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 대법제자 융밍(永明)
[밍후이왕] ○수련생은 자주 사악의 구치소 검은 소굴에 납치당한다. 경찰은 그를 병원에 데려가 신체검사를 하고 더욱 박해하려고 한다. 이 수련생은 검사 결과 ‘병’이 심각하고 혈압은 200이 넘으며 온몸이 ‘병’이다. ‘병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병’이 많아 속인보다 못하다.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가상을 연화해 시련에서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라고 느낀다.
극히 특별한 상황에서 이런 가능성이 있는 것은 배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두려움을 주는 박해에서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련생은 그런 박해 받은 심정을 표현하기 싫어한다. 사실 우리는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지만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반(反)박해 해야 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법을 실증해야 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려 세인을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 어디에서나 대법의 위대함과 진실을 펼쳐줘야 한다. 대법은 세간에서 광명과 희망을 펼쳐주는 하나의 대표이다.
많은 수련생의 교류 글에서 난에 처한 수련생은 자주 사부님께 ‘병세 위독’의 가상을 연화해 박해에서 벗어나기를 빈다. 대법이 세간에서 널리 전해지며 우선 사람에게 보여준 것은 법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탁월한 효과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선하게 하고 좋은 사람으로 변해 사회에 영향을 준다.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이런 사실을 많이 언급한다. 당신이 세인에 보여준 것(그런 박해자도 사악에 통제된 사람이고 마땅히 구도할 세인이다) 당신이 오랫동안 수련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것이 ‘거짓말’인 것이다. 이것으로 속인을 훼멸의 지경으로 몰아넣는 것보다 더 직접적인 것이 있는가?
속인은 ‘실제적인 표현’을 본다. 때로 최선을 다해 진상을 많이 말해도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믿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 수련생을 접촉하고 알고 있는 모든 세인은 당신 ‘병세 위독’의 표면에 생각이 있게 된다. 그들이 당신을 멸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이 박해를 가중하는 요소가 된다. (사실 당신이 법을 실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은 대법제자의 씬씽(心性) 변화에 따라 변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 사부님은 자주 우주의 제1 칭호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우리는 사람 속에 있고 아직 미혹 속에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박해를 부정하는 것은 정정당당한 정념에 의지해야 하고, 평소 진정으로 법공부를 해 씬씽 경지가 제고된 후 견정함과 깨달음에 따라야 하고,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후 세인에 대한 자비심에 따라야 하고, 정념정행의 위대함에 따라야 한다. 악한 경찰 배후를 지탱하는 사악을 소멸한 후 사람 이쪽을 감동하게 해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해도 박해를 감소시킬 수 있다. 박해가 가장 심각한 그 몇 년간 사악에 이용당한 경찰도 정념정행한 수련생을 어느 정도 존중한다.
개인의 이해는 ‘병의 상태’로 박해를 부정하면 수련생의 시련은 절대 이로써 감소되지 않는다. 법을 실증하지 않으면 부정적 영향을 준다. 단지 박해가 다른 방식으로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그 박해는 다시 온다. 거듭 박해당하는데 안으로 원인으로 찾아야 하지 않는가? 사람의 일면은 이것은 외출해 진상을 알려 시련을 불러온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한 상황은 자신의 원인으로 불러온 것이다. 마음가짐, 시련에 부딪힐 때 출발점, 생각, 어떤 사람 마음을 지니고 진상을 알렸는가. 바르지 못하면 아마 사악이 박해할 구실이 된다.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 그때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 이것은 출발점의 문제다.
물론 수련생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역시 사부님께서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법에 서서 문제를 보면 자신의 일언일행에서 모두 정념정행해야 비로소 철저히 박해를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러분이 보았을 것이다. 매번 납치당하고 불법 감금하기 전에 먼저 집을 수색하고, 매번 집을 수색할 때 모두 대법책, 자료, 재산 등이 손실되는데 대법책의 손실은 수련생에 대해 아주 큰 일이다. 대법을 지키는 것을 제1위에 놓았는가? 대법을 실증하는 위대한 대법제자가 속인이 보기에 ‘병에 시달리고 병이 심각하다’로 구치소도 받지 않는 것이 박해를 부정한 것인가? 정면으로 해야 법을 실증할 수 있다. 만약 박해이래 모두 신체의 표현에서 마땅히 건강한 몸 상태를 보여주면 얼마나 많은 박해자와 세인이 깊이 생각할 것인가? 박해가 그런 정도로 가겠는가? 대법제자가 법의 위력을 더욱 잘 보여줄수록 사악은 갈수록 작아진다. 어디에서든지 대법 수련생이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가 있어야 사악의 박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내가 접촉한 경찰은 처음에 수련생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수련생이 부정적인 것이 많을수록 그들은 대법을 믿지 않고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거리낌이 없다. 그들 배후에 모두 사악이 통제하고 있지만, 그들은 결국 사람 몸이고 그들은 사람의 생각과 선택이 있다. 대법 수련생이 얼마만큼의 정념정행의 표현이 있는가를 보고 이에 대응해 어느 정도의 시련이 나타난다. 그런 바르지 않는 방식은 마치 박해를 완화했다고 보이지만 사실 심각한 결과를 조성한다. 평소 진정으로 법공부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모든 일에 부딪혀도 안으로 찾는 것에 신경을 쓰고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중생을 구해야 하며. 언제나 대법의 휘황한 이미지, 자비의 이미지, 지혜의 이미지를 체현하면 박해는 또 있을 수 있는가?
개인의 깨달음이고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이 지적해주시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30/4226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