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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당문화(黨文化)를 똑똑히 알고 깨끗이 제거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법을 얻은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줄곧 몸이 이 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9평공산당(九評共產黨)’과 ‘해체당문화(解體黨文化)’를 여러 번 읽어보았고 들어보았지만, 자신의 당문화에 대해서도 그림에서 준마를 찾는 것처럼 책에서 말한 것과 밍후이왕의 수련생 문장에서 분석한 것으로 대비하고 참조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사실 그 근본을 캐보아도 줄곧 투철하게 알 수 없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이 자고로 사람은 자체가 모두 이렇게 저렇게 나쁘며 표현되어 나오면 모두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가지 부족함을 찾으면 단독으로 한 가지 마음만 볼 수 있었을 뿐 당문화와 연결 지어보려고 하면 깨닫기가 어려웠습니다.

때때로 수련생들은 갓 해외로 나간 중국 수련생들에 대해 해외 수련생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논의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우리가 해외에 나가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겠냐고 한탄했습니다. 저는 듣고, 자신에게 당문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이 쌓인 것 같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뿐더러 주변 사람까지 다 그러니 더더욱 깨달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진상자료를 만드느라 온종일 바삐 보냈고 밤에는 머릿속이 혼미한 것 같아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루가 다 가도록 아직 법공부를 안 했으니 멈추고 책을 보면서 법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련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수련생은 지친 저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의식중에 자신의 한 가지 집착을 언급했습니다. 수련생은 순간적으로 마치 무슨 기계 버튼이 눌러져 움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앉아있던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사람 전체가 과격한 상태가 돼서는 바로 앞에서 저를 훈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도리어 저는 화가 나지 않았고 ‘당신이 이렇게 날 훈계한다고 해서 내 집착이 사라지는가?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 정도인가?’하고 우습게만 느껴졌습니다. 수련생의 모습을 보는데 문득 ‘당문화’라는 한 단어가 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가 늘 자신의 당문화적인 표현과 영향을 보지 못하니 수련생이 제게 연기해 보여주게 하신 것이고, 수련생이 어떠한 것이 아니라 제가 늘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분명하게 보아야 했습니다. 수련생은 마치 제가 매우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격동돼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수련생은 눈빛에서부터 몸에 이르기까지 분위기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완전히 자아 도착 상태에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명백하게 보아냈습니다. 수련생의 그 모습은 정말 비정상적이었고 정상인이 화를 내는 모습과 달랐으며 일종의 나쁜 물질과 요소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세히 그런 요소를 느껴보았습니다. 잘난체하고 몹시 방자하고 오만하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서 독선적인데, 전반적인 신체와 언어로 표현한 것은 곧 당문화였습니다. 이는 제가 처음으로 진실하게 그런 물질을 느낀 것입니다.

그 물질의 배후는 무신론이고 신이 없으며 자신을 가장 크게 놓고 있기에 스스로 혼잣말을 하고 안하무인이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서 독선적으로 분석하고 독단하는 것인데, 무슨 교류도 필요하지 않고 자기가 곧 올바른 것이고 지배자라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전형적인 중국공산당 당문화의 표현입니다.

저는 수련생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이런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한 수련생을 마주했을 때, 저는 무례하게 상대방의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무쇠가 강철로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듯이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면서 수련생이 의기소침해져서 낙담할 정도로 말해놓고는 자기가 최선을 다했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신전(神傳)문화에서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선(善)입니다. 선에는 극기(克己)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옛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이 화를 내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낙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문화 속의 개념은 설령 잘 소통해야 하는 때라도 일종의 전투적인 자세와 태도를 품고 말하고 사람을 억압하면서 말해서, 자신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신전문화는 신을 공경하는 것을 가장 크게 보며 만사만물은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여깁니다. 생명이 진정으로 겸손하면 사상 속에서 모든 것이 다 신의 조화(造化)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정의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자신을 정의의 화신으로 여기면서 신을 대체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줄곧 스스로 잘난체하는 것을 닦아 없애기 너무 힘들고 수구(修口)도 잘 하지 못해서 늘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 고민스러웠습니다. 이제 당문화가 못되게 굴면서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상태는 자신이 바로 지배자가 된 듯이 늘 자기 견해를 충분히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마음속으로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숨기지 못하고 말해서 제삼자가 알게 해야 하는 것이었고, 늘 단번에 털어놓아야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만 하면 수련생들 가운데서 일종의 틈을 조성하여 후회하곤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이런 상태가 몹시 괴로웠지만 고치지도 못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자아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해서 반복적으로 이 ‘자아’를 수련한다고 했지만, 그 자아의 배후에 존재하는 당문화를 깊이 파헤치지 못했습니다. 이 개념은 예전에는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중심적이 아니잖아?’ 하는 정도로 매우 모호했습니다. 아마 각 개인의 몸에는 모두 사(私)가 있을 수 있지만 신을 믿는 사람, 당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은 그 자아의 표현이 전혀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신과 서로 대치되는데 이것이 수련일까요? 신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을까요?

인식했으니 저는 어떻게 수련해야 할까요? 저는 먼저 발정념을 하여 자신 공간장의 당문화 요소를 해체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일하고 생각함에 법에 따라 행해야 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해야 하며 필요한 것을 정체(整體)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예전에도 생각한 적이 있지만 왜 하지 못했을까요? 당문화 속에 있다 보니 자신을 높게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을 크게 여겼고 일념에서부터 최후까지 모두 사부님과 대법을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은 올바른 가운데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진정으로 법에 따라 행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늘 자신이 옳다는 개념 속에 깊이 잠겨 있어 자신의 ‘올바름’으로 상대방을 평가·판단했던 이런 개념의 배후는 바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과 괴리된 당문화입니다.

약간의 인식이며,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1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7/11/4268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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