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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비바람 속에서 내내 진상을 알리다

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법을 얻은 지 어느덧 18년이 되었습니다. 18년간의 수련의 길은 고생스럽고도 행복했습니다. 대법 중에서 버림과 관용을 배우며 제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저는 18년간의 비바람 속에서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게 항상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1. 환골탈태하다

수련 전 저는 몸이 몹시 허약했습니다. 경추 통증으로 중앙병원에서 11년간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위장도 좋지 않고 어깨도 아파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면 문제도 저를 오래 괴롭혔습니다. 머리에는 허튼 생각이 떠나질 않아 근무할 때나 운전할 때 잡념이 많았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전에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올라 잠들기가 힘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저는 화가 나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했고 정신도 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기공을 연마해보기도 했지만,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1996년 친구가 파룬궁(法輪功) 관련 VCD를 제게 주며 수련을 권유했지만, 저는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2001년에야 대법과 연분이 닿았습니다. 그 친구는 예전에는 10시까지 자고도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설에는 떡을 만들어서 내다 팔았습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하면서 제게 ‘전법륜(轉法輪)’을 읽어 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친구는 얼른 ‘전법륜’을 한 권 빌려 와서 제게 줬습니다.

맨 처음 읽을 때 저는 ‘전법륜’을 읽을 때 왜 이렇게 높게 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 왜 나에게 좋지 않은 많은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 그 해답을 모두 다 해석해 놓으셨습니다. 이후 저는 책을 친구에게 돌려주고 스스로 연공장을 찾아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연공을 시작한 지 2주도 되지 않아 저는 온몸이 환골탈태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온몸이 가벼워졌고 머릿속은 깨끗해졌습니다. 이런저런 잡념이 사라져 편안하게 잠잘 수 있었습니다. 저를 누르던 스트레스가 날아갔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도 힘들지 않고 경추도 아프지 않으며 음식을 먹어도 소화에 문제가 없어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욱 수련에 신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저는 법에 대한 인식이 얕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법공부를 계속하면서 사부님께서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제거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박해가 가장 엄중할 때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 1월, 중공이 ‘천안문 분신’ 사건을 조작해 중국 사회에는 파룬궁에 대한 큰 오해와 증오가 일어났습니다. 감옥과 노동교양소로 끌려간 대법제자는 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신문과 TV에서 중공의 모함 선전을 대량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많은 싱가포르인이 중공의 거짓말에 기만당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수련하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시기였습니다. 어떤 친구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히 수련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가족과 친척도 왜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이 두려운가. 매체에서 한 말은 다 거짓이다. 나는 대법의 신기함을 직접 체험했다’라는 신심이 일어났습니다.

2. 진상을 널리 알리다

법을 얻은 초기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꿈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남편이 제 옆자리에 앉아있었고 정신이 이상한 이웃 한 명도 와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계속 헤매다 삼림으로 들어가 버린 저는 무서웠습니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보여 길을 물어봤습니다. “이 길을 가야 큰길로 나갈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이 길은 가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순탄치 않아 뚫고 나가기가 힘듭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뚫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저는 ‘그렇다. 수련의 길은 스스로 걷는 것이 아닌가, 누가 데리고 나가겠는가, 당신이 가지 않고 당신이 가서 뚫지 않으면 아예 나가지 못한다’라고 인식했습니다.

또 한 번은 진상에 대한 꿈을 꿨습니다. 꿈에 진흙탕에 다수의 흰옷을 입은 사람과 소수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양 소맷자락을 흔들며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제게 빨리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꿈은 빨리 사람을 구하라는 사부님의 점화였습니다.

저는 박해가 발생한 후에 대법 수련을 시작한 정법 시기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법을 실증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은데 중공의 모함으로 박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처음에 저는 집마다 다니며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구식주택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아 계단을 오르내리면 온몸에 땀이 흥건했습니다. 저는 매일 두 개 단지를 돌며 전단을 배포했고 문 앞에 사람이 있으면 대면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견지하면서 이웃들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대법 책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두 다리가 교란을 받아 계단을 오를 수 없었던 적도 있었는데 수동적으로 감당했습니다. 당시 발정념으로 교란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 한동안 굽은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3. 중국인을 구하다

세인은 모두 중공의 거짓말에 독해되어 있습니다. 특히 중국인들은 심하게 세뇌되어 있습니다. 저는 8년 전부터 길에 나가 중국인들에게 대면 진상을 하고 삼퇴를 권하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습니다. 공원, 역, 지하철, 관광지, 소상인센터, 대형할인점, 아파트단지 등등 곳곳에 중생들이 구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제가 중생을 구도하며 동시에 자비를 수련해 내는 수련의 장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당시 저는 경험이 부족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심성도 경지도 높지 않았습니다. 모욕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어 한두 마디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심성이 제고되어 온전히 상대방을 위해야 한다는 인식이 들었습니다. 저는 상대가 어떻게 해도 우선 참고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마음이 평온하면 진상이 술술 잘되면서 쉽게 소통되었습니다. 차츰 저는 선해지고 자비로워졌습니다.

저는 또 밍후이왕 교류문장을 읽어 수련생들의 경험을 참고로 했습니다. 같은 문제에서도 수련생마다 방식이 달랐으며 진상을 알리는 말도 시작과 끝이 달랐습니다. 저는 배울 점은 종이에 적어 익히면서 자신의 방법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점차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할 수 있게 되었고 응대가 자유로워졌고 지혜가 끊임없이 나와 자신도 놀라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중생 구도하려는 제자의 마음을 보시고 전부 해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저 입만 움직여 말할 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중공 사당의 당,단,대(黨, 團, 隊)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친절하고 친구 같으며 그들을 위해준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으며 한번 스쳐 가는 중에도 중생에게 자비를 남겨줘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한번은 중국 유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밝히며 “이런 것 믿지 않습니다. 저는 대학생입니다. 과학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황하지 않고 “대법 사부님의 경서의 법리가 바로 과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많은 예를 들어줬고 수련 전후에 발생한 변화도 알려줬습니다. 그의 질문에 모두 답했습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데, 왜 그는 마지막에 종교로 들어갔을까요? 저는 학력이 당신보다 높지 않아 더 깊은 것은 당신 스스로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반 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그는 “나는 그동안 신과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고 오로지 과학만 믿고 살았습니다. 오늘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신이 한 말을 믿습니다. 단, 대에서 탈퇴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번은 청년 세 명을 만났습니다. 한 청년이 장난스럽게 푸젠(福建) 말로 말해 저도 푸젠 말로 이야기했습니다. 청년은 재미있어하며 저를 조롱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청년이 저 친구는 예절을 모르니 신경 쓰지 말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틈에 그에게 단, 대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있다며 당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살인데 당원인가요?” “열여섯입니다.” “공무원 가족이네요.” 그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가명으로 탈퇴시켜주겠다고 하니 그 청년은 좋다고 했습니다.

또 한번은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릴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중국 여행객이 진상을 다 듣고 자신은 중공 조직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두 손을 높이 들고서 “파룬궁은 좋습니다. 파룬궁은 좋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두 번 외쳤습니다.

다른 한 중국인 근로자는 자신은 악당의 어떠한 조직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홍콩이 왜 그렇게 복잡한 줄 아세요? 홍콩 경찰이 홍콩인을 그렇게 폭행할까요? 중국공산당(중공)은 문제에 직면하면 총을 사용해 사람을 죽이고 피를 봅니다. 악독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만약 가입했더라면 반드시 탈퇴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예는 순조로울 경우입니다. 순조롭지 못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중국인이 저를 매국노라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한 마음으로 박해 진상을 알리니 그는 당에서 탈퇴했습니다. 저는 삼퇴를 권하면서 사람들이 삼퇴하고 나면 표정이 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삼퇴한 사람은 얼굴이 밝고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한 번은 한 남성이 에포크 타임스 신문을 받아 쥐고 “이것은 반공 신문이다. 중국이라면 너는 붙잡혔다. 넌 왜 나쁜 일은 하는가? 돈은 얼마나 받는가? 자원봉사면 돈벌이도 되지 않는데 하지 마라. 이 신문은 낙서다”라며 “우리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강대하다. 우리 중국인은 다 알고 있다. 나는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밉다. 당신들을 증오한다. 우리는 미래에 최고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의 친구가 왔고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중국인입니다. 저는 당신들이 삼퇴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중화 자녀, 황제 자손이 되고 마르크스, 레닌 자손은 되지 마세요.”

저는 또 “자비로우신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 당신들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파룬궁이 좋지 않습니까? 중공이 파룬궁을 20년 동안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총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저를 보면 나쁜 사람 같습니까?”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이라고?”라며 놀랐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당신들에게 아직 진상을 알리지 않았네요. 파룬궁은 현재 100여 개 나라에 전해졌으며 각 정부에서 고덕대법(高德大法)이라 칭찬합니다. 왜 중국에서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면 박해받을까요? 파룬궁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 불과 몇 년 만에 1억 명이 수련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중공 우두머리 장쩌민은 파룬궁 수련자가 많아지자 질투심으로 수련생을 박해해 죽이고 고문하며 살아 있는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합니다. 휴대전화로 인터넷에서 이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합니까?”라고 물어 제가 “명백한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그들에게 ‘천안문 분신’ 조작 사건과 ‘1만 명 평화청원’ 내막을 들려줬고 구이저우(貴州) 장자석(藏字石)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린다.”[1] 라는 이치를 이야기해주며 중공의 순장품이 되지 말고 중공의 죄를 뒤집어쓰지 말며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의했고 가명으로 탈퇴했습니다. 또 처음에 저를 욕했던 그들은 제 나이를 알고서는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성명쌍수공법(性命雙修功法)인 파룬궁을 수련 덕분이라고 답했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삼퇴를 권해 평안을 보장받게 한다고 답하자 그는 “어디에 가면 에포크 타임지를 살 수 있습니까? 저는 그 신문을 좋아합니다. 그 신문이 전하는 소식은 중국에서 듣고 본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주며 날짜가 좀 지난 신문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괜찮습니다. 신문만 있으면 됩니다. 잊으셨나 봅니다. 한 달 전에 제게 신문과 소책자를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도 그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걸어오는 저를 보고서 빵을 빨리 먹으려고 입에 가득 넣어 넘기기 힘들어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 음식을 먹으면 예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상관없으니 그에게 천천히 먹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는 단, 대에서 탈퇴했습니다. 그에게 진상 달력을 주고 밍후이왕에서 ‘전법륜’을 찾아서 보라고 하니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4. 우담바라가 피다

불경에 “우담바라 꽃이 피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담바라는 3천 년에 한 번 핀다는 귀한 꽃인데 우리 집에 세 번 피었습니다. 8년 전 대면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하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우담바라가 피었습니다. 이후 올해 7월 6일 오전, 화분에 심은 카레 나뭇잎에 흰 꽃들이 피었습니다. 꽃가지는 가늘어 실과 같고 꽃잎은 옥과 같고 꽃 색은 눈처럼 하얀 것이 아주 신비했습니다. 세어보니 26송이였습니다. 이어 두 달 후에는 과실나무에 우담바라가 또 나타났습니다.

저는 집에 피어난 우담바라는 사부님의 거듭된 격려라고 인식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의 길 내내 저를 점오해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간혹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었고 태만할 때도 있었으며 신체에 교란을 받을 때도 있었고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자는 늘 사부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꿈에서는 길을 가로막는 사람과 격렬하게 논쟁하며 경찰에 신고해야겠냐고 하면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저 자신을 인식했고 안으로 집착심을 찾아보았습니다. 강한 쟁투심과 과시심 그리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항상 대법으로 가늠해야 했지만, 자신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습니다. 참지 못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 마음을 찾았습니다. 저는 후회막심했고 빨리 이런 사람 마음을 닦아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얼마 남지 않은 수련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정진 실수해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대법을 얻어 받은 혜택은 정말 많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저는 나이에 비해 아주 젊게 보입니다. 진상을 들은 싱가포르 젊은이가 “선생님 혈색이 좋아 보이십니다. 오십 넘으셨나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칠십 넘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속인의 많은 친구가 세상을 떠났고 어떤 친구는 온몸에 병이고, 어떤 친구는 너무 늙었습니다. 친지들은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제 모습을 모두 보았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빨리 진상을 알기를 희망합니다. 저도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에 어울리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 쓰신 ‘홍음’ 중 ‘태산(泰山)에 올라’[2]를 읽으며 서로를 격려하며 법회 원고를 마치고자 합니다.

높은 계단 천 척 길을 오르나니
가파른 굽이굽이 발걸음이 더디네
고개를 돌리니 마치 정법수련을 보는 듯
반공중에 멈추면 제도받기 어렵도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근다리 옮기나니
괴로움을 참고 정진하며 집착을 버리네
천백만 대법제자
공성원만하여 높은 곳에 있도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태산에 올라’

(2019년 싱가포르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27/3975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