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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심’에 시장을 주지 말자

의존심으로 인한 박해 위험에 대해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일전에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이 납치와 재산 몰수를 당했고, 지금까지도 몇몇 수련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납치와 재산을 몰수당한 수련생들에게는 ‘대(大)’자라는 공통점 하나가 있었다. 바로 크고 갖추어진 자료점이거나 대형 자료점이거나 대형 법공부장이었다. 수련생 말을 빌리자면 당시 박해당한 수련생이 모두 현지의 엘리트였고 각자 모두 뛰어났는데, 왜 하필 이런 ‘엘리트형’ 수련생들이 박해를 당했을까? 수련의 각도에서 큰 자료점과 법공부장이 세워졌던 과정을 보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의존심’이 가장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의존심의 가장 큰 위험성은 감당하는 수련생의 압력을 가중해 수련 상태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박해당한 A 수련생은 집에 자료점을 개설했다가 다른 항목을 맡은 수련생들이 직접 만든 자료를 받았고, 하나둘 주고받다가 ‘크고 갖추어진’ 자료점 하나를 세우게 됐다. 원인은 많은 수련생이 그녀와 친했고 그녀가 일을 잘해서 자료를 빨리 처리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료가 전면적이고 충분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었고, 자료를 가지러 오면 대부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관건은 우리가 그녀의 최근 수련 상태를 고려해 자료를 보내고, 파악한 상황에 따라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다른 수련생의 압력을 해소해 주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할 때의 기점과 수련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 그녀는 문제가 생기기 두 달 전, 법공부를 하면서 책을 떨어뜨릴 뻔했고 발정념 할 때 손이 자주 넘어갔다. 나는 이전에 숱하게 말해줬으므로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주변 수련생에게 그녀를 일깨워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사심과 수련생에 대한 정, 그리고 ‘말해도 소용없다’라는 관념의 장애로 그녀를 해치게 됐다.

많은 수련생은 B 수련생에 대해 유능하고 사심이 없다고 평가했다. 물론 사심이 없는 것은 좋지만 유능한 것은 단지 겉보기에 불과하다. 수련은 일이 아니라 심성에 견주는 것이다. 주변 수련생은 또 그녀를 부러워했고 자신과 그녀의 격차가 너무나 크다고 여겼다. 그녀에게 자료를 부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원하는 자료가 많으니 그녀의 기계도 늘어났다. 그녀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기계가 늘어나면 이것이 고장 나도 저것이 있어 필요한 만큼 기계를 돌릴 수 있고, 자료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녀는 자료를 기본적으로 모두 큰 자루에 담았고, 누가 와서 자료를 요구하면 많든 적든 모두 제공할 수 있었다. 다른 수련생의 말대로 그녀에게는 사심이라곤 없었으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극히 적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량의 시간을 점유 당했고 체력과 에너지가 모두 부족했다. 수련 상태는 계속 떨어졌으며 한 번 박해당하고 돌아온 후에는 발정념할 때 가부좌만 하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연달아 손이 넘어갔다. 일을 당하기 전에는 조금 좋아졌지만, 5분 중 앞의 2분은 조금 괜찮다가 이후에는 여전히 그랬다. 사람들이 여러 방법을 썼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의존과 감당은 서로를 해치는 관계다

A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날마다 극도로 집중해 많은 일을 하면서 향과 진에 자료를 보내야 했고, 새로운 법공부장을 편성하고 유지해야 해 일정이 가득했다. 집안의 자료도 계속 쌓였고, 이것을 마치면 저것을 시작해야 해 한가할 때가 거의 없었으며, 항상 저녁에 소파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바빠서 정신이 없을 때 누군가 집에 와서 조금 한가하게 있으면 즉시 불러서 함께 일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을 도맡아 하는 바람에 주변 수련생은 그녀의 후광 아래 일하게 됐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른 수련생이 제고할 곳이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 의해 억제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의 장악과 보호로 인해 다른 수련생이 그녀에게 의존심을 가지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좋지 않은 반응을 일으켰다. 한번은 내가 일이 있어 A에게 갔었는데 마침 그녀도 밖에서 돌아와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수련생이 와서 자료를 챙겼는데, 잠시 머무르다 자료를 들고는 몇 마디 말을 하고 떠났다. A가 나에게 “보세요. 방금 집에 와서 몇 숟가락 뜨기도 전에 사람이 세 번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A가 너무나 힘들다는 걸 느꼈다.

또 한 번은 B가 나에게 삶은 호박과 사과를 식사로 대접했다. 나는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어서 왜 이렇게 먹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호박과 사과를 먹으면 식사와 과일이 한꺼번에 있어서 시간이 절약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련생들에게 제때 충분하게, 심지어 과량의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그녀는 먹는 일에도 머리를 쓰고 있었다. 가끔은 깊은 밤에 발정념을 하고 나서 다시 두 시간 동안 자료를 만들었으니 정말 몹시 고생스러웠다. 자료를 가지러 오는 수련생을 생각해봤다. 그들은 시간과 힘을 덜고, 일과 걱정을 덜면서 다른 수련생의 감당을 바랄 수 있을까? 이기적인 행동의 대가가 크지 않을까? 그들의 의존으로 인해 이 수련생은 끝없이 반복되는 번잡한 업무에 빠져버렸다. 나는 이 수련생을 돌아가는 팽이나 태엽이 감긴 시계에 비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일 수만 있고, 머리로는 온통 일을 어떻게 할지만 생각하다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는 정말 이런 사람이 없는가?

D 수련생은 정직하고 정념이 무척 강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의 집에 있는 법공부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열네댓 명이 모였고, 수련생 대부분은 그의 정념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이 정념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배경에는 그의 집에서 법공부를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하는 데 집착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의존하는 요소가 있지 않았을까?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아지고 심성 수준도 달라서,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 전에 수구(修口)하지 않았고, 결국 쓸데없는 말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법공부를 마치고도 성에 차지 않아 수련생 집 아래에 서서 계속 떠들었고, 다른 수련생과 법공부장의 안전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D에게 법공부 팀을 두 개로 나누어 법공부 전에 하는 속인의 잡담을 막자고 말했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고 누구를 쫓아내려 하느냐고 말했다. 나는 쫓아내는 것이 아니고 법공부장을 새로 만들려는 수련생이 있는지 물어서 일부 사람을 분리하자고 했다. 그는 괜찮다며 우선 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마당을 원용시키는 자비로운 행동이며, 심성이 제고된 표현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신이 제고됐다고 이 팀까지 제고된 것인가? 나중에 법공부장은 일이 생겨 해산됐다. 듣자 하니 어떤 사람이 새 법공부장을 세웠는데, 어떤 사람은 감히 오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혼자 법공부를 했다.

의존을 받아주는 사람에게 강대하고 완고한 자아를 키우게 한다

한번은 내가 A에게 “저는 정말 언니가 일을 멈출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건 언니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내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엇이 수련인지, 일하는 것이 수련을 대체할 수 있는지, 무엇이 대법제자인지,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인지, 최후의 이 길을 어떻게 잘 걸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이 일을 내가 안 하면 누가 해?”라고 말했다. 나도 주변 수련생 중에 언니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주변 사람과 함께 하면 더욱더 좋지 않았을까? 일단 자아가 형성되자 다른 사람을 비웃는 심각한 일까지 저지르게 됐다. 그녀 주변에서 협력하는 수련생은 모두 말을 할 수 없었고 말만 하면 그녀는 화를 냈다.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화내는 이유가 한 무더기여서 거꾸로 다른 수련생을 질책했다. 다른 수련생이 지적하면 그녀는 자신의 공간장에 좋지 않은 물질을 보탰고, 다른 수련생이 위로하는 말을 하면 듣지 않으려 했으며 들어주지도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끔 거절하는 것도 일종 선의의 표현이자 기초를 다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B에게 “당신에게 거절당하고도 자료를 부탁하는 수련생이 있나요?”라고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없어요.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모두 수련생인데, 다른 수련생에게 필요하다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내놔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서 내놓았다. 그러나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기계가 너무나 많은데 당신이 관리할 수 있는가? 당신은 공능으로 그렇게 많은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가? 만약 움직일 수 없다면 당신은 자료의 수량과 품질을 보증할 수 있겠는가? 이따금 그녀가 눈코 뜰 새 없을 때를 보면 항상 불량품이 나온다. 게다가 대부분 보기에 좋지 않은데 일하기와 수련이 한 가지 일일 것이다. 수련생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고 거절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간 안배가 적절하고 여력이 있어야 한다! 의존과 감당은 모두 집착심이며 배후에는 또 ‘정’이 따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이 있으면 비(悲)가 아니다.”[1] 사람의 마음이 있으면 곧 시비가 있고, 사람의 마음이 있으면 곧 정이 있으며, 사람의 정이 있으면 곧 거절하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연달아 감옥에 들어갔는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명(名) 때문이다. 나온 후 그녀는 시간을 아끼며 다그쳐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처음에 우리는 상의했으며 우선 그녀에게 한동안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를 해 심성이 올라오면 기계를 배치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며칠도 안 되어 우리 몰래 개인적으로 기계를 갖췄는데 역시 한 대에 그치지 않았고 머지않아 그녀의 집은 또 ‘작은 공장’이 됐다. 수련생들이 여러 차례 충고했지만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녀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이랬다. ‘당신 말이 맞지만 나는 고치지 않겠다.’ 자아로 충만했고 태도가 몹시 완강했다.

의존심은 다른 집착심도 유발한다

의존심은 다른 집착심이 일어나는 것도 조장하며 확실히 드러나는 것은 원한심이다. 일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A가 받는 압력도 갈수록 커졌고 교류하면서 자주 화를 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이 나오거나, 처리한 일에 허점이 있거나,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나는 가끔 일을 서로 바꾸면 내가 그런 환경에서 어떤 것을 불러오겠는지 상상했다. 겉으로 보면 얼마나 좋은가? 누가 오든 간에 기쁘게 와서 만족하며 돌아가고, 누구도 빈손으로 가지 않으니 과시심과 환희심이 생기지 않을까? 자료를 만들지 못하거나 충분하지 않으면 조급증이 생기지 않을까? 자료를 보내지 못해 많이 쌓이면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고, 수련생이 와서 자료를 돌려주면 원망하거나 체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을 깊이 캐보니 수많은 집착심이 모두 생길 수 있었다!

납치됐던 C와 교류하면서 그의 돌아온 후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원한임을 알게 됐다. 자신에게 이것저것을 안배한 다른 수련생을 원망하고, 직접 가서 하지 않고 자신에게 일을 안배한 사람을 원망하면서도 체면 때문에 거절을 못 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는데, 이처럼 못마땅하고 피동적인 태도의 결과가 좋을 수 있겠는가? 속인들도 억지로 비틀어 딴 참외는 달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강요하고 억지로 하는 것이 모두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련생에게 묻고 싶다. “나는 이 일을 못 해요”, 또는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으니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없을까요?”, 또는 “하던 일을 마치려면 며칠 걸리는데 괜찮을까요?” 등 이런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리고 일을 안배하는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에게 이렇게 해도 좋은지, 괜찮은지 묻거나 어떤 곤란이 있는지 물어봤는가?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상대방을 생각해 봤는가?

나는 어떤 수련생에게 기계 한 대를 더 주려고 의논한 적이 있다. 나는 한 대가 고장 나도 다른 것이 있으니 두 대가 있으면 좋은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듣자마자 거절했다. 그는 자신의 심성이 부족하다고 했으며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올해 기계 한 대를 더 들였고 나를 만났을 때 “심성이 도달해서 마음먹고 기계를 추가했어요.”라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니 내 마음도 아주 기뻤다. 드디어 심성이 제고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이치를 어떤 사람은 단번에 인식했으며, 어떤 사람은 천천히 깨닫고 천천히 인식했다. 어떻게 깨달았든지 안 될 것이 있는가? 단번에 인식하면 더욱 좋고 천천히 깨닫는 그것도 되는데, 모두 깨달은 것이 아닌가? 모두 깨달은 것이므로, 어느 것도 괜찮다.”[2]

맺음말

우리가 집착심을 찾기는 쉽지만 집착심 배후의 관념을 찾기는 몹시 어렵고, 그 집착심과 배후의 관념을 버리기는 더욱더 어렵다. 가끔 우리가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노력해서 해내지 않은 것이며 마음을 써서 잘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해내어야 수련이로다”[3]라고 하시지 않으셨는가? 자료점을 세우는 것에 비유하자면 만약 몇 년 전에 당신이 그 한 걸음을 크게 내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당시에 큰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인해 지금도 일이 순조롭지 않은가? 만약 매 개인이 모두 상대방을 생각하지 못하고, 정체를 원용하지 못하며, 관념을 돌파하지 못하고,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렇게 큰 자료점과 큰 법공부장이 생존할 공간이 없을 것이며, 대량의 업무를 늘 몇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의존심이 없다면 사악이 어떻게 의존심을 이용해 박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 수련인 앞에 펼쳐진 매 하나의 마음이 모두 담이자 산이다. 돌파하면 곧 하늘이며 돌파하지 못하면 곧 산이다. 이런 의존심, 질투심, 과시심, 일하려는 마음, 체면 등등은 모두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집착심 하나하나에 크게 시장을 내준다면 수련에 큰 어려움이 많아지고 심지어 더욱더 많아질 것이다. 의존심에 시장을 내주지 말고 매 한 가지 집착심에 시장을 내주지 말아야만 수련자가 머릿속에 시시각각 담아야 할 것을 담을 수 있다.

보잘것없고 서투른 견해이니 적절하지 못하고 부족한 곳은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원문발표: 2021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1/14/4185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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