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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눈이 잘 보이지 않을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작년에 언제부터인지 시야가 흐려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머릿속에 자주 병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배척했다. 한동안 지나자 눈이 또 뻑뻑해졌다. 속으로 둥타이왕(動態網)을 너무 많이 봐서 눈에 피로가 누적돼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 하는 시간을 줄이겠다며 뉴스 제목만 보고 내용은 보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좋아지지 않았고 심할 때는 책을 펴고 법을 배울 때도 힘들었다. 나는 그제야 경각심이 생겼다.

왜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 아닐까? 집착심이 두 눈을 가린 것이 아닐까? 뼈를 깎듯 안으로 찾아보았다. 많은 집착심을 찾았다. 예를 들면 시간에 대한 집착심, 박해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안일심, 쟁투심,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공능에 집착하는 마음, 색욕심, 일하려는 마음, 조바심, 의지하는 마음 등등인데, 이것들이 이런 사람 마음, 집착심 배후의 요소이다. 비록 이번 마난(魔難)은 지속한 시간이 좀 길지만, 그 사이 몇 차례 씬씽을 연마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부님의 가지 하에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 잡자 나의 눈은 점차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번에 안으로 찾은 과정을 글로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다. 층차의 한계가 있어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 안일을 구해서 마난(魔難)을 초래하다

나는 안일심이 심각한 사람이다. 이 안일심은 단단한 돌처럼 내 수련의 길을 가로막고 있고 내가 제고해 승화할 방법이 없게 한다. 다들 말하길 정진하려면 새벽 연공부터 하라는데, 수련에 소질이 있는 대법제자에게는 새벽에 연공하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일을 구하다 보니 늘 작심삼일이고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돌파하지 못했다.

어느 날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정체제고(整體提高), 정체승화(整體昇華)”[1] 나는 깨달았다. 내 몸에 그저 초상적인 일이 생기기를 바라면 안 되고, 속인을 넘어선 사상 경지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속인은 생로병사의 제약을 받아서 매일 6시간 이상 자지 않으면 몸이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수련인은 삼계를 벗어난 생명이므로 속인 공간 시간장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안일심은 사실 속인의 아름다운 생활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련인은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며”[2]인데, 양자는 차이가 매우 크다. 안일심과 긴밀히 연결된 마음이 바로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편안해지고 싶기 때문인데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하려 하지 않는다. 고생이 두려워서 자기도 모르게 고생과 맞선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은 이 한동안 눈을 좀 더 편안하게 하려고 책상 스탠드를 바꾸고 또 바꾸고 했다. 백열등, 형광등, 주백색등 계속 만지작거렸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3]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의 잠재의식은 오히려 고생을 적게 하려 하고 심지어 고생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관념은 이미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어, 나의 수련을 심하게 교란한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수련생이 병업에 관한 교류문장을 쓴 것을 보면 머릿속에 간혹 한 생각이 떠올랐다. ‘병업이 붙잡히는 것보다는 낫지.’ 바르지 않는 일념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철저히 부정하지 않아 무의식중에 구세력의 배치에 빠지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이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구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4]

법리를 깨달은 후 나는 즉시 강대한 정념을 발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5] 수련인이 업을 없애는 것은 제고를 위한 것이며, 어떤 형식의 박해든 나는 모두 갖지 않는다. 수련을 교란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즉시 해체하고 소멸한다.

2. 밖을 내다볼수록 잘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나는 함께 협력해온 수련생 A와 다툼이 생겼다. 표면적인 원인은 그가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에 일부 기타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것이다. 나는 계속 그를 지켜보면서 그가 마음대로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했다. 비록 매번 다투고 나면 나는 안으로 찾고 쟁투심을 닦아버리겠다고 결심했지만, 또 만나기만 하면 시끄럽게 싸우게 돼서 괴로웠다. 어느 날 나는 크게 깨달았다. 쟁투심 배후에 사실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있다. 왜냐하면, 다툼을 통해 내가 옳고 남이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시선을 거두고 A의 부족한 면을 지켜보지 않았고, 우리 사이의 다툼은 마침표를 찍었다.

나중에 나와 A는 한번 솔직하고 성실하게 교류했다. A는 나에게 내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A에게 물었다. “제가 왜 그러는지 아세요?” A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그에게 알려줬다. “몇 년 전 저는 사람을 따르고 법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때 수련생의 ‘도움’을 받다가 곤두박질한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수련생에 대해 불신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렇게 늘 상대방을 보다 보니 결국 우리가 협력하는 데 교란을 받은 것이에요.”

나와 A가 자주 싸웠던 그때, 눈은 어렴풋하고 좀 흐리게 보였다. 사실 밖으로 보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나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수련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경 문제로 생각했다. 일반 수지 렌즈는 수명이 2, 3년이라는데 나는 6년이나 썼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자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점화(點化)해주셨다. 어머니는 한동안 청소만 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어떻게 된 거니. 바닥이 온통 쓰레기잖아.” 이는 내가 눈이 어둡다는 것이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오히려 마음에 두지 않고 그냥 웃고 지나갔다.

이렇게, 눈은 처음에는 좀 흐리게 보이더니 나중에는 물체를 볼 때 어렴풋했다. 분명히 시력이 떨어졌는데 마지막에는 눈이 빡빡한 증상까지 나타났다.

3. 원망하는 마음이 두 눈을 가렸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귀여움을 받지 못하고 당(黨) 문화에 오염되기까지 하면서, 수련 전에 나는 화가 많았다. 수련 후 끊임없이 연공하면서 갈수록 원망하는 마음이 적어졌지만 뿌리는 남아있었다. 때로는 닦아버린 것 같아도 주의하지 않으면 또 나온다. 자꾸 그러다 보니 너무 괴로웠다.

몇 개월 전 수련생 B는 핸드폰 번호를 가득 적은 종이 몇 장을 가져와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했다. 글씨체가 가지런하지 않아 어떤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번호는 자릿수가 하나 더 있거나 적거나 하고 겹치는 번호도 있었다. 그래서 매번 올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B는 일정한 시기마다 내게 인터넷에 올려달라는 부탁을 해왔는데 나중에 내가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더 도와주지 못했다.

마지막에 B의 부탁을 받고 인터넷에 올릴 때 눈이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작업하면서 조바심이 나고 원망하고 화내는 마음이 올라왔다. ‘B는 왜 이렇게 남한테 기대어서 하려 하지.’ 수련생은 거울이다. 그때 자기와 대조해서 안으로 찾아 닦고 제때 조바심을 제거해야 했는데, 나는 남의 문제만 봤다. 이 원망의 기(氣)가 내 두 눈을 가려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말 여동생 집에 가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나도 모르게 집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집이 3채였다. 두 채는 평수가 좀 되는데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한 채씩 주고 부모님은 12평짜리 원룸에 사신다. 부모님은 돌아가시면 그 원룸은 내게 주겠다고 하셨다. 한번은 아버지가 중태에 빠져 다른 지방에 계신 숙부님이 문안을 왔다. 점심을 먹으면서 숙부님은 친척들 앞에서 우리 삼 남매를 보고 말했다. “부모님이 이제 연로하신데 너희가 모셔야지 않겠니.” 당시 우리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때 삼촌이 내게 말했다. “네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모님을 모시기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었다. 집이 작아서 방이 두 개뿐이었고 어려서부터 부모님과는 딴 세상 사람처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수련인이니 타인을 위해 생각하자며 억지로 동의했다.

나는 부모님께 그 원룸을 팔고 내 돈을 보태서 우리 집 근처에, 방 두 칸짜리 집을 사자고 했다. 그러면 돌봐드리기 쉽고 나중에 도우미를 부르기도 좋다고 했다. 부모님은 동의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집을 파시더니 다른 집을 사지 않고 우리 아이가 유학 간 뒤로 비어 있는 방에 들어오셨다. 아이는 귀국하고 다른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는 집을 판 돈을 부모님 명의로 저금해놨다.

여동생은 부모님 집을 자기 앞으로 하려 했다면서 나에게 그 집을 팔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게 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듣고 화가 났다. 이건 분명 빼앗는 것이잖아! 여동생은 말했다. “엄마 아빠가 언니한테 돈을 얼마나 주셨어?” 나는 여동생에게 알려주었다. “부모님은 퇴직금까지 합쳐서 매달 7천 위안(한화 약 119만 원)이 안 되셔. 너도 알겠지만, 엄마는 매일 몇십 위안어치 되는 약값도 필요하시잖아.” 여동생은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언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나 봐? 세상에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 다 있어?” 나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눈물을 참고 여동생 집을 나왔다.

돌아와서 내내 억울했다. ‘왜 이렇게 생억지를 부리는 거야. 부모님을 모시기는커녕 시비를 거네.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해? 언제 가야 끝날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여동생은 아버지를 부추겨서 나를 난처하게 하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는 생트집을 잡았다.

어느 날 법 공부를 하는데 사부님의 법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자비심(慈悲心)에서가 아니다. 그는 그 명리심(名利心)을 전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아예 생길 수 없다.”[1] 나는 단번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때 억지로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을 판 것은 나중에 번거로운 일이 있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억울하고 불만이 있었다. 애당초 자비심은 없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자를 위해 이 원한의 뿌리를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4. 공능에 집착한 교훈

나는 어려서부터 천목이 열려 있어 돌아가신 친인을 볼 수 있고 그들과 소통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수련할 때는 천목으로 자주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되어 사부님께 천목을 닫아주십사 빌기도 했다. 나중에 천목이 다시 열렸지만 나는 될수록 적게 보려 한다. 천목 외에 또 감응이 있는데, 간혹 장래 발생할 일과 지나간 일(그때 나는 그곳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감응은 의식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한번은 내가 감응한 것을 수련생 C에게 알려주고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다. 당시 그는 믿지 않았는데 1년 뒤에 그 일이 발생했다. C가 위험에서 벗어나자 나는 내가 감응한 상황을 또 그에게 알려줬다. 이때는 그가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었는데,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감응한 것이었다.

얼마 후 뚜렷한 꿈을 꾸었다. 꿈에 두 가지 장면이 나왔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내가 친구를 도와 스웨터를 팔아주었는데, 내가 손님에게 말했다. “이 스웨터는 모양이 예쁘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다른 데서 한 벌 살 돈으로 여기서는 두 벌을 사실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손님에게 캐시미어 함량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웨터를 들고 보더니 좋아하며 두 벌을 구매했다. 그런 후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이 무대에서 셔츠를 팔고 있었는데 나는 무대 밑에 앉아서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보이네.’ 이때 두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말했다. “사모님, 이 옷을 구매하시지요.” 나는 괜찮다고 거절하고 옷을 뒤집어 보았는데, 안쪽이 손상돼있었다.

깨어난 후 생각해 봤다. 무슨 뜻일까? 첫 번째 장면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캐시미어의 함량을 말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단지 겉만 보았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셔츠가 안쪽은 망가진 제품이었다. 눈으로 본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다. 층차는 한계가 있으므로 내가 본 것은 진상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천목으로 볼 때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보는 것은 모두 가짜로서,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自心生魔)이며, 수심이화(隨心而化)라고도 한다.”[1] 나는 일부러 감응했는데, 그것은 생각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생각을 움직이면 본 것은 가짜가 아닌가? 만약 C가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으면 사부님께서 그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교란한 것이 아닌가? 후회막심했다. 무의식중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는 수련생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즉시 C에게 편지를 써서 내 말을 진짜라고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법을 사부로 모셔야 한다고 알렸다.

인식했는데, 공능에 집착하는 것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때부터 나는 감응이 있어도 수련생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5. 시간에 대한 집착이 가져온 번거로움

나는 2년간 계속 같은 꿈을 꾼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상사가 임무를 배치하려는 것이다. 나는 “은퇴할 텐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죠.”라고 말한다. 이 꿈을 7, 8번 꾸었고 다만 은퇴까지 남은 시간이 달랐다. 어떨 때는 반년 남았고 어떨 때는 몇 개월, 어떨 때는 보름이었는데, 단 하루를 남기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시간을 다그쳐 정진해야 한다고 점화해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이 문장을 쓸 때도 그 꿈을 또 꿨는데, 깨어나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구나. 왜냐하면, 꿈에서 나는 은퇴할 때가 다 됐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으로, 앉아서 그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을 뒤돌아보면서 내가 시간에 집착하는 마음이 무거웠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우한 폐렴이 발생하자 매일 둥타이왕 뉴스를 주목하는데, 겉으로는 진상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사실 박해가 언제 끝날는지 알아보고 있다. 특히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은 완전히 끌려갔다. 인터넷에 파묻혀 새로운 소식을 구하고 이런 예언 저런 예언, 보기만 하면 2시간이다. 어떤 때는 이런 것을 프린트해서 수련생에게 주면서 지인에게 보여주라고 하기도 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계속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단지 검색 시간을 줄인 것뿐이었다.

안으로 찾아봤다. 왜 이렇게 시간에 집착하는 마음이 강할까?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지 않나? 나는 몇 차례 사악한 박해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사부님의 보호와 법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걸어 나왔다. 박해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비로소 시간에 집착하고 끝나기를 바라는 배후에 있는 근본 원인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해 주셨다. “생사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은 바로 신(神)이며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 바로 이 구별이다.”[6] 진리를 깨달은 후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법을 실증할 수 없고 사명을 완성할 수 없다면 이 육신으로 뭘 할 것인가.” 몸이 움찔했고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느 날 속으로 사부님께 ‘제자는 법리상에서 명백해졌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수련하기에 어떤 일도 모두 좋은 일이다.”[7]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이때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계산해야 한다.”[8] 나는 어리둥절해져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음속으로 무한한 기쁨이 생겼다. 그 후 나는 아주 뛰어난 장면을 보았다. 발밑에 하늘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옆에서 제자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어 용맹하게 앞으로 갔다. 이렇게 보는 것은 눈이나 천목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 경지의 진실한 존재이다. 마치 공기가 보이지 않지만, 사람마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원인은 사람 마음과 집착심이 있는 외에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아 사악을 자양한 것과도 관련 있다. 나는 발정념을 줄곧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요해지지 못했으니 그리 중시하지 않은 것이다. 매일 네 번의 정시 발정념 중에 특히 아침 6시 발정념 때는 거의 흐리멍덩한 상태였다.

몇 개월 전에 발정념 하는데 천목으로 침팬지 같은 큰 동물이 보였는데,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랐고 이어서 일념을 보내 멸했더니 그 괴물은 사라졌다. 얼마 후에 또 작은 여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좀 망설이다 ‘멸(滅)’ 일념을 내보자 아무것도 없이 사라졌다. 이 여우는 이전에 발정념을 할 때 나타난 적이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후 나는 내가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는 것과도 관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신의 공간장에 나쁜 물질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발정념하는 힘을 강화했다. 매일 전 세계 동시 발정념 시간 외에 3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자신의 공간장에 있는 패괴물질을 청리했다. 어느 날 아침 6시 발정념을 하며 속으로 흐리멍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분도 되지 않아 손이 넘어갔고, 다시 입장하니 또 손이 넘어갔다. 눈을 뜨고 보니 갑자기 내 왼쪽에서 주황색 같은 물체가 눈 깜빡할 새 사라졌다. 바로 깨달았다. 그 작은 여우가 나를 흐리멍덩하게 한 것이구나, 신속히 일념을 보냈다. 내가 발정념 하는 것을 교란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청리한다.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1]

발정념을 한동안 견지한 후 눈은 확실히 호전됐다. 이번에 관을 지나가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지만 나는 집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런 마난들이 앞당겨 왔는데, 비록 받은 압력이 매우 크고 씬씽(心性)에 대한 고험도 넘기기가 매우 어려우며 때로는 넘어야 할 관이 매우 클 수도 있지만, 결국은 이런 마난들을 모두 넘어가야 하고 결산해야 하며 계산해야 한다.”[8]

제자를 이끄시어 마난(魔難)에서 걸어 나오게 해주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 은혜에 절을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대원만법-1. 공법특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마음 고생’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7]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3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29/4217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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