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4년 8월, 저는 54세 때 진귀한 대법을 만났습니다. 비록 매우 늦게 만났지만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고 대법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정념’의 많은 내포를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저는 작은 공원에서 노인수련생을 만났고, 그분은 저에게 연공 동작 일부분을 가르쳐주시고 전단을 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서 커다란 둥근 불덩이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길을 훤히 밝혀 주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전단에 있는 인터넷 주소에 들어가 ‘전법륜’을 찾아 3일 만에 다 읽었습니다. 저는 정법을 얻기 위해서 젊어서부터 수련에 흥미가 있었고 고생스럽게 20여 년을 찾아다녔습니다. 오늘 정법을 얻었으니 더없는 영광을 느꼈습니다. 수련 초기 6개월은 기적과 환희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계에는 이런 사람이 적지 않은데, 줄곧 고층차로 수련하려고 생각한다. 도처에서 법을 구하려고 돈도 적지 않게 썼으며, 방방곡곡을 한 바퀴 돌아 유명한 사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유명하다는 명(名)이 진정 명백하다는 명(明)은 아닐 수도 있다.”[1]라고 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명소에 대법 진상 거점을 설치하다
저는 수련에 전념하기 위해 2009년에 2년 앞당겨 퇴직했습니다. 당시 중국인 관광객은 100만 명을 넘었고 매년 20~40%씩 폭증했습니다. 저는 중국인 진상을 하기 위해 관광가이드 양성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많은 나이와 어려운 중국어, 창피하다는 생각을 극복하고 2년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명동은 서울의 가장 번화한 쇼핑 중심가입니다. 여기는 중국 여행객이 항시 넘쳐났고, 부근에 중국대사관이 있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하며 사악을 청리하는 중요한 곳입니다. 명동에는 두 곳에 진상 거점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곳에 부부수련생이 진상 거점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서울을 떠나면서 저와 한 여자 수련생이 맡게 됐습니다. 다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만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상에 참여하는 수련생이 많아짐에 따라 저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새로운 진상 장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서울 한옥마을은 전통 건축물로서 전통공연을 무료로 연출하는 국가가 운영하는 주요 관광지로 매일 외국인과 국내 관광객들로 넘쳐났습니다. 저는 담당경찰서에 집회신고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담당 경찰은 “그곳은 차도만 있고 인도가 없으므로 집회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망연자실하여 멍하니 서 있는데 한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그전에 누가 여기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는 것을 봤다고 하며 그곳에서 진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연히 그 경찰관의 도움을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2주 전 중국 고위관리가 방한할 때 우리 파룬궁 수련생 세 명은 중국 고위관리가 머무는 호텔 부근에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3시간쯤 지난 저녁 무렵, 경찰 5~6명이 순찰 중에 우리를 발견하고 위법이라며 강제로 우리를 경찰차에 태워 집에까지 호송했습니다.
제가 탄 경찰차에는 세 명의 경찰이 함께 탔습니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제가 퇴직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그들은 정중해지고 분위기가 변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파룬궁을 수련한 계기와 받은 혜택, 박해상황 등 진상을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경청하고 묻기도 하며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중 한 명이 한옥마을을 담당하는 그 경찰관이었습니다.
바로 그 경찰관이 그 시간에 그곳에서 저를 알아봤고 저는 그의 도움으로 집회 허가를 받았습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이었을까요?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이다.”[2]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는 환경에는 늘 사부님께서 가지 해 주시고 불가능한 일도 가장 좋은 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
이렇게 한옥 관광지 입구의 작은 공간에 진상점을 설치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 후 한옥마을 진상 거점은 점차 확대되어 도로변 담장을 따라 40m가량의 진상판을 설치하고 폭 6m가량의 차선 옆에서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렸습니다.
진상판은 디자인 수련생과 제작 수련생이 협력해 매우 신속하게 제때 진상 내용도 바꿨습니다. 사시사철 교포 수련생들은 중국 여행객을, 한국 수련생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상을 알리면서 서울의 유명한 진상 거점이 되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도 수련입니다. 진상 거점에도 항시 외부와 내부모순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 번은 전단 배포와 사진이 폭력적이고 잔혹하여 아동교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저는 한옥마을 사무실로 불려가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사무장은 사무실 직원이 상급의 꾸중을 들었다면서 큰소리로 야단쳤습니다. 저는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그럼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해 돈벌이를 하는데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순간 기세등등하던 그가 한마디도 더 말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의 정념에서 나온 한마디는 과연 사악을 제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문제가 되는 진상판을 바꾸자고 주장했지만, 자료 담당 수련생은 원래 진상판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매우 기분이 나빴지만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수련은 먼저 내려놓고, 먼저 포기하고, 먼저 양보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포용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미 씬씽(心性) 제고가 된 것입니다. 후에 그 수련생은 진상판의 진상 내용을 바꿨고 진상 거점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좋은 일입니다.
치욕을 참고 삼퇴 진상점을 보호하다
자유회관 대형 식당은 관광객 5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고, 대형 관광버스 3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춘 대규모 관광객 전용 식당입니다. 90% 이상의 중국인이 이곳에서 점심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통로가 매우 길어 진상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처음에는 2~3명의 수련생이 진상했으나 새로 걸어 나온 수련생들이 많아지자 6~7명에 이르렀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 중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심지어는 관광객과 다투기도 했습니다. 가끔 관광객을 따라 주차장까지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식당 사장은 화를 내며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손님이 줄고,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식당사장이 마귀의 통제를 받기에 돌파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식당 사장은 사무실 직원, 주차장 관리인 등과 함께 우리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경찰을 불렀고, 식당 직원 세 명이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식당 사장은 “우리는 2천만 원(약 1만8천 달러) 임대료를 내는데, 당신들은 공짜로 사용하려고 해요?!”라고 하면서 안전 봉을 내던지면서 “당신들이 이곳을 이용하려면 회관 사무실의 승낙을 받아 와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집회신고라도 하면 좋으련만 사유지라서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자유회관 사무총장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진상하는 6명 중, 수련생 3명은 남아서 발정념을 하고 3명 수련생이 사무총장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사무총장에게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는 기관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중국인을 상대로 자유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홍보하는 자원봉사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뒤에 서 있던 비서가 사무총장에게 승낙하지 말라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사무총장은 부장에게 처리하라고 맡겼습니다.
저는 부장과 많은 말을 했지만, 부장은 거부했습니다.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온화한 말씨로 “부장님 저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미덕을 쌓고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부장님이 저희를 도와주시면 역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장은 말했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우리도 역시 복과 덕을 중시합니다.” 부장은 또 우리에게 복 받은 많은 일을 이야기한 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당시 식당사장은 안절부절못했지만, 최종적으로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하고 주차장에 나가지 않는 조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참여한 전체 수련생의 정념과 사부님의 가지를 받아 이 진상 거점을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체 공동제고하는 기회였습니다. 진상 거점이 안정될 무렵 교란이 연달아 덮쳤습니다.
하루는 머리를 빡빡 깎고 단체 복장을 한 20여 명 중국 젊은이들이 식사하고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이 다짜고짜 진상판을 발로 밟고 부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허리를 껴안고 넘어지자, 곧 구경하던 20여 명이 일제히 돌진해 와서 저의 머리를 쥐어박고 발로 차고 집단 폭행했습니다. 여 수련생 한 명이 말리려고 파고들었지만 나가떨어졌고, 진상 자료는 모조리 찢겨 바닥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경찰에 빨리 신고하라고 말했습니다. 식당사장이 황급히 달려와 “회관 사무실에서 알면 당신이나 나나 좋을 것 없으니 신고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신고해봐야 사건을 더 복잡하게만 만들 것이고, 우리의 목적은 진상을 계속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버스 기사가 또 “제가 증인을 서 줄 테니 신고하세요.”라고 했으나 저는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전혀 아픔을 못 느꼈지만, 그 후 수개월 다리를 절룩거렸습니다.
비록 저는 폭행을 당했지만, 식당사장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폭력 사건 사태를 진정시켰습니다. 만약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면 저는 감당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안으로 찾아보니 이렇게 좋은 진상 장소를 잃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아주 강했고 항상 불안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있고 난 뒤 홀가분해졌고 식당 사장도 더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가 어떻게 수련하든, 나는 모두 각 방면의 방법을 채용하여 설령 그가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길 때에도, 그가 가장 내려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 표현되게 할 것이다. 설령 당신들이 대법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것이 표현되어 나오게 할 것이다. 일 자체가 그로 하여금 제고되지 못하게 한다면 안 되며, 그의 心性(씬씽) 제고만이 가장 첫째이고 그의 승화만이 가장 첫째이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저의 집착심을 제거하시기 위한 배치를 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이곳은 점심 시간대, 저녁 시간대에 삼퇴 진상 거점이 되어 아주 많은 중국인이 삼퇴하고 구도 되었습니다.
언어의 관문을 돌파하고,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다
한국인으로서 진상 거점의 제일선에서 진상을 알리는 데 있어서 언어는 큰 난관입니다. 화인 수련생이 진상 용어를 번역하고 녹음해 주면서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키워드는 ‘저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은 자유민주 국가입니다. 언론 자유가 있고 신앙 자유가 있습니다. 왜 삼퇴를 해야 하는가? 중화민족은 염황 자손입니다. 세세 대대로 불도신(佛道神)을 신앙했습니다. 마-레(馬列, 마르크스, 레닌) 자손이 아닙니다. 공산(사악-邪惡)주의는 무신론입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재난이 왔을 때 신불(神佛)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중국 관광객은 한국인이 중국어를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고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중국어를 배웠느냐? 돈은 얼마를 받는가? 봉급은 얼마인가?’고 묻기도 했습니다. 내가 파룬궁 수련자라고 말하니 파룬궁이 어떻게 한국에 들어왔냐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체가 진상이었습니다. 친구처럼 대하니 그들의 두려움도 적어져 비교적 탈당이 쉬웠습니다. “당신은 중국어를 아주 잘해요.”라고 말했으며, 많은 사람이 악수를 청했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진상판을 열심히 보고 있는 젊은이에게 다가가 몇 마디 하자 탈당에 동의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한 말을 그는 그대로 반복했는데. 뒤에 있던 20여 명의 사람이 다 들었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은 중국공산당이 꾸민 사기극이다. 천안문 광장은 그렇게 광활한데, 어떻게 1~2분 이내에 소화기와 소화 담요를 찾을 수 있겠는가? 선에는 선의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의 응보가 따르며 이것은 하늘의 이치이다. 중공은 역사상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 당신들은 그것의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진상을 알아들은 뒤에 있던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 탈퇴하면서 집단 탈당의 계기가 됐습니다.
하루는 잘생긴 젊은이가 땅바닥에 앉아 진상 자료를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그는 “당신 집은 어디인가? 언제부터 수련했는가? 사부님은 어디에 계시는가?”고 묻고 또 사적인 것을 물었습니다. 저는 순간 ‘특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성실히 답변하고 진상도 알려주었습니다. 언뜻 쳐다보니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는 수련을 중단한 젊은이가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사부님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말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우리는 식사하고 나온 중국인을 한 사람씩 붙들고 나란히 따라가며 진상을 알립니다. 제가 진상을 말할 때면 그들은 제 얼굴을 쳐다보면서 진실한지 확인했습니다. 이때 저에게 ‘됐다’라는 환희심이 나오면 꼭 실패했습니다.
하루는 유독 교란이 심했습니다. 결정적일 때에 함께 온 가족이 부르거나 일행이 교란했습니다. 그날 세 명밖에 삼퇴를 못했고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아보니 법공부를 안 했습니다. 다음날 법공부하고 갔는데 43명이 탈당했고, 그다음 날은 35명이 탈당했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다하고 계시고, 우리는 다만 진상을 알릴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진상을 알릴 때 항시 발걸음이 가볍고 나는 것 같았습니다.
가이드는 보통 밥을 빨리 먹고 먼저 나와서 관광객을 기다립니다. 저는 가이드에게 다가가 “당신은 좋은 직업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선행하고 덕을 쌓는 것입니다. 당신은 파룬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죠? 중국의 관광객들은 거짓 선전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진상을 알 좋은 기회입니다. 그들이 자료를 받아보도록 도와주세요. 젊어서 좋은 일을 하고 덕을 쌓으면 나이 들어서 복을 받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이드는 진상을 받아들이고 관광객들에게 자료를 받게 했으며, 아주 많은 가이드가 탈당했습니다.
만약 관광버스 기사도 진상을 알려고 하면 비디오를 담은 고급케이스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이드, 기사, 경찰관들은 파룬궁을 이해하게 되었고 외부압력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는 항상 목표를 세우고 결과를 점검했습니다. 탈당 숫자가 5천 명을 넘자 목표를 1만으로 높였습니다. 현재 87% 달성했습니다. 눈비가 오는 날이거나 명절에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돌파하고 나가면 꼭 성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맺는 말
저는 광고회사와 유료 계약을 맺고 지하철 100칸에 중국공산당의 생체장기적출을 폭로하는 800장의 사진을 붙여 중국공산당의 죄악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계약한 다음 날 문을 나서자 홀연 상화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어디선가 라일락 꽃향기가 미풍에 실려 오고, 몸은 가볍고, 피부는 부드러웠습니다. 갑자기 천목으로 보았습니다. 전신을 휘감고 있던 물고기를 잡을때 쓰는 그물 같은 물건이 양 발목에서부터 머리까지 벗어지더니, 휙 하늘 높이 던져져 흰 구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 그렇게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웠습니다! 마음은 걸림이 없고, 신체의 구속을 벗어났습니다. 생명이 해탈한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만 잘해도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훨씬 많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법의 박대정심한 내포에 끌려 경서 읽기에 푹 빠졌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의문점으로 남았던 모든 일이 해소되었습니다. 집착심을 많이 내려놓을수록 더욱 많이 알 수 있고, 많이 알면 알수록 더욱 많이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상보상성(相補相成)이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저는 8개월 시간을 들여 ‘전법륜’을 베꼈으며, 2년에 걸쳐 ‘전법륜’을 한 단락씩 외웠습니다. 법공부와 중국어 공부를 동시에 하니 수확이 많았습니다.
2019년 7월의 하루, 저는 정공을 하는 중에 창공과 그 창공을 떠도는 흰 구름을 보았습니다. 저의 의식 중에 창공은 진짜 나이고, 흰 구름은 집착‧욕망‧사상‧관념으로 뭉쳐진 현실의 나였습니다. 저는 흰 구름 속에 있었고 흰 구름은 점차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계속 떨어지면 현실의 나는 죽는 것이었습니다. 구름 위의 나는 창공으로 힘차게 뛰어올랐습니다.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의식을 잃었고 감전되어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천지간에 이 몸은 이미 완전히 갖춰져 있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무엇이 더 필요하랴! 진짜 나와 현실의 나가 하나로 합쳐진 바로 이러한 느낌이었습니다. 천길만길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든 구름 위에서 뛰어내리든 우리는 반드시 현실의 사람 중에서 뛰쳐나와야 하며, 진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짜 나의 껍질을 벗기고 힘차게 탈출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영문도 모르게 즐거웠는데 단전에서 치솟아 오르는 희열이었습니다. 적막 속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수련의 노정에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용기 있게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과 어려움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습니다. 정념에는 용기와 도전의 내포가 있음을 또 알게 됐습니다.
잘못된 점은 수련생들께서 많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설법’
(2021년 국제 온라인 법회)
원문발표: 2021년 6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18/4271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