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 A가 나에게 수련생 B에 대한 불만을 말하자, 나는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바로 B에 대한 불만 하나를 말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B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그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할 때, 한편으로는 다른 수련생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실제 내용은 반만 이야기하고, 내가 자기를 신임하는 것을 이용해 나머지 부분에 대해 합리화하려 한다. 일이 밝혀지고 나서야 B가 고의로 그렇게 말한 것을 알게 된다. 그 목적은 나를 자기 생각에 따르게 하려는 것인데, 그것을 알고 나면 그가 남을 속인다는 생각에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다. 그가 참 대하기 어렵고 계략을 꾸민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 말을 하다가, 내가 틀렸고 수구(修口)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어서 A에게,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는 왜 지금도 심기가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미 그 일에 대해 담담해졌는데, 왜 또 불평하고 있지? A와 함께 분석해봤다. 나는 관념을 버리지 않았고, 타인에게 속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수련생에게 속는 것을 싫어하고, 속이는 것은 곧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A도 B에게 속은 적이 있다며,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고 그와 상의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간 듯 보였다. 며칠 뒤 수련교류 한 편을 읽고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원한심에 관한 문장이었다. 내가 B의 부족한 점에 대해 불평한 것이 원한이 아닐까? 나는 당시 내가 안을 향해 찾았던 과정을 떠올려봤다. B가 속임수를 썼지만, 부담이 너무 커서 그렇게 한 것이니 나는 마땅히 양해하고 이해했어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당시 내가 안으로 찾은 것은 단지 자신에게 불평할 이유를 찾아준 것에 불과했다. 다른 수련생이 잘못했고 내가 옳으니, 틀린 사람과 비교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옳은 쪽, 높은 곳에 있다는 일종 만족감이었다.
정말 안을 향해 찾았을 때, 내가 옳은 것을 알았고 사심도 제거했다 하더라도, 마땅히 더욱 선념을 가져야지 어떻게 한참 지나서도 여전히 화를 낼 수가 있겠는가.
내게 자신을 찾을 수 없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당(黨)문화의 한(恨), 증오의 한, 자기를 뽐내고 내세우려는 마음을 찾았다. 나는 다른 수련생의 잘못이 곧 절대적인 잘못이라 말로 깨우쳐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은 바로 일종 한이었다. 원망하면서 나는 자신을 바른쪽에 놓았다.
나는 한 때문에 선념(善念)이 없었고, 정말로 처지를 바꿔서 다른 수련생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당문화의 한은 정말 사람을 해치고, 작은 일에서도 수련생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만들게 한다. 다른 수련생의 부족한 점이 보일 때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이해가 아니라 못마땅함이었다. 만약 한이 없다면 숱한 불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의 배후에는 또 과시의 그림자가 있다. 타인의 잘못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안목이 있는 듯하지만, 거꾸로 자기 잘못은 무시한다.
몇 년간 나는 많은 경우 내가 B를 너그럽게 대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쓰니 누가 누구를 너그럽게 대한 것인지, 정말 부끄러워 진땀이 난다.
원문발표: 2020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0/12/23/4163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