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5년 10월 정식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인연이 닿지 못해 대법 문 앞에서 한참을 배회했다. 수련 후 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저속한 보통 사람에서 ‘진선인(真·善·忍)’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남을 위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공직에서 면직되고 두 번이나 사기업의 고위 관리직을 잃었다. 베이징, 상하이, 장쑤(江蘇), 고향 성(省)의 네 개 도시에서 파출소 7곳, 구치소 6곳, 노동수용소 1곳, 유치장 2곳, 감옥 병원 2곳, 공안국 3곳, 국가 청원국 1곳, 베이징 주재소 1곳 등에 총 29차례나 불법 수감됐다. 그 기간 혹독한 구타, 따귀 갈기기, 수갑과 족쇄를 몸 앞으로 연결해 채우기(前穿), 비행기 날개처럼 두 팔을 뒤로 제쳐 철제 침대에 채워놓기, 침으로 찌르기, 손가락 사이를 침으로 찌르기, 코로 음식물 주입하기, 독침 놓기, 담뱃불로 지지기, 잠재우지 않기, 등 뒤로 수갑 채우기, 수갑 채워 매달기, 침대에 눕혀 죽은 사람처럼 묶어놓기, 전기 고문, 암모니아 가스로 질식시키기, 호랑이 의자에 앉히기, 신변에 붙어 따라다니며 스토킹하기 등과 같은 잔혹한 학대를 당했다.
사당이 이처럼 미친 듯이 박해할지라도 내 영혼 깊숙한 곳 매 하나의 세포에 이르기까지 마치 종자처럼 심어진 ‘진선인’의 보편적 가치는 어떤 외부의 힘이나 내부의 힘으로도 ‘진선인’에 동화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1. 대법제자의 선량함이 세인들을 감동시키다
2018년 어떤 수련생이 불법 구금됐을 때 사악한 국보(국가안전보위)가 박해를 맡았다. 그 수련생은 대법을 수련한 후 고향에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우리는 이점에 착안해 그의 고향 사람들을 찾아가 수련생 구출을 위한 서명을 받기로 했다. 그래서 수련생의 가족을 설득해 함께 고향에 가서 수련생의 친구와 이웃을 찾아 구출 서명을 받았다.
나는 동료 수련생 한 명과 구금당한 수련생 가족을 모시고 함께 그의 고향에 가서 서명받았다. 서명받는 과정에서 나는 그 수련생의 선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동네 어른과 마을 사람들에게 박해당한 그의 처지를 설명하며 서명을 부탁하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멀든지 가깝든지 불문하고, 소식을 들은 사람은 모두 자발적으로 친필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이렇게 박해받는 수련생이 좋은 사람임을 입증하며 아울러 무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도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친필로 이름을 쓰고 서명한 뒤 지장을 찍었다.
서명을 받으면서 알게 됐는데, 박해받는 수련생은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해 어린 나이에 먼 곳에 나가 품팔이 일을 했다. 부지런하고 적극적이어서 점점 부유해졌으며 성공한 사람이 됐다. 하지만 성공하면서 사회의 나쁜 습관에 물들었고, 이로 인해 가정은 깨지고, 신체도 망가졌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파룬궁(法輪功, 파룬따파)을 소개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 그는 선량하고 활달하게 변했다. 한 번에 30만 위안(한화 약 5천100만 원)을 기부해 고향 여러 곳의 길을 보수하도록 했는데, 그 후로 동네 사람들은 큰비가 와도 질퍽거리지 않는 길로 다닐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수련생은 고향에 가면 마을 노인들을 방문해 용돈과 선물을 드리고 문안드리며 언제나 어르신들을 찾아뵀다. 촌민위원회에 경비자금이 없어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는 아끼지 않고 3천, 5천 위안의 돈을 주며 도와주었다. 그래서 서명을 받을 때 촌민위원회에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수련생을 위해 나섰는데, 이는 그가 고향을 위해 공헌하고 촌민위원회를 도와준 것을 입증했다. 촌지부서기가 동정하며 “이렇게 좋은 사람을 돕지 않으면 누굴 돕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짧은 하루 동안에 두 개 마을에서 100여 명의 서명을 받았고, 촌민위원회의 증명도 받았다.
선량함은 바로 한 장의 통행증으로서 가장 소박하고 진실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마난이 닥쳐올 때 정의는 사람 마음에 있기에, 폭력으로 저항하거나 금전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 사람들의 진실한 하나하나의 서명과 지장은 값으로 따질 수 없고, 전혀 사사로운 것이 아니며,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지와 보호이다.
2019년 3월, 내가 박해받는 그 수련생의 고향에 가서 서명을 받아 도와줬다는 이유로, 현지 국가안전보위는 보복으로 나를 불법 체포했고, 나는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단식 6일째 구치소 의사와 경찰은 신체검사를 시키기 위해 나를 교도소 종합병원으로 데려갔다. 구치소에서 경찰이 나를 안내해 함께 현관 밖 길로 나왔는데, 한 경찰이 은밀히 내게 어떤 일을 말해줬고, 나는 매우 감동했다. 경찰은 방금 당신들 파룬궁 수련자 한 사람이 석방됐는데, 그는 구치소에서 너무나 훌륭해서 구치소 경찰 모두가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 수련생이 불법 수감된 방에는 마약 판매 혐의로 수감된 두 팔을 잃은 장애인이 있었다. 구금 장소는 아주 불편하고 먹고, 씻고 생활하기가 매우 곤란한 곳이다. 그 장애인 혐의자가 불법 수감된 수련생의 방에 오자, 그 수련생은 매일 씻기고, 먹이고, 몸을 문질러 닦아주는 등 매일 도와주었는데, 구금 기간이 끝나 출소할 때까지 몇 달을 그렇게 했다. 구치소 경찰과 같은 감방에 있는 혐의자들은 모두 탄복하며 칭찬했다. 경찰이 나에게 그 수련생에 대해 말할 때 그의 눈은 칭찬과 탄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2. 진상을 알게 된 사람이 감사하며 삼퇴하다
2019년 3월 박해에서 벗어난 후 단식이 빌미가 돼 다시 감옥 종합병원에 불법 수감됐다. 병원에서는 나를 죽은 사람처럼 3일 밤낮 침대에 결박해 놓았다. 유동식을 먹은 둥 마는 둥 하고 나서 스스로 결박을 풀고 묶여 있던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으며, 세수하고, 양치하고, 혼자 화장실 가는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있던 병실에는 병든 범인과 범죄혐의자 9명이 구금돼 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간 지 이틀 후에 마약 판매 혐의자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역시 죽은 사람 눕혀놓듯 침대에 묶어놓았다. 그 사람도 단식했는데, 그는 자신의 아내는 마약을 팔지 않았으며 단지 그와 함께 있었을 뿐인데 체포됐다고 항의했다. 그는 매일 단식하며 물만 마셨다. 결국, 담당자가 타협하며 그의 아내를 석방하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바로 옆 침대여서 나는 기회를 봐서 그에게 파룬궁 박해 진상과 사당이 세상을 속이고 나라를 도적질하는 진상을 말했고 또 ‘천멸중공, 삼퇴보평안(天滅中共, 三退保平安: 하늘이 중공을 멸하니 중국공산당 3대 조직에서 탈퇴해 평안을 지키라)’의 중요성을 말했다. 병실 사람들은 내 말을 잘 믿었으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가입했던 공산주의청년단과 소년선봉대를 탈퇴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아홉 글자 진언(真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매우 착실하게 외웠다. 가끔 그가 TV 볼 때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는지 물으면, 그는 호쾌하게 “외우고 있어요. 외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불법 수감된 지 10일 만에 내가 유동식을 멈추자 병원은 코로 음식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단식 기간이 길어지자, 나는 음식물을 주입하면 토하고 메스꺼웠으며 건강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담당 기관은 생명에 대한 책임 부담을 두려워한 나머지 1개월이 못 돼 ‘증거 부족’이라며 나를 무조건 석방했다.
석방 당일 오후, 나는 병실의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느릿느릿 병실을 나서는데, 진상을 들은 친구가 갑자기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눈물을 머금은 채 경건하게 두 손을 합장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매우 감동했고, 그것은 그의 생명 깊은 명백한 일면의 진실한 인사로 진상을 알게 된 감사였다고 깨달았다.
2019년 2월, 장모님의 병환이 깊어졌다. 장모님은 84세인데 거의 드시는 것이 없이 주무시기만 했고,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데 정신은 없었고, 종일 침대에 누워만 계셨다. 모든 자녀가 장모님을 찾아뵈러 왔다. 고향에서는 73세, 84세가 되면 염라대왕도 자신을 가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뜻은 나이 73세, 84세는 인생의 큰 고비이며 많은 사람이 넘기지 못하고 가버린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모두 노환으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아내와 장모님을 뵈러 처가에 갔다.
처가에서 나는 장모님께 파룬궁 진상을 알려드리고 사당이 대법을 박해하는 진상을 말씀드렸다. 아홉 글자 진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외우시라고 격려하며 틈만 나면 함께 외웠다.
나중에 아내의 둘째 언니가 왔다. 처형은 성실하고 선량했으며 젊었을 때 그녀 마을의 사당 지부 서기로 일했는데 삼퇴에 관해서는 줄곧 충돌했다. 이전에 설에 만났을 때 삼퇴를 말했으나 처형은 매우 배척했다. 이번에 와서 내가 노인을 정성껏 돕는 것을 보고 그녀는 감동했고 “제부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고 선량한데 나는 제부가 한 말을 믿습니다. 나 탈퇴할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 수련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완고하던 노 당원이 사당의 모든 조직에서 탈퇴했다.
그 후 장모님은 꾸준하게 매일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면서 몸이 점점 회복됐다. 모두 한 차례 큰 고비라고 생각했지만 파룬불법(法輪佛法)이 비추자 노인은 고비를 넘겼고 지금은 신체가 건강해졌다. 사존의 구도에 감사드린다.
2019년 4월 ‘증거 부족’으로 무죄 석방된 이후에도 사당의 나에 대한 박해는 전혀 멈추지 않았고 더 은밀하고 사악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9년 9월 말부터 지금까지 나는 바짝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스토킹 방식의 괴롭힘을 여섯 차례나 겪었다.
여섯 차례 박해하는 동안 나는 현지 파출소 주무 부소장을 두 차례 찾아가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렸고, 아울러 저우융캉(周永康), 리둥성(李東生), 보시라이(薄熙来) 등 많은 고관이 파룬궁 박해 때문에 악보를 받은 사실을 말했다. 부소장은 마음이 좀 움직이는 듯했으나 이익과 압력 앞에서 여전히 사악한 명령을 집행했다.
이들 사악한 박해자를 따르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나는 최대한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상대를 위하는 풍모를 보였으며, 기회만 있으면 각종 진상을 말했다. 그들이 내 차를 타고 내가 일하는 곳으로 갈 때면 나는 사존의 설법을 틀어 듣게 했고, 사부님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게 했다. 그들은 내가 출퇴근할 때도 따라다녔는데, 퇴근할 때 나는 물과 먹거리를 사서 그들에게 주기도 했다. 주말에 개인적인 일을 볼 때도 따라다녔는데, 식당에 가게 되면 나는 그들에게 음식을 사줬다. 이런 일들은 바로 은연중에 변화를 가져오는 선한 행위였는데, 처음에 대법을 반대하고 혐오하던 그들의 심리 상태는 점점 인정하는 상태로 변하게 됐고, 처음엔 사존을 함부로 모욕하던 데서 존중과 탄복으로 변했다. 대법제자를 비웃고 조롱하던 것이 존중과 이해를 하는 것으로 변했으며, 심지어 주의하라고 도와주기도 했는데, 명령이 있으면 그들의 책임 범위 내에서 융통을 발휘해 도와줬다. 어떤 보조 경찰은 예전에 가입했던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사존의 구도에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0/4212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