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대법에 대한 인식이 얕아서 자신은 사람 중의 각 방면에서 뭘 잘한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은 늘 득의양양했다. 한번은 한 수련생과 교류할 때 나는 질투심과 이익심에서 담담하다고 큰소리쳤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한 말이 너무 부끄럽고 분수를 몰랐다. 대법을 깊이 있게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수련을 단언했으며, 대법의 깊은 내포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오만하게 굴었고, 스스로 심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중공 사당의 박해가 확대됨에 따라 나는 고등학교 교장직에서 제명당했고 다른 학교로 전근해 부직을 담당했다. 그때 자신의 마음은 극히 무거웠는데,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기쁜 것은 혼탁한 사회의 다툼에서 벗어나 보지 않아도 되니 괴롭지 않았다. 걱정은 관직이 없고 권력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얕볼까 봐 두려웠고, 고개를 들지 못했으며 일종의 인생에 대한 실망감이 느껴졌다.
새 직장에 온 후 교장은 막 부직에서 발탁해 올라왔기에 경력이 나보다 적고 능력도 나보다 뛰어나지 않으며, 말을 길게 하고 일 처리도 망설였다. 그가 나의 상사가 되니 나는 달갑지 않았고, 속으로 불쾌했다. 사부님께서 질투심에 대한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부서 또는 그들 사무실의 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 어느 날, 잘하지 못하는 이 사람이 도리어 간부로 승진했고, 게다가 그의 상사가 되기까지 했는데, 그는 승진하지 못했다. 그의 그 마음속은 평형을 이루지 못해 위아래로 다니며 불평하는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1] 나는 당시 여전히 생각했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회의하고 업무를 협의할 때 자주 그와 의견이 엇갈렸다. 업무에서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적고 심지어 업무에서 그의 웃음거리를 보고 싶었다.
이런 상태는 줄곧 오랫동안 지속했다. 마음이 아주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이것은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치지 못했다. 속으로 명리를 추구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며 승부를 다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에 부딪히면 왜 할 수 없는가?
어느 하루 나는 사무실에서 사부님의 ‘질투심’에 관한 설법을 볼 때 갑자기 한줄기 글자에서 은백색 빛이 나서 내 눈에 들어왔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1] 사부님의 이 한마디는 단번에 나를 일깨워주었다. 원래 나는 굴복하지 않은 마음이 있고 협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으며 사람과 쟁투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의 근원은 질투심이다. 내가 하는 행동은 모두 그를 질투하는 것이고 그가 나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도 질투심이다. 내가 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 협조하지 않으려는 마음 모두 질투심이다. 의견을 내놓으려는 마음도 질투심이고 그를 압도하려 하는 마음도 질투심이다. 이 모든 것은 질투심이 초래했다.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말씀으로 자신을 똑똑히 보게 됐다. 나는 마음으로 일념을 발했다. ‘질투심, 너는 오랫동안 나를 좌우지 했는데 오늘 마침내 너를 똑똑히 알게 됐다. 너는 내가 아니다. 나의 본성은 선량하고 위타(爲他)하는 좋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좋으면 나는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면 안 된다.’ 그가 교장을 하는 일도 쉽지 않다. 나는 마땅히 그의 일에 잘 협력해야 하고 그의 일을 망치려 하면 안 된다.
대법은 나에게 이치를 알게 했고 대법은 나에게 방향을 똑똑히 알게 했다. 대법은 나의 집착심을 타파했다. 깨달았으면 나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나는 과거 바르지 않는 방법을 고치고 허심탄회하게 협조했으며 자발적으로 업무에 건의를 제출했다. 자신이 맡은 일도 잘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둘은 일에서 분위가 확 달라졌다.
나의 변화는 그의 변화를 불러왔다. 관계의 개선으로 나는 그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고 그도 진상을 알고 사당 조직을 탈퇴했다. 이 생명은 구도됐다. 나중에 학교의 크고 작은 회의에서 그는 파룬궁을 언급하지 않았고 상급에서 어떤 지시도 모두 따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만약 내가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 줄곧 그와 마찰을 일으켰다면 그는 대법에 호감을 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를 대법으로 구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구도되지 못했다면 나의 표현이 곧 대법제자답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그는 구도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다행히 사부님의 점화로 나는 깨어났다. 사부님의 자비 구도에 감사드린다.
동시에 나는 법을 얻은 초기 자신이 질투심, 이익심에서 담담하다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 일련의 심성 단련을 거친 후 비로소 나의 질투심은 자신의 독선에서 왔고, 자신이 오만과 무지로 뒤덮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1]
사부님의 질투심에 대한 설법을 배운 후 질투심을 닦아버려야 하는 중요성을 알게 됐다. 지금 인식했는데 질투심은 사람마다 있는데, 단지 절실한 이익에 부딪히지 않아 그는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일단 심성 이익에 부딪히면 그는 뛰쳐나와 당신을 교란한다. 어떤 표현은 강하고 어떤 표현은 약하다. 비록 겉으로 다투고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고 하지만 배후의 근본은 질투심이다. 이때가 바로 그것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2/2/4190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