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0년 10월 30일 오전 11시 20분, 나는 지역 파출소의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누구시죠?”라고 하자 그는 “저는 파출소 경찰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무슨 일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당신의 정황을 알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나는 “우리 같은 연공인은 사실 당신 같은 경찰의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당신도 여러 해 동안 경찰을 했으니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당연히 잘 알겠지요. 기왕 내 정황을 알고 싶어 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겠는데 당신이 마음을 놓아도 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 경찰에게 최근 몇 년간의 내 수련 경험과 변화를 이야기했다.
남편이 일찍 떠나자 시부모님께 두 배로 효도하다
막내딸이 두 살도 되기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내 생각에 시부모님도 남편을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우리에게 이 집이 있게 해 주셨고 우리 네 식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우리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시부모님께 두 배로 효도하며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잊고 말년을 편히 지내시게 해 드렸다. 나는 내 생각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두 딸에게 알려줘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효도해야 함을 알게 했다.
남편이 있을 때 우린 월급이 적었기에 시부모님께 매월 50위안을 드렸는데 지금은 매월 100위안(한화 1만 칠천 원)을 드린다. 막내딸이 다섯 살 되던 어느 날, 밖에서 놀다 시어머니가 오시는 걸 보고 급히 내게 달려와서는 “엄마, 잊지 말고 할머니께 100위안 드리세요”라고 했다. 처음엔 나도, 시어머니도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시어머니가 나중에 아시고는 “네가 내게 매번 100위안 주는 걸 애가 본 거야. 그래 내가 오는 걸 보고 ‘100위안 드리세요’라고 한 것이겠지”라고 하셨다. 나는 시어머니께 또 100위안을 드렸다. 시어머니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시자 나는 “어머니, 애가 이런 효심을 갖기도 쉽지 않은데 어쨌든 받으세요. 저도 아이 뜻을 들어줘야죠”라고 말씀드렸다.
속담에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나는 아이와 함께 쇼핑하는데 우리는 시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옷가지와 식품을 먼저 샀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출근길에 나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납치됐다. 큰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와 할머니를 잘 보살펴드렸다. 내가 억울한 판결로 옥살이를 하게 된 이후 시어머니는 딸에게 “네 엄마가 돌아오면 나는 네 엄마를 따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전에 회사 다닐 때 보험에 들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박해당하고 직장을 잃었기에 이제는 내가 벌어서 양로보험금을 내야 했다. 아침 4시에 일어나 피시방에 가서 아르바이트하고, 노인이 일어나실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가 오전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나가 막내딸을 대학에 보냈다. 회사 상사가 내가 점심때 집에 가서 시어머니를 보살핀다는 말을 듣고 내게 “12시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10시에 가세요”라고 했다.
어디를 가든지 좋은 사람을 만나다
때로 시어머니가 병이 나면 링거를 맞아야 하는데 보통 일주일 맞는다. 맞고 나서 내가 “어머니, 좀 좋아졌어요? 더 맞을 필요 없으면 가서 계산할게요”라고 하면 어머니는 “그래라”라고 말씀하신다. 노인이 좋다고 하면 나는 비용을 생각하지 않았다. 시누이가 “셋째 언니, 모두 언니처럼 하면 어느 집 노인이 걱정이 있겠어요”라고 했다.
다투지도 빼앗지도 않고, 집도 이익도 양보하다
나와 큰딸은 각자의 사정으로 계모가 됐다. 지금 세상은 친모라 해도 자식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데 계모는 더욱 감당하기 어렵다. 나는 연공하기에 일에 부딪혀도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했기에 나중에 이룬 가정생활도 행복했다.
내 부동산은 고인이 된 전 남편과 나의 소유이다. 현재의 남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내 막내딸보다는 3개월 더 빠르며 둘 다 혼담이 있을 나이가 됐다. 내 집은 철거 예정이라 아들 집 문제로 큰딸과 상의하기를 “너는 결혼해 지방에 살고 있고, 내가 지금 네 남동생에게 집을 사줄 능력이 없으니 80㎡짜리 네 집을 동생이 살도록 해줄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큰딸은 “그러세요”라고 했고, 둘째 딸이 옆에서 “엄마, 파룬궁 연마하는 사람들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군요. 집을 달라고 하는데 주다니? 저라면 무슨 말을 해도 못 하지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네요!”라고 했다.
두 딸의 고모 몇 분이 이 결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동의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어딘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내 집이니 내 맘대로 한다지만 아이 고모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분들께 말하고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이렇게 하는 것 역시 그분들에 대한 존중 아닌가. 최종 결정은 집의 소유권은 딸이 갖고 아들은 거주권만 갖기로 했다.
하루는 형님(남편의 누님)이 딸에게 나와 상의해 보라고 하며 자신의 100㎡ 되는 집을 120㎡ 되는 내 집과 바꾸고 싶다고 했고 차액은 형님이 내게 지급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임을 생각하고 두 딸에게 “네 아빠가 돌아가시고 너희 큰고모가 우리를 항상 도와주셨다. 기왕 큰고모가 말씀하셨으니 우린 무조건 승낙하자”라고 했다. 일이 끝나고 형님은 “정말 복 받았네. 필요할 때가 되면 큰방 둘을 나눌 수 있을 거야”라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모친은 항상 병을 달고 살았기에 부친이 나를 업고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캤다. 큰 남동생은 내가 어려서부터 집에서 고생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것을 안다. 촌민위원회로 서명하러 가서 큰 남동생을 만났고 그는 내게 “누님, 우리 아버지의 오래된 그 집에 대해서 서명이 끝나면, 나와 동생이 누님께 각각 5만 위안(한화 약 851만 원)을 드리기로 했어요. 나는 더 많이 드리고 싶었지만, 아들이 ‘아빠, 큰어머니께 더 드리세요. 둘째 숙부 경제 사정도 고려해야지요’라고 하기에 아들의 말도 그렇고 해서 우리도 누님께 더 드릴 수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나는 듣고 기뻤다. 조카가 둘째 숙부의 경제 여건도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보다 나았다. 정말 좋았다. 형제의 화목은 금처럼 소중하지 않은가!
분만실의 기적
내 큰딸은 노령 임산부인데 임신 7개월 때 갑자기 탯줄이 끊어졌다. 병원에 갔을 때 태아는 이미 태동이 없었다. 의사는 생명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며 딸과 사위에게 아이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즉시 딸과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며 사부님께 ‘아이를 구해주십시오’라고 빌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 외웠다. 얼마나 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딸이 태동이 있으며 살아나 발로 찬다고 했다. 의사가 간호사를 불러 아이의 태동을 측정해 보니 정상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아이가 산소 결핍 시간이 길었기에 발육이 비정상이기 쉽고 또 조산할 수도 있는데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게 되면 돈도 많이 듭니다. 아이가 마지막에 어떠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탯줄이 떨어졌기 때문에 임산부도 감염되기 쉽고 이때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생명이 위험하게 됩니다”라고 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연공인이라 살생할 수는 없었기에 아이를 포기하는 결정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6개월 됐을 때 예방접종을 하러 갔다가 아이에게 심각한 빈혈이 있으며 게다가 심장 혈액 공급이 부족해 항상 생명 위험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았다. 딸은 저번의 일이 있었던 터라 병원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딸이 전화로 내게 “엄마, 나 아이 데리고 엄마에게 가서 1개월쯤 있고 싶은데 아이 먹을 음식 좀 해주세요”라고 했다. 사위가 듣고 딸에게 “당신이 장모님에게 가서 만약 아이가 잘못되면 내가 먼저 당신을 칼로 찔러버릴 것이고 다음엔 당신 부모와 남동생도 찔러버리겠다!”라고 했다.
사위가 딸의 고모들에게 전화하다
사위가 전화로 딸의 고모들을 불렀다. 딸도 나와 아버지를 전화로 불렀다. 내가 가서 딸에게서 이러한 말을 듣게 됐다. 나는 딸에게 “얘야, 연공인과 연공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모순이 생기면 틀림없이 연공인이 잘못한 것이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얼른 찾아보고 자신을 바로잡도록 해라.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으니 아이는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위는 연공하지 않기에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것을 그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 것이며 그래서 이렇게 무리하고 극단적인 독설을 내뱉은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1만 위안(한화 약 170만 원)을 가지고 딸집에 가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이튿날 막내딸이 차를 운전해 큰딸을 태우고 물건을 싣고 집에 데려왔다. 막내딸이 내게 “엄마,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마. 난 언니 이혼을 지지해”라고 했다. 사위는 2019년 12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데 사위의 개인보험, 자동차보험, 방세, 고등학생 아들 학비, 집안의 경제적 지출 모두를 큰딸이 부담했다. 딸이 잘 때 사위는 딸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샅샅이 살펴보기도 했다. 하루는 딸이 생리통으로 배가 몹시 아파 사위에게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라고 했다. 사위는 그날 마침 부친의 집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와서 아이 보라는 소리를 듣자 집에 와서 딸에게 화를 내며 아이도 돌보지 않고 뭣 하느냐고 했다. 큰딸은 화가 나서 이혼하기로 했다.
그 뒤 사위는 작은 대야에 옷가지 몇 벌과 장난감을 담아서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거실에서 외손녀를 보고 있다가 큰사위가 온 걸 보고 외손녀의 손을 잡고 얼른 “아빠 왔어요. 어서 오세요, 환영해요!”라고 하라고 했다. 이때 큰딸이 침실에서 나오며 말하기를 “엄마, 저 사람이 엄마에게 어떻게 욕했는지 아시잖아요?”라고 했다. 나는 “그건 네가 잘하지 못해 엄마를 욕먹게 한 거지. 네가 잘했으면 사위가 감사해도 모자랄 것인데 그가 어떻게 나를 욕하겠느냐?”라고 했다. 이후 딸에게 “네 남편이 너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뒤져본 것은 너의 지출이 투명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의 교제가 마음 놓을 수 없었거나 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딸은 “그런 일 없어요”라고 했고 나는 “얘야, 우리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한 가족이 된 것은 연분이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는 TV에서 중공(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거짓말에 너무 깊이 독해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잘하는 것만 있을 뿐이고 그래야만 그를 진정으로 구할 수 있다”라고 했다. 얼마 전 아들이 집에 와서 “어머니, 우리 회사 상사가 바뀌었는데 규칙이 가혹해요”라고 했다. 나는 “얘야, 상사가 어떻다고 말하지 마라. 네가 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상사가 시킨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청소를 깨끗이 해라. 규칙은 너에 대해 어떤 제약도 할 수 없음을 느낄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했다. 어떠한 모순이 생기더라도 자신에게서 찾으며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됐고, 좋은 사람보다 더욱 좋은 사람이 됐다.
경찰에게 진상을 말하다
경찰의 질문에 대답할 때 나는 수련 중 두드러진 일들을 말했다. 경찰은 계속 듣고 있다 이따금 한마디 끼어들었다.
시부모와의 관계를 말하자 경찰은 “아들도 죽었는데 당신이 노인을 부양해요?”라고 하며 탄복했고, 부모가 남겨주신 집을 갖지 않은 것을 말하자 “지금은 결혼한 딸이 친정에 와서 재산을 다투는 일도 많지요”라고 했다.
경찰의 말에서 그가 대법제자의 사상 경지가 높으며 이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경찰에게 “생각해 보십시오, 절실한 이익과 생명이 위험한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도 포기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분신(自焚)하고 자살하며 살인할 수 있겠습니까? 집에선 부모님께 효도하고, 직장에선 착실히 근무하며, 탐욕을 부리지 않고 사람마다 잘하면 이 사회도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나는 촌장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노인께 불경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집을 가지고 다투고, 이혼하는 일들은 없게 될 것입니다. 경찰께서는 절대 우리 같은 사람을 박해하는 데 참여하지 마세요. 우리는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라고 했다.
경찰이 “그런 건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댁의 집에 가지 않겠으니 당신께서 장소와 시간을 정하세요. 나는 당신 같은 분을 당장 만나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두 차례 박해를 당해서 항상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댁이 잘하지 못한 것을 뜻하는데 잘했다면 댁이 왜 두려워합니까?”라고 했다. 점심때가 다 됐기에 나는 “당신도 식사해야 하고 또 이렇게 시간을 많이 점했습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당신도 식사하셔야 하는데 우리 서로 이해합시다”라고 했고, 나도 “우리 서로 이해합시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했다.
이번에 전화를 받자 진상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맨 먼저 떠올랐다. 파출소 경찰들은 우리가 알려주는 진상을 들을 기회가 없고 매체의 거짓말만 듣고 볼 뿐이다. 어떤 때는 그들도 하는 수 없이 상부의 압력으로 생존을 위해 하며, 그들의 일이 특수성을 띠고 있기에 부득이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서로 이해합시다”라고 한 것은 그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연히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그들이 잘되도록 대법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 사당(邪党)이 우리를 박해하는 것을 말하며, 박해에 참여한 후과를 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들이 진상을 알게 되면 더는 참여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감소하게 되고 동시에 그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해줄 것이다.
내가 깨닫기로 이번 ‘제로화 운동’은 우리의 수련 심성에 대한 한 차례 큰 고험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가 평소 모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법에 따라 부동한 층차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를 해냈을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지고 잘하게 해 주시기에 넘지 못할 관이 없게 될 것이고 박해도 멀리 사라질 것이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3/4168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