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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륜’을 외워 쓴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제자로서 나는 법공부를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법공부 상태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좋았다 나빴다 했다.

한 번은 한 달간 연속으로 초과근무를 했다. 겨우 한가해진 후 나는 서둘러 ‘전법륜’을 들었다. 이 한 달간 법공부를 너무 적게 해 보충을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시간 넘게 법공부를 했을 때,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고뇌했다! 초과근무를 하기 전에 나는 법공부를 할 때면 마음속이 매우 깨끗하고 거의 아무 교란 없이 명확하게 법이 마음에 들어왔던 것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런데 겨우 한 달 만에 떨어졌다.

밍후이왕에서 많은 수련생이 법을 외우는 이점을 교류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전법륜’을 여러 번 외워 눈을 감기만 하면 한 단락을 외울 수는 있지만 너무 익숙해져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법을 베껴 쓰기로 했는데, 어떻게 베껴 쓰든 머리는 조용해지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자신에게 물었다. ‘어떡하지?’

나는 예전 일이 떠올랐다. 역시 자신의 법공부 상태가 좋지 않았고 머리가 뒤숭숭해 ‘전법륜’을 외워 썼었다. 즉, 한 단락을 외운 뒤에 외워 쓰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정했던 표준은 전체 단락의 글씨가 반듯하고 틀리게 쓰거나 모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해야 스스로 합격으로 쳤다.

그 한 단락 법을 반복해서 쓰고 또 쓰며 오전부터 저녁까지 썼다. 시작할 때는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때로는 정말로 외워 써 내려갈 수 없어 집안을 두 바퀴 돈 뒤 이어서 썼다. 하지만 갈수록 나의 필체는 반듯해졌고, 두뇌도 갈수록 명석해졌으며 마음도 갈수록 평온해졌다. 그렇게 마침내 외워 썼다. 내가 대충 세어 보니 최소 10여 번을 썼다.

이 한 단락을 외워 쓰니 사상도 깨끗해졌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어 외워 쓰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는 시간이 있으니 처음부터 다시 ‘전법륜’을 외워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하자면 쉽지만 하자면 쉽지 않다. 이 단락을 분명 익숙하게 외웠지만 펜으로 쓰자니 이 부분을 잊지 않으면 다른 곳이 모호했다. 여러 번 반복해 외워 써서야 겨우 기억했다. 하지만 마지막 몇 글자를 쓸 때, 또 생각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외워 쓰는 것은 곧 외워 쓰는 것으로서, 책을 펼쳐 보고 보충하는 것이 외워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르지 않은 사상이라는 것을 점화해주셨다. 그래서 정말로 생각나지 않으면 책을 펼쳐 보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외워 쓰자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외워 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바로 진도를 추구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오늘 반드시 몇 단락을 외워 쓰겠다고 생각하고 진도를 생각하면 오자는 없어도 필체는 모두 흘려 썼으며, 마음도 늘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무슨 생각이든 다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 진도를 추구하는 것 역시 추구하는 마음인데 법공부는 곧 법공부로서 어떤 사람 마음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여기자고 생각했다. ‘글자를 틀리게 썼다면 바로 자신이 향상해야 하는 단계이니 낙심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은 했지만 잘 안 됐다. 쓰고 쓰다 보니 또 속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며칠간 외워 썼는데 완벽한 한 단락 법을 엉망으로 쓴 것을 보니 정말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더는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단락도 외워 쓰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더는 쓰고 싶지 않았으며, 어차피 한 글자 틀린 것은 큰 잘못도 아니고 계속 외워 썼으니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몇 번 자신에 대한 요구를 낮췄다. 하지만 이렇게 할수록 다음 한 단락을 외워 쓰는 상태는 결코 좋아지지 않았고 틀리는 것이 더 많아졌다.

나는 진도를 추구하는 배후는 위사(爲私)의 자아라는 것을 점차 발견했다. 무엇이든 자신을 표준으로 삼았고 대법에 동화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서서히 그것을 명확히 보아냈고, 끊임없이 자신의 집착을 닦아 없애면서 그것을 제거했다. 때로는 잘 해냈고 때로는 잘하지 못했다. 견지하면서 자신이 잘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외워 썼고 마음도 고요해졌는데 어째서 법리를 보아내지 못할까? 예전에는 법공부할 때 고요하면 법리의 펼쳐짐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법공부에 공을 들여도 법리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왜 그런지는 잘 몰랐지만 그것이 어떤 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전법륜’을 외워 쓰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내게 미소 지어주시는 것을 늘 볼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격려라는 것을 알고 포기할 수 없었다.

한동안 외워 쓴 후, 나는 제거하기 어려웠던 한 집착심이 나도 모르게 흩어져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법공부를 잘해서 대법이 그 집착하는 사심(私心)을 해체해줬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나는 그 마음을 늘 억제하기 어려웠다. 나는 ‘전법륜’을 외워 쓰는 것은 마치 법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대법이 나를 거대하게 변화시켜 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훗날 나는 오랜 기간 보지 않았던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이 보고 싶어졌다. 법을 볼 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내포를 거의 매일 보아냈다. 이것은 한동안 ‘전법륜’을 외워 쓴 기초가 가져다준 변화라고 생각한다.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다 보게 된 마지막 날, 나는 어떤 생명이 나의 공간장에서 늘 나를 교란하는 것을 느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발정념을 해도 그것을 해체할 수 없었다. 법공부가 비록 마음에 들어오긴 했지만 늘 이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억제하면서 법공부를 했다.

각 지역 설법을 다 보고 시간이 좀 남아서 이어서 ‘전법륜’을 외워 썼다. 이렇게 외워 쓰자마자 금세 느낌이 달라졌다. 두뇌가 졸리면서 마비된 느낌이었지만 어떤 힘이 이 졸음과 마비를 끊임없이 한 층 한 층 소멸했다. 나는 대법의 에너지가 내 신체 속에서 이 나쁜 것을 배출하고 해체하는 것을 느꼈다. 20여 분간 발정념을 하자 즉시 고요해졌으며 그 생명도 거의 사라졌다.

나는 너무 놀랐다. 오늘 각 지역 설법 두 권을 배웠는데 이번에도 법이 마음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 좋지 않은 생명이 줄곧 나를 교란하고 있었다. ‘전법륜’을 겨우 20여 분만 외워 썼는데 이 나쁜 것이 곧 대부분 해체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늘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했다. 당신들이 비록 부동한 경지에 있지만 모두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얻을 수 있다.”[1]

“법공부는 『전법륜(轉法輪)』 위주로 한다. 만약 시간이 많으면 당신이 다른 설법을 좀 공부하는 이것은 관계가 없지만, 『전법륜』을 위주로 해야 한다. 만약 정말로 시간이 적어 다른 것을 공부할 수 없다면, 당신은 스스로 시간을 내어 기타 방면의 내가 말한 법을 보라.”[2]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3]

최근에는 외워 쓸 때도 ‘전법륜’의 내포를 느꼈다. 견지하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느낌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 자아는 끊임없이 약화됐고 나는 서서히 추구함이 없이 한 글자 한 글자씩 외워 쓰는 것을 해내게 됐다. 마치 쓰는 게 아니라 새기는 것 같았다. 신기한 것은 필체가 나도 모르게 예서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일부러 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 상태는 때로 빠르게 변했다. 어제는 괜찮았다가도 오늘은 또 기억하지 못했다. 힘들 때는 한 구절씩 외워 쓰고 다시 전체 단락을 외워 써 내려갔다. 나는 그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견지해 걸어온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바빠서 책을 본다. 하지만 시간이 있기만 하면 ‘전법륜’을 외워 쓰는 것을 견지한다. 매주 한 차례 단체 법공부가 있지만 혼자일 때도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

법을 잘 배우면 입을 열기만 해도 자신이 곧 이 말 배후의 집착심을 느낄 때가 많다.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는 몇 마디 안 해도 상대방이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를 하고, 말을 잘하고 재능이 있다며 나를 칭찬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무슨 화려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은 자신의 약간의 심득체험으로서 옳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스위스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

 

원문발표: 2021년 4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10/4231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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