를 여쭤보았다. 사부님은 나에게 “스스로 깨달아야지”(원 말씀 아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꿈에서 매우 의식이 뚜렷하게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사부님이 가려 하셨을 때 나는 사부님께 악수를 한 번 해도 되느냐고 여쭸다. (전에 교류 문장에서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의 손이 솜같이 부드럽다고 말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어 주셨고, 꿈에서 사부님의 손을 잡은 느낌은 정말 리얼했다. 꿈에서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열심히 수련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꿈에서 깨어나보니 마음과 가슴의 용량이 커지고,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진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마음에 박힌 원망, 분노, 그리고 억지로 참은 마음이 모두 사라졌고 마음이 조용하고 고요했다. 나쁜 집착을 버리도록 도와주신 사존님께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불평하거나 화를 낼 때마다 이튿날 아침 제5장 가부좌 공법을 할 때 다리가 아팠다. (평소 가부좌할 때 별로 아프지 않았다) 다리가 덜 아프기 위해 다른 사람과 부딪칠 때마다 나는 일부로 표면적인 ‘참음’을 했다. 심지어 자신의 도덕이 고상하고 따지지 않은 자태를 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염두가 매우 교활하고 심층에 있는 집착은 표면적인 ‘참음’으로 숨겨지고 떳떳하고 실(失)과 득(得)을 집착하지 않는 ‘참음’이 아니었다. 이번 겉보기에 우연한 모순을 통해 나는 안으로 더욱 깊은 층의 집착을 찾았다. 표면의 집착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사실 모두 시시각각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한 마음이 법리로 나 자신을 대조하고 사존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았던 것이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사과했더니 남편은 “당신이 이러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모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잘못을 찾고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어요.”라며 기쁘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여동생 수련생과 앞으로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자주 법에서 자신을 대조하여 수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법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교류했다.
2. 자비로운 ‘참음’
업무 관계로 회사에서 임시로 나에게 전시회를 돕게 했다. 전시회에 가기 전에 나는 발정념을 강화하면서 다른 공간에서 일체 중생이 구도받지 못하게 막는 교란을 깨끗이 제거했다. 전시회 기간에 친구의 어머니가 나와 대화하면서 강한 당문화(黨文化) 언어와 사상을 드러냈다. 그녀는 자녀에 대해 계속 불평불만했고 나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차츰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또 중공(중국 공산당)이 신앙 단체에 대해 저지른 악행과 중공의 기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죄상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중에 친구의 어머니가 예전 학교에 다녔을 때 학교 선생님이 그녀를 홍소병(紅小兵)에 가입시켰지만 중공의 일체 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녀에게 중공을 탈퇴하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하는 사람은 잘 없어요. 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셔서 고마워요. 믿음을 갖는 것은 정말로 좋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녀에게 대법을 소개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들을 먼저 배우게 하고 그녀는 나중에 배우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변화를 보고 나는 대법이 중생들에게 가져온 변화에 감탄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진상을 알렸을 때 몇몇 아주머니들은 비교적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에 다른 수련생들이 진상하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있지만 어떤 수련생들의 대화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 깊이 생각하게 했고 안으로 찾게 했다. 우리 수련생들 중 일부는 진상을 말할 때 너무 인정을 받고 싶어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추천을 강요한다고 생각해 반감이 불러온 것이 아닐까? 자비심을 가지고 한 게 아니라 임무를 완수하는 것처럼 진상을 한 것이 아닐까? 인내심이 없어서 잘 경청하지 못해 중생과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나에게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 대법이 좋은 걸 알고 있지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악의적으로 대법을 비방할 때 변명하기 바빠서 말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참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자비와 정념도 없었다. 심지어 나쁜 생각까지 올라와 사람을 구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1]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도가(道家)는 真(쩐)ㆍ善(싼)ㆍ忍(런)을 수련함에 진(真)을 중점적으로 수련한다. 그러므로 도가에서는 수진양성(修真養性)을 말하는데, 참말을 하고, 참된 일을 하고, 참된 사람이 됨으로써 반본귀진하여 최후에 진인(真人)으로 수련 성취한다. 그러나 인(忍)도 있고 선(善)도 있는데, 중점을 진(真)에 두고 수련한다. 불가(佛家)는 真(쩐)ㆍ善(싼)ㆍ忍(런)에서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선을 수련하기 때문에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수련해 낼 수 있는데, 자비심이 나오기만 하면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움을 보게 되므로 곧 소원을 품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 한다. 그러나 진(真)도 있고 인(忍)도 있는데,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이 한 법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真(쩐)ㆍ善(싼)ㆍ忍(런)을 동시에 수련하므로, 우리가 연마(煉)하는 공(功)은 대단히 크다.”[2]
나는 인(忍) 속에도 진(真)과 선(善)을 포함하고 인을 수련해도 똑같이 자비심을 수련해 낼 수 있고 동시에 법을 원용(圓容)하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일사일념이 모두 법의 표준을 부합해야 천천히 제고될 수 있고 진정으로 자비심이 생길 수 있다.
3. 실(失)과 득(得)을 따지지 않은 ‘인(忍)’
며칠 전 남편은 또 과학과 믿음의 차이 때문에 내가 과학의 객관성을 믿지 않는다고 질책했는데,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왜 이리 모를까? 매번 다 내가 참는데 정말로 힘들다. 내가 생각하는 순간 사유가 생산되는 과정이 마치 한 세기만큼 길다는 것을 느꼈다. 짧은 몇 초 안에 이 사유는 이미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1초가 마치 1년으로 늘어진 것 같았다. 그 상태를 조용히 느끼고 있었을 때 나는 갑자기 ‘성주괴멸(成住壞滅)’에 대한 사부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나는 점점 깨달았다. 오랜 시간 속에 사유라는 물질도 변질될 수 있다. 우리 인류의 표면 공간에 한순간에 생겨나지만, 다른 공간에선 1년, 10년, 1000만년 동안이나 존재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영원한 대법은 물질이 변질될 때마다 고층차의 법리로 끊임없이 수정하고 물질도 끊임없이 원용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멸(滅)’에 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더 깊은 층차의 법리를 깨달은 후 나는 문득 더욱더 나의 일사일념을 잘 닦아야 하는 것을 각성했다.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염두가 진짜 자아가 아니고 누락된 순간의 사상은 계속 가짜 자아 속에 숨져지게 될 것이다.
안으로 찾기 시작하고 ‘인(忍)’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제고해야 한다고 느꼈을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자극하는 말을 하면 그래도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느꼈다. 비록 조금이지만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속인의 고락 생각하지 않음이 수련자요 세상득실 집착하지 않음이 나한이로다“[3] 사실 그런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나의 용량도 따라서 커지고 법리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은 개인 층차의 깨달음이고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삼계를 벗어나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4/16/4233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