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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워 수련의 길에서 나는 정진하게 됐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 말에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지금까지 20여 년 수련했다. 나는 수련이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하여, 매일 연공하고 대법 책을 좀 보는 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 어찌 된 일인지 몰랐고 그때 악당이 텔레비전에 내보낸 가짜 보도를 똑똑히 인식하지 못했다. 나중에 밍후이왕에서 톈안먼 분신자살에 대한 보도를 본 후에야 진정하게 악당의 거짓말과 추악함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대법과 너무 멀리 떨어졌고 너무나 천박한 인식이었다. 그때 정말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하는지 몰랐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어쩔 줄 몰랐고 이처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뇌는 법을 생각했지만, 대법의 표준에 따라 하지 못해 매우 괴로웠다.

나중에 사부님의 말씀을 보았다. “나의 뜻은 이렇게 좋은 법을 우리가 왜 외우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1] 나는 법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오후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49일 만에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외웠더니 아들이 PC방에 가는 것을 보아도 가끔은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을 자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왜 이런 문제에 부딪혔는지? 왜 잘하지 못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전법륜’을 한 번 외우긴 했지만, 법 외우기에 대해 다른 수련생들이 다 외우고 있으니 나도 외워야겠다는 일종 명을 구하는 마음으로 법을 외웠기에 스스로 별 제고가 있는 것 같지 않았고 단지 나는 ‘전법륜’을 외웠다는 느낌이었고 과시할 자본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명을 구하는 마음인데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강대한 집착이 있었으니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다.

줄곧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해 나중에는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수련생이 많아 나는 천지행(天地行)에서 가르친 방법대로 천천히 컴퓨터 시스템 설치하는 법을 배웠다. 동시에 또 진상 핸드폰을 설치하는 기술을 배웠고 평소 진상 자료를 인쇄하여 수련생에게 주어야 했기에 그때 나는 매일 매우 바빴다. 이 수련생의 컴퓨터가 망가지지 않으면 저 수련생의 프린터에 문제가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수련생의 핸드폰에 문제가 생겨 처리해야 했기에 매일 매우 바빴다. 이렇게 매일 바빠 때로 법공부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자신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나는 하던 일을 중지하고 자신의 상태를 조정했다. 그러나 단지 한번 조정했을 뿐, 법에서 깨닫지 못하고 안으로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생각지 못했다. 며칠 후 수련생이 또 나를 찾아와 바빠져 다시 일 속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가 줄곧 2015년까지 지속했다. 특히 장쩌민 소송 이후 수련생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어 나는 한때 고통에 빠져 줄곧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상태가 2018년 3월까지 지속한 후에야 나는 진정으로 이 고통에서 벗어났다. 사실 이것은 명을 구하는 마음이 방해하여 나를 괴롭힌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심에서 우러나와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의 생명은 법을 위해 왔는데 어찌 소침해서 되겠는가? 나는 현 상태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 그래서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매일 2단락을 외우도록 요구했다. 이렇게 2달 동안 외웠을 때 어느 날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자신이 법을 더 잘 외우도록 독촉할 수 있는 소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뜻밖에 그해 2018년 7월 나는 법 외우기를 위주로 하는 법공부 소조에 참가하게 됐다. 7월부터 줄곧 지금까지 우리 이 법공부 소조는 법을 외우는 방식으로 법을 배웠다. 이 소조는 매주 ‘전법륜’을 5~6페이지 외웠고 한 사람씩 외우는 방식으로 법을 배웠다.

이러면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외워야 했다. 이전에 법을 외울 때는 한 단락을 외운 후 이어서 다음 단락을 외웠고 앞에 외웠던 것은 상관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매 단락을 외워야 할 뿐만 아니라 한주에 외워야 할 내용을 함께 외워야 했다. 이는 나에게 난도가 좀 컸다.

법을 외울 때 교란도 컸다. 외우다 보면 머리가 집중되지 않아 딴생각을 했다. 발견하면 그것을 제거했지만 잠시 후 또 다른 일을 생각하여 나는 또 제거했다. 이렇게 한편으로 법을 외우고 한편으로 제거하면서 외워야 할 내용을 천천히 외웠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외웠다. 이렇게 얼마나 외웠는지 모르지만, 단체 법공부 때가 되면 여전히 많은 곳이 틀렸다. 글자를 더하지 않으면 빼먹었다. 특히 제9강을 외울 때 거기에 앉아 1시간 넘게 외웠는데 한 글자도 외우지 못해 나는 좀 조급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자신에게 포기할 거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니야’였다. 사악(邪惡)이 나를 교란하면 나는 한 마디를 외우고 한 마디를 썼다. 이렇게 천천히 이런 법이 모두 나의 머리에 들어왔다.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할 글자도 빼먹지 않고 외울 순 없어도 이렇게 견지하여 1년 4개월 만에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웠다. 법을 외울 때마다 법을 거듭해야 했기에 법에 대한 인식이 매번 깊어졌고 심성도 서서히 승화됐다. 대뇌에 일부 좋지 않은 생각이 나타나면 아주 빨리 그것을 잡고 제때 제거할 수 있었고 동시에 즉시 진짜 나와 가짜 나를 분별할 수 있었다.

이번 법 외우기를 통해 자신이 승화된 것을 뚜렷하게 느꼈고 법을 잘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느꼈으며 법을 많이 배우고 잘 배워야 한다고 하신 사부님의 법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가장 뚜렷한 것은 모순에 부딪혔을 때 안에서 자신을 찾을 줄 알았고 수련생의 부족 점을 보면 거꾸로 자신을 볼 줄 알았다. 동시에 일대일 진상 알리기 장애를 돌파했다. 다음은 몇 가지 예를 들겠다.

1. 아들과의 모순 해결

작년 3월 아들이 돌아와서 동료와 함께 장사하려 하는데 10만 위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들이 평안보험회사에 출근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 나는 아들이 일을 평온하게 하지 못할까 봐 그가 지금 하지 말고 한동안 지나서 장사하길 바랐다. 게다가 당시 상가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윳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은 이 상황을 알면서도 기어이 우리에게 대출하라고 고집부렸다. 나는 아들과 말하려 했지만 내가 입을 열자마자 아들이 소리 질렀다. 아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보고 ‘어찌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을까’하고 속으로 화가 났다. 나는 아들에게 두어 마디 하고 아들이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지나 나는 또 아들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입을 열자마자 아들이 소리 질러 내 마음은 또 불편했지만, 나는 말하지 않고 아들 방에서 나왔다. 이후 나는 아들이 말을 하기만 하면 나는 왜 괴로울까를 생각했다. 나는 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가?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아들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 나는 수련인인데 왜 평온하게 이 일을 대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나의 관념이 바뀐 것을 발견했다. 다시 아들과 말할 때 아들이 나에게 아무리 소리 질러도 나는 평온하게 대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법의 위력이 나를 변화시킨 것을 발견했다. 법을 외워 나의 심성이 제고됐다.

작년에 전염병 확산 후 많은 지역에서 모두 도시를 봉쇄했다. 당시 우리는 외지에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줄곧 사부님께 우리를 집에 돌아가게 해주십사 하고 빌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수속을 밟기 시작했는데 현지 사구(社區-현대 중국 도시주민들의 거주지역을 가리킴)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통행증을 발급해주지 않아 우리 차가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내리지 못하게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들이 차를 휴게소에 주차하고 걸어서 집에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내가 싫다고 말하자마자 아들이 차에서 나에게 욕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욕했지만, 아들이 나를 욕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이 욕을 다 하고 멈추자마자 이때 우리 핸드폰이 울렸는데 통행증을 다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통행증을 이미 다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사부님의 보호와 내가 심성을 제고하여 오늘 이 결과가 나온 것임을 알았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움과 대법의 위력에 감사드리고 나에게 이렇게 줄곧 법을 외울 수 있게 한 법 외우기 소조에 감사드렸다.

2.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보고 자신을 찾고 안으로 수련하는 것을 배우다

이 법공부 소조에 70대 할머니가 있는데 매번 법을 외우지 못했다. 처음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격려했다. 그녀에게 법 외우기를 견지하기만 하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지만 이 수련생은 법공부장에 올 때마다 “나는 잘 외우지 못했어요. 외우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고 때로 집에 일이 있어 법 외울 시간이 없어요”라고 했다. 그녀가 법을 잘 외우지 못할 때마다 매번 그녀를 격려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이런 상태여서 나는 좀 인내심을 잃었고 말도 좋게 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왜 이 모양이냐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소조의 한 수련생에게 말했다. “그 할머니를 보세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수련생은 그녀는 사부님이 관여하신다고 말했다. 이 수련생의 말이 끝난 후 나는 멍해졌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왜 이렇게 말할까? 며칠 지나 나는 인터넷에서 수련생의 부족한 점이 보이면 거꾸로 자신을 보아야 하고 수련생의 집착을 집착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쓴 수련생의 문장을 보았다. 오, 나는 순간 내가 이건 수련생의 집착을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 수련생은 모두 사부님께서 지켜보고 있고 모두 그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깨달은 후 다시 이 할머니 수련생이 법을 잘 외우지 못한 것을 보면 나에게 마음을 내려놓고 관용하는 마음으로 수련생의 부족 점을 대해야 한다고 나를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내가 서서히 자신을 수련하기 시작했을 때 한 번은 이 할머니가 법을 거의 모두 외웠고 전에 비교할 때 가장 잘 외운 한 번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이 상황을 보고 속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상유심생(相由心生)”의 법을 깨달았다.

또 한번은 수련생들이 함께 교류할 때 한 수련생이 모든 수련생 앞에서 나에게 쟁투심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수련생의 말에 이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네, 나는 이미 의식하고 바로잡는 중입니다.” 이 말은 아주 간단했지만, 나의 심성이 제고된 표현이다. 이전 같았으면 나는 자신이 체면을 잃었다고 느꼈을 것이고 속으로 수련생을 원망했을 텐데 이번에 원망하지 않고 내심으로부터 수련생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매번 마음 닦은 일은 모두 법을 외우는 중에서 제고됐다. 사부님의 자비로움에 감사드리고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한다.

3. 일대일 진상 알리기를 크게 돌파하다

이전에 나는 주로 자료 배포를 하고 일대일 진상 알리기는 매우 적게 했다. 평소 느낌에 따라 이 사람이 고발하지 않을 것 같으면 진상을 알렸다. 즉 사람을 골라 진상을 알렸고 두려운 마음이 아주 심했다. 지금 나는 종종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간다. 처음에 나는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만 하고 수련생이 말했다. 때때로 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 바구니에 자료를 배포했다.

날이 갈수록 법을 외움에 따라 대법의 법리를 점점 많이 마음에 담아 서서히 나는 가끔 속인에게 직접 자료를 주었고 상태가 좋으면 속인에게 직접 진상을 알리기도 했지만, 매번은 이런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

작년 8월에 나는 수련생과 함께 나갈 때 부정적인 요소가 점점 적어져 속인에게 침착하게 자료를 나눠줄 수 있었다.

상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야만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잘할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3]

내가 수련의 길을 걷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린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파룬따파의해-베이징(北京)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하신 건의’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7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0/4280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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