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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관념을 없애고 대법을 더욱 잘 실증하자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신에게서 발생한 일부 일에서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1]라는 것을 체득했고, 동시에 사부님의 “상유심생(相由心生)”[2]의 법리를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수련인으로서 자신의 수련환경과 사람 속에서 느낀 옳고 그름은 모두 자신의 수련 상태와 심성의 표현이다.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면 주변의 환경은 바뀐다. 이 과정은 바로 법을 실증하는 과정이다.

내가 느낀 점은, 바쁜 것은 착실히 수련하고 법에 동화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바쁘면 스스로 하나의 패턴 순환에 들어가게 한다. 그 속에서 즐거워할수록 더욱 깊이 미혹되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실증하고 법을 실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공간을 남겨야 하고 여유로운 심태(心態)를 유지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수련해야 하고 법에 동화해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수련을 제1위에 놓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중생 구도는 수련을 잘한 이 기제에서 상부상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좋지 않고 심지어 생각과 정반대로 된다. 번거로운 일이 나타난 후에야 안으로 찾지 말고 시시각각 일마다 안으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법에 동화하는 것이다.

남편은 타이완(台灣)인이다. 그는 마음이 선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묵묵히 나의 수련을 지지했고 대법 항목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날 때 그도 대법 책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직장과 생활 등의 요소로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 후 우리는 수련을 화제로 하여 깊이 두 번 교류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흐지부지되었다.

작년에 그는 전염병 관계로 실직했다. 본래도 여유롭지 않은 생활이었는데 설상가상이었다. 그의 기분도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내로서 나는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 되도록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면서 원망하지 않았고, 그를 압박하지 않고 자주 위로해주었으며, 평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매체 프로그램에 참여해 현재의 국면을 좀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했다.

이런 날은 하루 이틀이면 쉽게 지낼 수 있지만, 반년이 걸리자 정말로 심성과 착실 상태에 대한 고험(考驗)이 왔다. 때로는 속인 직장에서 아주 힘들고 마음이 긴장되며 시간이 부족할 때 사람 마음이 올라온다. 부정적 마음이 있을 때 외부 환경은 곧 변화가 일어난다. 직장에서 번거로운 일이 생기거나 남편과 모순이 생긴다. 한번은 남편과 미국 대선 관련 보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의견이 많았고 말투도 좋지 않았으며, 듣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고 괴로웠으며, 억울했고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心性(씬씽)의 경지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과 태도를 가리킨다.”[2] “사람의 집착,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관념은 모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3] 정신 차리고 안으로 찾을 때 자신의 수련 상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에 남편과 교류할 때 그의 처지에서,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말하지 않았고 타인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책임지는 태도가 아니었다. 말할 때 자신의 처지에서 표현하고 강렬한 주관의식을 지녔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태도를 밝히지 못했고 감정으로 일을 처리했으며, 무조건 자신이 좋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수련을 소홀히 했다. 남편이 반드시 내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아주 순정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니며, 아주 많은 잡념을 갖고 있고, 후천적으로 양성된 아주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심지어 당신이 간단하고도 간단한 한 가지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이 기점(基點)과 기인, 부대적인 것들은 모두 불순할 수 있다.”[4]

깊이 생각해보니, 이런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면 말하는 태도는 당 문화에서 양성된 습관이다. 중국 옛사람의 말이 있다. “심사숙고 후 행동하라.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그 뜻은 역지사지해야 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꼭 남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가 사람의 기본 품성 문제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는 사람의 수양 문제다. 그것은 타인의 독립된 인격과 정신적 자유를 존중하며, 자기는 자기 방식대로 살도록 하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방식대로 살도록 하는 것을 제창한다. 이런 것이 많든 적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관념은 당 문화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중국 전통문화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품성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대법(大法)의 어떠한 일도 모두 사람이 법을 얻게 하기 위함이고 제자의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바, 이 두 가지를 제하고는 모두 의의가 없다.”[5] 이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사유 습관과 세부 생활에서 자신을 조절하고, 자주 자신의 사상 관념과 행위에 주의했다. 이 과정에서 관념과 행위, 사람 마음, 집착심, 생활환경에서 양성된 습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주의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는 표현되어 나오며, 자신의 행위를 주도하고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준다.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신사신법은 매일 법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또는 얼마만큼 일했는지에서 표현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대법 표준에 따라 얼마만큼 동화됐고 어느 정도 바뀌었으며, 사람 마음과 관념을 지니지 않고 세 가지 일을 얼마나 했는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리를 인식했다는 것이 자신이 그 위치까지 수련했다는 것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6]

착실한 수련의 표현 상태는 자신감이지 자부심이 아니다. 전자는 법에서 얻은 바른 믿음으로서, 마음이 가볍고 평온하며, 일에 부딪히면 온화하고, 일할 때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고 타인을 생각하며, 원칙이 있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으며, 긴장과 이완이 있고 이성적으로 자신과 중생을 대면한다. 후자는 관점을 표현하는 데 급급해 결론을 내리는 말을 하기 좋아하고 고정적으로 사람과 일을 본다. 사실 전자는 자발적으로 법에 동화하고 후자는 피동적이다. 전자는 법을 실증하고 후자는 자신을 실증한다.

그 후 나는 사람을 구하는 데 참여한 항목과 속인의 일, 생활, 자신의 수련에서 시간을 다시 분배·관리하고 자신의 생활 습관과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조절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이성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법 공부는 마음에 닿았고 심태는 평온했으며, 사고의 방향이 뚜렷해졌다. 일할 때 타인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었고 사람 마음은 갈수록 담담해졌다. 그 외 의외로 내 주변의 환경도 변화가 생겼다. 남편은 작년 12월부터 법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는 ‘전법륜(轉法輪)’을 두세 번 보았다. 대법 사이트에 나오는 사부님의 저작 순서에 따라 ‘정진요지’까지 봤다. 이뿐만 아니라 가정 수입에도 큰 개선이 있었다. 전염병 전의 수입보다 더 좋아졌다. 정말로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이것은 대법의 비범함을 펼친 것이다. 사부님께서 줄곧 보호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또 다른 하나는 당 문화에서 형성된 관념과 습관이 자신의 수련과 법 실증에 얼마나 큰 지장을 주는지를 깨닫게 해 주기도 했다.

미국 대선 기간에 내 공간장에서 강대한 압력을 느꼈다. 가장 분명한 것은 사상과 신체상의 반응이었다. 발정념과 연공을 할 때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고요하지 않았다. 부정적 사유가 머릿속에서 강렬하게 자극을 주었으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 연공하지 못했다. 몸 곳곳이 고통스러웠으며, 가장 심각한 것은 정공을 할 때 갑자기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고 숨을 쉬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연공을 멈췄다. 급히 창문 앞에 가서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때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꼈고 고통스러웠다. 사람의 생명은 이렇게 나약하고 단지 호흡에 달려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내 생각이 또렷했다. 나는 죽기 살기로 그 염두를 지켜보았고 그것은 멈췄다. 이런 느낌은 나와 대치됐다. 나는 속으로 그것에게 말했다. “나는 단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걷는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교란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나는 제5장 공법을 끝까지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수련은 급히 부처 다리를 안는 것도 아니고, 운이 좋다는 마음을 안고 속이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관과 난에 직면했을 때, 반드시 장기간 착실히 수련한 기초가 있어야 걸어갈 수 있다.

그 후 나는 생각했다. ‘내게 왜 이런 큰 교란이 있단 말인가? 절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 나는 ‘한동안 일하는 마음이 강해 압박이 강한 상태를 조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이든 완벽을 구하고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사람 마음이 틈을 탔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생각했다. ‘나는 어떤 관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 후 두 가지 일이 발생했다. 오랫동안 형성된 당 문화 관념이 작용한 것을 보았다. 만약 이때 자신을 닦는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을 수 있고 법을 실증하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다.

어느 날 집의 전자레인지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 남편은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안 돼서 관리자에게 검사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나는 먼저 집주인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먼저 집주인의 가족에게 알렸다. 그녀는 빨리 회신해주었다. 사용 기간이 길어 수리하지 않으면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음 달 월세에서 수리비를 빼주도록 집주인에게 말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못 고쳤다. 상담받은 상품과 비용, 인건비까지 그녀에게 알려줬다. 나는 남편에게 그 정보에 팁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표시하라고 했다. 남편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인색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팁을 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당신은 설명해야 한다.”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너무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의견대로 했다. 그 후 그는 말했다. “당신은 꼭 그 돈을 받을 것도 아니면서 왜 일할 때 상대방이 당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하는가?”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공로를 알리는 식의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알겠는가’라는 사람 마음이 없으며, 기본상 당문화의 사유논리가 없다고 느꼈다.“[7] 처음에 나도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 공부 중에서 점차 인식했다. 이것은 장기간 당 문화가 형성된 평등하고 서로 이익을 주는 평균주의 관념으로, 이 관념은 쉽게 쟁투심, 질투심, 이익심을 자양한다.

그 후 또 한 가지 일이 생겼는데, 이런 관념에서 번식해 나온 것은 분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할 때 숙제를 검사하는데, 한 십 대의 남학생은 사유가 민첩하고 순간 기억력이 좋으며, 학업 습득력도 빠른 학생이었다. 그는 총명하고 중국어에 일정한 기초가 있었다. 평소 숙제 검사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어느 날 몇 군데가 틀렸고, 회화가 유창하지 않고 문법도 많이 틀렸다. 내가 바로잡아줄 때 그는 태도가 좋지 않았고 조급했으며, 불만이 있었고 심지어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 뜻은 자기가 말한 것이 옳다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그의 말에 이끌려 말했다. “만약 네가 옳으면 선생님은 너의 것을 고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억울하게 만들었니?” 그런 후 좀 불쾌한 일이 발생했다. 여기서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결국, 나는 순조롭게 수업을 마쳤다.

그 후 나는 자신을 반성했다. 왜 이런 일에 부딪히게 되는가? 왜 그에게 이끌려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때 직업적인 소양 때문에 나쁜 태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은 반드시 닦아야 할 사람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이 학생의 항상 우승하려는 마음을 건드렸고 바로잡아주는 것을 싫어했으며, 바로잡아주자 화가 좀 났다. 하지만 사실 나의 수련에서 어떤 관념을 바꿔야 한다. 조용히 안으로 찾으니 이런 감정은 당 문화의 계급관념에서 양성된 분별심이었다. 나는 선생님이고 너는 학생이다. 학생의 학습 태도는 내가 이 학생을 바라보는 느낌을 결정짓고, 자신도 모르게 각종 딱지를 붙였다. 이 학생은 예의 바르고 가정교육이 좋고, 그 학생은 노력하지 않고 학습 동력이 없다는 등이다.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배척하거나 반감이 생긴다. 이런 사람 마음에 이끌려 쉽게 옳고 그름에서 쟁론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고, 수련 제고의 기회를 느슨히 한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을 찾은 후 정념정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부정적인 사상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했고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영되었다. ‘말하지 마라. 다른 사람을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미움을 사서 뭘 하겠는가? 자신을 잘 수련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된다.’ 발정념하려는데 머릿속이 온통 혼잡했다. 따라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피로감이 있었다. 수업에 필요한 기력과 정신력은 바닥이 났고, 몸에 고통의 반응도 있었으며, 때로는 힘에 부쳐 공연히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언제든 일어나 연공했는데, 낮에 일이 힘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도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련을 제1위에 놓았다. 나는 남편과 진심으로 교류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아요. 저는 당 문화에서 양성한 관념을 인식했고 이미 자연스럽게 된 것을 인식했어요. 이런 일에 부딪히면 관념이 작용하고 완전히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요. 나중에 당신이 이런 것을 보면 제게 알려주고 바로잡아주세요. 반드시 이런 습관을 고치고 저는 무조건 안으로 자신을 닦을 거예요.”

그런 후 나는 두 가지를 붙잡았다. 옳은 일을 하고, 일을 옳게 하고, 되도록 법에 부합되게 한다. 예를 들면 타인에게 문제를 제기할 때 해야 할 말은 한다. 하지만 심성을 지키고 끌려가지 않는다. 사람 마음으로 타인의 희로애락을 느끼지 않고 사람의 정과 관념을 지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하지만 반드시 진심이고 선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5]

이 일을 통해 나는 이전에 일할 때 사람 마음과 관념을 지녔고, 진정으로 법에서 정념으로 사람과 일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을 바로잡고 앞으로 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낮에 시간이 있으면 나는 ‘홍음’을 외우고 ‘전법륜(轉法輪)’을 베끼고 틈새 시간에 발정념하고 연공한다. 속인 직장의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학부모와 동료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린다.

일주일간 조절한 후 외부 환경과 자신의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번은 발정념할 때, 처음에 또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이때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당신은 생각하라.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보겠다.’ 그 순간 시간이 마치 얼어붙은 것 같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 후부터는 사상이 고요해졌고 밤에 안정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어느 날, 제1장 공법을 할 때 갑자기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을 의식하고는 주의식이 곧 경계하며 자신에게 말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생각이 돌아와 동작과 맞추려 할 때 사부님의 구령 ‘푸사푸롄(菩薩扶蓮)’[8]을 들었다. 구령에 따라 동작을 하는 순간 자신은 비할 바 없이 거대했다. 연꽃 위에 서니 푸른 하늘이 씻은 듯이 푸르고 발밑에는 칠색(七色) 구름이 있었으며, 수승(殊勝)하고 현묘해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물론 외부 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예를 들면, 집주인은 친절하게 편지를 보내 우리가 좋다고 말하고 우리에게 감사했다. 사실 이 특수한 시기에 상대방은 무조건 제품을 바꿔주었기에 우리는 감격했다. 상대방은 우리보다 더 많이 부담했다. 이제 그 남학생 수업을 말할 차례다. 나는 시시각각 내심에 주의하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도록 주의했으며, 그가 어떻게 표현하든 나는 무조건 자신에게 요구했다. 그의 변화는 컸다. 수업할 때 분위기가 갈수록 편안해졌다. 소통도 순조롭고 효과도 좋았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많은 새로운 단어를 사용해 수업하고 교류했다. 또 단어를 확대하는 것도 배웠다. 그도 빨리 기억했다. 전체 수업 과정은 편안하고 즐거웠고 받아들이는 것도 좋았다.

이 과정 후 내 몸은 점차 가벼워졌고 정상 상태를 회복했다. 나는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체험했다. 사람 마음을 지니지 않고, 하고도 구하지 않으니 편안하고 기쁘다. 그런 초탈한 느낌은 사람 마음과 관념이 없이 일하면 그렇게 활달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동시에 나는 대법은 원용(圓容)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자신이 잘 수련할 때 주변과 당신은 상호 작용하고 중생도 긍정적인 표현을 한다.

어느 날 연공할 때 머릿속에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9]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은 바로 법에 동화하는 과정이고 또한 중생을 구하고 새로운 우주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의 태도, 사상 상태, 일처리 방식 등이 모두 매우 관건적이며 세상의 변화를 결정할 수 있다.”[10]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 정진하자’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6]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성숙’
[8]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대만원법-2.동작도해’
[9]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신생’
[10]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3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3/4219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