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대법제자의 회상
글/ 중국 대법제자 시위안(惜緣)
[밍후이왕] 만약 인생에서 제일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 무엇이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저의 답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하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인생 중에 제일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 무엇인지 제게 물으신다면 저의 답은 대법 사부님을 뵙게 된 순간이 되겠습니다!
1998년 12월 30일은 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저는 이날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군인입니다. 그날은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은 부드러웠습니다. 저희는 평소대로 새벽 5시에 사관학교 체육관에서 파룬궁(法輪功)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저는 수강생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강의실 건물로 데려다준 뒤에 곧 위층 멀티미디어 강의실에 가서 수련생들과 같이 법 공부를 했습니다. 7시 50분쯤 어머니(수련생)가 급하게 집에서 학교까지 찾아와서 제게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핸드폰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수련생에게 전화가 왔는데 급한 일이 있다고 저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수련생에게 전화하니 전화기 너머로 수련생의 격동된 목소리가 전해왔습니다. “사부님께서 오셨습니다! 얼른 오세요!”
아! 사부님께서 오셨습니까!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저는 5층에서 1층까지 날듯이 계단을 내려갔고 또 110개 계단과 학교 캠퍼스를 지나 학교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교외의 남산 산자락에 있는데 폐쇄형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정문에 자동차 운행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었지만, 그날 제가 정문에 도착했을 때, 마치 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침 택시 한 대가 손님을 내려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택시를 타고 막힘없이 신속하게 수련생 집에 도착했습니다.
수련생 집 2층 거실에서 저는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약 70~80명 지역 보도원 수련생이 사부님 주변에 둘러앉아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공손히 듣고 있었는데 베란다와 방안이 모두 수련생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련생은 저를 사부님의 정면에 앉게 했습니다. 저와 사부님 사이에는 오직 거실 테이블뿐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간 후에 저는 먼저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경례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맞은편에 앉아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공손히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을 뵙게 되어 기분이 한없이 격동되는 바람에 눈은 사부님을 보기 바빴고 설법 내용을 얼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 많은 수련생이 계속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상이 제일 깊은 것은 사부님께서 왼손 집게손가락을 위로 가리킨 다음 오른손 손바닥은 왼손 집게손가락의 위에 놓으셨습니다. 사부님께선 저희에게 무엇이 ‘하늘’인지와 다른 공간의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닫혀서 수련하는데 평일에 주변 수련생들이 다른 공간의 신기한 일을 말하는 걸 자주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이런 명사에 대해서 아직 알듯 모를듯 일부 개념의 뜻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저는 진실하게 다른 공간의 진실한 존재를 느꼈으며 천체의 홍대함, 우주의 심오함과 파룬따파의 넓고 심오함을 느꼈습니다. 저의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은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마치신 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평소 수련 중에서 잘 모르고 수련생들과 함께 교류도 했던 정말로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정말 사부님 앞에 있으니 오히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았고 머리가 텅 비었습니다. 제가 계속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어서 앞의 몇몇 수련생의 질문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이때 장소가 매우 조용했고 다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저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횡설수설하면서 사부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대략적인 뜻은 “저는 대법 수련생이어서 수강생들에게 출석을 부르고 평가하고 수업할 때(사관학교에는 수강생들에게 매일 출석을 부르고 평가해야 함) 대법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게 되지만 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한 거였습니다. 사부님께선 손으로 몸 뒤를 가리키신 뒤(우리 학교는 곧바로 사부님께서 가리키신 방향에 있고, 사부님께선 모두 알고 계셨음) 대략적인 뜻은,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들에게 바르고 좋은 쪽의 지도와 교육을 하는 것이 그래도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계속 말씀하셨는데 중간에 잠시도 쉬시거나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보도소 수련생에게 사부님께서 오후에 또 다른 도시에 서둘러 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선 곧 저희를 떠나야 했는데 다들 모두 매우 아쉬워하면서 모두 사부님을 기차역까지 모셔다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때 보도소 수련생은 자리에 있는 모든 군인이 사부님을 고속도로 입구로 모셔드리고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과 기타 수련생은 모두 모셔드리지 않은 것으로 했습니다. 제가 세어보니 자리에 총 이십여 명 군인이 있었고 육해공군이 모두 있었는데(저는 해군임) 군복을 입은 군인은 총 십여 명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봉고차에 탑승해서 가실 거라는 말을 듣고 곧 사부님 가까이에 앉고 싶었습니다. 이때 저는 머릿속으로 오직 어떻게 해야 사부님과 더 가까이 앉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곧 차 안팎에서 사부님을 찾아다녔는데 트렁크 쪽에 사람들이 에워싸고 얘기하는 걸 보고 사부님께선 반드시 뒤에 계실 것으로 생각되어 눈을 뒤쪽으로 계속 쳐다보았지만, 사부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곧 트렁크 앞 2번째 줄에 앉았고 눈은 여전히 뒤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수련생(해군 캡틴)이 집에 가서 군복을 갈아입느라 마지막으로 차에 탑승했습니다. 그녀의 자리가 없는 걸 보고 저는 곧 왼쪽으로 조금 좁게 앉아서 자리를 비워주려고 했습니다. 이때 앞에 앉은 보도소 수련생이 사부님을 밀치지 말라고 일깨웠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리고 보니 아! 저는 바로 사부님 옆에 앉아 있었고 아까 수련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사부님을 밀쳤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선 차창 쪽으로 몸을 옮기셨고 괜찮으니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야 저는 알았습니다. 다들 모두 가능한 한 트렁크 쪽에 앉은 것은 사부님께서 휴식하실 수 있게 더 넓은 공간을 남겨드리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사부님과 더 오래 있으려고 무의식중에 사부님을 밀쳤습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부끄러워 진땀이 납니다. 정말로 이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저와 수련생들의 격차를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정말로 이상합니다. 평소에 꿈을 꿔도 사부님을 뵙고 싶었지만 정말로 사부님과 함께 있으니 오히려 불편하고 사부님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이때 저의 사상 업력과 각종 집착심이 한없이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집착심이 이제 다 사부님 앞에서 폭로된 게 아닐까?’ 당시 제가 입은 군복의 계급 표에 구멍 몇 개가 나 있었는데 꼬질꼬질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보실까 봐 마음속으로 정말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과정에서 사부님께선 늘 미소를 띠며 자비하고 자상하게 보도소 수련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매우 긴장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보도소 수련생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는지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했고 오직 차에서 내리면 사부님께 어떻게 경례를 올릴지만을 생각했습니다! 약 20분 뒤에 저희는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차에 내리셔서 수련생들과 악수하며 인사하셨습니다. 이때 저는 사부님께서 저와 악수하지 않으실까 봐 다른 수련생들과 악수할 때 곧 그 수련생 뒤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선 곧바로 몸을 돌리셔서 다른 수련생과 악수하시고 저는 곧 다시 다른 수련생 뒤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사부님께선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시듯이 네 방향을 모두 돌아 모든 수련생과 악수하셨지만, 오직 저와는 악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몸을 돌리시고 차에 탑승하려고 하셨을 때 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부님!”을 외쳤습니다. 사부님께선 몸을 돌리셔서 한마디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빠졌군.” 사부님께서 몸을 돌리시는 걸 보고 저는 얼른 앞에 가서 사부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한줄기 뜨거운 느낌이 치밀어 올랐고 저는 이것이 제 인생 중에서 제일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임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당시 사부님께선 저의 손을 가볍게 치면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마음속으로 기뻐하고 긴장했기 때문에 당시에 똑똑히 듣지 못했고 나중에 회상할 때 사부님께선 제게 이 한마디를 하신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차에 타셨습니다. 우리 전체 군인 수련생이 정연하게 대열을 지어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경례했습니다!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속도로 입구를 떠났습니다. 이 순간에 제 기분이 한없이 격동되었고 사부님의 뒷모습을 보고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제 인생 중에 제일 강렬한 목소리를 외쳤습니다. ‘사부님! 저를 빠뜨리지 마십시오. 저는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2년이 지났습니다. 저 또한 26년의 수련 과정을 걸어왔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에서 저는 매 시각 사부님의 격려와 독려를 느꼈습니다. 저는 깊게 깨달았습니다. 빠뜨려지지 않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가려면 언제, 어떤 상황이든지 반드시 모두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따라서 견정하고 착실하게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진선인에 동화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겨 용맹하게 정진해야 합니다! 수련에는 아무런 지름길도 없습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지지와 도움에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5/22/4258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