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럽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들은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대법을 접촉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수련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남편은 수련하지 않고 무신론과 ‘과학’에 중독돼 그의 관념이 아들에게 주입됐는데 어린아이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끼쳤다. 그 뒤 나는 종종 어린 아들과 함께 법공부를 했다. 다행히 아이가 수련의 길을 천천히 따라 올라왔는데 이에 대해 제자는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데 늘 내 일부 문제를 지적했다. 어떤 때는 사부님께서 아들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해주시는 듯했다. 나는 수련생 여러분께 참고가 되도록 몇 가지 항목을 써보았다. 잘못된 곳은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기 바란다.
(1)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가 발생한 후 아들은 매우 조심하며 외출할 때 마스크를 썼다. 나는 아들에게 “너는 대법제자이고 대법제자는 스스로 업력과 세균을 없앨 수 있으니 괜찮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저는 수련을 그다지 잘하지 못해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책임지신다”고 알려줬다. 그런 후 나는 아들이 더 이상 ‘과학’의 각도가 아닌 수련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어느 날 나는 아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며 배웠다. “우리는 또 속인에게 약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당신의 깨달음이 부족하여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또 당신이 수련하므로 약을 먹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말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았다.”[1] 그날 아들과 어느 수련생이 여전히 약을 먹고 있는 문제를 교류했는데, 내가 아들에게 곧바로 말해줬다. “봐라, 사부님 말씀에 약을 먹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 약 먹는 것은 마음대로 하면 된다!”
아들은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공격적인 태도로 사부님 말씀을 해석하세요?”
나는 즉시 말문이 막혔다. 사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자신의 어조와 관념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나 자신이 맞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원래부터 항상 그렇게 해왔던 것이다. 말하면서 자신의 어조와 좁은 이해의 틀을 보호하기 위해 사부님의 홍대한 내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 감동해 눈물 흘리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욱이 내가 이렇게 사부님의 법을 자신의 관점을 실증하거나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너무나 불경한 것이다! 이것은 대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수년간 나는 늘 이런 식이었는데 어째서 인식하지 못했던가? 정말 부끄러웠다.
(2)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수련생은 당문화(黨文化)가 좀 심한데 수년간 적지 않게 고쳤지만 교류 중 그녀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말이 빨라져, 결국 그녀가 속 시원히 말을 다 마칠 때까지 다른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수련생이 나에게 전화했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자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며 마치 기관총처럼 ‘따따따’ 쏘아붙였다. 나는 그녀와 몇 마디 논쟁하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때 옆에 있던 아들이 말했다. “너무 크게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나는 비로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말할 기회가 없어”라고 변명했다. 아들이 말했다. “상대방 목소리가 크더라도 큰 소리 내시면 안 돼요. 차분하게 절제하고 심정이 편안해야 해요.”
나는 즉시 이해했다. 아들이 옳았다. 사실 수련생은 내 거울이 아닌가? 모두 당문화의 산물로서 목소리가 커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소리, 말의 속도라도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는 그 수련생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십보백보’에 불과했다. 나 자신에게 있던 당문화를 알려준 그 수련생과 어린 수련생에게 감사했다.
(3)
나는 새해(2021년) 비교적 안정적으로 1개월, 혹은 더 짧은 기간 동안 책 전부를 한 번씩 암기하고 복습하게 됐다. 사람들과 이에 대해 교류하는 시간은 매우 적은데 일부 수련생과 법암기 경험을 교류한 뒤 하는 일을 잘못했을 때 어느 수련생이 나에게 “법을 외워도 이렇다면 아무 소용없어요”라거나 “당신은 이것도 못하면서 법을 외우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닫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면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단지 부정적인 교훈만을 배운 사례다.(집착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법 외우기를 교류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임)
어느 날 나는 아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법을 외운 후 내가 모범인물로 하는 것마다 모두 잘해야 하는 것처럼 변했어”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할 때 물론 안으로 찾지 않았고 나에게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아들이 말했다 “사람마다 자질이 달라요. 어머니가 법을 잘 외우셔도 몇 번 읽은 다른 사람이 이해를 더 잘할 수 있어요. 사람마다 기점과 오성(悟性)이 다르기 때문이죠. 어머니가 법을 외우려고 노력하신 것은 단지 경건하게 정성을 드렸다는 것을 설명할 뿐 다른 것은 없어요.”
나는 듣고 입으로는 아들의 말이 맞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약간 실망했다. 나는 대법에 빨리 동화하기 위해 수년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법을 외웠다. 그런데 법을 방금 배운 사람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의 과시심이 장난친 것이었다. 법을 외워 과시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게 하려고 생각한 이런 마음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게 하고 나에게 ‘고초’를 겪게 한 것이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4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2/4223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