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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을 낙으로 삼는다’는 가장 좋은 수련상태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체가 고해(苦海)에 빠져 있기에 고생을 겪기 싫어한다. 미혹 속에서 자기가 처한 고달픈 경지를 보지는 못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고난에 저항하거나 고난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수련의 이치는 사람의 이치와 상반되므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고,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1]는 수련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법리는 모두 미래 신(新)우주의 각 경지와 각 층차의 중생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철석같은 법칙이다. 그것은 또한 신우주의 주와 왕이 생명으로 수호하는 것인데, 신우주를 육성하고, 신우주에서 중생의 생존환경을 개창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련하면서, 정법 수련에서 반드시 에누리 없이 실천으로 대법을 실증해야 대법에 동화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에 동화된다는 것은 단지 수련자의 아름다운 소망에 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무엇이 진정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는 것인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으며, 마난과 고난에서 자연히 즐거운 수련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절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마음이 정(情)에 얽매여 있기만 하면 고통스러운 감각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 마음을 깡그리 버리면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바로 자비이고, 바른 신의 거대한 에너지가 체현(體現)된다.

사부님께서 “공(功)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 대법은 끝없나니 고생을 배(舟)로 삼을지니라”[2]고 명시하셨다. 이 시사의 제목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보고 나는 ‘마음을 닦는 것(修心)’과 ‘고생을 겪는 것’은 대법 수련의 두 가지 큰 요소라는 이해가 생겼다. ‘고생을 겪는 것’은 원만하는 그날까지 수련의 일보마다 수반된다.

표면적으로는 고생을 겪으면 소업하고 업의 빚을 갚을 수 있다. 한 층 더 나아가 고생이나 마난에서 사람 마음이 건드려져 안을 향해 찾으면, 자신에게 있는 사람 마음과 집착을 뚜렷하게 보아내기 쉬워, 그것에 따라 심성을 제고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어떤 신은 그의 전반 그 한 층의 우주가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고생을 하였고, 그리하여 이렇게 큰 위덕을 갖추어 구원할 일을 완성하려고 했다.”[3]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고생을 겪으면 위덕을 건립할 수 있는데, 큰 위덕을 구비하는 것은 우리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보증이다.

대법 수련의 길은 비록 아주 좁지만, 수련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를 지켜낼 수 있다면, 이 길은 곧 아주 넓고 환하며 안정될 것이다.

개인의 수련 체득으로서, 부족한 곳은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경지(境界)’
[2] 리훙쯔사부님 시사: ‘홍음-法輪大法(파룬따파)’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각 지역 설법 1-베이징(北京)국제교류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14/42198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3/16/1914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