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대만 대법제자이며 현재는 군무원입니다. 법을 얻어 지금까지의 수련 심득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1999년 7월, 당시 다섯 살이던 나는 어리고 몽롱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함께 수련의 길을 걷게 됐다. 처음 개인수련 시기에는 단지 연공하며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일하고 가끔 휴일에 연공장 수련생들을 따라 사방에 법을 전하러 다닌 게 전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도소에서는 대법이 중국에서 박해당한 사실을 알려왔고 그리하여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수련단계에 들어갔다.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학업과 구직까지의 성장 단계는 대법 수련과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산에 갔던 어머니는 도사 한 명에게 점을 쳤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점쟁이는 어머니에게 인생 몇 살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을지, 무슨 사고가 날지 말해줬는데 사후에 확실히 이런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에 점쟁이는 막내아들이 복을 받는 아들이 될 거라고 언급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복은 바로 내가 어머니와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할 수 있는 복이었다.
내 수련의 길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은 모든 어린 대법제자들이 만나게 되는, 수동적이던 데서 진정으로 법리를 인식하고 나서 자진해서 참여하는 것이었다. 다채롭고 다양한 인간생활과 사회상을 마주해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때로는 확고하고, 때로는 해이해지며, 다시 사부님의 법리를 참조한 후 끊임없이 자신을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 바로 수련 과정이다.
어릴 적부터 역사, 예문(藝文)류의 사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매번 사부님의 각지 설법 중 사전문명과 생명의 윤회 등에 관한 법해(法解)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감전된 듯 문득 크게 깨닫는 느낌이 있고, 다시 돌아와 현재 지식과 대조해도 모두 일치하는 것이 항상 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나 자신도 중국 전통문화의 함의를 존중하고 때로는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됐으며 고등학교, 대학교 때부터 동창생들의 치열한 오락 활동에는 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커서 자신의 인내력이 종종 다른 사람보다 낫고 비교적 침착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사실 수련인들은 모두 이미 법을 얻을 기연(機緣)이 정해졌음을 이해했다. 세상에 오면서 금생에 개인마다 법을 얻을 기반을 깔았는데 다만 대법의 전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학교 동아리에 참여해 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고 프렌치 호른이라는 악기를 골랐는데 나중에 천국악단에 가입해 법을 실증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휴일마다 거의 빠짐없이 국내외 크고 작은 홍법 퍼레이드에 참여했는데 음악 형식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다.
대만에서는 모든 성인 남자들이 군 복무를 해야 하는데 나는 마지막 1년 병역 대상이었고 내 이후부터는 모두 4개월만 복역하면 됐다. 이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1년간 감옥에서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았다. 나도 내 개성이 군대에 가면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상상하며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는지 궁리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이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입대 영장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점점 마음을 내려놓았고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것이라고 믿었다. 중국에서 수감된 수련생을 떠올리며 여러 환경에서 여전히 수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입대할 때 나는 ‘논어’를 손바닥 크기로 인쇄해 언제라도 통독할 수 있도록 했다.
고된 한 달 동안의 신병훈련에서 수련 중 고된 일을 견디는 능력을 익힌 것이 오히려 적응을 더 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때 느닷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개방한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리하여 세상과 단절된 느낌도 한순간에 줄어들고 법 공부도 편해졌다. 신병훈련이 끝나면 각 부대에 배속될 예정인데 나는 악기 특기가 있어 군악대에 편성됐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훈련은 악기 기술을 잘 익히는 것이고 주 2일 휴무인데다가 휴일에 악단과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가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부대에서 훈련한 악기 기교와 천국악단에서의 연주가 서로 교감하며 성장해 좋은 연주 실력을 갖추게 됐고 사람을 구하는 강도를 크게 높였다.
군부대는 하나의 작은 사회처럼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복잡한 환경에서 고인(高人)이 나온다는 것은 아마 이런 뜻일 것이다. 밴드에 편성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식수준이 높고 악기를 잘 다룰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인내심과 끈기가 요구된다. 나는 사실 군대 규율도 사람의 기풍을 바로 잡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군부대에서 자주 이용하는 홍법 방식은 몸소 실천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따질 때 거기에서 빠져나와서 문제를 해결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범상치 않게 보이게 된다. 이때 전우에게 자신이 파룬따파 수련자임을 알려주면 그들은 마음속으로부터 탄복한다.
그간 수련인과 일반인의 차이는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언제나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의식주행과 체육 오락은 다 같으며 유일한 차이는 우리의 마음에만 있는데 우리는 항상 안으로 찾고, 항상 법리를 참조해 자신을 바로잡는다. 특이하게 사는 게 아니고 그렇게 산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악대에서 4개월이 되면 군악(軍樂) 심사와 훈련을 거치는데 압력이 매우 크다. 몇십 곡의 노래를 4주 안에 외워야 하고 또 악기를 들고 80분 동안 서 있어야 한다. 통과해야 비로소 합격한 군악병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휴식 시간과 정상적인 휴가를 받을 수 있다.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몸을 고달프게 하고(勞其筋骨), 마음을 괴롭게 하는(苦其心志)’(전법륜 제4강) 법리로 자신을 격려했다. 더구나 일반인도 참을 수 있는데 수련인은 당연히 못 참을 리가 없다.
훈련이 끝난 후 어느 날 나는 이례적으로 사병에서 사관으로 진급돼 군대에서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갑자기 들었다. 이처럼 모범이 되는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큰 격려다. 한 해가 저물고 제대를 앞둔 나는 군악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공무원과 같은 급여와 복지, 안정된 휴가와 출퇴근은 나에게 더 나은 수련 여건을 만들어줬다.
군에 발을 디딘 지 지금까지 3년이 지났다. 다행히도 장관의 인가 아래 진급은 모두 순조로웠다. 수련인이 일반인 중의 지도자가 되면 주어진 환경의 부정확한 상태를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각 계층에서 부딪히는 갈등은 줄어들지 않았고 늘 자신을 정진해야 했다. 수련의 길에서 한 단계에 이를 때마다 한번 돌이켜 보면 항상 사부님의 법리 중 더욱 깊은 내포에 대해 깨닫게 된다. 반드시 명명백백하게 자신의 상태를 제고해야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이며, 한시도 머물지 말고 앞으로 세 가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자신을 격려해야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은 근래 나의 수련심득으로 미흡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9/5/26/387860.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8/30/1791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