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여성 대법제자로 98년 말에 대법을 얻었는데 당시 겨우 30세였다. 매일 대법의 불은호탕(佛恩浩蕩)을 느꼈고 대법이 나의 몸과 마음에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뛰어남에 감동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나는 사부님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톈안먼광장에 걸어갔다.
2001년 나는 수련생과 베이징에 갔고 톈안먼광장에 갔다. 그 이유로 불법 노동개조 1년을 당했다. 집에 돌아온 후 또 적극적으로 법 실증과 중생 구도의 홍류(洪流)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 나는 십여 년 동안 또 여러 차례 납치와 노동개조, 판결을 받았다. 전후로 불법 수감은 7년 넘게 당했다. 2019년 초에 마굴(魔窟)에서 걸어 나왔다.
마굴에서 나와서 또 거대한 난에 부딪히다
마굴에서 나올 때 나는 신체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복부에 주먹만 한 크기의 종양이 생겼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 가서 일자리를 찾으면서 우리 집도 이사 갔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 수련생들과 연락이 끊겼고, 단체 수련환경을 잃었다. 여러 해의 박해로 법공부를 하지 못하고 또 강대한 정념이 없어 가족에게 이끌려 종양병원에서 검사하자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하고 수술하라고 했다.
이때 나는 청성해졌다. 이는 사악이 다시 박해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단호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그 당시 화를 내며 나와 크게 다투었다. 나는 평온하게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당신도 보았다시피 방금 두 가지 검사를 받으면서 나는 죽을 뻔했다. 이어서 또 항암치료하고 수술 등으로 시달리다 보면 나는 확실하게 되돌아올 수 없다.
나의 설득에 그는 마침내 나의 결정에 동의했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나의 체중은 60kg였는데 지금은 50kg도 안 된다.
수련생을 찾아 법 속에 용해되다
비록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고 이 관을 넘었지만, 나의 신체는 여전히 정상적이지 않았다. 장기간 법공부를 하지 않고 연공을 하지 않아 자신도 앞으로의 길이 몹시 어렵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찾아주시길 요청했다. 정말 아주 빠른 시간에 수련생을 찾았고 아울러 수련생 집에서 머물렀다.
수련생은 여러 명의 수련생을 조직하여 그녀 집에서 법공부를 했고, 법에서 교류하여 내가 안을 향해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아주 빨리 제고되어 정념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사악의 요소는 시시각각 나에 대해 박해를 느슨히 하지 않았고, 그 딱딱한 종양으로 나는 앉을 수 없었다. 가끔 오는 통증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때 수련생들은 나를 에워싸고 발정념했고 나는 앉지 못해 꿇어앉아 엎드렸으며 늘 땀과 눈물범벅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아프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음을 알았다. 아픈 그 부분의 신경을 잠가주셨다.
서약을 잊지 않고 사명을 욕되지 않게 하다
또 한 개 관을 넘었고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자신만 생각하면 안 되고 수련생에게 큰 불편을 주고 수련생이 사람 구하는 사명에 영향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사부님께서는 현지 수련생을 나에게 연결해주셨다. 더욱이 전염병 기간에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 사부님께서는 지역에 거주하는 수련생인 이(李) 수련생을 배치해 주셨다. 그녀와 법공부 하고 교류하는 중에 나의 무기력한 정서가 제거되었다. 우리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이며 사부님과 함께 있고 법과 함께 있다. 사부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것을 우리도 인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며 가지지 않는다.
이 기간 나도 ‘전법륜’을 두 번 외우는 걸 견지했고 지금은 또 세 번째 외우기 시작했다. 각 지역 설법을 체계적으로 한 번 배웠다. 자신이 마난(魔難)을 감당하는 중에 또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신체가 호전되었을 때 좀 큰 치마를 입어 종양을 감추고 나가서 다그쳐 사람을 구했다.
생사를 내려놓자 대법의 신기함이 나타나다
내가 법공부와 연공을 다그치고 시시각각 심성을 닦을 때 사악도 수시로 호시탐탐 노려보며 나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박해를 가중했고 20개월이 안 되어 그것은 또 광적으로 마치 ‘옹기모양’처럼 자라서 나의 복부를 덮었다. 마치 임산부 같았다. 그것이 아주 크고 아주 딱딱해 나를 압박하여 대소변을 자주 배출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배, 허리, 뒷등이 함께 아팠고 너무나 아파서 마비되었다. 흐리멍덩한 감각에서 죽음의 신이 나에게 접근하는 걸 느꼈고 천천히 자신이 공중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사망 시기를 판정하는 걸 발견했다. 나는 단번에 놀라 깨어났고 곧바로 의식이 돌아왔다. 이는 사악이 유혹해서 사기 치는 것이고 나를 속임수에 빠뜨려 나의 정념을 약하게 해서 수련을 포기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바로 앉아서 입장(立掌)하여 발정념했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며 자신은 오로지 사부님 말씀만 듣고 오로지 사부님 배치만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신체는 여전히 점점 나빠졌다. 대변은 10일, 20일 배출하지 못했다. 소변도 배출되지 않아 더욱더 나는 붕괴할 지경이 됐다. 방법이 없어 소극적인 방법을 취했다. 관장약, 도뇨관 등등. 그러나 갈수록 더욱 상황이 나빠졌다. 가족도 더는 볼 수가 없다며 병원에 가 상담했고 의사도 해결방법이 없다면서 오로지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도 이미 더는 수술할 수 없음을 알았고, 역시 조급해도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그럼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말고 그것을 인정하지도 말며 그것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대변을 보지 못한다면 그럼 보지 말자. 소변 보고 싶은 느낌이 들면 누워서 배의 딱딱한 옹기모양 변두리를 따라 더듬어서 방광을 찾아 힘껏 아래로 밀었다. 이렇게 누르는 힘도 천천히 없어졌고 또 심장의 쇠약한 증상도 나타났다. 나중에 가족이 나를 도와 눌러주었고 이렇게 해서 겨우 소변을 배출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오장육부가 모두 일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치 방광도 눌러 문드러진 듯 찾을 수 없었으며 소변이 나오지 않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점점 식사도 못했다. 그 나쁜 것이 이미 가슴까지 받쳐져 왔고 더는 배출할 수 없었으며 이미 두 달간 대변을 보지 못했고, 진짜로 끝까지 온 듯했다.
수련생들은 나의 이런 정황을 보고 나와 법공부하고 교류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점을 강조한다.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안 해주셨나요? 당신에 대해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건가요? 당신도 스스로 말했죠. 사부님께서 당신을 위해 아주 많은 걸 감당하셨다고. 또 당신을 도와 그 통증의 신경도 가져가셨다고. 고작 식사를 못하는 게 아닌가요? 그럼 우리는 벽곡(辟穀)으로 여겨요. 또 무엇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스스로 찾아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저는 진짜 찾지 못하겠어요. 또 어디에 누락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대소변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당신이 보세요. 이것이 또 ‘내려놓지 못함’이 아닌가요?”라며 “당신도 사부님께서 못하시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사부님께서는 수련인 각자(覺者)를 제도하세요. 당신이 이렇게 하면 사부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울었다. 마침내 내가 가장 내려놓지 못한 집착을 말했다. 나는 “저는 지금까지 바로 죽음을 두려워했고 죽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자신이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20년의 모진 역경을 겪었는데. 사부님을 따라 최후의 최후까지 걸어왔는데 바로 이렇게 육신을 포기하는 것은 진짜로 내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수련생도 나를 따라 울었고 동시에 “내가 죽는 것은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이 껍데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더 좋은 걸 주실 겁니다”고 설득했다.
한차례 교류를 통해 나는 많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이미 준비를 잘했으니 아직 청성할 때 남편과 아이에게 당부했다. 시간을 내서 나는 남편과 딸에게 “나중에 나에게 어떠한 정황이 나타나더라도 당신들은 나의 사부님을 원망하지 말고 대법을 원망하지 말아요. 모두 내가 잘못한 것이고 모두 사당 사악의 박해에요”라고 말했다. 친척들도 소식을 듣고 타지역에서 앞다투어 달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반드시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바로 내가 이렇게 조용히 떠나려고 준비할 때 갑자기 기적이 나타났다. 또 한 번 배뇨가 나오려고 해서 예전처럼 나는 힘껏 그 ‘옹기모양’을 잡고 양쪽을 들어 올렸다. 왜냐하면 방광이 눌려 흩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딸애는 양쪽을 따라서 아래로 밀었고 남편은 아래서 중간을 향해 모으고 아래로 눌렀다. 바로 이렇게 몇 차례 하고 나니 배에서 ‘칙’ 하는 느낌을 받았다. 장도(腸道)에서 적지 않은 것들이 배출되었다. 이번에 나는 신체가 곧바로 홀가분해지면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가 단번에 홀쭉해졌다. 다시 보니 아래로 배출된 것은 짙은 액체에 젤리 같은 물질이 섞여 있었다. 족히 2~2.5kg 넘었는데 곳곳에 모두 튀었다. 그 당시 우리 온 가족은 모두 격동을 금할 수 없었고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동했다.
수련생들이 앞다투어 나를 보러 왔다. 겨우 목숨이 붙어있던 내가 멀쩡하게 그녀들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배의 ‘옹기모양’은 보이지 않았으며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 나는 흥분하여 사부님께서 어떻게 죽음 신의 손에서 나를 되찾아오셨는지, 그 과정을 공유했다.
맺음말
이 일은 이미 한 달이 넘었고 가끔은 자신이 불가사의 상태로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원래 복강의 것이 어찌 장에서 배출되어 나왔는가? 자신도 우습게 느껴지는데 또 사람 생각으로 신의 일을 생각한다. 더욱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 기적이 진실하게 나의 몸에서 발생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20개월 넘게 죽음의 신과 게임을 한 것이 너무나 뼈에 사무치도록 생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계속 나를 가지해주셨고, 나를 보호해주셨다. 여전히 사부님 법상의 불단(佛壇)에서 무지개색 불광을 비추어 나를 격려해주셨다. 단지 내가 우매하여 집착을 죽도록 잡고 놓지 않았다. 지금에야 비로소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으니, 깡그리 버리는 것만이 누락이 없는 더욱 높은 법리(法理)이다.”[1] 한 층의 함의를 깨달았다. 동시에 오로지 사부님을 단호히 믿고 대법을 단호히 믿으며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념 하에 비로소 마지막까지 걸어갈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감당하셨고 나를 위해 해주신 것을 나는 진짜 말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생명으로 시간을 다그쳐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원용’
원문발표: 2021년 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1/23/4169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