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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정념을 느슨히 하지 말아야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최후에 이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1]고 말씀하셨다. 현재 이번 정사대전 후기로 갈수록 대법제자는 더욱 발정념을 느슨히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누가 신(神)이 선택한 사람인지 아는데 신이 선택한 사람은 특수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마귀를 싸워 이길 순 없으니 공산마귀(共產魔鬼)를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우리 대법제자의 본분이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통법력 정념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주역으로 이번 사건의 향방을 결정짓는 근본요소다. 세간의 표현은 대법제자 수련상태가 반영되어 나온 것이다. 대법제자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는 청성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과를 구하지는 않지만 조사정법(助師正法)에서 우리는 느슨히 해선 안 된다.

1. 왜 매체에 따라 흔들리며 신심을 잃는가?

매체보도로부터 보자면 대통령과 그의 진영은 거의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리 많은 사람들이 곧 신심(信心)을 잃거나 또는 신심에 영향을 받았다.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어 하는 소극적 상태로 발정념 역시 형식적으로 대강대강 한다. 내 생각에 교란의 주요 요소의 하나는 무신론과 눈으로 봐야만 확실하다고 여기는 관념이 사악을 크게 보고 또 사람의 논리로 이번 사건을 추리하니 곧 ‘이미 가망이 없다’는 삿된 생각이 나타나 더욱 정념을 하지 않으면서 이제 발정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을 작게 보는 것이다. 필경 열려서 수련하는 이는 소수이고 대다수 수련자들이 다른 공간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이치상에서 깨달아 수련한다. 표면을 중시하는 이때에는 주체인 진아(眞我)가 사악을 청리하는 능력이 제약받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데 아주 쉬운 것으로서, 무슨 너무 높아서 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여기에 자리한 많은 노수련생과 오지 않은 노수련생은 이미 상당히 높은 층차로 수련되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당신에게 집착심, 득의양양해하는 등등의 요소가 생겨, 당신의 공력이 위로 자람에 영향 줄까 우려해서다. 진정하게 수련을 결심한 사람으로서, 그가 참고 견딜 수 있고, 각종 이익 앞에서 이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그것을 아주 담담하게 여길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다. 이른바 어렵다고 하는 사람은 바로 그가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법을 수련하는 그 자체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며, 층차를 제고하는 자체도 무슨 어려울 것이 없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는 비로소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실 이익 중에서 그것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 이익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겠는가? 그는 어렵다고 여기는데, 실제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이 화를 참아내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간주하여 대할 수 없다면, 내가 말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내가 과거에 수련할 때에 많은 고인(高人)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에서부터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떤 심태를 유지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2. 사악은 마땅히 즉각 해체해야

아래 부록으로 첨부한 ‘마성을 제거하자’는 2000년 9월 30일 발표된 교류문장으로 사부님께서 2000년 10월 5일 평어를 쓰셨는데 우리 지금의 일에도 귀감이 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참고하기 바란다.

이상 교류에 만약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법을 스승으로 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만교류회에 보냄’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부록 :

마성을 제거하자(사부님 평어 문장)

글/ 영국 서양인 수련생

【명혜망】 ”정과 사를 똑똑히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는 것을 나의 사상은 지금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바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우리를 사악과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모든 힘을 깡그리 쏟아서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결심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나의 사상은 마치도 보석처럼 견고하였으며 자신 사상의 일념은 산이라도 가를 수 있음을 정말로 느꼈다.”

얼마 전만 하여도 나는 줄곧 이러한 하나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오로지 우리가 사악에게 붙들려가지 않는다면, 오로지 우리가 사악과 그 악렬한 영향을 참을 수만 있다면 되는 줄로 알았다. 오로지 내가 정념을 견지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러한 사악들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이런 국한된 인식이 나의 수련 가운데 반영되어 나왔고 동시에 정법과정과 중국의 현황에 대한 나의 이해 가운데도 반영되어 나왔다.

나는, 우리가 오로지 중국의 악세력이 사악하다는 것을 똑똑히 인식할 수 있고 우리가 옳다는 것을 알며, 진상을 설명하고 악세력의 사악한 행위를 폭로만 한다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사악의 존재를 접수하였으며 이것은 참음의 표현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배후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것은 바로 소극적이고 부정확한 나의 태도였음을 모르고 있었다. 나의 마음 속에서 나는, 사악은 마땅히 소멸되어야 하고 사악은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내고 믿을 수 있는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였다.

나는 또 많은 사상업에 봉착하였는데, 나는 이것이 나의 확고함을 시험하고 또한 나에게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인정하였다. 나는 이런 사상업의 습격을 받아들였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과 그것을 가리려고만 노력하였으며 그것들은 내가 아니며 자신을 그것으로부터 가릴 수만 있다면 되며, 그러면 사부께서는 그것을 소멸해버릴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업력은 끓임 없이 솟구쳐 나왔다. 사실상, 내가 현재 정법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사용한 방식은 사상업을 대하는 소극적인 태도와 같았던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나는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사악을 소멸하는 것이 일종의 과격하고 선량하지 못한 행위로 될까봐 걱정하였다. 나에겐 어떠한 영적 생명이라도 해치길 원하지 않는 이 한 점에 대하여 착오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동적으로 업력과 사악을 소멸하는 것은 그다지 선량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도 여전히 생명의 형식이기 때문이었다.

李선생님께서는 “도법” 일문 중에서 “당신들도 ‘자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 이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자연’이란 사람이 우주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물질의 현상에 대하여 해석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스스로 그럴 듯 하게 하는 말이다. 그들 역시 그 ‘자연’이란 자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의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 일체 시달림(磨難)은 모두 필연적이고 바로 이러하다고 인정하므로, 일종 어찌할 수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생기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하고 명혜망의 문장에 대한 열독, 그리고 선생님의 최근 경문을 읽고서 나의 이해는 변하였다.

나의 사상은 현재 정과 사를 똑똑히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바른 것임을 인식할 수 있고 우리를 사악으로부터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악은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자신의 모든 힘을 깡그리 쏟아서 사악을 소멸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 사상업이 나타날 때 나는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소극적으로 감당하지만 않았고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알고 있는 데만 그치지 않았으며 또 사부께서 그것을 소멸해버릴 것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지금 나는 자신의 모든 결심을 불러일으켜 전력으로 그것을 소멸하고 있으며, 그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소극적으로 그것의 존재를 허락하는 것은 나의 마성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사악을 소멸하려고 했던 나의 결심은 자신의 각종 소극적이고 착오적인 이해에 의해서 장애를 받고 있었다. 현재에는 결심이 저해를 받지 않게 되었다. 나는 사악을 소멸하려는 자신 소원의 배후에 받쳐주고 있는 철저한 결심과 힘에 놀라게 되었다. 이러한 결심이 일어날 때 나의 사상은 마치도 보석처럼 확고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자신 사상의 일념이 산을 가르는 힘을 가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신의 분노”란 이 한 마디 말에 대하여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들이 내는 화가 아니며 또한 참지 못하거나 보복, 복수 등이 아닌바, 바로 우주 진, 선, 인의 특성에 위배됨으로써 이로부터 더는 우주 중에서 생존할 가치가 없는 모든 것들을 공정하게, 고상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변화 또한 현재 정법의 노정 및 우리들이 정법 중에서 일으켜야 할 작용에 대한 나의 이해 가운데서도 반영되어 나왔다. 우리는 반드시 낡고 소극적인 이러한 인식들이 우리의 두뇌 속에서 틈새를 형성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소극적인 태도로서 사악의 계속적인 존재를 허락해서도 안 된다. 소극적으로 사악을 대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동의하고 그것을 방임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구실로서 사악이 마땅히 존재해야 하거나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사상과 우주 속에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불성을 증강시키고 마성을 소멸시키는 자신의 수련에 대하여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뿐만이 아니라 우린 또한 우중중의 마성을 소멸하는 노정 중에서 자신이 마땅히 다해야 할 그 한 부분의 힘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게 바로 정법의 과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자신의 몸이든 혹은 몸밖이든 물론하고 우리는 대법을 반대하는 모든 사악한 세력을 반드시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소멸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수련의 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중생을 자비하기 위한 것이다.

2000년 9월 27일
2000년 9월 30일 번역
영문원본: http://www.clearwisdom.ca/eng/2000/Sept/30/POI093000_5.html


◎ 사부님 평어

“인식한 것이 아주 좋다. 사상업(思想業)의 반영(反映)에서와 사악세력이 우리에게 조성한 파괴에 대하여 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진상을 똑바로 밝히는데 있어서 모두가 주동적으로 마(魔)를 제거하였지 방임과 소극적인 감당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상과 행위는 반드시 선(善)을 사용하는 것이다.”

李 洪 志
2000년10월5일

 

원문발표: 2020년 12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29/4171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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