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얻어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다. 나는 젊고 오만하고 자아가 강했다. 나는 ‘당(黨)문화’가 충만하고 옹졸하고 집요한 사람에서 갈수록 온화하고 겸손하며 침착하고 낙관적으로 변했다. 나는 대법 수련 중에서 여러 번 환골탈태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1. 오만한 내가 머리를 숙이다
최근 나는 모순이 있는 수련생을 찾아가 솔직하게 대법에 대조해 안으로 찾은 후 나에게 있는 당문화를 인식했으며, 자아에 집착하고 질투심 등등 문제가 있었다고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사과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하다. 우리 법공부 팀에는 원래 4명이 있었는데 나중에 내가 참가했다. 나는 또 전문적으로 자료 제작을 책임졌으며 이미 4년이 넘었다. 나는 ‘밍후이왕과 직접 연계하고 수련생과는 되도록 적게 연락하는’ 원칙을 준수했다. 어느 팀에 줄 자료를 만들게 되면 그 팀의 주요 책임자 수련생과 연락했으며 몇 년간 견지했다. 다른 수련생과 기본적으로 왕래하지 않아서 매우 안전했다.
내가 이 팀에 온 첫해에 4명의 수련생은 각각 네 차례에 걸쳐 나에게 3200위안의 자료 제작비를 주었다. 게다가 두 수련생은 대법서적을 요청하느라 200여 위안을 더 주었는데 모두 3400위안이다. 나는 자금이 더욱 필요한 자료점에 그 중의 1900위안을 전달해 남은 돈은 1500위안이었으며, 매번 그 자리에서 돈을 보낸 곳과 용도를 설명했다. 간혹 팀의 수련생이 대신 전해줬다. 나는 소모품을 살 필요가 없으면 절대 돈을 받지 않았고 살 필요가 있으면 돈을 받은 후 매우 빨리 썼으며 수련생의 돈을 모으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매번 받은 돈보다 더 썼으며 내 돈을 보탰다. 4년 넘게 내 손을 거쳐 이 팀에서 자료를 만든 돈은 5000여 위안 정도 된다. 그들 네 명의 1500위안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내가 낸 것이다. 그 후 몇 년간 더는 돈을 받지 않았다.
작년 겨울에 프린터 두 대가 고장 나 수리해야 했다. 작은 프린터는 오토바이에 실을 수 있었지만 큰 프린터는 실을 수 없고 나도 옮길 수 없었다. 큰 프린터는 처음에 다른 자료점 수련생이 도와서 옮겨왔다. 나는 법공부 팀의 나와 동갑인 A수련생을 찾아갔다. 나는 그녀들에게 번거로움을 끼칠까 봐 “미안해요. 우리 기계를 수리해야 하는데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A는 반나절 만에 겨우 몇 마디를 했는데 대략 뜻은 1) ‘나는 당신과 수련을 비기지 못하겠다’, 2) ‘그 해 B수련생이 납치돼 내 이름을 말해버렸다’였다. 나는 듣고 위험할까 봐 프린터 옮기는 일을 상관하고 싶지 않다는 뜻임을 알았다.
하는 수 없어 그녀 집을 나섰는데 걱정도 되고 괴롭기도 했다. ‘나도 50여 세며 돈을 내고 힘을 다하고 시간을 냈어. 몇 년간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로드받고 삼퇴 명단을 올렸지. 기계를 사고 기계를 수리하며 소모품을 사고 출력, 제본, 제작에 나 혼자 바빴고 당신들은 모두 완성품을 누렸어. 주간, 경문 소책자를 모두 만들어 또 당신 집에 갖다 줬지. 상자로 된 인쇄용지는 내가 다 메고 날랐으며 당신들을 찾은 적이 없었지. 이 큰 프린터는 네모반듯해서 손잡이가 없고, 옆에 카트리지를 달아 쏟을까 봐 겁났는데, 옮길 수 있다면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을 거야. 처음 부탁했는데도 들어주지 않다니! B수련생이 경찰에게 당신 이름을 말한 것은 이미 10여 년 전 일이고 당신은 지금 무사하지 않아? 당신에게 돈을 내라고 한 것도 아니고 들어달라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다니.’ 나는 걸으면서 원망했고 눈물이 떨어질 뻔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저를 점화해주세요. 누가 저를 도와줄 수 있나요?’ 갑자기 수리점 인근에 장사하는 수련생이 생각났다.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삼륜차로 기계 두 대를 옮겨 수리점에 갖고 갔다. 며칠 후 또 프린터 세 대(큰 프린터는 수리했고 작은 프린터는 부품이 없어 수리하지 못해 또 새 프린터를 샀음)를 실어 왔다. 나는 감동했다. 사부님의 점화에 감사드렸고 이 수련생에게 감사를 드렸다.
자기 돈을 2300여 위안을 써서 프린터를 수리하고 프린터를 사며 타당하게 배치한 그 수련생은 나중에 법공부 팀에서 이 일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찾으며 생각했다. ‘자료를 만드는 것은 다른 수련생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 한 거야. 그들 몇몇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내가 만든 자료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 나는 사부님과 자료를 만들겠다고 서약을 했을지도 몰라.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있고 더 간고해도 나는 마지막까지 견지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어. 그녀들이 내 일을 돕지 않았지만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시켜줬지. 그녀들에게 감사해야 해.’ 이 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나는 평소처럼 자료점 일로 바빠졌다.
한 달여 전, 법공부 팀 C수련생이 지역사회 사람이 소란을 피우자 직면하고 싶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A는 단체 법공부를 할 때 이 일을 몇 번 말했고 마지막에는 나를 향해 C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나는 “발정념을 해 도와줬어요. 더군다나 모두들 이후 날씨가 추워지면 2차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하니 종이와 잉크를 비축할 계획이어서 이곳저곳에서 사느라 너무 바빠요”라고 말했다. A는 듣고 언짢은 표정으로 (우리가 준) 돈을 다 썼느냐고 물었다. 본래 나는 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물어보자 돈을 다 썼다고 말했다. 법공부를 다 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A의 좋지 않은 태도에 괴로웠다. ‘당신을 보면 마치 내가 당신들 돈으로 고기를 사 먹은 것 같군! 돈을 5, 6천 위안 썼지만 넉넉히 계산해도 당신들이 돈을 쓴 것은 1500위안뿐이야. 나 혼자서 당신 네 명이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썼지! 대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만 위안씩 써도 대충 대충하지 않았는데 여러 해 동안 당신들은 요만큼 내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물어보다니.’ 나는 불평한 후 그래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왕 다른 수련생에게서 돈을 받았으니 수련생 돈을 쓴 것을 똑똑히 말해야겠다. 이것은 법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며 수련생을 책임지는 거야. 원래 모두 말했지만 아마 그녀가 잊었을 거야.’ 그리하여 나는 명세서를 작성했다. 매번 돈을 받은 후 누구에게 얼마를 주고(당연히 안전을 위해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지 않았음) 소모품을 사는 데 얼마를 사용했다고 정리했다. 다음에 법공부를 할 때 나는 A에게 주면서 “당신들에게 돈을 어떻게 썼는지 분명히 알려줬어요. 나는 당신들의 돈을 모두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썼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A는 즉시 돌변하더니 “난 이것을 보지 않아요! 심성이 도달하면 돈은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멍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번에 당신이 묻기에 말했는데 또 내가 잘못했다니?’ 나는 법공부를 해도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혼란스러워 괴롭기 그지없었다. ‘몇 년을 바삐 보냈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온통 잘못만 했다니! 원래는 정법이 최후에 이르렀으니 우리 몇몇이 한 팀인 것이 큰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이 날 도와주고 내가 당신을 도와주어 공동으로 정진하면 얼마나 좋지? 내가 어떻게 해도 왜 다 틀렸다고 할까?! 이 몇 년간 이 사람이 대법 책을 요청하고 저 사람이 사부님의 교공(教功) 비디오, 연공음악을 요구하고, 이 사람은 나에게 글자를 고쳐 달라하고 저 사람은 교류체득을 복사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어느 것을 하지 않았고 어느 것을 상관하지 않았지? C의 일로 당신은 바삐 보내고 또 그녀를 위해 날 질책했어. 당신은 그 해 D에게 일이 생기자 즉시 삼륜차를 타고 그녀 집에 가서 대량의 물품을 가져왔다고 말했지만, 내가 작년 겨울에 우리 팀의 프린터를 수리하려고 찾아가도 상관하지 않았지. 협조인은 나에게 당신들 이 팀에 아무것도 없어 자료를 만들어주라고 했는데 이런 줄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야. 내가 이전에 자료를 만든 적이 있는 팀이 당신들보다 훨씬 나아……’
며칠 동안 나는 법공부하면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고 연공해도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다. 또 발정념을 해도 마음이 조용하지 않아 심하게 교란을 당했다. 억울하고 화나고 원망하고 곤혹스럽고 마음이 평형이 되지 않아 사람 마음이 전부 일어났다. 심지어 답답해 양쪽 옆구리가 아플 정도였다. 나는 법공부 팀의 노수련생 E를 찾아가 소통했다. E는 엄숙하게 “안으로 찾으세요. 당신을 찾으세요”라고 말했다. E가 날 위로하지 않자 나는 난처했다. ‘스스로 닦자. 이 관을 반드시 지나가야 해.’
나는 자신에게 냉정하게 법공부를 하라고 강요했다. 반나절 읽었지만 무엇을 읽었는지 몰라 법을 베꼈다. 법을 쓸 용지는 출력한 지 수 개월이나 됐다. 자료점이 바쁘고 또 오늘은 이 수련생에게 일이 있고 내일은 저 수련생에게 일이 있어 나는 매일 동분서주하느라 마음이 조용하지 못했다. ‘논어’를 수십 번 베껴 썼는데 틀린 글자가 있었다. 이번에 나는 억지로 앉아 법을 베껴 썼다. 읽고 쓰면서 사상업력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막았다. 틀리면 다시 베끼고 또 틀리면 다시 베껴 썼고 또 틀리면 또다시 베껴 썼다. 목차만 해도 3시간 넘게 베꼈고 4번을 쓴 후에야 전부 맞게 썼다. 나는 매 대법 글자를 보면서 머릿속에 똑똑히 찍고 다시 썼다. 손이 저리자 그곳에 앉아 외웠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2]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2],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여전히 억울함을 느끼자 계속 외웠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내가 뭘 잘못했지? 모르겠어. 그러나 나는 이 법을 반드시 머릿속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며 무조건 100% 이 법리에 따라 깨닫고 수련해야만 자신이 어디가 잘못했고 어떻게 잘못했는지 알 거야.’ 발정념할 때 내 공간장의 모든 사람 마음, 부패된 물질을 없애달라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모두 내가 아니며 그것들을 요구하지 않으며 완전히 소멸하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가 되자 마음이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았다. 마음의 매듭이 대법의 박대(博大)한 법리에 녹았고 온 머리에 정념이었는데 예전 생각들이 매우 부끄러웠다. ‘사부님, 잘못했습니다!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늘 다른 사람을 보았을까? 그뿐만 아니라 나는 무엇 때문에 늘 타인의 결점을 볼까?’ 나는 평소 말하는 것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태이며 수련생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지만 자신은 몰랐다. 타인이 나에게 잘 대해주면 똑똑히 기억한다. 사람이 은혜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그런데 타인이 날 잘 대해주지 않은 것은 더욱 똑똑히 기억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회가 있으면 또 보복하려 한다! 한 번은 A에게 “이 일이 내 어떤 마음을 제거하는 것인지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좀 풍자하는 어투로 “누가 당신에 대해 알아요?”라고 말했다. 얼마 후 A가 날 찾아와 “이 일에서 내가 무엇을 수련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누가 당신에 대해 알아요?”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내가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것인가? 복수하는 것인가? 당문화가 너무 심했다!
‘내가 몇 년을 바삐 보냈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온통 잘못만 했다니!’ 이는 보답을 바라는 것이며 명(名)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당신들의 그까짓 돈으로 뭘 하겠어? 나는 당신들이 합한 것보다 더 많이 냈어.’ 이는 이익(利)에 관한 마음, 과시심, 비교하는 마음이다. ‘당신은 C의 일로 바삐 보내고 D를 도와 물건을 실었지만 내가 당신을 찾았을 때는 상관하지 않았지.’ 이는 쟁투심, 질투심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년 겨울에 프린터 수리는 보기에는 지난 일이지만 사실 매우 깊게 숨었던 원망이 이번에 올라온 것이다. ‘역시 당신들 몇몇은 사이가 좋으니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나는 내놓은 사람이지. 내가 어떻게 해도 당신들 마음에 들지 않겠지.’ 사람의 정으로 마음이 멀고 가까운 것을 나누고, 사람 중의 화기애애한 관계를 추구했다.
이전에 내가 책임지고 자료를 공급한 법공부 팀에서 수련생들은 모두 내 비위를 맞추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런 우호적이고 친밀함을 즐겼는데 이것은 듣기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은 것이며 말을 못 하게 하는 마음이 아닌가? 마침 이 팀에 와서 환경이 바뀌었는데 이것은 이 마음을 버리라는 뜻이 아닌가?
몇몇 수련생들은 생활이 부유하지 못하지만 돈을 낸 것은 존중해야 하며 돈이 얼마이든지 모두 위덕이다. “군웅들 홍류(洪流) 중에 집결했는데 계층과 하는 일이 제각기 다르네 대법제자는 정체(整體)이거니 사부의 정법을 도와 사악한 바람을 막아내네”.[3] 작은 하나의 팀에서 큰 지역, 한 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대법제자가 정체를 형성해 각자 그 직무를 담당하고 각자 그 힘을 다했다. ‘각자 능력을 발휘하여 재난을 없애는 것’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이며 비로소 우리는 조사정법, 구도중생의 사명을 완성한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그들 몇몇보다 돈을 많이 냈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생생세세 빚을 많이 졌을지도 몰라. 혹은 네 사전의 서약일 수도 있는데 모자라도 안 돼! 해외 수련생들은 백만, 수천만 달러를 내는데 넌 왜 그들과 비기지 않지?!’
A가 왜 “난 당신과 비기지 못해요”라고 말했을까? 내 강한 과시심이 수련생에게 압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D가 사고가 났을 때 A는 즉시 대량의 소모품을 실어 가 대법 자원을 보호했다. 사악이 증거를 잡지 못해 D는 심한 박해를 면했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A는 얼마나 잘했는가! 그녀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는 좋지 않은 것인가? 내가 수련해 제고해야 할 점이 있거나 우리 두 사람이 프린터를 옮길 인연이 없으면 그녀는 나를 도와주지 못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웃음이 나와 웃었다.
너무 불쾌하지 않았고 옆구리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계속 더 찾자. 우리 집에서 나만 수련한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 일상생활 말고는 정신적인 차원의 소통이 없어 외로움을 느꼈다. 게다가 다년간 사악의 박해로 두려운 마음이 커져 법공부 팀에 와서 수련생을 보면 마음이 안정됐고 가족보다 더 친근한 것을 느껴 부지불식간에 의지하고 그리워하는 정이 생겼다. 그래서 수련생과 왕래하기를 좋아했다. 되도록 수련생의 속인 일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대법을 실증하는 일과 개인 수련에 필요한 것은 정신없이 도와주고 챙겨주며 돌보고 적극적이었다. 책임지는 마음에는 많은 사람의 정이 있었다. 주위의 어떤 수련생은 날 의지하고 크고 작은 일은 날 기다린다. 미처 돌볼 겨를이 없지만 또 대법 일은 반드시 해야 하기에 회피할 수 없어 무리하게 해 압력이 매우 컸다. 법공부, 연공하면 고요해지지 않고 심지어 며칠 동안 법공부를 하지 못하고 연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수련생이 맡긴 일을 하고 잘할 것인가에만 마음이 쏠려 ‘일하는 마음’이 생겼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정신적인 의탁으로 간주하고 이지적이지 못하고 명석하지 못했다. 사람 마음이 중한 채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니 늘 바쁘고 피로하며 일은 배로 하지만 성과는 적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개인 수련이 엉망이고 심성과 층차가 떨어졌다. 급히 바로잡으려 하면 조급해 속이 끓어오르고 밖으로 보며 수련생이 일을 나에게 떠맡긴다고 원망했다. 한 번은 어떤 수련생이 “우리 여기 이 업무를 당신도 책임지세요. 나는 시간을 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거슬렸다. ‘나도 법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 왜 모두 일을 나에게 떠맡기지?!’ 원망하고 질책하며 쟁투, 질투로 수련생과 갈등이 생겼고 간격이 생겼다. 계속 이렇게 지속하자 마음에는 대법의 강대한 법력의 버팀이 없고 행위는 대법으로 즉시 바로잡지 못해 악순환이 됐다. 결국 뿌리는 모두 나에게 있었다!
나는 찾을수록 부끄러웠다. 부끄러워 얼굴에 진땀이 났다! 오랫동안 수련해도 이 ‘가짜 나’는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버리지 않아 ‘진짜 나’를 교란하고 있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럽다. 내가 어디 대법제자 같은가? 심지어 자신이 수련을 괜찮게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사과해야겠다!’ 이때 ‘가짜 나’의 사람 마음이 또 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몇몇 지식수준이 없는 사람에게 사과한다고?’ 나는 더는 속임수에 걸리지 않았다! ‘체면을 차리는 마음, 허영심, 가짜 나, 당문화, 너희들은 모두 죽거라.’
그날 나는 다 만든 자료를 한아름 갖고 수련생을 찾아가 마침내 “제가 틀렸어요. 사과드려요”라고 말하고 한동안 수련 과정을 털어놨고 자신의 수련상태를 바로잡겠다고 결심했다. 수련생은 매우 기뻐했고 나도 후련하고 홀가분했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이 수련인 같다고 느꼈다.
2. 고생을 낙으로 삼다
한 모녀 수련생은 매년 달력 제본 업무를 책임졌다. 반제품이 첫날 오전에 도착하면 완제품은 이튿날 아침 일찍 보내야 했다.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백 권 달력을 페이지를 분류하고, 천공하고 스프링을 말아 꼈다. 간혹 모녀는 새벽 2시까지 일했다. 우연히 이 일을 알게 된 후 나는 자료점 일을 하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그 일에 참여했다. 매번 적어도 5~6시간은 바삐 일했다. 달력 한 상자의 무게는 수십 킬로그램이고 안고 잡아당기며 5층에서 끌어내렸다. 노년 수련생은 웃으며 내가 힘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힘이 좋지 않으면 안 돼. 노년 수련생은 70여 세고 어린 수련생은 약하고 가냘프지. 나는 노년 수련생보다 젊고 어린 수련생보다 건장해. 중노동을 그들 두 사람에게 맡길 수 없어’라고 생각했다. 매번 일을 마치면 힘들어 팔다리가 떨렸다. 매주 한 번씩, 연속 3~4개월, 몇 년을 꼬박 일해 왔다. 결국 견지했고 수련생이 달력을 배포해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다.
재작년 나는 자료점을 외지고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방은 매우 작고 에이콘, 선풍기가 없으며 난방장치도 없다. 여름엔 후텁지근해 온몸이 땀이고, 겨울엔 패딩 바지에 안에 두꺼운 털내의를 입었다. 기계가 일하면 나는 법공부, 연공했다. 출입 횟수를 줄이기 위해 물을 최대한 적게 마시고 들어가기만 하면 서너 시간 머물렀다. 비록 고생스럽지만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가 있어 줄곧 안정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여름에는 집 밖에 모기가 날아다녀도 방안에는 모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나는 집에 있으면 모기에게 물릴 수 있지만 여기서 세 번 여름을 지냈지만 한 번도 모기에게 물린 적이 없다. 정말 좋다.
작년 우한폐렴으로 봉쇄됐을 때 마침 설 전후여서 가족이 모두 외지에 있었다. 그 당시 수련생과 연락이 안 되고 혼자 자료를 배포하면 양이 많지 않기에 나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병업으로 세상을 떠난 수련생의 수십 권 대법 책을 정리했다. 고칠 글자는 고치고 책장이 흩어진 것은 뜯어서 다시 제본한 후 전부 깨끗이 하고 새로 책가위를 씌웠다. 사부님 설법을 듣거나 수련생의 교류체득을 들으며 일했다. 노 수련생이 틀리게 고친 글자, 고치지 않은 것, 규격에 맞지 않게 손으로 쓴 글자, 수천 수백 자의 크고 작은 글자를 먼저 작은 칼로 하나하나 긁고 다시 정확한 글자를 하나하나 붙였다. 바닥, 책상 위에 새하얀 한 층의 종잇조각이 남았다. 보름 남짓 혼자 집에서 쉴 새 없이 바빠서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 적막함이 이미 구름 밖으로 날아갔다.
일을 마치자 수련생과 연락이 되어 또 자료점 일을 했고 최근 우리 집에 오랫동안 놓아두었던 그 대법 책들을 수련생이 가져갔다.
얼마 전에 나는 연공할 때 동영상을 찍어 연공 동작이 표준적인지 보았다. 재생하는 순간 자신의 팔뚝과 몸이 굵어지고 기존의 날씬한 모습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실망했다. 속인 때는 사회적 지위도 높고 가는 굽의 하이힐을 신었으며, 차로 데려가고 데려오고 핸드백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출근한 지 수십 년이 됐지만 모두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찻잔을 들고 잡담을 나눴고 힘든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수련한 후 최근 몇 년간 자료로 만들면서 늘 물건을 사고, 보내고, 옮기고, 메고 수십 킬로그램의 무거운 물건을 6~7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전부 스스로 옮겼다. 하이힐이 몇 켤레나 망가졌다. 얼마나 고생을 견뎌 냈는지 좀 슬펐다. 그때 공사장에서 모래를 섞고 시멘트를 메고 다닌 해외 여자 수련생이 생각났다. 그녀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이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련인은 고생을 좀 하면 자신의 업을 갚을 수 있다. 이 수련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이건 예상치 못한 수확으로 수련하지 않는 속인은 얻으려 해도 얻지 못한다! 하하……곧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진정한 기쁨이 찾아왔다!
맺음말
20여 년간 많은 대법제자는 이렇게 날에 날마다 해를 거듭했다. 사부님의 법 한 구절, 한 구절을 배우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베끼고 오늘까지 여전히 목마른 것처럼 배워도 부족하다. 한 장, 한 장 진상자료를 출력하고 한 권, 한 권 제본하고 한 부, 한 부 배포했으며 20년간 얼마나 했는지 통계를 내보지 않았다. 진상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해 사람을 구하고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으면 포기하지 않았다. 위대한 사부님을 따라, 위대한 대법에 의지해 우리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오늘까지 걸어왔다. 금생에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인연으로 대법을 수련하고 중생을 구했다. 너무 많은 체득과 깨달음, 너무 많은 행복, 너무 많은 감사가 있다.
미혹 중의 사람들이여, 천지개벽 이래 없었던 파룬따파(法輪大法)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과 자비로운 제도를 느낄 수 있는가? 대법제자가 왜 바쁘고 고생하는지 약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천만년의 윤회, 기다림, 대법을 널리 전하는 사부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시기를 만났다. 시간은 정말 많지 않다. 당신들이 빨리 진상을 명백히 알고 구원을 받아 대재앙에서 벗어나 신기원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개인의 체득이며 층차가 유한하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조사(助師)’
원문발표: 2021년 5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5/13/4222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