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다. 체력이 약해서 늘 병원에 다녔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를 꺼렸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루 종일 활력이 넘쳤다. 동창이나 동료들은 내 변화를 보고 내가 배운 대법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 두 명도 수련에 들어섰다.
나는 2017년 10월에 현(縣) 소재지에 와서 살게 되면서 주변 사람에게만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를 알렸다. 끊임없이 법을 배우면서 심성이 높아졌고 나는 이렇게 좋은 법을 정정당당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집을 나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매일 수련생과 협력해 때로는 몇 명, 때로는 십여 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다.
한 번은 차를 기다리는 부부에게 가족을 만난 듯 말을 건네던 기억이 난다. 그 부인은 감동해서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사심 없이 타인을 위하는 좋은 사람,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부는 기쁘게 삼퇴했을 뿐만 아니라 집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집에 놀려오라고 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매일 밖에 나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한 번은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길가 계단에 60대 남자가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인사하고 진상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무신론에 중독돼 우리 말에 반대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다. 헤어지면서 플레이어로 진상을 들어보겠는지 묻자 그는 동의했다. 보름쯤 지나서, 우리는 진상을 알리러 가다가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 사람들 가운데서 작은 전기차를 탄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플레이어를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급히 앞으로 가서 “잘 들으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때 그도 우리를 알아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좋아요! 정말 좋아요!”라고 했다. 한 무신론자가 태도를 바꿨고, 다행히 이 생명이 구원됐다!
올해 초, 우한폐렴이 터지자 곳곳에서 도시, 마을, 도로가 잇달아 봉쇄되고 외출이 제한됐다. 2월 중순에 이곳의 봉쇄되지 않은 구역도 사람 키 높이만 한 철제 안전망으로 둘러싸 24시간 동안 입구를 지키면서 출입증을 검사했다. 한때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예전처럼 매일 나갈 수 없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대로 보통 사람들처럼 집에 앉아 있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 대법제자의 구원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가! 예전에는 두려운 마음에 동네에서는 진상 자료를 배포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신변의 중생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도 안 할 것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어느 지역이든 기본적으로 당신들이 바로 그 지역 중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며, 아울러 유일한 희망이다.”[1] 우리는 조사정법(助師正法)하러 왔으니 서약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 동네 중생은 나와 인연이 가장 크므로 더욱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
그래서 수련생인 누나와 함께 진상 자료를 출력해 우리 둘은 현재 살고 있는 단지에 밍후이주간 책자를 두 번 배포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전에 옆 동에 사는 한 집의 창가에 두 개의 작은 사당 홍기(紅旗)가 걸려 있었는데, 우리가 진상 자료를 배포한 지 사흘 만에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배포한 진상 자료에 풍수사의 오성홍기에 대한 해설이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우리가 배포한 진상 자료를 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돼 정말 기뻤다!
우리 단지만 배포하는 것은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해 다른 단지도 배포하고 싶었다. 나가서 한 바퀴를 돌아봤는데 사람들이 북적대던 길거리에 몇몇 사람만 보였다. 어떤 단지는 봉쇄한 것 같았지만 여전히 틈이 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낮에도 저녁에도,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집집마다 문 손잡이에 진상자료를 걸어 모든 사람이 진상을 볼 수 있게 했다. 단지를 폐쇄한 후 사람들은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아 진상 자료 배포는 매우 순조로웠다.
방역이 가장 엄했던 때, 수련생이 ‘밍후이주간’을 볼 수 있도록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밍후이주간만 보낼 것이 아니라 거기 있는 중생에게도 진상 자료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생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가보니 경비가 엄해 들어갈 수 없었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니 한 곳은 기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솜옷을 잡아당겨 몸의 부피를 줄이고 쇠 파이프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수련생에게 밍후이주간을 전해주고, 또 갖고 간 진상 자료를 집집마다 문손잡이에 걸어놨다. 동북지방의 3월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눈이 내리면서 녹고 있었는데 내가 다시 쇠 파이프 밑으로 기어 나와 일어나 보니 무릎에 진흙이 묻어있었다. 나는 길가의 눈을 집어 무릎의 흙을 비벼 씻어내고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비록 60이 넘었지만, 사부님의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최고의 영광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린다. 세 가지 일을 계속 잘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10/4148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