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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연 후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A 수련생이 집착 하나를 늘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는 B 수련생을 찾아 어떻게 하면 A 수련생을 도울 수 있을지 상의했다. B 수련생은 “왜 직접 A와 교류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맞아, 왜 직접 A를 찾아 말하지 못하는가?’

나는 A 수련생을 알고 지낸 지난 10년을 돌이켜봤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둘은 비슷한 또래였다. 나는 수련생이라는 자연적인 친근감과 믿음이 생겨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A 수련생에게 내가 겪은 색욕 문제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얼마 후 우리는 일부 일로 다투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 일에 관해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 말한 색욕 문제를 들먹이며 나를 풍자하고 비꼬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뜻밖의 봉변으로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그때의 감정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자신의 믿음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반박하지 않았는데, 가슴에 못이 박혀 반박할 힘도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A 수련생에게 선을 긋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다행히도 나는 A 수련생과의 인연을 밀어내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많은 일을 함께했다. 표면적으로는 제법 가깝게 지내는 듯 보였지만, 사실 내 마음속의 문은 줄곧 다시 열린 적이 없었다. 그 수련생의 입에서 언제 또 사람을 놀라게 할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내 잠재의식은 줄곧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나의 습관으로 형성됐고 교류는 별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냥 분위기를 깨지 않았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충 부응한 것이다.

나는 자신을 바꾸기로 하고 용기를 내 A 수련생을 찾아가 내가 본 그의 집착에 대해 말했다. 뜻밖에도 A 수련생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나와 옥신각신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내가 너무 집착한 것인가? 내 수련이나 잘하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자신과 수련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수련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A 수련생과 심성을 닦고 자신을 찾는 화제를 담론했다. 그런데 A 수련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떻게 자신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A 수련생이 변하기 힘들겠다고 느껴 더 말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대량의 법공부를 통해 수련은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함을 깨달았다. 한번은 A 수련생에게 내가 요즘 좀 게을러졌다고 했더니, 그는 덩달아 확실히 내가 게으르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나보다 더 게으르다. 나는 속으로 기분이 언짢았다.

나는 진정하게 수련을 엄숙하게 대해야 함을 인식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속마음을 다 보여 준다면 수련생에게 나를 비꼴 내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수련생이 나에 대해 말할 내용이 없도록 또다시 마음의 문을 닫고 말 것인가?’

사실 수련생 A가 돌아간 후,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수련생끼리 서로 잘 교류할 수 있는데 왜 나는 공격의 과녁이 되는 걸까?’ 나는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곰곰이 안으로 들여다보니, 이는 남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A 수련생은 내 수련이 한 계단 더 올라가게 나를 도와주고 있었지만, 나는 올라가려 하지 않고 있었다. 또 남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 마음 뒤에는 수련생을 무시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오만함이 있었다. 나는 그가 나보다 더 게으르고, 자신의 심성도 닦을 줄 모르면서도 다른 사람을 얘기할 때면 오히려 거침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으로 찾은 후 자신을 격려했다. ‘앞으로 더는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교활해지지 말자.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수련생이 나를 어떻게 말할지 두려워하지 말자.’

그런 다음, 나는 수련생은 바로 나의 거울이며 무슨 일이든 자신을 비춰봐야 함을 깨달았다.

하루는 A 수련생에 대해 다른 수련생에게 말하다 약간의 오해가 생겨, 그 수련생이 나를 아주 좋지 않게 대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A 수련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는 그 수련생과 전혀 관계가 없이 내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며 이는 나를 향한 거울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나는 수련생 A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고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늘 사람의 이치로 가늠했기 때문이다. 그냥 나 자신이 법에서 깨달은 바를 이야기했다. A 수련생의 속인 식 사유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또 A 수련생이 가진 속인의 견해에 따라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전에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때 침묵을 지켰다. 왜냐하면 A 수련생이 수련할 줄 모르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나는 더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그에게 나의 가장 진실한 생각들을 알렸다.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볼지 혹은 이해하지 못할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교류를 두 번 한 뒤, 나는 A 수련생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음을 발견했다. 그는 단번에 자신을 닦을 줄 알았고 부닥친 일들에는 모두 자신이 수련해야 할 요소를 깨달았다. 수련은 정말 너무 신기하다. 나 자신이 변화하려고 결심하자 수련생도 바뀌었다. 마치 공부를 못하던 학생이 갑자기 천재로 바뀐 듯한 불가사의한 변화였다.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수련생 A와 직접 교류하며 우리는 서로 분명하게 주고받는다. 우리의 공간장은 갈수록 투명해졌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연 후 보게 된 것은 수련생도 함께 똑같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수련의 길에서 우리는 함께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0/4217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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