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노년 수련생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이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는 일을 참 잘했는데 올해 하반기부터 복부가 붓고 배설이 되지 않아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얼마 견지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 사이에 여러 수련생이 그녀를 보러 갔고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했으며 안으로 찾으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그녀는 시종 “무엇을 찾으란 말인가요? 틀린 것이 없어요. 세 가지 일도 잘하고 있는데 왜 이럴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풀리지 않은 의심과 원망심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내 주변에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수련생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입버릇이 있다. “사부님께서 하시라는 것 다 했어요.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요? 또 뭘 찾으란 말인가요? 왜 늘 나아지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말한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왜 늘 저만 고통스러울까요?” 이런 수련생은 아주 억울해하고 자신이 대가를 많이 치렀는데 왜 병업이 이렇게 심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동시에,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으라고 하셨다. 이런 수련생 중에서 어떤 사람은 안으로 찾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안으로 찾기를 원치 않으며, 어떤 사람은 안으로 찾을 줄 모른다.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는 것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의 통폐이고 상태가 좋지 않은 근본 원인이다.
수련 중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이 수련생은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여기에서 넘어진 것이다. 심지어 부정확한 상태, 극히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지속됐고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문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첫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은,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수련하는 신(神)이 아니므로 수련과정 중에 누구든지 잘못이 있게 마련이지만 관건은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어떤 사람은 인식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며 또 어떤 사람은 두려운 마음에 집착하는 등 각종 요소로 말미암아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1] “그 사악이 어떻게 미쳐 날뛰든지, 당신이 만약 결함이 없으면 그것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2] “무릇 연공(煉功) 중에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나타나면, 당신이 아직도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 당신 자신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3]
사부님께서는 누구든지 다 잘못이 있다고 하셨다. 법리에 쓴 것처럼 문제가 없으면 사악은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자신이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바로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표현이다. 잘못이 없는 사람, 완벽한 사람은 신이고 신은 수련할 필요가 없으며 더 수련할 필요가 없다. 잘못이 없는데 뭘 수련하는가? 사람 속에 있으면 무조건 수련할 점이 있고 무조건 잘못이 있다. 수련인은 모두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도 반드시 잘못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수련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비로소 신사신법(信師信法)인 것이다.
둘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은, 진정으로 수련하지 못한 것이다.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3] 매일 법공부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매일 연공하며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에 진상을 알리며 스스로 대법제자라고 자칭하며 스스로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한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대법제자는 표준이 있고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비로소 대법제자다.
다시 말하면 일하는 것이 수련이 아니고, 바쁜 것이 정진하는 것이 아니며, 적극적인 것이 착실한 수련이 아니다. 열정, 노력, 대가를 감당하는 표현은 모두 수련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수련함에 보기에는 매우 정진하는데, 법 공부도 하고 연공도 하지만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은 바로 속인이 아닌가.”[4]
예를 들어, 어떤 수련생에 대해 사실 우리는 그녀가 정이 심하고 원망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명백한 문제를 여러 사람이 그녀에게 알려줬다. 그녀가 만약 제때 바로잡았다면 집착심은 갈수록 적어지고 상황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심성은 제고되지 않고 공도 자라지 않는다.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아 心性(씬씽)이 수련되지 않으면 공이 자라지 않는다.”[3] 어떻게 해야 고층차 법을 알 수 있는가? 바로 법의 표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만약 법의 표준을 모르면 기본상 법을 얻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도 하고 남을 욕하기도 하는데 듣기 싫은 욕은 다 한다. 법의 표준은 사람과 선하게 지내야 하고 수구(修口)해야 하며 입으로 연꽃을 뿜어내야 한다. 이런 수련생은 이 점에서 수구의 법리를 얻지 못했다. 법을 배우는 사람이 모두 법을 얻었다고 할 수 없다. 법을 얻은 사람은 법이 그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일에 마주치면 법으로 가늠하며, 일을 하는데 원칙과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는데, 그러면 무엇을 수련하는가? 법리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상 관념과 언행을 닦아내야 한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하며 욕을 하면 수구, 이 점에서 심성이 속인 층차와 같다. 만약 수련생이 욕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법의 표준에 따라 하며, 어떤 일이든 남의 감정을 배려하고 수구하며 욕하는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심성을 제고한다면, 그는 공도 자라 오르고 상태도 호전될 것이다.
넷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은,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지 못함이다.
“당신에게 잘못이 있는 데도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당신은 잘못이 없으며 당신이 괜찮은 것으로 표현하면 누구든지 당신을 업신여길 것이다.”[5]
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가? 어떤 사람은 속인일 때 승부욕이 강하고 오만하며 언변에 능하고 남들 앞에서 복종하거나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여태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고 의견을 받아들인 적도 없으며 잘못을 고친 적도 없다. 이런 관념은 이미 깊이 뿌리박혔다. 그러므로 수련 후 수련생이 입이 닳도록 말해주고 자신도 법리를 알고 있지만 “나는 잘못이 없다”라는 관념이 여전히 그를 통제하고 있다. 그가 이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매일 법공부를 하고 매일 진상을 알려도 이 사람은 줄곧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개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현실을 받아들 수 없고, 자신을 찾는 일도 아예 하지 못한다.
사람이 체면을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는 목숨을 포기해도 체면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증명하려 한다. 체면을 지키는 것은 사실 자신의 명성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을 찾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명리정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수련은 집착심을 버려야 하는 것인데, 우리가 여전히 명성을 끌어안고 있으면 법과 반대로 가는 것이고 법과 갈수록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녀가 배설할 수 없어 배가 불러 공처럼 된 것은 그녀에게 내려놓지 못한 쓰레기가 아주 많다고 점화해 준 것이 아닌가? 내려놓지 못하면 스스로 안고 있어야 하고 내려놓지 못하면 괴롭다. 만약 그녀가 진정으로 부부정, 자녀정, 원한 등의 사람 마음의 집착심을 내려놓았다면 아마 그녀의 몸 상태는 자연히 나아졌을 것이다.
다섯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주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부정하는가? 시시각각 입에 올리고 매일 발정념을 하고 매일 자료를 배포하면 구세력을 부정할 수 있는가? 사실 수련하는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수련하려 하지 않고 정을 내려놓지 않을 때는 구세력과 같은 것이다.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 것도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없는 원인이다.
한 여자 수련생이 자궁출혈에 걸렸다. 그녀는 집착심을 찾으면 공책에 써 내려갔다. 그렇게 그녀는 탐욕심, 안일심, 두려움 등을 찾았고 진지하게 법에 따라 바로잡았다. 10년 뒤, 이 공책을 가득 채웠고 그녀의 자궁출혈은 나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집착심이 있으면 제거하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누락이 있으면 보충하며 사람 마음이 있으면 내려놓았다.
여섯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을 의심하게 된다.
수련생은 말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세 가지 일도 모두 했는데 왜 이럴까요?” 사실 이 말의 뜻은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왜 나를 도와 신체를 청리해 주지 않는지, 법은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지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원망하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했으면 사부님께서 마땅히 나를 돌봐주셔야 하는데 왜 나를 책임져 주지 않으실까? 법은 마땅히 날 보호해줘야 하지 않을까? 법이 왜 날 보호해주지 않지?’ 사실 이런 생각은 개인의 목적과 추구하는 마음이 깊이 숨어있다. “당신이 각종 구하려는 목적을 품고 와서 공(功)을 배우고 대법(大法)을 배우려고 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3] 어떤 사람은 무사무아(無私無我)하게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면 의심하고 미워하며 갈수록 사부님을 의심한다. 대법과 흥정하면 할수록 더 좋지 않게 되는데, 원인은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을 찾지 않을수록 더욱 법을 의심하게 되고, 법을 믿지 않을수록 더욱 수련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더욱더 속인이 된다. 사부님과 대법은 아무런 이유 없이 속인을 보호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어떤 수련생이 병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원인 중의 하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3-역시 방할하노라’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2015년 뉴욕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27/4170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