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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대화

글/ 샤오성(曉聲, 중국)

[밍후이왕]

나는 산속 돌 탁자에 앉아, 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 오늘날 예의범절이 무너진 사회에서, 대의(大義)를 위한 자가 용사(勇士)가 되었네.

나: 대의를 말씀해주세요.

노인: 모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지.

나: 파룬궁(法輪功) 제자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노인: 감히 말하지 않겠네.

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佛法)을 널리 전해 중생에게 복음을 알려주는데, 자고이래 성도(聖徒)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파룬궁 제자야말로 용사입니다.

노인: 당신은 불법의 복음을 세상에 전했다는데, 어떻게 불법을 증명할 수 있겠나?

나: 수련을 통해 생명의 참뜻을 깨닫고, 사람이 세상에 온 의의를 알 수 있는데, 불법을 제외하고 무엇이 할 수 있을까요?

노인: 누구 해본 사람이 있나?

나: 신은 어디나 다 있는데, 왜 평범한 사람은 보지 못할까요? 보지 못하는 것은 단지 기연(機緣)과 깨달음이 미치지 못해서입니다.

노인: 파룬궁 제자는 수련하면서, 왜 세간 일에 참여하는가?

나: 고대 로마가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탄압하는데 왜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복음을 전파하는지 아십니까? 복음은 기독교인들만이 향수(享受)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위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중생을 위해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불법(佛法)을 세상에 전하는 복음도 파룬궁 제자만이 향수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위한 것이 때문에 파룬궁 제자는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널리 알리고 있는데, 이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노인: 왜 복음만 전하지 않고 또 자신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다고 알리며, 명분을 내세워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가?

나: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이 사악의 행위를 폭로할 수 없단 말입니까? 사악의 행위를 폭로하는 것이 악행을 저지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악행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이 사악의 행위를 폭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요? 용감한 사람은 계속 희생만 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나요? 용감한 사람은 손발이 묶여 있나요? 파룬궁 제자는 대중을 위해 희생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사악을 폭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난 후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않을까요?

노인: 감동했네, 나는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된다(士不可不弘毅)’고 추구해왔는데, 이 일로 공허한 얘기가 되었네.

노인은 눈물을 흘렸다.

대나무 숲에서 새들의 맑고도 낭랑한 노래가 들렸다.

 

원문발표: 2021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5/4195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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