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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약간의 생각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한 수련생이 병업 가상이 나타나 생활이 곤란해졌다. 나는 수련생을 돕는 동시에 나 자신이 걸어온 일부 여정을 되돌아보다가, 내가 때로는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고, 그 속의 강렬한 이기심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아주 괜찮고 법에 대해 견정하다고 여긴 것을 발견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중생을 구도하는 데 손실을 초래하고 자신에게는 번거로움을 가져오고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남편은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강제적인 수단으로 수련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여러 번 이혼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때, 나는 늘 “저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했는데, 당신이 이혼하려 하시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와 같은 말들을 했다. 하지만 그때 나의 진실한 상태는, 정 때문에 남편과 헤어지기 싫었고, 그와 헤어지는 것이 정말로 두려웠다. 하지만 마치 대법에 대해 필사적이고 주저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때는 그 정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어떻게 안을 향해 찾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단지 대법이 좋고 나를 수련 못 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으며, 어떻게 해야 착실히 수련하는 것이고 진수(眞修)인지는 오히려 몰랐다.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곤 전부 강경한 태도와 불복종의 쟁투심이었다. 수련을 위해서는 가정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하였기에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나의 개인적인 수련상태로 말하자면, 위타(爲他)의 마음이 적고 위아(爲我)의 마음이 아주 강했다. 상대방이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에 영향을 주면, 어떻든지 간에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두려움 없이 강경하게 맞섰지 정작 대법을 실증하거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가정과 수련환경을 소중히 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 나타나서는 안 되는 상황도 내 책임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늘 그렇게 대하면서도 자신이 아주 견정하다고 여겼다. 수련생과 이 얘기를 할 때도 당당하게 했고, 스스로 꽤 괜찮고 대법을 보호하는 마음이 견정하여 파괴할 수 없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은 조금도 좋지 않은데, 그때 생각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었다. 겉으로는 대법을 보호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보호한 것은 자신이었다. 사람과 다투고 싸우는 것이었지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도리를 말하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을 품고 빙산도 녹일 수 있는 마음으로 모순을 해소하거나, 원한 없이 따스한 태도로 가족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잘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는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참았다. 내가 잘하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모순이 끊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마난이 닥쳤다. 관을 넘지 못할 때, 심지어 마음속으로 ‘떠들 테면 떠들어라. 내가 언제 잡혀가기라도 하면 당신 좋겠어.’ 하고 삐딱하게 생각했고, 이 나쁜 사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인식하거나 부정하지 못했다. 훗날 심각한 남녀지정, 부부의 정, 일하는 마음 등등의 교란으로 법공부, 연공, 발정념이 따라가지 못하게 됐고, 일에 끌려다니고 정마(情魔)의 조종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과적으로 사악이 틈을 타 불법으로 형을 선고당했다. 정말로 중생을 구도하는 데 손실을 주고, 자신의 수련에 오점을 남겼다.

마난을 겪고 난 후, 나는 대법의 지도하에 심성이 제고되어 걸어 지나왔다. 하지만 당시 법리를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심각하게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다.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더는 예전처럼 강경한 마음가짐으로 모순을 대하지 않아도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 서서 문제를 잘 처리하여 많이 평화로워졌으며, 법 공부와 마음을 닦는 데 많은 공을 들여 안을 향해 찾을 줄 알게 되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로 갈수록 이성적으로 성숙해졌고, 가정환경도 갈수록 좋아졌다. 늘 평화로운 장 속에 감싸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수련생의 문제를 보기 전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속인적인 용기에 득의양양해 하며, 마치 자신이 대법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처럼 느꼈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마땅히 인식을 제고해야 했고, 그해의 인식 상의 부족함을 바로잡아야 했다.

또한, 내가 불법감금 당해 아이의 학업에 영향을 준 문제로 남편이 나를 원망할 때도 나는 줄곧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매번 사당이 박해해서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남편은 이 일에 대해 줄곧 나에게 불만이 있어 때로는 원망 섞인 말을 몇 마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사악의 박해이기는 했지만, 수련 상에서 보자면 자신의 심성에 거대한 빈틈이 생겨 사악에게 박해할 구실을 주어 가족에게 거대한 심리적 감당과 상해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책임이 아닌가? 나는 자신의 수련이 부족해 가족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마음속으로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자, 남편도 더는 이 일로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앞으로 모순과 마주쳤을 때, 당신은 그것을 우연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모순이 생길 때 갑자기 나타나지만,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것은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1]

우리는 자기가 옳다고 강조하거나 이게 나쁘고 저게 나쁘다고 상대방을 탓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속인의 이치로 가늠해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고 심지어 너무하다 싶은 점도 있지만 우리는 마땅히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우리가 속인의 이치로 가늠하면, 우리는 곧 속인이 아닌가? 속인과 다를 게 무엇인가?

수련생의 문제를 보고 나 자신의 수련과정에서의 부족함을 반성했고, 우리에게 모순을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준 중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고부 사이, 형제자매 사이, 시누이와 올케 사이, 이웃 사이, 동료 사이든 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있는데, 모두 자신이 닦아 없애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을 향해 찾아 그것을 제거하고 해체할 필요가 있다. 우리 곁의 인연 있는 사람, 특히 가족들, 우리는 모두 멀고 먼 천체에서 최후에 파룬따파(法輪大法)의 구도를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저버리면 안 된다. 인간 세상의 은원(恩怨)은 명리정(名利情)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너무 작고 너무 작다. 하지만 중생을 구도하는 일은 너무 크고 너무 큰 일이다.

사부님께서 알려주셨다.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2]

대법제자 중에도 이혼 현상이 있다. 많은 수련생은 박해받다가 핍박에 못 이겨 이혼했다. 당사자 수련생과 신변의 수련생도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이 혼인가정과 수련을 대하는 문제에서 관계를 바로잡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가정은 하나의 중추와 같아 큰 하나의 집단, 우리와 큰 인연이 있는 중생과 연결되어 있다. 가정 관계를 바로잡는 것 또한 중생을 구도하고 중생을 책임지기 위한 것이다. 나는 대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정을 소중히 하고 중생을 아끼는 것도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하세(下世)하여 조사정법(助師正法)을 하는 대법제자로서, 오직 자비로 중생을 구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원은 모두 연극으로서, 개인적인 은원을 버리고 그것을 초월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제1위이다. 그런 은원을 설령 즉시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하찮고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일이다. 중생을 구도하는 것만이 우주 중의 근본적인 대사(大事)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외 것은 다 중요하지 않다.

몇 년 전에 남편이 외도했다. 나는 내연녀에게 전화해 “어찌 되었든 오늘은 우리 사이의 개인적인 은원을 한쪽에 놔두고 얘기를 해보지요. 당신에게 파룬따파가 어찌된 일인지 알려줄 텐데 당신이 구도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떤 연분이 있든, 그게 선연이든 악연이든, 얼마나 많은 은원을 맺었든, 그것은 단지 개인 간의 은원일 뿐이고 당신이 대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법 진상을 아는 것만이 가장 큰 일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이어서 왜 3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를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내 말을 다 듣고 그녀는 “제 동창의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해서 저는 이미 탈퇴했어요.”라고 했는데, 나는 그녀가 대법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로써 그녀도 나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이미 구도받은 한 생명이었기에 나는 매우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비록 그때 그녀에 대한 원한과 불평은 내려놓지 못하고 우선 한쪽에 놓아두었지만, 반드시 그것을 빨리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나중에 그녀는 본래 자리로 잘 돌아갔고, 우리 가정은 사존의 불은호탕(佛恩浩蕩)으로 마난을 지나 많은 지인이 선망하는 가정이 되었다.

불법감금 당했을 때 핍박으로 이혼을 한 수련생도 있다. 어떤 수련생은 돌아온 후에 전남편이 후회하고 재결합하고자 했으나, 수련생이 거부했는데, 물론, 각기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위타의 각도,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 서서 이 문제를 자세히 생각해보자.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관용, 자비의 마음을 품고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리고 모순을 해소하여 진정으로 사람을 구해야 한다. 자신이 정을 내려놓아 가정에 근심과 교란이 없으면, 자신이 수련하는 데 더 유리하고, 더 많은 시간이 생겨 외출해서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보기에도 잘못이 없는데, 수련을 위하고 법을 위하며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를 바로 놓지 않고 이런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많은 친인척, 친구, 주위 사람의 몰이해를 초래할 수 있고, 구도받을 기연을 잃어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조성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이혼 수속 후에 재결합 수속도 없이 동거하는데, 대법 수련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마난 혹은 병업 교란을 불러와 사람을 구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대법제자 중에 나타난 이혼 현상, 여기에는 사악의 박해, 구세력의 안배와 교란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잘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도 많다. 어떨 때는 수련생이 정을 제거하기 위해 남편에게 미온적이고 무관심할 때가 있고, 어떤 이는 속인의 말을 하지만 본래 아무런 공통 언어가 없으며, 어떤 이는 정이 너무 심하여 지나치게 집착하고 통제하려 한다. 또 어떤 이는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자기 일에만 바쁘고 가족을 소홀히 하며, 심지어 어떤 이는 가족에게 대법을 위해 냉혹하고 무정하다고 느끼게 하는데, 마음속에는 오직 대법만 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컨대, 자신이 잘하지 못해 일단 외래 교란이 나타나면 결혼에 쉽게 금이 간다. 이것은 모두 가정과 수련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가정은 수련의 환경이고, 친인척과 친구를 구하는 창구인데, 가정을 잘 보호하는 것은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가정생활에서 발생한 모든 일은 다 우리가 수련하고 씬씽(心性)을 높여야 할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약간의 인식이다. 나는 보고 들은 일부 대체적인 정황만 말했을 뿐이다. 맞지 않는 점이 있다면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이런 현상을 예로 들어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약간의 인식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편파적인 점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사부님 저서: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28/4226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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