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북미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년 반 동안 매체에서 일한 수련 체득을 교류할 이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2019년 에포크 미디어 아카데미에 참가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 미망 중에서 이 소중한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교류문장 쓰면서 매체에서 보낸 나날들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 그리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정말 시간과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부님께서는 자비로 우리에게 이 단락 시간은 귀중한 것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거듭 일깨워주셨습니다.
말하기는 아주 쉽지만, 표준에 도달하기란 전혀 쉽지 않습니다. 바쁘고 압박이 심한 날에는 대법제자가 되어 매체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어버립니다. 저는 우리 모두 서로 격려해 자신과 이 기회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처음 매체에서 갓 일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활력이 넘쳤고 아주 낙관적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이 든 직원들이 기진맥진해 아주 피곤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많은 사람이 괴로워 보였습니다. 그들이 장기간 매체 일을 하면서 이곳에서의 일하는 기회를 의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어려워졌음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이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켜냈음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자문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과연 내가 스트레스를 더는 견디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올까? 혹시나 내가 이들처럼 이렇게 힘든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지? 그때 나는 포기하고 사직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 후, 저는 뭔가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몹시 힘들게 느껴질 것 같아. 내가 스트레스를 정말 감당하기 어렵게 되면 그때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고려할 거야.” 저는 그녀에게 “만약 어느 날 내가 사직을 고려하면, 우리가 이 대화를 한 적이 있음을 일깨워 내게 사직하지 말라고 권해 줄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동의했습니다.
몇 달 후, 정말로 스트레스가 저에게 눌려 왔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소중함을 잊고 사부님께서 저를 여기로 데려오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저의 이기심에 굴복했습니다. 저는 여러 친구에게 힘들어 사직하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불평했습니다. 결국, 전에 저와 약속했던 친구가 저에게 말했다. “네가 전에 말 한 적이 있어. 네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면, 사직을 만류해 달라고 부탁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니?” 그녀의 말은 마치 제 정수리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처럼 저 자신을 일신하게 해 잠시나마 더는 헛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도와줬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이 함께 몰려왔을 때 서로 격려하는 것이 왜 매우 중요한지에 대한 한 가지 예일 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방할’ 이런 방법을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독한 고험이 왔을 때 한번은 저를 위해 잘 안배된 이 길에서 벗어나려고 매체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조지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었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이끌어 되돌아오게 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첫 번째 큰 시련을 겪는 저를 이끌어주시다
일부 집착은 마음속에서 이미 여러 해 동안 묻혀 있어 이런 집착은 하마터면 제가 매체를 위해 일하도록 안배된 저의 길에서 벗어나게 할 뻔했습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게 자비로 이끌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문 기자로서 매일 이슈를 찾고 인터뷰 약속을 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회의 때 저는 제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누가 좋은 기삿감이 있는지, 누가 인터뷰 약속을 했는지, 주로 이런 것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늘 상사의 칭찬을 구하고 이로써 제가 이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상사와 동료가 제가 능력이 있고, 제가 잘한다고 말해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런 집착을 말할 때 현재 시제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런 집착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몇 층을 벗겼지만, 더 깊은 층의 것을 벗겨내어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 인터뷰를 예약하지 못했거나, 흥미 있는 화제 기사를 찾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은 매우 좋고 정작 저는 없으면 낙담합니다. 이러한 쟁투심은 자신감이 없고 자신을 아끼지 못하는 정서를 가져와 매체에서 일하기를 포기하게끔 할 뻔했습니다. 전업하고 첫 몇 개월 동안 저는 이런 강렬한 부정적 염두에 허덕였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잘하지 못해 영원히 적절한 인터뷰를 예약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민첩하지 못해서 영원히 좋은 기자가 못될 것이다. 내가 올린 기사는 좋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등입니다. 부정적인 염두 중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나는 여기서 대법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회사에서 돈을 써서 나를 전업으로 고용하였으나, 나는 오히려 어떤 유익한 것도 제공하지 못해 회사의 이윤 창출에 공헌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매일 자신이 대법의 자원을 낭비한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습니다.
몇 명 수련생에게 이런 파멸적인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오히려 저를 격려했습니다. 저에게 정념을 가지고서 회사에 남아 있으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결정했습니다. ‘그만두자! 나는 더 대법 자원을 낭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보도 자질이 제고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나보다 잘하므로, 그들은 내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저는 매체를 그만두고 대학으로 돌아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무실 한구석으로 달려가 가장 빨리 조지아로 날아가는 항공편을 검색했는데, 작년 4월이었습니다. 그 전에 저는 이미 4월 중에 일주일 동안 친척을 만나러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예약한 비행기 표를 더 이른 날짜로 바꾸었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는 취소해버렸습니다. (되돌아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상사를 찾아 사직하겠으며, 다음 주에 조지아로 돌아가겠다고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자신에 대해 정한 기준이 너무 높고, 심지어 저에 대한 그녀의 기준보다 더 높다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비록 그녀가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을 불평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저 스스로 제가 해낸 것에 만족스러운 적이 없고, 지금까지 제가 회사에 어떠한 가치를 더해 주었다고 생각한 적 역시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상사는 저에게 남아 있으라고 권하면서 호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표준조차 없네요!” 그녀의 말은 저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녀가 옳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직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후, 저는 바로 인사부에 갔습니다. 그들에게 다음 주에 떠난다고 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뉴욕의 기숙사로 돌아가 짐을 챙겼습니다. 저는 엄마와 이모에게 전화해 제가 돌아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중공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막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언니와 이모는 제가 전염병의 중심인 뉴욕에서 돌아오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돌아갈까 봐 염려해 전염병 상황이 좀 완화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조지아로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뉴욕에 계속 머물면서 저의 집착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저는 열심히 법공부하면서 안으로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사직하고 싶어 하는 저의 집착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작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았고 쟁투심은 저를 기진맥진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늘 조회에서 다른 사람을 능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제가 하는 이야기가 전문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과도했습니다.
그때 사부님 말씀이 저에게 큰 감동을 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 너무 소심한 군자가 되어 늘 이런 작은 일에 착안하여 길을 걸어도 개미를 밟아 죽일까 봐 건너뛰면서 다닐 수는 없다. 당신은 사는 것마저 힘든데, 그것 또한 집착이 아닌가?”[1] “큰 것에 착안해야 하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1]
저는 비록 제 업무가 아직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골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당당하게 내 길을 가야 한다고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뉴욕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정말 저를 지켜 주셨고 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셨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이 긴장된 에피소드가 있은 지 몇 달 후, 저와 동료가 기능상에서 현저하게 향상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더욱 전문적으로 변모했습니다. 저는 제가 남아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우리 영문 채널이 이렇게 빨리 성장했다는 것을 저는 아직도 믿기 어렵습니다.
수련에 전념하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문 NTD TV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것을 보면, 사부님의 이 구절 법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1년 반 전 제가 영어 채널에서 갓 전업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매일 겨우 두 개의 30분짜리 뉴스 프로그램만 있었고, 유선 텔레비전 방송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17개월 후에 우리는 지금 아홉 개의 질 좋은 프로그램이 생겼고, 유선 텔레비전에서 24시간 방송합니다. 우리 프로그램은 미국의 여러 대도시, 여러 플랫폼에서 방송됩니다. 우리는 또한 방금 영국 채널을 새로 열었습니다. 전문 분야에서 우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을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영문 채널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음을 보면서, 저는 전례 없는 시기에 매체의 일원이 된 제가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 모든 일을 해냈을까요? 당연히 대법의 지혜로 된 것입니다. 제 눈으로 목격한 기능 제고에 대해 좀 교류하고 싶습니다. 그날 밤, 영문 NTD TV가 유선 텔레비전에서 방송된다고 총재가 발표한 것을 기억합니다. 몇 달 후, 총재는 또 24시간 방송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몇 개 시작하고, 기존의 30분짜리 뉴스 프로그램 두 개를 매번 1시간씩으로 확장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계획을 듣고 나는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짧은 프로그램만 제작했는데도 우리 팀은 이미 뻗어있고, 다들 날마다 숨 쉴 틈도 없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능은 아직 초급 수준에 있어 매일 뉴스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두려워하는 생각을 버리고, 소망과 의지가 있으면 목표가 실현될 것이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바뀌자 원고 쓰기가 아주 쉬워지고 인터뷰 약속도 더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하루에 기사를 두 편 쓰고, 인터뷰 1~2개를 하고, 영상 1편을 편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한 일의 세 배 정도인데, 그리 어렵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동료들도 같은 정도의 발전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곧 모든 기자가 매일 두 가지 뉴스를 만들 수 있게 되어 확장판 뉴스 프로그램은 어렵지 않게 실현됐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빠른 제고를 실현하게 된 것은 우리가 전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잘하려고 했고, 이런 소망을 뒀기 때문임을 압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우리를 밀어주셨습니다. 대법의 지혜가 우리 팀을 새로운 높이에 이르도록 도와줬습니다.
교만과 자만심, 쟁투심과 질투심을 닦아 제거하다
저는 최근 워싱턴 DC로 전근되었습니다. 우리는 곧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입니다. 솔직히 영문 NTD TV 프로그램을 확장한 경험에 따르면,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전히 집착심이 많아서 더 잘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저는 더욱 열심히 집착심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치솟는 저의 집착심은 자기중심, 교만, 쟁투심입니다. 만약에 제가 뉴스를 잘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다른 사람이 저보다 더 좋은 보도를 했다고 생각되면, 무척 마음이 움직입니다. 어떻게 이런 집착을 제거했는지를 말할 기적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러한 것들과 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우선 이런 마음을 의식함은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여러분과 소통하면서, 제가 이런 집착을 좀 더 진지하게 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누가 몹시 잘할 때, 저는 질투와 불편을 느낍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 묘사하신 그 사람처럼 “다른 사람이 만약 잘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1]
나는 이런 마음을 제거해 버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잘하면 우리 매체가 잘하는 것이고, 바로 우리가 사람을 효과적으로 구하고 있다는 의미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데, 내가 이룬 성과를 너무 의식하지 말라고 늘 나 자신에게 일깨운다.
다행히 상사도 저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거듭 일깨워줬습니다. 저 자신이 얻은 성과를 자랑하거나 과시할 때, 그녀는 저에게 “지금 자만심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고 있나요?” “자랑스럽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저를 감독하고, 제가 집착에 빠졌는지를 온화하게 일깨워 준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집착이 생길 때마다 진지하게 대해야 함을 일깨워줬습니다. 저 또한 다른 수련생이 집착을 드러내고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선의로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수련생이 주의하지를 않거나, 그 집착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깨워주는 것은 자비심을 수련할 기회이며,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좀 더 선량하고 온화하게 대하는 법을 깨닫는 것입니다.
제 질투심과 쟁투심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우리 매체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일부 사람들, 특히 프로그램 진행자나 오랜 경력의 기자들과 같이 있을 때, 강한 질투심이 올라옵니다. 심지어 속으로 그들을 비웃는 정도로 질투하고, 그들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사부님이 아니라면 그들도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텐데, 저는 그들 모두가 너무 거만하다고 여깁니다. 저는 왜 모든 사람이 그들을 높이 보는지 속으로 묻습니다. 왜냐하면, 분명 대법에는 본보기가 없지 않은가? 저는 심지어 매체의 유명 인사들을 숭배하는 수련생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공한 사람들’이 제 마음을 이처럼 움직이게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사람이 저를 높게 보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의 이런 심리를 계속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다른 사람이 제 말을 듣지 않거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는 곧바로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할 때 저는 역시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것은 사부님의 공로이지, 그들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이 사람들의 성공은 그들 뒤에 팀의 협력과 사부님의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팀과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제 생각은 사실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매우 잘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면 저는 자신의 공로로 삼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뒤에서 팀원들이 날 도와준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저 역시 제 모든 능력을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어버립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속인의 신체, 속인의 손, 속인의 사상으로 당신이 고에너지물질을 공으로 연화(演化)하려고 하는가? 자랄 수 있겠는가?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웃음거리다. 이것이 바로 밖에서 구하고 밖에서 찾으려는 것인데, 영원히 찾지 못한다.”[1]
저는 매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 자신을 일깨우고, 아울러 계속 노력하여 이런 집착심을 닦아 제거해야 합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워싱턴의 수련생 한 명이 제가 깨닫도록 능숙하게 도와줍니다. 사실 저의 성과 역시 제 것이 아니므로 자랑할 일도 없습니다. 제 질투심과 자기중심적 심태를 줄이기 위해 저는 다른 사람이 거둔 성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고, 사부님께서 제 모든 능력을 주셨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웁니다. 저는 마땅히 제가 얻은 성과를 담담하게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방면에서 더욱 잘하고, 착실하게 미래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매체에서 일하는 귀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저의 수련 체득을 교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전법륜’
(2021년 따지웬 씬탕런 매체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1년 6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9/426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