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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일하며 수련한 이야기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한 몫의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을 잘해야 하며”[1]. 작년 4월에 저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는데 어느 주차장에서 야간 관리를 하는 업무였습니다. 주차장은 직원이 많지 않지만 인간관계는 비교적 복잡합니다. 비록 저임금 계층이지만 똑같이 명리(名利)의 각축장에서 물결에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제 새로운 수련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개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평범한 업무 속에서 진실함과 선량함을 전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점을 찾았더니 일자리가 갑자기 나타나다

최근 몇 년간 저는 일자리를 구하는 데 매우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안 되거나 저것이 적합하지 않거나 늘 희망이 피어오르다 다시 실망에 빠졌습니다.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고 또 끊임없이 바꿔가며 심신이 지쳐 갔습니다. 수련생이 저와 교류했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이 굶을 리가 없습니다.”

제 마음속으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것으로 일자리를 못 찾을 리가 없고 오직 적합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내 일자리는 왜 이리 찾기가 힘들까? 예전에 나는 갖춘 능력은 부족한데 눈만 높았고 월급이 적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싫어하는 등등 마음들을 모두 내려놨는데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나는 근원을 찾아야겠다.’

예전에는 저는 제 기술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찾는 기점은 모두 반드시 기술적인 일이어야 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자신의 수련을 위한 것이고 수련을 최우선에 두어 이기심이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저는 여전히 수련과 일의 위치를 잘못 뒀고 잘못된 인식에 빠졌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생활 중에서 우리는 되도록 속인사회 형식에 부합해야 하므로, 속인의 직장 일과 당신의 수련을 구분해야 하고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직장은 직장이고 수련은 수련이다.”[2]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에는 어떤 조건도 없는바”[1] 저는 분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과 수련을 묶어 놨는데 이는 수련에서 조건을 부여한 것이 아닙니까? 어쩐지 예전에 일자리를 구할 때 늘 순조롭지 못하더니 원인은 바로 자신의 집착에 있었고 법리를 똑똑히 알지 못해 사악에게 빈틈을 탔습니다.

이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 수련생은 또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줬는데 어느 병원 주차장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말한 위치대로 찾아가 봤지만 가서 보니 주차장 초소에는 사람이 없었고 병원 접수대에도 사람이 없어 저는 곧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핸드폰에 어느 수련생 남편의 메시지가 와 있었는데(저는 여태껏 외출할 때 핸드폰을 챙기지 않습니다.) 저보고 바로 그에게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어떤 일자리가 있는데 저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곧 약속한 시간에 가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저는 당일 밤 바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관건은 제가 수련과 일의 관계를 바로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 중에서 우리가 마음을 수련하고 제고하는 요소가 있고 우리의 심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같은 날 두 군데 일자리 중에 첫 번째 일자리를 놓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일자리야말로 제가 바라던 야간 근무였고 휴식할 수 있어 낮에 법을 실증하는 시간 또한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쟁탈하지 않고 직장을 집처럼 여기다

처음 출근했을 때 캐비닛에는 직원들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 개, 심지어 더욱 많은 칸을 차지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안에 쌀, 밀가루, 기름, 소금, 간장, 식초 등을 보관했습니다. 저는 물품을 보관할 곳이 없었는데 사무실의 파일 서랍조차도 전부 동료들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저는 처음 왔고 사장님은 마땅히 저에게 개인용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자리 하나를 비워줘야 했지만 그는 마련해주지 않았고 동료들도 자발적으로 저에게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고 곧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는데 신발 박스에 제 일상용품과 세면용품을 넣어서 침대 옆에 뒀습니다. 저는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과 다퉈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은 농담으로 제 박스를 ‘보물 상자’라고 불렀습니다.

주차장에서 사용하는 주차 안내 주차콘 대부분은 모두 부딪혀 부서졌고 어떤 것은 윗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서 물품과 도구들을 가져와 우선 밑받침 부분을 분리한 다음에 적당한 양의 모래를 넣고 주차콘이 바람에 넘어지거나 날아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다음에는 전기 납땜 도구를 사용해 1층과 2층, 2층과 3층 사이에 구멍 몇 개를 내어 밴드로 묶어 튼튼히 고정했습니다. 마지막에 솔로 주차콘 하나하나를 깨끗하게 솔질한 다음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겉에 널찍한 테이프로 여러 번을 둘렀습니다. 이렇게 새로워진 하나하나의 주차콘들은 곧 다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주전자에서 물이 끓을 때마다 지글지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원인은 주전자 밑부분에 아스팔트와 모래 등 혼합물이 묻었기 때문입니다. 물을 한 번 끓일 때마다 오래 걸렸는데 저는 일자 드라이버와 칼, 철 수세미 등을 이용해 조금씩 제거한 후, 소독물에 담가 놨는데 주전자 밑이 완전히 깨끗이 제거됐습니다. 그 후부터 물을 끓이는 것도 훨씬 빨라졌고 지글지글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햇빛을 가리는 커튼, 여름에 쓰는 돗자리, 책상을 닦는 행주 또한 제가 집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사장님은 비록 입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에는 담아뒀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제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익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다

야간 근무를 하기에 저는 차를 타 마시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는 작은 용기에 찻잎을 담아둔 다음에 직장에 가져가서 책상 위에 두었습니다. 저는 매일 밤에 차를 한 주전자만 타 마시는데 한번 담아둔 양으로 몇 번 마실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심코 용기에 담은 찻잎이 매우 빨리 없어지는 것을 발견했는데 제가 마신 것 같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루는 동료 Y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차는 모두 L이 마셨어요. 그는 여기 주차장에 온 후부터 다른 사람이 가져온 찻잎을 타 마셨는데 다들 찻잎을 캐비닛 안에 잠가 놓는데 당신만 바깥에 둬서 그래요.”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마시게 하세요. 버리는 것도 아니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전 직장에 있었을 때 나는 회사에 있는 차를 적지 않게 마셨는데 집으로도 가져갔지. 현재 L이 내 차를 마시는 것은 곧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한번은 동료가 일이 생겨 당직을 제가 대신 맡아줬습니다. 회계원은 “월급을 지급할 때 하루치 임금을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월급을 지급할 때가 되니 추가되지 않았습니다. 동료 Y는 곧 말했습니다. “당신 지난달에 하루 더 일하지 않았나요? 임금을 왜 더 주지 않았지? 우리는 월급이 얼마 안 되는데 이걸로 배를 채워야 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한번 물어보세요. 물어보지 않으면 그녀는 당신이 모르는 걸로 치고 안 줄 거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끔 바빠서 잊는 모양입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곧 잊었습니다. 다음 달 월급을 지급했을 때 50위안(약 8700원)이 많아졌습니다. 회계원은 “지난달에 이 일을 까먹었는데 이번 달에 얼른 보충해드렸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1] 일이 크지 않고 돈도 많지 않지만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마음과 이익에 대한 시험입니다.

한번은 외지 차량 한 대가 아침에 떠나야 하는데 그때 시스템은 아직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아침 6시가 되면 아침 근무를 하는 사람의 차가 떠나는데 줄곧 이랬습니다. 저는 차 주인, 차 번호와 차 색깔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커튼을 사이에 두고 저는 똑똑히 보지 못했습니다. 항상 가는 차인 줄 알고 생각하지도 않고 보냈습니다. 컴퓨터 시스템이 아직 작동하지 않았기에 음성 안내도 차량 번호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 아침 근무하는 차가 나올 때야 저는 방금 보낸 차가 다른 차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시스템을 접속해 사진 기록을 통해 보낸 차를 찾았고 발생한 10위안(약 1700원)의 주차 비용을 클릭했습니다. 저는 바로 제 지갑에서 10위안을 꺼내 돈 서랍에 넣었는데 태연히 돈을 채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꼼꼼하지 못해서 실수했고 마땅히 제가 갚아야 하는 것은 곧 제가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련인의 선(善)을 전달하다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어떤 여성이 어린 여자아이 한 명을 데리고 제게 와서 10위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찐빵 두 개를 사 주려고 나왔는데 돈을 챙기는 것을 깜빡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곧 10위안을 꺼내서 그녀에게 주고 충분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감사합니다. 충분합니다. 다음에 돈을 돌려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회사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주변 상황을 잘 몰라 동료에게 이 일을 말했습니다.

동료 Y는 저보고 바보라고 했는데 그녀가 날 속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10위안으로 상대방의 급한 일을 해결해줄 수 있다면 왜 도와주지 않겠는가?’ 결국 다음 날에 그녀는 정말로 돈을 돌려주러 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 일을 알았는지 주차하러 올 때마다 예의 있게 웃으면서 저와 인사했습니다.

올해 섣달그믐날은 마침 제 휴무일이었습니다. 동료 Z는 저와 당직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아내가 몸이 좋지 않은 장애인인데 해마다 섣달그믐날에 하늘에 향을 피워 올려 절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 동의했습니다. 동료 L이 듣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와 바꾸지 말아요! 어느 집에서 설날 때 일이 없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바꾸자면 바꾸죠.” 하지만 L 역시 초이튿날에 가족 모임이 있다고 저와 당직을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두말없이 동의했습니다.

동료 Z가 다시 출근할 때 저에게 70위안(약 12000원)을 주며 말했습니다. “섣달그믐날에 당직을 바꿔 달라고 했으니 20위안(약 3500원)을 더 드릴게요.” 저는 50위안만 받고 20위안을 돌려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20위안을 위한 것이었다면 당신과 바꾸지 않았어요. 돈 문제가 아니에요.”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동료에게 Z가 저와 당직을 바꾸고 싶은 것이 여행 때문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곧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합니다.

전염병 기간에는 출입 차량이 거의 없어서 일이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주차장은 단지 안의 안전관리를 도맡고 있어서 상급 회사가 문을 닫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장님은 곧 다른 직원들을 쉬게 하고 저와 둘이서만 당직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낮에 근무하고 저는 여전히 야간 근무를 했습니다. 이렇게 당번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저는 휴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대 시간이 밤 9시여서 사장님이 낮에 근무하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생각해야 하지 않은가?’ 저는 곧 사장님과 서로 12시간씩 근무하자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1시간 반씩 앞당겨 교대했습니다. 비록 제가 좀 힘들 수는 있지만 수련하는 사람의 표준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일찍 가면 법공부하고 밍후이 문장도 읽을 수 있는데 자신을 충실하게 할 수 있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월급을 지급할 때 사장님이 원래의 기본급에서 200위안(약 35000원)을 더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수련인이라고 생각해 곧 사장님에게 말했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회사 수익도 좋지 않은데 이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사장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4일을 더 일했는데 마땅히 받을 돈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저와 회사를 생각하는 것이 이미 대단한데 저는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하룻밤 새벽 2시에 큰비가 내렸는데 물 깊이가 무릎을 넘겼습니다. 이때 카셰어링 차 한 대가 들어왔는데 저는 곧 주차를 도와줬습니다. 카셰어링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대학생인데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운전 기술이 좋지 않고 주차도 서툴고 규정에 따라 저는 주차에 협조해야 합니다. 주차하고 보니 세 사람인데 우산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우산 두 개를 갖고 올게요. 비가 너무 크게 와서 비에 젖지 말아야죠.” 저는 곧 빗물을 건너 사무실로 돌아가 우산 두 개를 챙겨 그들에게 줬는데 내일 올 때 낮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우산을 돌려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녀 셋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침에 Y가 와서 교대하는데 저는 우산 일을 그녀에게 얘기했고 낮에 우산을 돌려주러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렌터카를 운전하는 학생에게도 우산을 빌려주다니!” 뜻은 우산을 돌려주러 오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들이 우산을 돌려줄 거라고 믿습니다. 돌려주러 오지 않으면 제가 보태서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에 그녀들은 역시 우산을 돌려줬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차라리 사람이 착하다는 것을 믿고 싶다. 선으로 선을 전달하면 곧 곳곳이 봄이다.’

수련은 우선 마음을 닦아야 하고 마음 닦는 것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예전에 인력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 저는 곧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경비원 일을 하게 된다면 가장 좋기로는 경비원 제복을 입지 않는 것이고 만약 입으라고 하면 나는 곧 제복의 사당(邪黨) 표지를 뜯을 것이다.’ 여기에 오니 역시 작업복을 입을 필요가 없고 사복을 입고 출근하면 됩니다.

주차장에서 우리를 ‘돈 받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경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바라보는 눈빛이 각양각색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어떤 사람은 “야, 야”라고 외치고 술을 많이 먹은 사람은 삿대질하면서 욕하는 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차하고 일부러 당신 앞에 와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든 있었습니다. 저는 곧 마음속에서 사부님의 법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1]를 염했습니다. 늘 마음에 두지 않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차장에서 나갈 때 경적을 빵빵 누르길 좋아하는데 차단기를 조금만 늦게 올려줘도 무작정 빵빵하고 누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꾹 눌러서 손을 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가끔 저도 화가 납니다. ‘안 올려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누르지, 몇 초도 못 기다리나? 뭐가 그리 급해!’ 차단기를 올려준 후에도 마음속으론 아직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생각할 때 가끔 일하는데 느린 수련생을 만나 제가 일하는 스타일에 부합하지 않을 땐 저 역시 성급하지 않았습니까? 그 경적을 누르는 사람과 똑같지 않았습니까?

조급한 것도 사람 마음이고 급하게 되면 곧 지혜가 없어지고 인내할 수 없는데 이는 완전히 수련 문제입니다. 이렇게 일찍 가는 사람은 보통 급한 일이 있거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인데 타인을 위해서 1초의 시간이라도 아껴주는 것이 좋은 겁니다. 남을 돕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것을 중요시하면 안 됩니다.

한번은 제가 일이 있어서 동료들과 당직을 바꾸고 싶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일이 있어 바꾸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 마음속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들은 평일에 일찍 가고 늦게 오는데 나는 모두 개의치 않았고, 나는 당직을 여러 번 바꿔줬는데 내가 바꾸고 싶다고 하니 당신들은 곧 모두 일이 생기네? 게다가 내가 처음으로 당직을 바꾸자는 말을 꺼낸 건데!’ 나중에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이는 내 마음을 향해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이는 나를 도와서 제고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타후아(先他後我)여야 하니 내 일을 일단 뒤로 미루자.’

전염병이 나아진 후에 동료들은 또다시 잇달아 출근하게 됐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저에게 메모지 하나를 남겼는데 밤에 몇 시가 되든 옆에서 주차하는 것을 체크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카셰어링 차가 자꾸 주차 자리 두 칸을 차지해 낮 시간의 주차를 방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메모지를 봤을 때 저는 마음이 좀 움직였습니다. 곧 이런 염두가 나왔는데 ‘이 사람은 무슨 요구가 이리도 많아?’ 며칠 안 되어 그녀는 또 저에게 낮에 들어오는 오토바이를 잘 단속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안에 보건용품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노인이 많이 드나들고 또한 교육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전기 삼륜 운반차, 오토바이들을 멋대로 세워두는데 지정 주차구역에만 세워두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 제가 혼자서 돌볼 틈이 없어 조금만 주의하지 못하면 차량을 아무 데나 세워 버립니다. 오토바이는 원래 야간 근무인 제 담당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또 저의 청소 구역을 늘렸는데 일을 나눠서 하더라도 집은 나누지 않는다면서 쓰레기통이 차면 곧 버려야 하고 누가 당직이든 상관없다는 등등 말을 했습니다.

저는 자세히 생각해봤습니다. ‘우연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모두 좋은 일이 아닐까? 또 내가 심성을 제고할 때가 됐구나. 일련의 배치들은 모두 크지 않지만 바로 내가 더 많이 희생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내 업무에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업무에 없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데 이렇게 똑똑하게 분리하는 것은 사심(私心)이고 안일심의 표현 아닐까?’ 저는 수련에서 또한 이런 분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본분 내의 것은 하고 본분 내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곧 상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비록 어떤 일은 볼 때는 제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수련생이 저에게 찾아왔을 때 제가 거절하면 그녀는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야 하는데 또 거절을 당하면 그녀는 또다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루됩니까? 대법제자의 시간 역시 대법 자원입니다! 그러는 것보다 차라리 저 여기서 모두 해결하는 것이 더욱 좋은 선택이지 않습니까? 이는 바로 수련이 아닙니까? 수련생이 저에게 찾아온 것은 바로 저에 대한 신뢰인데 잘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밖으로 미는 것은 곧 밖으로 찾는 한 가지 표현입니다. 부담할 수 있는 것은 곧 자발적으로 부담하고 다시는 수련생들에게 난처하게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비록 저는 아직 잘하지 못하고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저는 늘 더 잘하자는 마음과 자신을 개변하고 위로 노력하자는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평범한 작은 일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제고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음을 써서 한 수련자의 사명을 이행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3/12/4219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