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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노년 대법제자들의 수련 이야기 (1)

글/ 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윈난성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역으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역사상 도가의 조사인 장삼풍(張三豐), 왕중양(王重陽) 및 관음보살이 여기에 도장을 설립했고 수많은 신적(神跡)을 남겼는데, 오늘날 민간에서 여전히 유전되고 있다.

1992년 5월 13일,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에 의해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장춘에서 처음 전해졌다. 이어 1994년 8월 파룬따파는 윈난성까지 널리 전해졌고, 그 뒤 우후죽순처럼 사람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통해 윈난성 전 지역에 전파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이 탄압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21년이 지났다. 하지만 파룬궁은 없어지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전 세계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파되었다. 세인들은 갈수록 파룬따파에 대해 깊이 이해했고, 파룬따파는 중생이 구도되는 유일한 희망임을 알게 되었다.

윈난에서 파룬따파가 널리 전파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윈난성 각 민족들 사이에서 수많은 사적과 아름다운 인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아래에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몇몇 노인들의 수련이야기다.

1. 88세 수련생 “사부님께서 저를 구도하셨고, 저는 세인을 구하고 있습니다.”

A 수련생은 연세가 90세에 가까우나 외관상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이 60여 세밖에 되지 않는다. 피부는 부드럽고 얼굴은 매끈하고도 희며 희고도 불그레한데 주름살이 없고 눈과 귀 또한 밝다. 게다가 두뇌가 명석하고 말씨가 유창하며 신체가 튼튼하고 원기가 왕성하여 길을 걸어도 바람에 나는 듯 온몸이 가벼우며 얼굴에는 항상 자상하고 온화한 빛을 띠고 있다. A 수련생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가 90에 가까운 고령임을 알고는 모두 놀라운 표정을 짓게 된다.

A 수련생은 빈곤한 가정에 태어났으며 조상 때부터 몇 세대를 걸쳐 모두 부처님을 공양해왔다. 그해 그녀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현지에서 개최한 파룬따파 전수반에 참가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고 행복하게도 사부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걸어 들어오게 되었으며, 수행을 하고자 하던 자신의 오래된 소원을 진정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한다. “사부님의 설법 전수반에 참가한 후 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모든 병이 사라졌고 온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또한, 자신이 법을 위해 온 생명임을 알게 되었죠. 이렇게 좋은 법을 더욱더 많은 사람이 와서 배우게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온몸을 법을 널리 알리는 홍법(洪法) 속에 투입하였다. 우선 친척과 친구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이후 공원이나 지역사회에 나가 ‘진선인(真·善·忍)’의 아름다움을 소개했으며 나아가 파룬따파를 다른 성에까지 널리 전파하였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을 그녀는 누구든 마다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지도해 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 수련의 길로 걸어 들어오도록 도왔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 깡패집단은 파룬따파에 대한 탄압을 개시하였다. 그녀가 과거 대법 사부님의 파룬따파 전수반에 참가하였고, 또 확고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겠다고 표명했기에 현지 국가보안부 소속 경찰들은 그녀에게 박해를 가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속아 파출소로부터 간수소로 끌려갔고, 나중에 또 노교소까지 끌려가 1년간 불법적인 감금을 당했다. 그녀는 간수소와 노교소에 갇혀있는 동안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시 이미 나이가 70세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인간적인 혹형과 고문의 시달림을 받았다.

그녀는 경찰의 사주를 받은 기타 일반 수감자에게 구타를 당했고, 강제로 혀로 화장실의 변기를 핥게 하는 등 모욕을 당했다. 그녀가 노교소에 끌려갔을 때 온몸은 이미 학대에 의한 상처로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노교소에서 또 강제로 서 있게 하는 벌을 받았고 갖은 욕설을 들어야 했으며 강제 노역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일관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었다. 왜냐하면, 파룬따파 수련은 그녀가 평생 추구해왔던 바이고 생명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노교소에서 나온 후 그녀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면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견지했으며 오늘까지 멈춘 적이 없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언제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한 그룹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사람들이 신체단련을 끝내거나 어떤 활동을 끝마친 후 그녀는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다리를 차는 등의 민첩한 동작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알아 맞춰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녀의 나이가 이미 80세가 넘었음을 알고는 모두 놀라워한다! 그리하여 모두 그녀를 둘러싸고 양생의 비법을 문의한다. 이때 그녀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주고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파룬궁의 뛰어난 효과에 관해 설명해준다. 또한, 그들에게 알려준다. “저는 원래 지역 주민사무소에서 꾸린 축전지 공장에서 일했는데 저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납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장기간 일하다 보니 차츰 만성 납중독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직 저 혼자만이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모두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 덕분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이야기가 끝난 후 그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압니까? 나는 모모 경찰국장입니다.” 이에 그녀는 “당신이 누구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난 것은 인연이므로 저는 당신을 꼭 구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나중에 그 국장은 “당신은 이야기를 참 잘하시네요. 앞으로 당신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세요. 자신을 잘 보호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또 한 번은 그녀가 모 공원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였다. 한 무리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서 상사인 듯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그녀는 다가가서 그에게 물었다. “제가 당신들에게 드릴 얘기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그러자 상사인 듯한 그 사람이 되물었다. “무엇을 이야기하시려는 건가요?” 그녀가 “어떻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라고 답하자, 그 사람은 “좋아요!”라고 말하며 모인 사람들에게 그녀가 이야기하는 몸 건강관리 비법에 대해 잘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후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들었고, 이따금 감탄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녀는 진상을 다 알린 후 또 모든 사람들에게 진상 자료와 진상 문구가 적힌 호신부 하나씩 나눠 주었다. 그날 그녀에게는 모두 36부의 진상 자료가 남아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마침 거기에 있던 사람들 수 역시 36명이었다.

A 수련생은 이렇게 다년간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일을 견지해왔으며 여태껏 중단한 적이 없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한다. “사부님께서 저를 구도해주셨고, 저는 세인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일찍이 했던 서약을 그대로 이행할 것이며, 세인들에게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려줄 것입니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진상을 더 많이 알리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것입니다.”

2. 97세 노인의 견증, 쿤밍 22번 공공버스 차바퀴 아래의 기적

우싱란(吳興蘭)이라고 부르는 파룬궁수련생이 있는데 올해로 97세의 고령이다. 그녀는 전쟁연대에 부녀자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토지개혁시기에는 현지에서 현(縣) 부녀 회장직을 맡았다. 집안 형편이 곤궁하여 어릴 때부터 구루병, 연골병을 앓고 있었고 그 후에는 또 심장병, 저혈압에 걸려 일생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다. 게다가 허리가 휘고 등이 굽어 키는 140cm, 몸무게는 40kg을 넘지 않았다.

1997년 9월, 그녀는 운 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고, 이후 병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수련 후 신체의 모든 병이 사라졌고 온몸이 가벼워졌다. 이리하여 4대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행복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 악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일가족의 정상적인 생활은 파괴되었다. 하지만 박해 앞에서 우싱란은 결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을뿐더러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파룬따파의 초상적이면서도 신기한 수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으며, 대법 사부님의 보호 아래 여러 번이나 죽을 고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아래는 우 씨가 이야기한 그녀가 겪었던 아찔하고도 놀라운 경험이다.

그것은 1999년 5월 13일에 발생한 일입니다. 그날 저는 쿤밍(昆明)시 22번 버스를 타고 종착역인 베이잔(北站)에 도착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다른 승객들이 먼저 다 내린 후 맨 마지막에 버스 앞문을 통해 차에서 내렸습니다. 저의 두 발이 금방 땅에 닿기 바쁘게 갑자기 뒤에서 승객을 가득 태운 공공버스가 급속도로 달려와 저를 심하게 치고 넘어뜨렸는데, 이때 차바퀴가 저의 오른발부터 오른쪽 얼굴 부위까지 지나가며 저를 깔아뭉갰습니다. 저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차를 멈춰요. 계속 지나 나가면 저의 머리가 부서져요. 차 밑에 사람이 깔렸어요!” 이때 버스가 멈췄습니다.

저는 검은 차바퀴 아래에 누워있었고, 차의 왼쪽 앞바퀴가 저의 가슴과 얼굴을 꽉 눌렀습니다. 이때 플랫폼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저를 차바퀴 밑에서 끌어내려고 했지만, 제가 차바퀴에 너무 세게 눌려 끌어낼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차를 후진하는 수밖에 없네요”라고 말했으나 기사는 이미 놀란 나머지 더는 차를 운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힘을 합쳐 차를 뒤로 밀었는데, 이때 바퀴가 또 굴러가며 저의 배를 깔고 지났고 저의 오른발을 눌렀습니다. 여전히 저를 끌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모두 또다시 차를 뒤로 밀어서야 비로소 저를 차 밑에서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부축하여 앉혔고, 저는 그들 모두가 놀라움으로 인해 얼굴빛이 흙 색깔이 된 것을 보았으며, 주위는 구경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다리를 움직여 보았는데, 좀 괜찮은 것 같았고 다리를 움직일 수 있어서 기를 쓰며 일어섰습니다. 그러면서 “괜찮아요, 문제없습니다. 여러분 빨리들 가세요! 저도 집으로 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회사의 상사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고 교통경찰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괜찮습니다. 병원에 안 가도 됩니다. 여러분 저의 손과 발을 보세요, 모두 움직일 수 있어요.”

한 교통경찰이 파룬궁에 대해 잘못 알고 “저는 당신들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은 약을 못 먹게 한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하여, 저는 큰 소리로 그에게 다시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들은 신체가 건강하기에 약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파룬궁 사부님의 어느 책에도 약을 먹지 말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고 신체가 건강하기에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통경찰은 여전히 자기 의견을 고집하며 “어머니,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세요. 어쨌건 모두 국가 의료보험으로 진행하는 것인데 상관없지 않습니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나라의 돈 역시 국민들의 피땀으로 번 돈인데 나는 쓸 수 없다. 나 자신의 난(難)은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저에게 병원에 갈 것을 권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 어머니가 병원에 가지 않으면 저희 마음이 괴로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우리 사부님이 보호하고 계셔요. 정말 괜찮아요”라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교통경찰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면 해당 운전기사가 피해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는 오른손을 들어 크게 부어오른 오른쪽 반쪽 얼굴을 가렸습니다. 교통경찰이 저의 이름과 주소를 물었을 때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무슨 일이든 우선 타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생각하며, 나로 인해 절대 그 기사가 처벌을 받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저의 어깨는 이미 통증으로 마비가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팔뚝을 들어 올리려고 애썼으며 또 손목과 손가락을 움직여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저 완전 괜찮습니다.”

버스회사의 상사가 저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돈을 좀 드리겠습니다!” 이에 저는 “돈은 더욱더 가질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전화라도 해서 당신 가족이나 자녀분들을 오라고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얼른 말했습니다. “저의 자식과 손자들을 합쳐 30여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수련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와서 저를 보게 된다면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것이고 당신들을 물고 끝없이 늘어질 것입니다. 절대로 그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2시간 넘게 반복하여 설명해서야 그들은 비로소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떠나기 전 저는 버스회사가 기사를 처벌할까 염려되어 그들 상사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들은 기사님을 어렵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 역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들에게 번거로움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집으로 데려 줄 때도 이웃들에게 대야처럼 부은 자신의 얼굴을 보일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이 함부로 소문을 퍼뜨릴까 걱정되어 저는 겉옷을 벗어 머리 위에 썼습니다. 그들의 부축으로 저는 2층까지 올라갔고 이후 저는 고통을 참으며 기어이 혼자서 4층까지 올라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그때 저의 가려진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제가 교통사고를 당했음을 몰랐고, 같이 들어온 분들에게 자리를 권해 앉게 했으며 또 그들에게 제가 요금을 지불했는지도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여러분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어서 돌아가세요!”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저는 남편에게 얼굴을 보여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남편은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사고가 그렇게 컸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연공할 시간이 다 되었기에 저는 남편을 재촉해 연공장으로 연공하러 가게 했습니다. 그가 간 후 저는 침대에 누웠습니다. 우선 가슴 부위가 특히 괴로웠고, 이어 구토를 했습니다. 많은 더러운 이물질을 구토해내니 이번에는 또 복부가 뒤집히듯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벽을 짚으며 기어이 화장실로 들어가 배출했습니다. 남편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또 아픔을 참으며 걸레로 주변을 모두 깨끗이 닦았습니다.

남편은 연공장에서 연공이 끝난 후 다른 사람의 일을 이야기하듯 대수롭지 않게 수련생들에게 말했습니다. “한 76세 할머니가 오늘 공공버스 차바퀴에 깔렸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파룬궁수련자이며 안전하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이 소식을 듣고 저를 보러왔습니다. 당시 저의 오른쪽 눈, 오른쪽 반쪽 머리는 10cm가량 부어올라 모양이 변했을 정도였습니다. 오른쪽 눈은 부어서 가는 틈새만 남았고, 두 눈가와 얼굴 윗부분이 모두 검은 자색 빛으로 변했으며, 오른쪽 가슴도 10cm 이상 부어 있었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온통 검은 자색으로, 그리고 오른쪽 발가락은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피부도 부어서 빛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본 수련생들은 제가 큰 난을 당하고서도 죽지 않았다며 모두 대법이 보여준 위력에 감탄했습니다.

제가 시종 심성을 지키고 법공부를 견지했기에 7일 후 붓기는 모두 빠졌습니다. 이에 저는 다시 한번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로움을 느꼈고, 또한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룬따파가 저의 몸에서 나타낸 기적은 수련생들을 고무 격려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의 초상적인 면과 신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사고가 난 지 3일째 되던 날, 그 운전기사는 여자 친구와 함께 저를 보러 왔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그에게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편히 운전하고 열심히 일하라”라고 말하며 그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17/42089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2/21/1910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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