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질투심을 없애야 사심 없이 남을 위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

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며칠 전 남편이 나와 대화하면서 한 속인 친구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그 친구에게 일을 하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는 흔쾌히 수락하고, 안심하라며 책임지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처리할 때는 힘써 하지 않으며 “괜찮아. 이 일은 이렇게 어려워. 나도 예전에 이 일을 할 때는 어려웠는데 많이 뛰어다니다 보면 될 거야. 이런 일을 하자면 이렇게 수고스러운 거야.”라며 자주 남편을 위로하곤 했다. 원래는 약간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인데도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이런 행위의 이면에는 질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점을 의식한 후, 나는 나 자신을 비춰봤다. 나 자신도 일을 하고 생각할 때 그런 심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일이 쉽지 않게 풀려야 마음 내켜 하는지? 다른 사람이 고생하고 수고했다는 생각이 들어야 마음이 편안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편안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내 관념에 부합되어야 내가 만족하는데, 자신의 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고 배치하려는 것이다.

이런 심리가 바로 ‘나’의 기점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기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사심(私心)이다. 더 아래로 연장해 나가면 구세력의 사상이다. “구세력은 당신들이 쉽고도 쉽게 완성한 일에는 위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당신들에게 어려움을 조성한다.”[1] 구세력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바로 이런 출발점이다.

그런 질투심을 깨닫고 나서 나는 또 많은 악한 행위를 발견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지급하려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질투심에서 비롯됐다. 더 아래를 찾아보면 질투심의 뿌리는 사심(私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어떻든 간에 관건이 되는 시각에 바로 자신을 생각하며, 출발점도 목적도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수요를 생각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 잘 되게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 잡은 후 법의 요구에 따라 하는 이것이 바로 사심(私心)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하고, 타인을 위한 생명으로 될 것을 요구하셨다! 이는 어떠한 헌신과 희생이 따르는 것일까!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하며,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10/423135.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