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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법학과 학생에서 진상을 알리는 변호사가 되기까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13년에 법을 얻었고 그 무렵 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법을 얻은 것은 제게 신비롭고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법학과 학생입니다. 갓 개학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한 선생님의 수업을 선택해 수강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서양문화였습니다. 이 선택과목의 이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학교 1학년 처음 이 수업에 들어오면서부터 저는 수강을 견지해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 ‘수련계’, ‘좋은 사람’, ‘성인(聖人)’ 등의 단어를 언급했고 저는 매우 열심히 들었으며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저는 그 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께서 언급했던 말속의 진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제게 답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름방학을 보냈습니다. 문 입구가 텅 빈 큰길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하늘이 정말 내게 진리를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모든 것을 꺼내어 진리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강하고 나서도 저는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을 쫓아가 언급하신 말속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손바닥에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 네 글자를 적어주셨습니다.

그날 저는 법을 얻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을 매우 즐겁게 보낸 저는 매일 법공부를 했고 새벽까지 공부해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현지의 대법제자 법공부 팀에도 참가했습니다. 저는 비록 병을 제거한 체득이 없었지만 마음속의 법리는 제 모든 것을 지탱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때 저는 파룬따파가 모함 받는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마치 그 단락 박해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법공부를 할 때 저는 사존께서 저의 대법이 모함받던 기억을 지워주셨으며 저는 법을 위해 온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저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막 법을 얻은 흥분으로 저는 가족에게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고 제가 속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몹시 슬펐고 어렴풋이 가족들의 천국세계의 중생이 제게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왕을 구해달라고 청을 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서두르지 않고 암묵적으로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펼쳐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혼자서 집에서 수련하던 시절은 저를 점차 막 법을 얻었을 때 모든 것을 불사하던 흥분과 충동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진상을 알렸고 우편을 통해 친구들에게 진상자료를 보내주었으며 인터넷에 가입해 글을 쓰고 진상문장을 전송하는 등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비록 한 일은 모두 매우 민감하고 위험했지만 안전 문제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친한 친구의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제게 자신이 인터넷 공간에서 대법 진상 자료를 전송하다가 공안국에 연행됐다고 말했고 또 공안국에서도 제 계정을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한바탕 크게 울었고 매우 분노했으며 괴로웠습니다. 속으로 왜 친한 친구가 이런 박해를 받아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 모든 일에서 다 틈을 타도 대법제자의 신앙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친한 친구는 결국 공안국에서 수련을 포기한다고 성명했고 공안국에서는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냈습니다. 대략적인 의미는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저는 신기함이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미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친한 친구를 만회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는 반대 입장에서 저를 반박했으며 결국 저는 그녀와 깊은 교류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저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터넷은 비록 진상을 알리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국내 인터넷은 안전하지 않으며 수많은 엽기적인 심리, 경쟁심, 정에 집착하고 과시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삼자 입장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주변 친구의 범위도 매우 작았습니다.

저는 자료점을 만들어서 혼자서 자료를 제작하고 혼자서 배포해야겠다는 생각이 싹텄습니다. 저는 사정을 알지 못하시는 부모님께 컬러 프린터를 구매해달라고 했고 저는 자료를 인쇄해 주변 주민들에게 배포할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매우 빠르게 제 진상자료는 거의 한 골목을 덮었고 저는 또 오래된 이웃 주민 구역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집이 갑자기 철거 통보를 받아 저희는 다른 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저는 새 아파트 단지에서 또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정부 기관에 일을 처리하러 가다가 ○○가 파룬궁(法輪功) 수련인이니 중점적으로 주시해야 한다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비로소 제가 사는 곳에도 대법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수련생을 만난 적은 없어서 줄곧 독립적으로 일을 해온 동시에 안전에 더욱 주의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외지에 가서 사법고시 학원에 참가하는 바람에 자료점은 반년 넘게 멈췄습니다. 저는 변호사 자격증에 합격한 후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습했습니다. 실습하는 반년 동안 매우 많은 사람으로부터 영예와 칭찬을 받았고 책장에 두 줄로 세워 놓을 수 있을 만큼의 트로피와 상도 받았습니다. 성급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변호사로 종사한 후 여러 번이나 변호사 신분으로 TV프로그램에 출현했습니다.

저는 이런 ‘행복’ 속에 잠겨 서서히 밤에 더 이상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거의 명리를 쫓는 속인이 됐습니다. 설령 이렇게 속인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저는 자신의 이 반년 동안의 삶이 괴롭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한 생명이 법을 얻고 나서 다시 법을 떠나게 된다면 이런 느낌은 거의 절망적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일종의 힘이 저를 대법에서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변호사 사무실 주임의 유혹으로 착오를 범했습니다. 설 쇨 무렵, 저는 자신의 생명을 끝내고 싶었다가 또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어 어렵게 이 위험한 생각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대법 책을 집어 들고 ‘만약 정말 생명을 포기하려 한다면 나는 사람 속의 모든 행복, 명예와 재산을 포기하고 반드시 대법으로 걸어 돌아가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설 후 저는 그 주임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 대한 증오하는 마음을 내려놨습니다. 한 번은 그에게 직접적으로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했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대법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 실습에서 정규직으로 바뀐 후 저는 한 고급 아파트 거주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계속 자료점을 만들어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저는 이미 수련생들이 부러워하는 신수련생에서 노수련생이 됐습니다. 이때 저는 수많은 것을 겪었고 마음속으로 법에 대한 이해는 더 이상 표면적이지 않았으며 서서히 풍부해져서 갈수록 포용할 수 있고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진상을 알릴 때 더 이상 성난 젊은이들처럼 공산사당을 비판하지 않자 부모님도 제 말을 이해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심지어 저를 칭찬하면서 난세에 살았다면 분명 지혜로운 영웅이 됐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변호사 신분과 속인의 영예로 저는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저의 견식과 경험을 통해 친구들에게 삼퇴를 권유하면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검찰원에 일 처리를 하러 갈 때, 한 검찰관이 자신이 요즘 파룬궁(박해)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서 많은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법률에는 파룬궁이 사교라고 규정하지 않아서 법에 의거해 일을 처리하지 않고 정책에 의거해 일을 처리하면 사후 책임 추궁이 시작됐을 때 아무도 당신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이 점을 알고 있다며 파룬궁을 도와 변호하는 변호사도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경찰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파룬궁 진상을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때때로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며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저는 흔히 더 이상 옥신각신하지 않고 ‘여러 방면의 의견을 들으면 시비를 잘 구별할 수 있다’라는 점을 표현합니다. 설령 상대방이 제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중국공산당이 법치를 짓밟는 방법에 찬성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성적인 태도는 종종 상대방으로부터 이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법을 늦게 얻었고 굽은 길을 걸었지만 사존의 보호로 독자적으로 수련하면서도 자신의 정법 수련의 길을 돌파해 나왔습니다. 몇 차례 이사는 저를 진상자료를 더욱 많이 더욱 멀리 배포하게 했습니다. 이어서 다음 길을 저는 반드시 잘 걸으면서 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로 잡겠습니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4/4189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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