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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비바람 속을 걸어온 작은 푸드카트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내가 길에서 먹거리 노점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또 이렇게 한번 하다가 10년이 넘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10여 년 전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에 또다시 박해받지 않으려고 집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갔다. 당시 나는 모든 것을 투자해 고생스레 운영하던 가게를 핍박으로 닫게 됐고 경제적 손실이 너무 컸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나가서 일하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문제가 됐다. 채소나 과일을 살 때면 남들이 팔다 남긴 약간 썩은 것을 샀다. 수박은 아무리 쌀 때라도 몇 번 살 형편이 못됐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돌면서 물건을 팔아도 겨우 배고픔을 면할 정도였다. 나는 마음속에 항상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돈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으면서 수련할 시간이 보장되는 일자리나 장사를 하고 싶었다.

1. 먹거리 노점의 시작

하루는 남편이 아주 친한 이웃과 식사했는데, 이웃이 집에 작은 푸드카트가 있다면서 전에 만든 것인데 계속 쓰지 않고 있다며 우리에게 가져갈는지 물었다고 했다. 사실 전에 나는 노점상을 할 생각이 있었다. 노점은 저녁에 차리고 낮에는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출근하거나 가게를 열었기에 행동력이 많이 떨어져서 시작 전 준비작업이 아주 곤혹스러웠다.

남편이 돌아와 이 일을 상의해서 나는 같이 가서 보기로 했다. 생각 밖에 카트 설비는 모두 우리가 원했던 것이었고 마치 우리를 위해 주문 제작된 것 같았다. 이 작은 푸드카트가 우리에게 옴으로써 우리는 가장 복잡한 사전 준비가 필요 없게 되었다. 바로 이렇게 해서 나는 먹거리 노점을 시작했다.

그저 자그마한 매대라고만 보지 마시라. 나는 식재료를 아주 엄격히 선택했다. 계란은 작은 것을 고르지 않았고 기름은 저가를 사지 않았고 채소는 신선한 것을 사고 육류는 질이 좋은 것을 샀다. 한번은 식당 하는 지인이 나에게 그의 가게가 고기를 매입하는 가격을 말했는데 아주 싸다고 생각되어 나도 한번 시도하여 요청해보았다. 물건이 들어올 때 내가 열어서 보니 고기가 약간 붉은 기가 돌았다. 비록 상하지는 않았지만 질이 낮은 것이었다. 정말로 얼마이면 얼마만한 품질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거절했다.

음식을 팔 때 매번 저울을 달 때마다 나는 30전, 50전 더 주었다. 나는 몇십 전을 더 주더라도 남한테 10전을 더 받지 않았고 손님이 앞에 있지 않아도 똑같이 했다. 왜냐하면 이 저울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일부 손님이 말했다. “무게가 꽤 나가네요.” 일부 손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집에서 같은 돈으로 이렇게 많이 사지 못해요.”

한 손님이 나에게 돈을 건네는 손에 흙이 묻어 있었는데 한번 보니 막노동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큰 계란을 하나 골라서 저울을 단 음식에 더 보태서 그에게 주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손님은 마음에 파동이 일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파룬따파 수련자가 장기간 수련하면서 닦아낸 선념이고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남들의 인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은 허다했다.

이곳에 오는 손님에게 나는 기회만 있으면 대중의 관심 주제를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에 관해, 국민은 한평생 일해도 부동산 노예이고 교육, 의료, 집은 서민들의 세 가지 큰 산이라거나, 고액 양로, 퇴직 지연, 중공이 몇십억을 들여 방화벽을 만들고 민중이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등등, 또 기회가 있으면 나는 더 나아가 파룬궁 진상을 말하고 3퇴(중국공산당, 공산주의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를 성명)를 권했다.

2. 먼 곳에서 온 손님

한번은 한 손님이 먹거리를 구매했는데 한편으로는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여자 손님은 집이 이 도시가 아니었고 여기 여동생 집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여동생한테서 우리 집 음식이 깨끗하고 맛있다고 들어서 특별히 온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가르쳐주면 가맹비를 주겠다고 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의 나는 자기 영역을 심하게 보호했고 질투심도 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구한테도 알려주기 싫어하고 친척이라도 조금도 알려주지 않거나 아예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이런 좋지 못한 마음들을 모두 제거했다. 아울러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상을 들으려고 온 이들이고 사람들이 구도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돈은 받지 않을게요.” 그녀는 조금 놀랐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아주 간단하거든요. 창호지 한 겹 발라놓은 식인데 조금만 건드려도 찢어지죠. 그러나 이 창호지를 남들은 손님께 가르쳐주지 않을걸요. 지금 장사하기 어렵거든요. 같은 업종끼리도 서로 배척하는데 누가 알려주겠어요. 자기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기는데.” 그녀는 연신 그렇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파룬따파를 들어본 적 있으세요? 제가 바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TV에서 중공이 선전하는 거짓말을 믿지 마세요. ‘천안문 분신자살’은 조작극입니다. 제가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손님이 저한테 돈을 준다 해도 전부 가르쳐주지는 않아요.” 이어서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과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말해주었다. 나중에 나는 그녀에게 ‘메이롄(美蓮)’이라는 가명을 지어주며 단·대를 탈퇴하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위급한 시각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진언(眞言)을 기억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떠났다. 걸어가면서 또 혼잣말을 했다. “메이롄, 메이롄, 진짜 듣기 좋단 말이야.” 다시 와서 손맛을 배우기로 약속했지만, 그녀는 진상을 듣고 3퇴한 후 더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진상을 들으려고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3. 다리에 자상을 입은 후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신(神)을 수련하는 것으로, 그럼 반드시 신의 행적(神跡)이 존재하는 것이다.”[1]

어느 날 오후 4시 넘어 매대를 차리는데 술 취한 남자 두 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매대에서 3, 4m 떨어진 곳에 털썩 주저앉아서 술 마시며 술주정을 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맥주병을 들어 던져 유리병이 산산이 조각났다. 당시 7월 복날이 시작되던 날씨라 나는 짧은 바지를 입어서 종아리가 드러나 있었다.

당시 나는 마침 주변을 청소하느라 신경 쓰지 못해 미처 피하지 못했다. 유리조각이 순식간에 다리를 찔렀고 오른쪽 종아리는 자상이 크게 나서 피가 샘물처럼 뿜어나왔다. 나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는데 단지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보였다. 손으로 힘껏 상처를 눌렀지만 피는 여전히 샘물처럼 흘러나와 밖으로 줄줄 흘렀다.

당시 나는 침착했다. 이때 마음씨 좋은 사람이 120에 전화를 걸어서 응급차를 불렀다. 나는 내가 아무 일 없고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니 상처를 꿰매야 했다. 그럼 가서 꿰매고 오자. 나는 멍해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기다려요. 가서 꿰매고 올게요.”

그러나 병원에 가니 의사가 상처를 처리하면서 손으로 상처 속에서 유리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러나 상처 안에 또 있는 것을 보고는 수술을 해야 나머지 조각을 꺼낼 수 있다고 했다. 의사는 꺼내야 봉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밤에 수술을 했는데 3시간 남짓 걸렸고 내가 수술실을 나올 때는 이미 10시가 넘었다. 다리의 상처는 10cm 정도로 길었고 대략 15바늘 꿰맸다.

의사는 종아리의 근육이 끊어졌다며 상처가 아주 깊다고 말했다. 봉합한 후 석고를 올려 근육이 힘을 쓰지 못하게 했다. 만약 다리 근육이 낫는 동안 힘을 쓰면 봉합한 근육이 끊어지고 그러면 2차 수술을 해야 해서 힘들 것이라고 했다. 또한, 돈도 더 쓰게 된다. 의사는 나한테 한 달 동안 바닥을 딛지 말라며 만약 어쩔 수 없이 바닥을 밟아야 하면 지팡이를 짚어서 다리가 완전히 들리게 하라며, 힘을 조금도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의사는 또 말했다. “상처가 신경에 5mm 정도로 가깝게 났어요. 만약 신경을 건드리면 평생 불구가 됩니다…….”

비록 의사가 나에게 최소 보름 정도 지나서 실밥을 풀고 퇴원하라고 했지만 나는 사흘째 오전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비록 의사가 한 달간 바닥을 딛지 말라고 했지만, 집에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석고붕대를 풀고 아침에 연공을 시작했다. 링거 하나 맞지 않고 소염약 하나 받지 않았다. 당시는 삼복더위라 기온은 매일 30도가량 됐다. 이렇게 더운 날 나는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지만, 상처는 염증이 없고 붓지 않았으며 점차 딱지가 생겼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 했다. 이는 내가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손님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내가 다리를 다친 일을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전에 차에 치인 적이 있는데 당시 의사도 한 달간 바닥을 딛지 못하게 해서 한 달간 한 번도 바닥을 딛지 않았고 대소변은 침대에서 해결했고 남편과 딸이 수발을 들었다고 했다. 당시 나는 다리 상처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정상적으로 보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의 1년이 되었지만 길을 걸으면서 조금씩 절뚝거렸다. 그녀는 나한테 몇 걸음 걸어보라고 하더니 찬사를 연발했다. “정말 신기하네요!”

파룬따파는 바로 이렇게 신기하다. 의사는 한 달간 바닥을 딛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열흘째에 다시 노점을 차렸다. 보름째에 나는 스스로 택시를 타고 가서 실밥을 풀었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이고! 왜 지팡이를 짚지 않고 또 혼자 왔어요? 상처가 벌어지면 더 번거롭게 된다고요.”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거든요. 아무 일 없어요.” 그는 믿지 않으면서 근육이 풀리면 심각해진다고 한사코 말했다.

한 달 뒤 나는 스스로 버스를 타고 다니고 또 길을 한참 걸어서 병원에 도착해 주치의를 찾았다. 의사는 남자였는데 전에 매번 나에게 얼마를 배상받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라 상대방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는 조롱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에게 진상 USB를 주는데 그는 받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는 내 행동에 대해 피식 웃으며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 나는 의사에게 내 다리가 회복된 것이 어떠냐고 보여주면서 진상을 알렸고 그가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목격하게 했다. 그는 비록 겉으로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번에 다시 진상을 알리고 진상 USB를 주었더니 바로 받았다.

내가 나와서 노점을 차리니 주변 사람과 손님을 포함해서 그들의 가장 많은 질문은 “배상금 얼마 받았어요?”였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저는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또 놀란 눈빛을 보면서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여름은 노점이 바쁜 시기이다. 보조 인력을 쓰려면 급여가 나가는데, 또 내가 스스로 판매하지 않으면 매출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한 남성이 아주 호기심에 차서 내 앞에 다가와 물었다. “왜죠? 왜 그러셨어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손실이 이렇게 큰데 왜 배상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한바탕 하지는 않더라도 배상은 받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나는 카트에서 파룬궁 진상 소책자 하나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가 비록 내 행동을 그다지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들인지는 알게 되었다.

오늘날 물욕이 넘치고 다들 이익을 첫째로 여기는 사회이므로,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상상하기 힘들어하고, 믿지도 않는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곳곳에서 남을 생각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다리를 다치게 한 사람에게 나는 자연스레 진상을 알렸고 그에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만약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울러 그에게 일부 진상자료를 주었다. 그의 가족은 나에게 부득불 직접 심은 각종 채소를 갖다 주려 했는데, 아이가 채소를 받을 때 그 부인은 아이에게 연신 말했다. “너희 엄마는 정말 좋으셔. 진짜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야!”

4. 노점이 몇 번 중단될 위치가 처하다

나의 작은 노점은 몇 차례 어려움을 겪었고 몇 번 중단될 뻔했다. 그러나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노점은 나를 따라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오늘까지 걸어왔다.

몇 년 전 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조직인 ‘610사무실’이 늘 나를 찾으려 했고 납치하겠다고 떠들었다. 가족도 압력을 심하게 느껴서 나더러 노점을 그만두고 이곳을 떠나자고 계속 말했다. 한번은 내가 납치되었는데 경찰은 내가 지니고 있던 열쇠로 우리 집을 한번 싹 뒤졌다. 나는 이번에 노점이 정말 문 닫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남편이 당차게 장사를 해나간 것이다.

남편은 당뇨, 고혈압, 뇌경색이 있는데 가장 뚜렷한 증상은 바로 반응이 느린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눈앞의 것을 찾지 못한다. 추워도 옷을 더 껴입을 줄 몰랐고 더워도 옷을 벗을 줄 모른다. 전에 한동안 그는 갑자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몇 글자만 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나는 그를 데리고 매일 ‘전법륜(轉法輪)’을 한 단락씩 읽었다.

한 달이 지나자 남편은 점차 회복되었다. 전에 내가 음식을 팔 때는 아무리 바빠도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포장도 잘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내가 납치되어 한 달 동안 집에 없었을 때 노점을 직접 해나간 것이다. 비록 언니가 도와주기도 했지만 나는 바로 기적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이번에 박해당할 때 남편은 신기하게 정신을 차렸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숨겨둔 ‘전법륜(轉法輪)’을 나에게 꺼내 보이면서 말했다. “봐요. 이 책은 내가 특별히 당신이 볼 수 있게 남겨둔 것이에요. 그 외는 다 다른 곳에 숨겨놨어요.” 남편은 선행으로 복을 얻었다.

심뇌혈관 질병은 현대의학이 극복하지 못한 난제인데 병세가 더 발전하지 못하게 유지하는 정도도 괜찮은 것이고 전혀 치유가 안 되는 병이다. 형님이 말했다. “생각 밖에 내 동생이 이 몇 년간 정신이 나 있는데, 몇 년 전보다도 정신이 또렷하단 말이야.”

5. 카트를 바꾸다

노점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했다. 다른 사람이 준 푸드카트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새로 더 큰 차량을 주문 제작했다. 지금 나는 차를 또 바꿨는데 이제는 전면이 막힌 차다. 그 후로 더는 바람 불고 비 오는 것이 걱정되지 않았다.

내가 이 차량을 사려고 시작할 때 내 옆에 있는 노점상도 급히 나보다 더 크고 좋은 차를 샀다. 그의 차가 내 차 앞에 멈추면 내 차는 가려졌다.

처음에는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것인가? 사람과 다투는 것인가? 이게 무슨 수련인인가? 이만한 일에 또 생각이 있다니. 나는 바르지 못한 염두가 부끄러웠다. 자신의 문제를 찾고 마음을 바로잡으니 마음이 담담해졌다.

그러나 마치 여전히 나를 고험하는 것 같았고 내가 마음을 내려놓았는지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 차가 너무 뒤에 있네요.” 내가 말했다. “상관없어요. 어디 있건 똑같아요.” 며칠 뒤 또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저 차가 당신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는데 우리가 봐도 너무한데요.” 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제 것이라면 누구도 막지 못하니 괜찮아요.”

확실히 지금 각 업종은 장사하기가 모두 어렵다. 더욱이 전염병이 폭발한 후 많은 사람은 상황이 예전보다 못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노점상도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하는 노점은 어떤 영향도 없이 갈수록 좋아졌다. 도시를 봉쇄하고 지역구를 봉쇄하는 기간에도 장사가 끊이지 않았다. 내 주변 노점상들은 감염될까 봐 더는 노점을 차리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이 매우 놀라서 물었다. “감염될까 봐 두렵지 않아요?”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전염병은 눈이 있어요. 역신(瘟神)이 통제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가지고 진상을 알리는 화제로 들어갔고 아울러 손님들에게 전염병 진상에 관한 자료를 배포했다.

사실 내가 노점을 차린 위치는 번화가도 아니고 가로변도 아니고 인구가 그다지 밀집하지 않은 작은 지역의 변두리이다. 아울러 주변의 작은 지역은 재개발로 이미 아주 많은 주민이 떠났다. 지금 먹거리 노점이 곳곳에 있어도 많은 사람이 자기 집 근처 노점을 지나 길을 더 걸어서 우리 노점에 온다. 많은 이가 단골인데 또 일부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소문 듣고 왔어요.” 지금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다녀서 우리 노점 앞에 항상 차가 오간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나의 먹거리 노점은 나를 따라 10년 넘게 걸어왔다. 이 10여 년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사악이 음모를 꾸며 박해를 하고 또 나를 납치해 집에 가지 못하게 해도 노점은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궁핍하던 생활에서 지금의 경제력을 갖추는 데까지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처음에 집을 떠나 떠돌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던 데에서 지금은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알려준다.

나는 생활의 궁핍과 박해의 압력하에 자신을 잃지 않은 것이 아주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존의 홍대한 은혜에 감격의 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사람들이 모두 진상을 알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19/4257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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