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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에서 벗어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전에 나는 두 번이나 꿈을 꿨는데 자신이 역사 속의 두 사람으로 전생했던 것 같았다. 역사학을 잘 배우지 못했기에 인터넷에 접속해 그들의 생애를 찾아보았다. 그 후 며칠간 나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것들에 대해 마땅히 분명하게 인식해야 함을 느꼈다.

이 두 사람의 품행은 모두 내가 줄곧 좋게 보고 동경해왔던 것으로, 지략과 용기를 겸비하고 정의롭고 용감하며 나름대로 뭔가를 이룬 등등이다. 나는 이런 것들은 강대한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다. 현실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을 때 또 시공간을 초월해 허황한 만족을 찾았고 초라한 위안으로 조금 바꿨다.

윤회는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일부의 윤회를 알고 있으면 수련에 어느 정도 좋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만약 잘 파악하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든다면 사악이 틈을 타게 되어 집착을 확대해 교란 받을 수 있다. 한 수련생은 윤회 중에서 자신과 모 이성 수련생과의 관계를 보고 그 수련생과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정이 매우 깊었다. 또 한 수련생은 전생에 아내와의 원한을 알고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혔다. 만약 대법제자가 어떤 집착심이 있다면 보이는 윤회는 가짜일 수도 있으며, 사악은 가상을 연화할 수 있는데, 사실은 바로 마환(魔幻)이다. 혹은 열려서 수련하든지 닫혀서 수련하든지 일부러 윤회 중에서의 집착심과 관련된 정경을 보게 하면서 집착을 확대하려 한다. 예를 들면 색, 원한, 행복, 고락과 득실, 재부, 능력, 인품과 덕성, 외모, 사회적 지위, 명예·공명·성취, 자아에 대한 집착 등등이다. 그 때문에 윤회를 봄에 있어서 올바른 이념과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윤회’ 자체에서 벗어나야 좋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명백하게 말씀하셨지만, 때로는 집착 때문에 법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생생세세(生生世世)의 윤회는 인연을 맺고 법을 기다리기 위한 동시에 인류의 휘황함과 법을 전하는 데 필요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지금 사회에 ‘배우(연기자)’라는 이 직종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배우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똑똑히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는 한 생, 한 생을 연기 생활을 했으며 어느 캐릭터도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다. 지구는 무대와 극장이고, 사람의 몸과 인류사회의 일체는 바로 도구이다. 어떤 인물을 연기했었던지 대단한 것이 없으며 다들 이렇게 살아왔다. 자아 속에 깊이 빠져 있어야만 자신의 배역에 연연하고 자신이 비범하다고 여긴다. 생각해 보면 서민을 연기한 적도 있는데 왜 대수롭지 않은가? 바로 집착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보아하니 사람이 환생할 때 ‘맹파탕(孟婆湯)’을 마시고 과거를 잊는 것은 정말 너무 필요한 일이다.

속세의 부귀영화는 진정한 부귀영화가 아니기에, 음미하거나 미련을 둘 가치가 없다. 신의 눈에는 다만 ‘정(情) 중에서 건곤(乾坤)이 춤추고 있는’[1] 것이며, ‘땅에서 흙을 주무르며 놀고 있다’[2]라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오늘 대법제자가 되어 사부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며, 만고불우(萬古不遇)의 우주 대법을 얻은 것이다. 손에 금을 들고 벽돌을 갈망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깨달음이 너무 차(差)하다. 이 귀중한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최후에 중생을 데리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이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나에게 부동한 경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게 해주셨는데, 도의 형상도, 보살의 형상도 있었다. 우리가 우주의 부동한 층차로 내려갔을 때 아마 부동한 형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근본이 무엇인지는 원만하기 전에는 아마 알기 어려울 것 같다. 가끔 무슨 일이 생기면 역사적 이유가 알고 싶어지는데, 그렇게 하면 마음속에 계산이 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하는 것이다. 설마 역사를 안다면 오늘 수련하지 않고도 심성을 제고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무엇이든 다 보았다면 깨달을 것이 있겠는가? 수련은 깨달음을 말하는데 깨달음은 심성을 많이 제고해야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결국, 닫혀서 수련하는 수련생들이 대다수다. 모든 수련생이 대법으로 가늠하고 법의 요구대로 하며 심성을 잡고 수련한다면 윤회인과(輪迴因果)를 알든 모르든 다 똑같이 잘 수련할 수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사(上士)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깨달음에 의해 원만을 이룬다.”[3]

개인의 소견이니 합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 왜 볼 수 없는가?’

 

원문발표: 2020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11/2/4145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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