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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수(眞修)인지 체험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이전 수련 과정에서 남편의 무례함과 나에게 조성한 가정 마난을 대할 때 ‘물론 이 일은 그가 잘못한 것이지만 나는 수련인이므로 가장 큰 흉금으로 그를 포용하고 선으로 감화시켜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줄곧 참으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그에게 잘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가 난폭하게 나오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늘 말싸움을 하게 됐다.

지금은 관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남편이 무엇을 했건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 이곳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고 나 여기의 바른 에너지가 크지 않아서 그가 그런 나쁜 것에 통제당한 것이었다. 관념이 바뀌자 나도 새로운 우주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나쁜 것은 다 나 자신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가장 좋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좋은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심도 더없이 당당하고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1] 이전에 나는 보수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완전히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나에게 집착이 있다고 느껴야 자신에게 꼭 잘못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그릇된 일을 하면 나는 언제나 자신이 바르다는 전제하에 자신의 집착을 찾았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 일종 참고 견디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내심으로는 자신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는 우월감을 느꼈다. 이런 심태는 심리적 용량에 제한을 초래했고 일정 정도 이상 쌓이면 바로 폭발했다.

마음에서 우러나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임을 알았을 때 지금은 남편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이해와 선(善)이 사람 마음의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진정한 자비와 선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 나를 존경했다.

과거에 그가 감히 그렇게 나를 대한 것은 이전에 나의 심성이 너무 낮아서 그가 날 깔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현재 그는 나의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는데 나의 높은 경지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우리의 심성이 아주 높을 때 주위 생명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순응하는바, 어떠한 속인의 방법으로 개변시키거나 단속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전에 나에게 있었던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다. 누군가 자신의 구체적인 집착심을 지적할 때, 맞게 말하면 받아들이고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상대방이 근본적으로 나를 부정할 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본질적인 이익을 고수하며 개변하려고 하지 않는 것임을 또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2]

나는 또 알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근본적으로 바르다고 생각하고 표면적으로만 어느 한 집착심을 버린다면 위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가짜 수련과 같은바, 진정한 수련생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대법의 내포는 무한히 높고 깊은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이다. 위의 한 층에서 볼 때 아래 한 층은 틀린 것이다. 법 속에서 끊임없이 높은 층차로 돌파하는 수련생으로 놓고 말하면, 고층차에서 볼 때 우리가 현재 처한 층차의 일체는 모두 틀린 것이다. 더 나아가 수련의 마음가짐 역시 철저하게 바뀌었는데, 내심으로부터 자신의 잘못과 좋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매번 법공부할 때 이제는 자신이 이미 정한 관념으로 법공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층 높은 층차에서 볼 때 지금 이 층차는 모두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법 속에서 정진하자, 구하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았고 더는 원만 하려는 강렬한 마음도 없으며, 대법 속에서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끊임없이 대법에 비추어 자신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층층에 있는 자신의 좋지 않은 것을 보아내고 자신을 수련하며 그 한 층 법에 동화했다. 동화한 후 다시 법공부할 때 또다시 자신의 본질적인 그런 좋지 못함을 보아내고 또 그 한 층의 법에 동화했다. 또 법공부하고 자신의 근본적으로 좋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다시 자신을 수련하여 법에 동화했다……

동시에 다른 한 가지 인식도 철저하게 개변되었다. 주변 수련생들이 서로 자신의 좋지 않은 것을 말할 때 사실 이것은 수련의 길에서 정진하는 것이다. 반대로 수련생들에게 떠받들리는 것은 마도(魔道)를 걷는 것으로, 이때는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수련생들을 보는 마음가짐도 완전히 바뀌었다. 더는 수련생들을 3, 6, 9등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잘 수련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수련생이 나의 문제를 지적할 때 나는 늘 듣기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을 수 있어 어느 수련생이 지적해주든 열심히 듣고 사고하며 안으로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우주 중에서 수련인은 심리적으로 마땅히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아야 함을 알게 되었다.

몇 년간 넘어지고 일어나는 시련을 겪으면서 지금에 와서야 진정한 수련인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개인의 일부 수련 체득이므로 부족한 부분은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북미 제1기 법회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8/4262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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