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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하고 마음을 닦으며 집착 제거해, 기점을 바로 잡으니 병마가 제거되다

글/ 지린 대법제자 후이구이(回歸)

[밍후이왕] 눈 깜짝할 새에 나는 “병업”의 마난 속에서 12년을 걸어왔고 수련할 줄 모르던 데에서 수련할 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에워싸고 돌던 데에서 그것을 내려놓고 상관하지 않게 되었으며, 막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던 데에서 구세력을 냉정한 눈으로 심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구세력의 일체 사악한 배치를 철저히 해체하게 되었다. 자격 없는 이 제자가 다시 바른 믿음을 세우고 음영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되돌아보면 큰 ‘마난’ 또한 나를 더욱 정진하게 했고 집착을 닦고 관념을 바꾸게 했으며, 층차를 제고하는 아주 좋은 기회였고 진정으로 모두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보기에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오히려 나는 그 당시 한차례 간고한 마난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깨달아낼 수 있었다.

1. 첫 마난이 오다

2009년 내가 갓 불법 노동개조 1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와 발정념을 잘 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자신이 어디에서 법을 이탈했는지를 찾지 못했는데 또다시 업무로 바삐 보냈다. 하루는 협조인 수련생이 나에게 한 수련생을 보러 가라고 했는데 그녀의 오빠는 차 사고로 오른쪽 늑골 측면을 다쳐 사망했다. 이 수련생은 상태가 좋지 못했고 나는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체면 때문에 그래도 갔다. 나도 그녀가 아주 걱정되었고 그녀에게 가서 계속 교류하면서 오빠의 차 사고를 정념으로 대하게 하려고 했다.

그 당시 단지 좋은 마음으로 수련생을 돕고 싶었고 또 자신이 법에서 수련한다고 여기고 또 자신이 사심없다고 느껴졌다. 그날 밤 나의 신체에 문제가 생겼다. 증상은 오른쪽 가슴과 측면이 통증을 참을 수 없이 아팠고 숨을 쉴 수 없었으며 옆으로 눕지 못했고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그것을 부정하고 발정념했고 아침까지 견지했으며 주변 수련생을 찾아서 발정념을 요청했다. 오전 내내 발정념하고 통증이 완화된 것을 느꼈지만, 이어서 기침이 시작되었고 그 후로 가슴과 등이 아팠으며, 후에는 또 피를 토했는데 심해서 말도 할 수 없었고 힘도 없었으며 이렇게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이 ‘가상’에 집착하며 따라갔고 벗어날 수 없었다. 비록 또 자신이 아주 단호하게 병원에 안 가고 속인의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고 여겼지만, 마음에서 진정으로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것을 에워싸고 돌고 있었다. 그 당시 인식이 모두 달라서 견고불파의 정체를 형성할 수 없어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해체하기 아주 어려웠다.

12년 동안 나는 아주 간고하게 걸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의 많은 문제를 청성하게 인식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정리하여 자신을 더욱 바로잡을 수 있었는데, 여전히 ‘병업’ 마난 속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약간의 참조를 주고자 한다.

2. 법공부하고 마음을 닦고 안을 향해 찾다

한 수련생은 병업관은 병업관이 아니라 심성관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모두 대법제자는 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당신은 왜 그러한지 잘 생각해 보았는가? 신체상의 거대한 통증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몸에서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진실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당신이 진짜로 단호하게 신사신법하고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진짜로 사람의 관념을 바꾸고 ‘병 통증’ 가상을 대할 수 있는가?

바른 믿음이 부족한 원인을 찾아보면 역시 법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이 말을 하면 전에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법공부를 아주 중시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지만, 진정으로 법을 잘 배우고 배워서 알았는가! 이는 자신이 잘 검사해 보아야 한다. 침통한 박해를 당한 것은 내가 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법을 배워도 알지 못했으며, 진정하게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수련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법공부에서 시간과 수량을 보증하며 표면에 그쳤고 아주 빨리 읽고 아주 유창하게 읽어서 틀리게 읽는 것이 아주 적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잘 배운다는 ‘가상’을 만들어주었는데, 마음은 조용하지 못했고 사상업력이 교란하여 생각이 딴 데로 가 있었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법공부하지 못했고 법을 배워도 들어오지 않았다. 부동한 층차에서 법리가 펼쳐 보여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수련생의 교류에서 말하는 것을 볼 뿐이고 자신은 오히려 체험이 없었다. 지금 깨달았는데 이는 관념으로 구성된 가짜 나가 자신을 미혹한 것이고 진짜 나로 하여금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나는 자신의 법공부에 문제가 존재함을 인식했고 수련생의 교류 글을 보고 법공부 속도를 늦추었다. 매 한 개 글자가 모두 머리에 들어오게 했고 교란을 배제했다. 후에 또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전에도 외웠지만, 확실히 변화가 아주 컸고 갈수록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견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법을 외우는 것이 매우 느려 시간이 길어지면 또 통독하고 싶었기 때문에 외우다 외우다 포기했다. 이번에는 법을 잘 배우겠다고 결심했고 이것을 돌파하여 또 법 외우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법 외우는 것은 기점이 아주 명확했는데 전처럼 결과를 추구하지 않았고 수량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나는 어떻게 하면 빨리 법을 외울 것인가에 집착하지 않았다. 외우지 못해도 조급하지 않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집중하여 배워 법이 들어가게 했다. 한두 시간 동안 한 단락만 외워도 되었는데 조급해하지 않았다. 법을 얻거나 얼마나 얻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배워서 법이 들어오게 했고 또한 주이쓰(主意識)를 강화하여 정념으로 사상업의 교란을 해체했다.

이번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법을 제대로 배우니 마음은 법에 의해 충실해진 것을 느꼈다.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마음에 들어왔고 법리를 알게 되었다. 늘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는데, 외우고 외우다 ‘오, 알았다’, 외우고 외우다 ‘어, 어찌하여 또 이 뜻이 있었는가? 전에는 왜 보아내지 못했지!’였다.

끊임없이 법을 외우면서 법에 대한 깨달음이 갈수록 깊어졌고 법리가 층층이 펼쳐져 보였으며, 나는 법 외우기의 미묘함을 느꼈다. 외우고 외우다 자신이 법에 부합하지 못한 언행이 떠올랐고 자신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았다. 가끔 어느 단락 법은 외워지지 않았는데 스스로 경각심을 가졌다. 자신이 여기에 반드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을 향해 찾았으며 집착을 찾아내고 배후의 관념도 찾아냈다.

나는 자신을 수련할 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시시각각 자신이 법에서 이탈한 부분을 주의하여 수정하고 일체 사람마음, 집착, 관념 그리고 자신의 일사일념을 모두 법으로 가늠하여 법에 부합하면 남기고 법에 부합하지 않으면 배척하고 제거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정진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나를 가지해주셨다. 또 한 수련생이 왔고 함께 법을 외웠고 이번에는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외우자 서로 촉진되고 서로 격려가 되었다. 또한, 가장 좋은 점은 서로 맞춰보고 서로 인증하며 아주 착실하고 정확하게 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마음을 제거할 수 있었으며 자아를 내려놓고 협조를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세트 좋은 방법을 모색했다. 우리 둘은 먼저 함께 통독하고 몇 번 읽어서 익숙하면 함께 외웠다. 과정 중에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고 수련생의 읽는 속도에 협조하여 빨리 읽는 사람이 천천히 읽어서 보조를 맞췄다. 만약 당신이 늘 앞장서 읽으면 바로 자아가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함께 아주 유창하게 외우게 되면 한 사람씩 외운다. 한 사람이 외우고 한 사람이 맞춰보고 당신이 한번, 내가 한번 하면서 익숙하게 외울 때까지 계속한다. 한 사람이 먼저 익숙하게 외우면 인내심 있게 다른 사람이 외우는 것을 돕고 시간이 길든 짧든 익숙하게 외울 때까지 계속한다. 사람을 기다리는 과정 중에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고 한마음으로 타인을 위하고 사심을 제거하며 수련생을 포용한다. 외워내지 못할 때 또한 조급함, 비교하는 마음, 질투심을 제거하는 것에 주의하며 이기심을 제거하고 일체를 원용한다. 법을 외우는 과정도 수련과정이다.

‘전법륜’을 외우는 것 외에 나는 또 협조하여 기타 설법과 후기 각지설법을 배웠고 이렇게 배우자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배울수록 진감하였고 배울수록 놀랐으며 배울수록 사존 정법의 홍대함과 자비를 깨닫게 되었다. 배울수록 자신의 직책과 사명의 장엄함과 신성함을 명백히 알게 되었고 배울수록 사존과 대법, 자신과 구세력의 관계를 더욱 통찰할 수 있었다.

3. 관념을 바꾸고 집착을 제거하다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법을 외우자 나는 평상시의 마음으로 대법을 대할 수 없었다. 나는 이는 한 부의 신성하고 장엄하고 우주대궁을 만든 위대한 법전임을 알게 되었다. 사존께서 명시하셨다. “대법(大法)은 창세주(創世主)의 지혜이다. 그는 천지개벽[開天闢地]ㆍ우주조화[造化宇宙]의 근본으로, 내포가 지극히 홍대하고 미세하며, 부동(不同)한 천체 층차(層次) 중에 부동한 펼쳐보임[展現]이 있다.”[1] 나는 이 한 단락 법에 대해 깊은 깨달음이 있었는데, 내 생명 층층의 미시적 부분은 진감하였고 나는 자신이 대법 속에서 용련됨에 무상의 영광과 행운을 느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나를 구도하고 계신다! 나는 내가 마땅히 어떠한 마음으로 법에 동화되어야 하는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나 이 작디작은 생명은 오로지 조건 없이 겸손하게 일체를 내려놓고 스스로 동화해야 한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전에 단지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거나 혹은 완전하게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아주 똑똑히 알려주셨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하지 않고 사람의 인식, 사람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내가 늘 당신들에게 업을 없애 줄 수는 없다. 당신들이 나와 대법(大法)을 대하는 사고ㆍ인식ㆍ감격 방식에서도 모두 속인의 사유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속인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다!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을 진정하게 인식해야 한다.”[2]

나는 이 한 단락 법에 대해 늘 알 듯 모르는 듯했다. 나는 지금 (나의 층차에서) 마치 진정으로 읽고서 알게 된 듯하다. 대법이 좋다고 느끼고 사부님의 구도에 감격하고 사부님의 보호 등등을 요청한다는 인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의 인식, 사람의 관념, 사람의 이치를 바꾸고 대법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지도하고 자신의 본질을 개변하여 법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표준과 요구에 완전히 부합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는 것이다. 수련은 지극히 엄숙한 것이고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조건 없이 가서 법을 원용하고 법에 동화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써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 사람의 본질을 불성(佛性)으로 전변시킬 수 없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2]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이 한 단락 법의 한 층의 내포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현재 나의 층차에서의 한 점의 인식에 불과하다.

나는 나에게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아주 많은 근본적인 집착을 착실하게 제거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쟁투심, 과시심, 환희심, 원한, 질투, 명리심, 색욕심, 허영심, 체면을 차리는 마음, 남에게 지적당하지 않으려는 마음, 정 …… 나는 어릴 때부터 당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에 부딪히면 도리를 따지고 쟁투심이 아주 강하며, 말할 때 강세를 취하고 늘 법리로 남을 가늠하며 밖을 향해 보고 남을 몰아붙이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을 착실하게 잘 수련하지 않았다. 남이 나를 따르지 않으면 화내며 원한을 가지고 늘 불평했다. 역시 계속 수련하지만 늘 심성을 지키지 못했고 자신도 아주 타격을 잘 받아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자신의 심신이 좌절당하게 했다.

지금 나는 왜 집착을 제거해도 되지 않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강요한 것이었다. 이번에 법을 배워서 마음에 들어온 후 나는 이런 것들이 약해졌음을 발견했는데 나의 바른 믿음이 충족해졌고 나는 통제할 수 있었으며 마음은 더는 그렇게 이끌려가지 않았다. 아울러 나는 관념을 바꾸었고 더는 사람의 관념,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보지 않았다. 나는 한 수련인으로서 법으로 가늠해야 함을 알았다. 속인이 좋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은 수련인을 놓고 말할 때 바로 좋은 일이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였지만, 진정으로 좋지 않은 일을 마주하고 모순을 마주했을 때 나는 즐겁게 그것을 맞이하지 않았고 그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배척했다. 나는 여전히 편안함을 좋은 일로 여겼고 즉시 얻게 될 속인의 이익을 좋은 일로 여겼다. 나는 여전히 속인이 여기는 좋은 일을 좋은 일로 여겼는데 그럼 나는 여전히 속인이 아닌가? 어찌 업력을 제거하고 심성을 제고하고 층차가 오를 수 있겠는가? 그럼 나는 이 문제에서 여전히 속인의 인식이 아닌가? 이는 수련과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관념을 바꾸려고 했다.

남들과 모순이 발생할 때 남들이 나에게 화를 내고 체면을 잃게 하며 심지어 없는 일을 만들어서 나를 억울하게 할 때 나는 더는 이전처럼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쟁투, 변호, 화, 억울함을 느끼지 않았다. 바로 이 불편함과 상처를 입은 느낌을 잡고 그것이 더는 나를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무척 이성적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이끌리지 않았으며 가끔은 이끌리더라도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알았고, 내가 이 방면에서 잘 수련하지 못하여 그것을 키워서 조성된 것임을 알았다. 이후에 더 공력을 들이고 발정념을 더하여 청리하면 된다.

내가 명백해진 후 나는 관들이 마치 나에게 보충시험을 보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잇달아 왔고 나는 법 속에서 수련제고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물론 넘어가지 못할 때는 지나가고 나서 아주 아쉬웠는데 이것 또한 정상이었다. 나중에 나는 왜 넘어가지 못했는지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늘 깊이 숨어있는 집착심 배후의 관념 때문이었고 이렇게 나쁜 일은 좋은 일로 변했다.

최근에 나는 또 아주 큰 것을 파냈는데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초기에 수련생은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아냈고 나에게 지적해주었다. 내가 아주 말을 잘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마치 아는 것이 특별히 많고 무엇을 말하든지 간에 나는 모두 자기 생각이 있었다. 나는 또 두서를 잡지 못했는데 열성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주 좋지 않은가! 또 수련생이 관념을 안고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긍정코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고 수련생이 제기했다면 나는 잘 찾아보아야 했다. 나는 과시심, 환희심을 찾았고 더 깊이 파 내려가니 나는 또 좋은 것을 구하는 마음, 명을 구하는 마음을 보았다. 그러나 마치 또 뿌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하여 이 일은 계속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2, 3일 지난 후 나의 머리에 연이은 정경들이 나타났다. 수련한 후 이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병업 박해 이전에 수련생의 일을 내려놓지 못했는데 모두 뒤집혀 나왔다. 또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나는 마치 무엇을 잡은 것 같았다. 그것은 무척 은밀했고 남이 좋아지는 것을 위한다는 큰 깃발을 펼치고 누가 일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호응을 했다. 진짜로 남을 위하는 일에 대해 아주 마음을 쓰고 늘 자신은 특유의 견해가 있었으며, 늘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여기고 자신은 무엇이든 모두 할 수 있으며 모두 참여가 가능하다고 느끼고 마치 나의 인식이 남을 개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련의 각도에서 가늠하면 이는 사부님에 대해 법에 대해 바른 믿음이 단호한 것이 아니라 자아에 집착하는 과시심, 환희심이고 결국에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고 좋은 것을 구하는 마음과 수련생에 대한 정이었다. 자신의 인식에 집착하며 수련생을 개변하려 하고, 수련생에게 사람을 배우게 하고 법을 배우지 못하게 했다. 지금 깨닫게 되었는데 이것은 엄중하게 자아를 실증하는 것이었다! 이는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집착의 뿌리인데 자아이다. 그것은 너무나 깊이 숨어있었고 전에 나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유형무상(有形無相)이었고 지금 나는 구체적인 인지가 있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인식했을 때 나의 마음은 단번에 밝아졌고 그러한 희열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너무나 감사했다!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했다! 그러나 여전히 실질적 수련에서 시시각각 경각심을 가지고 그것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4. 육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것을 위해 수련하지 않다

내가 병업 박해 속에서 걸은 가장 큰 굽은 길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 신체에 대한 집착을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했고 신체의 감수를 너무나 중하게 보았다. 명백히 말해서 여전히 사람의 관념, 사람의 인식에서 걸어나오지 못했다. 내가 정법의 기점에서 병업 박해를 볼 때 법리가 똑똑하지 못했고 사람마음이 무거워서 진정으로 수련의 각도에 서서 병업 교란을 대하지 못했다. 그것을 누락을 보충하고 수련 제고하는 좋은 기회로 여기지 않았다.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잘 배워야 한다.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발정념하여 자신의 공간장을 잘 청리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안을 향해 잘 찾아 집착의 뿌리를 파내야 한다. 그러나 ‘마난’을 너무나 중하게 보았고 모든 정력을 모두 ‘마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사용했다. 비록 역시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리고 안을 향해 찾아도 목적은 오히려 자신을 잘 수련하고 조사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난’을 해체하기 위함이었다. 교류하러 온 수련생과 주변의 수련생을 포함하여 마음을 모두 ‘마난’ 해체에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사악의 속임수에 걸린 것이다.

당신이 ‘마난’을 크게 보면 그것은 커지고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개의치 않으며, 구세력의 교란을 마주하여 전혀 거들떠보지 않으면 구세력은 보고서 너무 재미가 없어 그것은 무슨 방법이 없다. 그 때문에 담담히 보고 내려볼 수 있고 그것을 에워싸고 돌지 말아야 한다. 모든 방법을 다해서 ‘병업’ 교란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아예 그것을 거들떠보지 말고 그것에게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사악이 당신을 박해하려는 목적은 당신이 눈에 거슬려서 당신을 끌어내리려는 것이고, 당신은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고 제고하여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반대로 사악을 해체하고 병업 가상에서 걸어나와서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함을 증명하고 구세력의 일체 사악한 박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여 더욱 큰 위덕을 수립하며 구도중생을 더 잘해야 한다. 진정으로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려놓을 수 있고 진정으로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거기에 도달해야 비로소 행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이 위사위아의 생명에서 무사무아의 대법제자로 바뀌고 생명의 본질에서 환골탈태하는 변화이다. 이 일체의 일체에서 사존의 무량한 자비와 거대한 감당이 스며들어있고 한 방울 한 치의 전진이 모두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내 생명의 긴 노정에서 가장 최고의 영원한 영광이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정진하도록 촉진하셨고 나는 더욱 성숙하고 더욱 이성적이며, 더욱 단호하게 마지막 길을 잘 걸을 것이고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자격을 잃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논어’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원문발표: 2021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8/4223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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