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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할 때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 법공부 상태는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었다. 때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주 빠른 속도로 습득했지만 이러한 상태를 오래 지속하기 힘들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교란이 매우 심해서 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다.

그러던 어느 날, 법공부를 하기 전 마음을 가라앉혔다. 긴장하거나 추구하거나 많은 공부량을 바라거나 법리를 보아내려는 마음가짐이 없었다. 그렇게 법공부를 시작하자 사부님께서 바로 앞에서 친절하고도 자연스럽고 진실한 언어로 말씀하는 것 같이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법에 대한 이해, 최소한 표면적인 이해 속도가 아주 빨랐다. 하지만 교란을 받을 때는 심지어 표면 뜻마저 이해할 수 없었고 반복적으로 다시 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태가 나타나자 나는 비로소 무엇이 법공부를 교란했는지 돌이켜봤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사상업임을 인식하게 됐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는 늘 이것은 대법이고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에서 늘 대법은 아주 신성하고 장엄하다고 말해서 잠재의식에서 대법은 마디마디가 아주 근엄하고 깊어 열심히 봐야 하며 배움에 노력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할수록 아무런 수확도 없었고 한 구절 법마저 이해하고 배우기 힘들었다.

지금에서야 이것은 추구하는 것임을 의식하게 됐다. 사부님께서 ‘전법륜’ 마지막 단락에서 말씀하신 “『전법륜』은 문장의 표면에서 화려하지 않으며, 심지어 현대어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한마디 말을 매번 읽었지만 잠재의식 속에 ‘화려하지 않으며’, ‘현대어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사부님께서 어쩔 수 없이 하신 말씀이라고 여겼다.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바꾸는 것은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다른 일면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식인이 대법(大法)을 배움에 주의해야 할 가장 두드러진 한 가지 문제는 바로 대법(大法)을 일반 속인 중에서 이론 저서를 학습하는 방법으로 배우는 것이다. 마치 알맞은 명인어록(名人語錄)을 선택해서 자신의 행동을 비춰보며 배우는 것과 같은데, 이는 수련자의 제고에 방해된다. 또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에 아주 깊은 내포가 있고, 부동한 층차의 수련을 지도하는 아주 높은 것이 그 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한 글자 한 글자씩 파고드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런 장기적인 정치이론 학습 중에서 양성된 습관 역시 수련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요소로서, 법(法)을 곡해(曲解)하는 것이다.”[2], “기억하라.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2]

이 단락의 경문은 옛날부터 배웠으나 아쉽게도 잘 이해하고 소화하지는 못했다. 이전에는 사부님께서 늘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정작 나 자신이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줄 몰랐다. 하지만 나도 이미 사람의 각종 관념에 물들었고 사상업이 형성된 것을 몰랐으며 나에게 이러한 업력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업력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대법에 동화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 사부님께서 하신 설법은 수련을 지도하기 위한 것이지 어떠한 이론 지식이나 다른 사람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법에 비춰 스스로 이런 문제가 있는지 낱낱이 보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문제가 있다면 애를 써서 없애려고 노력해야만 제고할 수 있다.

법공부를 할 때 설법 속에서 높고 깊은 이론을 보아내려는 잠재적 의식이 법공부를 이토록 오랫동안 교란한 것이다. 사람의 어떠한 체면, 화려함, 어법, 심오하거나 시적인 표현들은 모두 대법이 아니며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대법을 얻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자신을 고급 지식인이거나 어떠한 특정 인물로 지정하지 않고 또 심오한 법리를 빨리 얻으려는 조급한 마음가짐이나 임무를 완성하려는 마음가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힐 때, 대법의 진정한 함의를 더욱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얻었거나 기술이 뛰어나 권위를 얻었거나 어떠한 명예를 얻었든지 결국 사람이다. 신이 되고 싶다면 사부님 말씀대로 해야 한다. 신들마저 무릎 꿇고 법을 듣는데 우리는 대법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는 독선적인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하고,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대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법을 배우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2/4219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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