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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줄곧 사람 구하는 길을 걷고 있다

글/ 지린(吉林)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7·20’ 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된 것이 저는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구세력이 불과 피로 세운 사악(邪惡)은 대법(大法)으로 하여금 걸어 나오게 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당신들은 견정(堅定)한 신념에 의거하여, 세상에 올 때의 신성한 서약에 의거하여, 생생세세의 친연(親緣)에 의거하여, 대법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에 의거하여, 동시에 대법이 당신들에게 준 정념과 법력(法力)의 근본보장에 의거하여, 당신들은 걸어지나왔다!”[1]

수련의 길에서 사람을 구하며 수련한 이야기를 수련생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1. 복음이 천가만호(千家萬戶)에 전해지다

저와 수련생인 남편은 모두 직장인입니다. 우리는 휴일과 겨울 휴가, 여름 휴가를 이용해 농촌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삼륜차를 운전하고 저는 뒤에 앉아 시골로 내려가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겨울에 덮개가 없는 삼륜차는 추웠지만,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데는 편리했습니다. 우리는 한 마을 한 마을씩 배포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여러 마을을 돌며 배포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배포를 시작해 중간에 많은 마을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몇 개 마을에 얼마만큼의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지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에 우리는 자료점을 내어 진상 자료를 직접 제작했으며 수련생들에게도 공급했습니다.

2011년 전에는 남편과 함께 낮에 CD를 배포하면서 마을의 지형을 살핀 뒤, 밤에는 집마다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남편과 저는 낮에 접착스티커를 제작해 농촌 마을을 돌면서 전봇대나 나무에 투명테이프로 감아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세대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는 지역 시에 속하기에 농촌 인구가 시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지금까지 농촌 세대수 전부를 다 돌지 못했습니다.

2018년 전에는 매번 자료를 400부나 500부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2018년 이후에는 각 마을에 공안 네트워크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카메라가 있는 곳은 가능한 한 피해 다녀야 했기에 한 번에 자료를 200부나 300부만 가지고 다녔습니다. 춘하추동,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마다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늘 집에 도착하면 한밤중이었으며, 때로는 자정 발정념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겨울에는 옷을 많이 입어 춥지 않았지만, 초봄과 늦가을은 뼛속까지 추웠습니다. 동북지방은 이 계절에 난방이 되지 않아서 꽁꽁 언 몸은 이불을 덮고 누워도 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조금씩 따스해질 때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우리 부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층차(層次)의 제고, 심령의 정화가 주는 즐거움이며 중생을 구도하는 자랑스러운 즐거움이었습니다. 바로 “속인은 나를 모르나니 나는 심오 속에 앉아 있도다”[2]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2006년부터 우리 부부는 사부님의 보호 아래 시구(市區) 안의 마을들을 찾아다녔는데 순탄하게 지금까지 줄곧 견지해 왔습니다. 2006년의 하루,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와 남편이 큰 과수원에서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넘겨주면 제가 하나씩 받았는데 아주 큰 열매로, 인간 세상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이 꿈은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점화였습니다. 남편도 막 법을 얻었을 때 꿈을 꿨습니다. 꿈에 남편은 온몸에 진상 자료를 품고 곳곳을 다녔다고 했습니다. 진짜로 우리는 가는 곳마다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아마도 이것이 우리의 수련 길인 것 같습니다.

2. 역병 기간에 사부님께서 만능통행증을 주시다

설이나 명절은 우리가 가장 바쁠 때입니다. 평소보다 몇 배 많은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일에 교란받지 않으려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모르게 했습니다. 새해마다 우리 지역 시의 사정에 맞게 권선(勸善) 편지를 썼습니다. 2020년에는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를 권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몇몇 수련생이 문장을 쓰고 수정하고 편집한 후 출력해서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글귀가 적힌 봉투에 넣어 집집에 배포했습니다.

2020년 설 연휴에도 우리는 계속 집마다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시내에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도 “이상해요. 사람들이 모두 멀리해서 진상을 알릴 수가 없어요”라고 했고, 거리에는 경찰차가 분주히 오갔습니다. 이튿날 바로 아파트단지는 봉쇄됐고 마을도 봉쇄됐습니다. 우한 폐렴이 왔던 것입니다. 낮에도 사람들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었고, 매일 한 사람이 한 번만 외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걱정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들은 경비하기 위해 아침 7시에 와서 저녁 6시에 퇴근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저녁에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역병 기간 밍후이왕에 발표된 진상 소책자와 진상 전단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 좋았을 뿐 아니라 집마다 배포하면 사람들은 보물을 얻은 것처럼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게 급한데 밤에만 나가서는 안 되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중생을 구도하는 제자에게 만능통행증을 주십사 하고 사부님께 청을 드렸으며, 또 중생을 구도하는데 어떤 교란도 하지 못한다는 확고한 일념을 내보냈습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선 모든 수련생에게 공능으로 가지해주셨고 우리 수련생은 모두 신통해졌습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들은 낮에도 각 아파트단지를 정상적으로 출입할 수 있었으며, 어디를 가나 모두 진입했는데 어떤 곳은 체온을 체크하고 들여보냈습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전, 저와 남편은 각 아파트단지의 감시카메라와 경비원을 겨냥해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발정념했습니다. 우리가 아파트단지에 가서 동마다 다녀도 다 조용해서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면 진상을 알리던 수련생들도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우리 팀에 합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내 중심가를 따라 시가지를 동서로 나누었습니다. 서쪽은 좁고 오래된 단지가 더 많으며, 동쪽은 새 단지가 더 많습니다.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서쪽을 담당하고 저와 남편은 동쪽을 담당했으며, 후기에 우리와 합세한 수련생들은 무작위로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단지마다 동마다 빼놓지 않고 사람을 구도했습니다.

가능한 한, 한 집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번 진상을 마치고 돌아오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오직 수련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흡족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특히 저는 평소 좀 높은 곳은 오르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이 발이 풍화륜(風火輪)을 밟은 것처럼 빠르고 몸이 가벼워 아무도 저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매번 남편과 같은 양의 자료를 배포했는데 저는 언제나 지정된 약속장소에 먼저 가서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남편은 항상 놀라면서 어떻게 빨리했는지를 물었고 저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고 대답했습니다.

역병 기간에 저를 포함해 사람을 구도하는 매 수련생 모두에게 사부님께서 강한 공능을 가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진상을 나갈 때마다 “사부님! 제자는 사람을 구도하러 나갑니다. 바로 제 곁에 사부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고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여러 해 동안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구하며 수련한 일들은 다 쓸 수가 없습니다. 박해가 멈추는 그 순간까지 우리 부부는 사람 구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변함없이 사람 구하는 길을 걸을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캐나다 법회에 보냄’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각자(覺者)’

 

원문발표: 2021년 2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2/3/4190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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