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찰·법원의 각종 회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1년 3월 10일 밍후이왕 교류문장 ‘공안·검찰·법원의 각종 회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나에게 계발을 주었다. 이 문장을 쓴 수련생에게 감사드리고 수련생의 문장을 통해 나의 집착과 문제를 일깨워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공안·검찰·법원의 일부 관계자가 파룬궁(法輪功)수련생에 대해 법률을 지키지 않고 완전히 사당(邪黨)의 박해 각도에서 박해를 가했을 때 마음속으로 그들을 몹시 원망했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납치, 판결한 것은 모두 이 공안·검찰·법원이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도리어 표상에 이끌렸다.
법공부할 때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우리에게 자비로 사람을 구하고 수련에는 적이 없다고 알려주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의 악랄한 태도와 박해를 직면하면 그들을 증오하게 됐고 그들의 태도에 심하게 이끌려 아예 자비심이 나오지 않았으며 그들을 마주하기 싫어서, 찾아가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데 필요하면 억지로 갔지만, 마음속은 평화롭지 못했고 그들을 자비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과도 이상적이지 못했다. 그리니 더욱더 그들을 직면하기 싫었다. 그래서 이 몇 년간 나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에 아주 적게 참여했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을 직면할 때, 그리고 사실 직장에서도 나는 피동적이었다. 나는 교사지만 몇 년 동안 학교 측은 계속 나의 수업권을 박탈했다. 나는 전에 여러 번 서기, 원장과 ‘610’(장쩌민이 만든 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기구) 관계자를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수업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사무적으로 대할 뿐 아예 대화하지 않으려 하거나 대충 얼버무렸다. 매번 나는 효과가 좋지 않고 달리 방법이 없자 이 몇 년 동안 그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직장에서 점점 아웃사이더가 됐고 해마다 고과 압력도 감당해야 해서 가슴이 매우 답답했다.
일의 표상에 이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정말 일 속으로 빠졌고 표면의 가상에 심하게 이끌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을 싫어하고 증오하게 되어 마음속에 부정적 정서가 가득했다. 직장 상사에게도 반감이 생겼고 그들이 정의와 양지가 없다고 원망하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직장생활이 즐겁지 않아 마음이 괴로웠다.
이 문장에서 필자는 실제로 법관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원래 중국 법조인들은 생각 외로 법률적 의미의 판결권이 없고 권력에 눌려 중공에 협박당해 선량한 사람을 탄압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박해에 일조해 범한 죄업은 도리어 법조인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은 원래 이렇게 불쌍한 것이었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작년 말에 지국 경찰이 전화로 소란을 피운 일이 생각났다. 그들은 계속 내가 거주하는 주소를 캐물었지만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전화할 때 나의 태도와 말투는 평화롭지 못했고 귀찮게 여기고 증오했으며 심지어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경찰이 전화로 내 직장에 찾아오겠다고 하자 나는 그 며칠 동안 마음이 답답하고, 긴장됐다. 경찰이 직장에 찾아오면 어떻게 경찰과 직장 상사를 대해야 할지 어떻게 그들에 대항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나는 절치부심하며 그들과 맞설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문장 마지막 단락에서 필자는 “파출소 지역 경찰, 지역사회 관계자를 포함하여 우리가 접촉하는 매 사람에게 수련인의 선량함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라고 썼다. 나는 미소가 나왔다. 사실 경찰, 지역사회 관계자, 직장 상사, 동료뿐이겠는가. 모든 사람과 일을 자비롭게 대해야 하고 그들이 어떤 표현을 하든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면서 자비롭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련생과 이 문장을 보고 느낀 점을 말하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두 가지 일이 생각났다. 하나는 가족 수련생을 구출할 때였는데, 당시 나는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과 1년 반을 줄곧 접촉했다. 그때 모함 사건도 검찰원이 체포령을 내려 두 번이나 밀려서 공안국에서 보충하고 다시 법원에 기소했다. 표면 현상이 한 걸음 한 걸음씩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희망이 없는 상실감을 겪어봤지만 계속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정념을 강화하여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일만 했다. 어쩔 수 없어 할 때 수련생들은 나를 격려하면서 “가보세요.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되죠. 동수님이 가기만 하면 다른 공간에서는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이 함께 악을 제거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때는 정말 이 문장에 나온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리에 의지하고 수련생들이 격려해주어 계속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거듭 그들과 평화롭게 대화하고 거듭 우편으로 자료를 보내자 마지막에 법원은 생각 외로 정말 사건을 마무리하고는 입안도 하지 않았다. 내 주소지가 있는 도시는 파룬궁을 가장 심각하게 박해하는 곳인데, 특히 10여 년 전 그때도 사악이 아주 창궐했다. 법원에서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는 기적이며 속인의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 초상적인 결과가 나타난 원인은 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 선의적으로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관계자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하고 법관 및 관계자들의 양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은, 수련생 몇 명이 동시에 불법 체포당한 모함 사건을 법원에 제출했던 때였다. 그중 한 여자 수련생의 어머니는 고령으로 역시 수련생이었는데 나와 함께 법관을 찾아간 적이 있다. 몇 번 찾아갔지만 법관은 바쁜척하며 아예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번 찾아갔을 때 그를 만나지 못하거나 혹은 만났어도 몇 마디만 하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진상을 알리는 기회는 아예 없었고 법관이 냉정한 태도인데 우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우리는 법관에게 편지를 써서 수련생의 딸이 사리가 분명하고 무고당했으니 선하게 대해달라고 했다. 어머니 수련생은 내용을 한 자 한 자씩 편지지에 베껴 써서 편지를 완성했다. 사실 당시에 우리가 편지를 쓸 때는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나와 그 어머니는 서로 격려하면서 바라는 마음 없이 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려 했다. 그 결과 수련생 몇 명이 함께 불법으로 재판받았지만, 그 수련생의 딸은 무죄로 석방됐다.
유감인 것은 그녀와 함께 있던 수련생들이 모두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그 수련생의 가족들은 법관을 찾아가지 않았고, 노년 수련생 아주머니가 가족들에게 연락도 해봤지만, 그들은 찾아가기 싫어했다(가족은 모두 수련하지 않는 일반인임). 같은 사건이지만 결과는 달랐다.
‘공안·검찰·법원의 각종 회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장과 연관해서 내가 10여 년 전 겪은 두 가지 일이 생각나니, 내가 이 몇 년간 어쩌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정념을 잃었나 싶었다. 바로, 일을 할 때 결과를 추구하며 심하게 이끌린 것이다. 이 문장은 다시 한번 나를 일깨워 줬다. 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의 어떠한 태도에 직면하건 대법제자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라고 알려주셨으면 우리는 가서 하면 되고 표면상의 좋고 나쁨에 이끌리지 말고 일 속으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가 경찰, 직장 상사에 대한 반감이 많이 적어지고 선심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문장을 쓴 수련생에게 감사드리며, 수련생 문장을 통해 나의 정념을 강화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29/4226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