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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집착을 내려놓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글/ 대만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존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대만 예술대학 4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래에 대학에 간 후의 심득체험을 여러분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법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이베이에 왔을 때는 느슨한 환경이었지만 오히려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주변 학우들에게는 변이된 행동이 특히 많았습니다. 어떠한 물질 유혹이나 다 있어 대법제자를 아래로 끌어내렸습니다.

1. 인터넷 해악에서 벗어나다

비록 저는 게임하는 습관이 없었지만 대학에 간 후 저도 모르게 인터넷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이 저에게 인터넷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자세히 따져보니 매일 4~5시간 동안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학업이 너무 빡빡해 핸드폰으로 긴장을 완화한다고 생각했고 또 매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사존께서 법 중에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들은 근무하다 힘들거나 또는 글 한 편을 쓰다 힘들어 조금 쉬려고 생각하면 곧 담배를 피우는데, 그는 담배를 피우고 나면 정신이 난다고 느낀다. 사실 그렇지 않으며, 그것은 그가 그렇게 잠시 휴식한 까닭이다. 사람의 사상은 일종의 착각을 조성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일종의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1]가 생각나서야 제가 사회 인터넷에 접속하는 습관은 이미 담배 중독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저도 속인 중의 명예와 허영심에 집착해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웠고 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면 언젠가는 그들도 나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그 집착들을 인식하고 핸드폰의 기본기능만 남겨놓고 모든 앱을 삭제했습니다. 인터넷에 뜨는 각종 메시지와 광고도 모두 속인 중의 각종 집착으로 가득 찼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사상이 어느 유형의 생명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는데, 당신은 오히려 당신 사상 내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당신은 자신이 이렇게 하려고 한 것으로 여긴다. 실은 단지 당신의 집착 때문에 그것들이 작용을 일으켰고,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집착을 강화했다.”[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속인 인터넷의 그런 나쁜 물질들은 제가 세 가지 일을 할 때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통학길에서 늘 속인의 인터넷에 접속했었는데 앱을 삭제한 후 지금은 밍후이방송을 듣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자신에게 세 가지 일을 하는 외에 더욱 법에 동화하게 했습니다. 발정념하고 법공부 할 때도 더 고요해질 수 있었습니다.

2. 병업관을 돌파하다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모두 어른 수련생들이 저에게 반드시 연공해야 한다고 독촉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서 속인 친척과 함께 살았기에 저도 서서히 느슨해졌습니다. 장기적인 학업 스트레스와 긴박한 시간에서 비록 연공은 했지만 마음속으로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몸의 내분비 불균형이 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병업이 나타났습니다. 연속 며칠 두통에 구역질이 나고 사지가 무력해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가부좌조차 몹시 힘들었습니다. 몇 주 혹은 며칠이 지나서 또 한 번씩 나타났습니다. 매번 어지러운 전조 증상이 나타날 때 저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것은 또 내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제가 인식한 것은 수련에 문제가 있음에도 장기간 방치해 몸에 그렇게 큰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연공을 중시하지 않은 문제를 찾아냈고 어릴 적에 주변 어른들이 늘 일깨워주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들은 휴식을 잘 못할까 두려워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속인의 각도에서 ‘나는 아직 젊고 병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니 연공할 때도 몸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병업관을 넘으면서 사부님의 법 “더 연마(煉)해 나가면 머리도 없어지고 오로지 자신의 사유만 있음을 발견하며, 약간의 의념(意念)이 자신이 여기에서 연공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만약 이런 정도에 도달하면 족하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이런 상태 속에서 연공하면 신체는 가장 충분한 연변(演變) 상태,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이 이런 상태에서 입정(入靜)할 것을 요구한다.”[1]를 공부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릴 적부터의 수련 과정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는 늘 허튼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성명쌍수(性命雙修)”[1]의 뜻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층차를 제고할 때 정력(定力)도 함께 갈수록 깊어지고 연공할 때도 서서히 가장 충분한 연변상태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성(性)을 수련하는 것과 명(命)을 수련하는 것은 상보상성(相輔相成) 하는 것입니다. 그날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사부님께서는 바로 저에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마치 자신이 달걀껍질 속에 앉아있는 것처럼 미묘(美妙)하고 무척 편안한 감각을 느끼며”[4]를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연공할 때 몸의 병업상태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밖에 병업상태는 제가 밀린 숙제나 항목을 필사적으로 하려고 할 때 나타났고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뜻은 내 일이 너무 많고 늘 모든 일을 혼자 떠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고 싶고, 원하는 대로 이루려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만들었고 그 기점은 이기적인 것을 위한 것이었고 제가 얼마나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진정으로 수련하고 제고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세력은 저에게 병업상태를 만들어낸 외에 이 관을 이용해 제 의지를 동요시켜 병업이 왔을 때 두려워하게 하고 심지어 의심하게 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구세력이 저에 대한 교란을 부정해야 합니다. 비록 병업은 저 자신의 수련상태에 문제가 있어 나타났겠지만 구세력은 병업을 이용해 틈을 탔습니다. 제가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는지, 계속해 두려워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병업이 나타났고, 제게 두려움이 없어져야 그것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통학길에서 갑자기 병업상태가 나타났습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아 수업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련인이다. 구세력은 이 병업을 이용해 나를 교란할 생각을 하지 말라. 나는 해야 할 것을 할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다. 그리고 나는 누락이 없고 정념도 족하기에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라고 생각하자 정념이 솟아났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시선도 빙빙 돌았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서 좀 쉬고 나니 병업상태가 바로 사라져버렸습니다.

3. 아침 연공의 시험

병업관을 넘으면서 저는 연공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아침 연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주는 아무리 해도 일어나지 못했고 알람을 듣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마음이 확고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그러면 안 될 거 같아 다음 날 어떤 일이 있어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반드시 일어나서 연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성공적으로 일어나서 연공장에 갔습니다. 어떤 때 늦잠을 자서 알람이 1분에 한 번씩 울려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집착을 제거함에 요행을 바라면 안 되고 오직 제거하는가 제거하지 못하는가 두 가지 선택만 있으며 반드시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알람을 그렇게 여러 번 설정해 놓은 것은 잠재의식 중에 자신이 좀 더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게으름을 부릴 시간을 준 것인데, 안일한 마음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 아침 연공을 할 때 늘 졸렸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야 정신이 난다는 일종 관념이 있었기에 매번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 연공할 때 피곤한 것은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어날 때 늘 몇 시간을 잤는지 계산해봤습니다. 그러나 가부좌할 때는 늘 피곤해서 잠을 자는 시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정공을 연마할 때 눈을 떠서 명석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안일한 마음을 발견했는데 매번 제5장 공법을 연마하기 전에 만약 또 졸리면 어쩌나 하고 생각하면서 고생을 이겨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졸려서 눈을 떠도 흔들거렸는데 괴로울 때면 바로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배울 때 자고, 책을 읽을 때 자고, 연공할 때도 당신은 자는데 어쨌든 이런 가장 기초적인 것조차도 돌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이 수련 중에서 사람을 구성한 어떠한 요소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성한 어떠한 환경의 것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은 무엇이든지 모두 돌파해야 하고 어떠한 마난(魔難)도 모두 넘어야 한다. 가장 크게 표현되는 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조성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에는 부동(不同)한 형식이 있는바, 잠자는 것 역시 한 가지이다.”[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관을 반드시 정면으로 돌파해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능동적으로 대해야 안일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고 졸리는 상태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4. 근본 집착을 다시 깨닫다

최근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인식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안으로 찾아보니 시간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조급함은 평소에 진상을 별로 알리지 않았기에 조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진상을 적게 알려서 도태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런 마음은 제게 진상 항목에서 오래 할 수 없게 했습니다. 저는 한 항목에서 적게 했다고 생각이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다른 항목으로 옮겨갔습니다. 일을 하려는 마음은 저에게 수량에 연연하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이것은 마지막 집착을 내려놓을 시기가 온 것이기도 하다. 한 수련자로서 당신들은 이미 일체 세간의 집착(인체에 대한 집착을 포함)을 내려놓아야 함을 알고 있으며 또한 내려놓았고, 생사(生死)를 내려놓는 속에서 걸어 지나왔다. 그렇다면 원만에 집착하는 것은 집착이 아닌가? 역시 사람의 마음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처가 원만에 집착할 수 있는가? 사실 진정으로 원만에 접근한 수련자는 이 마음이 없다.”[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에 대한 집착은 근본적으로 원만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반드시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지 일의 표면에 집착하거나 일을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온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저는 그가 진상을 들으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있었고 낯선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체면을 잃으면서까지 사람을 구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두려움과 이기심은 또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저는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구세력이 저에게 진상을 알리는 시험을 안배했지만 그 당시에 인식이 부족해 구세력이 무엇인지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감당했고 그때부터 그런 집착들이 누적돼 법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계속 난을 가중시켜 안으로 찾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제가 사람을 구하는 기점을 사실상 ‘정(情)’의 각도에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전에 진상을 알린 경험을 돌아보면 저는 늘 이 사람은 진상을 알리고 싶은 사람인지, 말하기 쉬운 사람인지 아닌지, 잘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로 구분하면서 진상을 알릴 것인지 알리지 않을 것인지 구분하면서 결정했고 정념으로 사람을 구한 것이 아니라 선호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비록 그 후에 거의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진상을 알리는 상태에서 바로 잡아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수련의 기점을 다시 생각했고 진상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시험에 직면해 늘 저도 모르게 ‘정’으로 문제를 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태를 돌파하려면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모두 법에서 바로 잡아야만 근본 집착을 의식하고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 말씀으로 수련생들과 함께 격려받으려 합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8]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3. 동작설명’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다’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2020년 파룬따파 대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0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10/4162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