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지난 문장에 이어)
8. 팔십이 넘은 E 수련생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E 수련생은 이미 팔십이 넘었는데,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고, 문맹이었다. 이는 그가 진술한 수련 경험이다.
(1) 저는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습니다. 서너 살 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 함께 농촌에서 아주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온몸에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머리에 바람을 쐴 수 없어 아주 더운 날에도 모자를 써야 했고, 류머티즘 관절염 때문에 잘 걷지 못했습니다. 1995년에 저는 자동차에 부딪혀 5~6m나 날아갔습니다. 바닥에서 몇 바퀴나 돌았지만, 오른쪽 손목의 뼈만 튀어나왔고 다른 곳은 모두 괜찮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운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큰 재난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에 복이 온다’라는 속담이 맞았습니다. 1997년 9월에 저는 행운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게 됐는데, 그 당시 63세였습니다. 저는 글을 알지 못해 매일 연공장에서 사부님의 ‘전법륜’을 받들면서 수련생들이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이 탔습니다. 제가 얼마나 스스로 읽고 싶었겠습니까! 그동안 저는 사부님의 ‘전법륜’을 항상 곁에 두었는데, 어디를 가면 거기로 가져가서 사람에게 몇 마디씩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가르쳐 줄 사람을 찾지 못할 땐 혼자 사부님의 ‘전법륜’을 받들어 보았는데, 글을 알지 못해도 그냥 보았습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열어주셨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전법륜’을 받들고 보았는데, 언제 소리 내어 읽었는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로 길거리에 나가서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날 저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저는 ‘전법륜’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2) 파룬따파를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邪黨)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딸과 함께 생활했는데 딸도 수련생이었습니다. 며칠 후 딸이 공원에 가서 연공하다가 경찰들에게 연방대대(聯防大隊)로 끌려갔습니다. 그 후부터 삼사일에 한 번씩 경찰들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고, 집에는 더 이상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사악의 박해가 아무리 날뛰어도 저는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한 가지 염두만 있었습니다.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아직 가부좌하고 있다.’
2000년 7월, 저는 임신한 지 7개월 된 딸과 베이징에 청원하러 차를 탔습니다. 막 100여 km를 갔을 때 밤새도록 쫓아온 시(市) 공안국의 사복 경찰에게 가로막혀 돌아왔습니다. 저희는 심사를 받고 사진 촬영을 당했습니다. 딸의 집은 불법 수사까지 당해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경찰이 딸을 구치소로 보냈지만 딸이 임신했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구금을 거절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만약에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은혜를 알고 보답하려 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입니다.” 경찰은 제 말을 듣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3) 고달픈 세월 속에
2002년 1월 6일, 딸이 세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경찰들에게 납치당해 2년간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외손녀는 15개월밖에 안 됐는데 저와 함께 살았습니다. 매번 딸을 보러 노동교양소에 갈 때 저는 아이를 업고 갔습니다. 경찰은 저에게 아직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는데, 저는 경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온몸이 질병투성이였고, 아이를 돌보기는커녕 나 자신도 남이 돌봐줘야 했지만, 파룬궁을 수련해서 모두 나았습니다. 저는 외손녀를 가리키며 경찰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보셨어요. 아이 엄마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당신들에게 잡혀 와서), 이렇게 어린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게 됐습니다. 만약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를 당신들에게 보내 키우게 했을 겁니다.” 경찰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외손녀를 데리고 고향 친척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조카 일가가 대법이 좋은 것을 알고, 부부와 아이 두 명이 즉시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가져간 대법 책을 선물해 줬는데, 그 한 해 조카 집의 담뱃잎이 온 마을에서 품질이 제일 좋았습니다. 조카 가족은 모두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지켜 주신 덕에 외손녀는 아주 사랑스럽게 자랐습니다. 두 살이 조금 넘어 말할 줄 알았을 때, 저는 아이에게 사부님의 시사 ‘홍음’ 외우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수련생들이 아이를 보러 집에 오면 아이는 수련생들에게 들려줬습니다.
딸은 ‘전향’을 하지 않아 불법 노동교양 기간이 10개월 추가돼 2004년 10월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자신의 딸이 몇 십 편의 ‘홍음’을 외울 수 있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머금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오직 사부님이 지켜 주신 아이라야만 이리 기특할 수 있어요!”
딸은 돌아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2004년 11월에 고향에 가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전달하다 또 현지 경찰들에게 납치돼 불법으로 3년의 노동교양을 받았습니다. 이는 저와 외손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떻게 해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주변의 수련생이 저와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해줘서 수련에 대한 믿음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외손녀는 이미 다섯 살이 됐고, 저는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린 수련생도 잘 이끌어야 했는데, 책임이 막중함을 느꼈습니다!
외손녀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 어느 날 한밤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외쳤습니다. 저는 즉시 ‘전법륜’을 읽어줬는데, 손녀는 들으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난 후에 저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 배가 곧 아프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이는 학교 친구들에게 진상 호신부를 나눠주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진심으로 외우면 건강해지고 공부도 잘 될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방학 후 집에 돌아온 외손녀는 스스로 ‘전법륜’을 공부했습니다.
외손녀가 학교에 가면 저는 곧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번은 저와 수련생이 교외에 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다가 경찰들에 의해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여자 경찰이 책상을 치고 겁을 주면서 파룬궁을 왜 수련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곧 입장(立掌)하고 두 시간 발정념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보안이 문을 열어 저희를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한번은 길거리에서 여성 한 명에게 대법 자료 한 부를 나눠주었는데, 그녀는 연이어 말했습니다. “잘 됐습니다. 저는 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대법과의 인연이 너무나도 큽니다!” 저는 정말로 그녀가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비록 팔십이 넘은 사람이지만, 수련생들과 나가서 션윈(神韻) CD를 나눠주고 진상을 알릴 때 발걸음이 가볍고도 빨라 하루가 끝나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간은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하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저는 아직도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요구하신 것과 거리가 너무나도 멉니다. 저는 감히 태만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진수제자가 되어 용맹정진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9. 팔순 노인 “파룬따파는 정말 초상적입니다”
팔십이 넘은 J 수련생이 법을 얻기 전에는 생명의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했다. 그는 40대부터 여러 질병에 시달리게 됐는데, 특히 심장병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현대 의학이 그의 질병과 통증을 해결하지 못해, 오직 신불의 보호만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달 초하루, 보름에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는데, 누구 어디가 인기가 많다고 하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갔다. 적지 않은 헛돈을 썼지만 진불(真佛)을 찾지 못했고, 병이 나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위중해졌다. 오랫동안 병에 시달려 성격도 좋지 않게 변해 가족들과 자주 모순이 생겼다. 가족과의 관계가 갈수록 나빠졌고 마음과 몸이 모두 고통 속에 시달렸다.
1998년 2월, J 수련생은 행운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됐는데, 드디어 진법(真法)을 찾았다! 그 후부터 그는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온몸의 질병이 완치되고 몸이 좋아지니 기분도 좋아졌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아래는 그가 말한 수련 이야기다.
(1)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은혜를 입는다”
저의 어린 손녀는, 어른들이 사부님의 설법을 읽는 걸 좋아했으며, 저를 따라 연공도 배웠습니다. 네 살 때 손녀가 엄마의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는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또 다섯 살 때 저는 손녀를 데리고 배를 사러 시장에 갔는데, 배를 파는 사람의 저울추가 아이의 머리에 떨어졌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제 아들은 1999년 ‘7.20’ 이전에 연공하고 법 공부를 했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곧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제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2009년 4월 어느 날, 아들은 자전거를 타다가 정면에서 오는 화물차에 부딪혔는데, 사람과 차가 모두 10여 m나 끌려갔습니다. 기사는 뒤에서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차를 멈췄습니다.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의사가 십여 병의 약물로 피와 흙이 섞인 아들의 왼쪽 다리를 깨끗이 씻었는데, 무릎 밑의 살이 모두 닳아 없어지고 뼈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의사가 피부 이식 수술을 할 때 마취하면 효과가 좋지 않다고 마취하지 않은 채 허벅지의 피부를 몇 군데를 잘라 왼쪽의 아랫다리에 이식했습니다. 수술을 두 번 했는데 모두 마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고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수술용 메스 소리, 의사가 말하는 소리를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지만, 마취한 듯한 상태가 나타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아들은 2개월이 넘게 입원했는데, 집으로 돌아온 첫날은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올라갔지만, 다음 날엔 곧 목발을 버리고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매우 잘 회복됐고 아무런 후유증도 없습니다. 아들은 화물차에 부딪혔을 때 노란 옷을 입은 대법 사부님이 와서 자신을 구해주시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아직 너를 보호하고 계셔. 얼른 대법 속으로 돌아와 너의 서약을 실행하고 사명을 완수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지 말고.”
(2)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7.20’이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는 것은 잘못이 없고,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1년 말에 저는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어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나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면 경찰에게 체포, 납치될 겁니다.” 저는 이 목숨도 사부님께서 주신 건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내의 야채시장, 시외의 마을, 길거리에 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습니다. 2001년에서 2002년까지 사악이 제일 창궐할 때였는데,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종이에 쓴 다음에 복사해서 나눠 주었습니다. 비록 정교하진 못했지만, 사악을 두렵게 하고 교란을 없애는 역할을 했습니다.
매년 섣달그믐날 밤에 저는 신문 게시판에 진상 자료를 붙였습니다. 설 연휴에 게시판의 신문을 갈아줄 사람이 없었고 모두 설날에 바빠서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 붙이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 길거리에 사람이 매우 많아 더욱 많은 사람이 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근래 몇 년 동안 저는 사부님의 보호 아래 많은 곳에 붙이러 다녔지만,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가족들과 한데 모여 설날을 지내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2005년 음력 12월 하순, 저는 비교적 큰 마을의 길거리에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습니다. 설날 전 거리에는 물건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더 많이 나눠주려는 것에만 집중했더니 사복 경찰이 제 뒤를 쫓았습니다. 저는 가슴이 떨렸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습니다. ‘나는 우주 중에 제일 바른 일을 하고 있으니 사악이 교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염두를 바로잡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04년 6월에 저는 비싼 가격으로 복사 가게에서 진상 자료를 복사해 오다가, 2006년 1월에 복사기 한 대를 구입했습니다. 2009년 7월에는 또 일체형 한 대를 사서 법공부팀이 진상을 알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2/26/4208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