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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고 자비롭게 중생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본인 구술, 수련생 기록 정리

[밍후이왕] 나는 노년 대법제자다. 부끄럽지만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었으나 그땐 몸이 건강해지고 늙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법을 얻은 후 2년 동안 나는 연공만 하고 법을 배우지 않았다. 내 대법 책은 직장 창고에 보관했었는데 창고 난방장치가 폭발하면서 보일러 물에 모두 쏟아져 나왔다.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한겨울에 한 편씩 책을 널어 말렸고 1996년에서야 반드시 법공부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1999년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한 후 나는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하고 법을 수호하기로 결정했다.

(1) ‘참음(忍)’을 닦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다. 이 정체에서 매 사람의 층차가 다르기에 수련 상태와 법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고 생명의 특성이 다르다. 서로 간에 역사적으로 선과 악의 인연이 있고 더욱이 구세력의 험악한 배치가 있으며 당연히 각자 닦아야 할 집착이 있다. 정체 협력에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이다.

착실하게 수련하기 정말 어렵다! 나는 한 수련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대법을 알리는 일을 정말 잘하지만 붙잡고 놓지 않는 속인 마음이 많으며 말투가 답답해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할 일이 자주 있었다. 그는 우리가 1시 반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면 2시 반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정말 화가 나서 심지어 그에게 “저리 가요! 난 ○○씨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중에 나는 그 때문에 마성이 크게 폭발했다. ‘나는 수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련인은 자비로워야 하는데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그가 또 이렇게 나를 대할 때 나는 말하지 않고 참았다! 그러나 이 참는 과정은 매우 고달팠다.

초창기 그는 나를 모욕하고 비난했다. 나에 대한 과장되고 심지어 터무니없이 날조한 말을 곳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 말을 들으면서 나는 참았다. 수련생들은 그가 곳곳에서 나에 대해 말했지만 내가 참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참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한 번은 한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지금도 그가 ○○씨를 뭐라고 합니까?” 원래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그가 이렇게 나에게 묻자 마음이 더 괴로웠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해석하지 않으며 조금씩 참는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이 참음이 정말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억지로 참긴 했으나 오늘 내가 조금 참고 다음에 더 많이 참으면서 조금씩 진보하고 참는 과정에서 내 마성이 작아졌다. 지난 몇 년간 법공부를 통해 마성이 있으면 수련 성취할 수 없고 우리가 선을 닦아내려면 반드시 당(黨)문화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조금 제고했다고 느꼈을 때 난이 커졌다. 한 번은 수련생 집에서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서 말했다. “사부님 저를 가지(加持)해주세요.” 그 수련생은 한바탕 나를 비난했다. “○○씨는 사부님에게 불경한 겁니다. ○○씨가 어찌 사부님께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했는지 말했다. 나는 “그런가요? 제가 사부님께 무례한 겁니까?”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많은 수련생 앞에서 내가 이렇게 나쁘고 저렇게 나쁘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정말 억울해 수련생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나 거리에 나선 후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 무례하지 않았다! 내가 어찌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 억울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한참 끓어오르다 간신히 안으로 찾아야 하고 참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수련생의 말이 옳든 그르든, 법에 따라 하려면 마땅히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는 이 방면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찾자!’ 당시 내가 사부님께 말씀드린 말이 너무 마음대로 말한 것 같았다. 입을 열자마자 “사부님 저를 가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문화 표현이다.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는 마음은 없었으나 행위는 확실히 무례한 것 같았다.

당문화 마음을 찾았으니 내려놔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잠시 후 또 끓어 올라왔다. ‘내 표현은 불경스러웠지만 내 마음은 불경스럽지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한참 밖으로 찾다가 다시 안으로 찾았다.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또 밖으로 보면서 왔다 갔다 끝없이 고민했다.

나중에 나는 결심했다. ‘그 수련생이 맞다! 사상 속에서 반영된 그 수련생이 이렇게 나쁘고 저렇게 나쁘다고 한 이런 사상과 정보를 나는 갖지 않겠다. 그는 대법제자고 나도 대법제자이며 모두 다 좋다. 우리는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악(邪惡)이 간격을 만들려고 하는데 불가능하다.’ 이렇게 나는 마음을 정한 후 이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는 수련생이기에 가장 좋으며 말한 문제는 나에게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이것을 참조로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 사부님과 수련생에게 고마웠으며 원망과 화가 없어졌다.

또 한 수련생이 있는데 나는 그의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한다. 그는 “나는 ○○씨가 법 읽는 것을 들으면 들뜬 느낌이 있고 전혀 법을 얻지 못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 내 마음이 뒤집혔다. 당시 나는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으나 거리에 나선 후 눈물이 또 줄줄 흘렀다. ‘나는 20여 년을 수련했는데 법을 얻지 못했을까?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겼었는데 법을 얻지 못했다면 내가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겠는가? 사부님, 제가 그런가요?’ 눈물이 흐르고 흘렀으며 집에 돌아가자마자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법을 배우는 것이 들뜬 것 같다고? 나는 오늘 마음에 와닿게 법공부를 할 것이다.’ 나는 법을 배우는 태도를 바꾸어 한 글자씩 읽어 한 강을 읽는 데 3시간이 걸렸다. 법을 잘 배우기 위해 나는 또 다른 수련생에게 물었다. “내가 법을 배울 때 들뜬 건지를 봐주세요. 들떠 보이는 점이 있거나 바르지 않은 발음으로 읽으면 나에게 지적해 주세요.”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결심했다. 수련생이 지적한 부족한 점을 동력으로 삼아 자신을 닦고 안으로 찾으며 절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잘되라고 한 말이고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다져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씩 원망을 닦아버렸다.

내가 열심히 법을 공부한 후 점차 수련생이 내가 법공부할 때 들뜬 것 같다고 한 말은 내가 착실한 수련이 부족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하기가 바빠 일을 수련으로 여긴 것을 본 것임을 알게 됐다.

가장 마음을 충격하고 어려운 것은 수련생과의 모순이다. 한 수련생은 내 코를 가리키며 “자신을 외부인으로 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 수련생이 악인에게 납치됐는데 그들은 다른 수련생이 준 돈으로 유죄 변호하는 변호사를 선임했기 때문이다. 수련생이 준 돈을 갖고 유죄 변호하는 변호사를 선임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련생이 납치돼 조급하게 수련생을 구출하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우리의 길은 바르게 걸어야 하고 특히 우리는 가족을 잘 대해야 한다. 이것은 원칙 문제다. 그러나 수련생들은 정에 이끌려 사악(邪惡)이 틈을 타게 해 돈을 들여 유죄 변호하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동의했다. 게다가 이 문제에서 모두 일방적이었고 나 혼자 유죄 변호하는 변호사에게 준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나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수련생들이 나를 본체만체하고 나를 법공부하러 가지 못하게 했으며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수련생에게 내가 적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거의 1년간 나를 고립시켰다.

참음을 닦는 과정에서 안으로 찾는 것이 가장 어렵고 무조건 안으로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는 제일 큰 장애로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받은 고통과 당한 불행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의 어느 곳이 잘못됐는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에서, 수련하는 이 길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당신을 가로막을 어떠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러하다.”[1] 처음에는 원망을 정말 닦기 어려웠다! 이 1년 동안 나는 해석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혼자 집에서 법을 배우고 자신에게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우며 예전처럼 진상을 알리고 세 가지 일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에 끊임없이 다른 수련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떠올라 종종 원망과 억울함을 느꼈다. 나는 대법제자이기에 안으로 찾아야 하고 이런 마음을 마땅히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원망은 큰 산처럼 나를 억눌러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 사유와 이 정보를 갖지 말라고 명령했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에 자비를 가지고 선량함을 가지겠다.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다. 다른 것은 갖지 않겠다. 사부님께서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 마음이다.” 나는 구세력에게 알려줬다. “나는 대법이 만든 생명이고 진선인(真·善·忍)을 원칙으로 한다. 아무도 나를 흔들 수 없다. 나는 부정적인 사유를 갖지 않겠다. 좋지 않은 모든 생각은 나 여기에서는 소용없고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외칠수록 소리가 더 커졌고 자신에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명령했다. 점차 그것이 약해졌다. 두려운 마음도 이렇게 닦아버렸다.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사심 없이 무조건 자신을 찾았으며 모두 나에게 존재하는 문제로 여기고 항상 자신을 바로잡았다. 점차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내 사람 마음이 일어나기만 하면 즉시 이 좋지 않은 사유를 발견하고 제거할 수 있었다. 좋지 않은 것이 나를 조종하지 못하게 했고 자신에게 밖으로 보지 못하게 했다.

나는 수련생의 표면을 보거나 그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사부님을 따라 내려온 그 순간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대법제자다. 우리는 무엇이든 다 참을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다. 입장을 바꾸어 그의 각도에서 생각하면 그 당시 내가 원칙을 견지한 것은 맞지만 선량함과 이해력이 부족했다. 진정하게 안으로 찾는 것은 원망과 미움이 없어야 한다. 수련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을 허용하고 우리가 바로잡는 것을 허용하셨다. 나는 수련생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모두 수련 과정에 있는데 각자 깨달을 날이 있으리라 믿었다.

1년 후 나는 마음의 평형을 이루었고 수련생들도 각자 모두 제고해 우리는 또 하나의 정체(整體)가 됐다.

이웃과도 참음을 닦았다. 내가 사는 건물은 두 가족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했다. 평소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화장실은 많은 걱정을 가져다줬고 동시에 제고하고 승화하며 사람을 구할 많은 기회를 제공해줬다.

나는 이웃과 잘 지냈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도 시켰다. 그러나 이웃이 이사 간 후 집을 임대했다. 지금 세입자는 매우 이기적이고 책임감이 없었다. 때론 며칠 만에 세입자가 바뀌었고 몇 달 혹은 1년에 세입자가 바뀌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바뀌어도 두 집이 공용하는 화장실은 항상 문제였다. 내가 청소하지 않으면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방금 청소해 놓으면 그들이 또 말이 아니게 어질러놓았다. 화장실 물을 내리지 않아 변이 쌓여 있었고 화장지가 곳곳에 널려 있었으며 쓰레기도 변기에 쏟아 넣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매일 이렇게 반복됐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은 매일 변과 쓰레기 속에서 연마됐다. 처음에는 그들이 청소하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청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들인 노력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멋대로 했다.

원망, 불평, 무력감, 하지만 나는 여전히 청소하고 정리했다. 그러나 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들도 중생이니 꼴 보기 싫어도 그들을 구해야 했다. 나에게 진상을 알리도록 강요하고 억지로 참으면서 그들을 구했다. 불평하는 마음이 위아래로 들끓었다. 법을 많이 배워 억지로 내리누르고 참으면서 다시 가서 진상을 알렸다.

한 가구에 진상을 알리면 떠나갔고 또 한 가구가 와서 진상을 다 듣고 갔다. 오는 족족 진상을 알렸는데 한 해 또 한 해 어느덧 8년이 지나갔건만 이 화장실은 여전히 내가 청소했다. 나는 화나고 원망하던 데에서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지금 나는 화장실을 청소할 때 자연스럽고 기쁘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원한을 품지 말고 당신의 선(善)을 지켜야 할지니”[2].

중생이 구원받기 위해 오고 또 진상을 알고 간 것을 보고 나는 나에게 자신을 닦고 또한 중생을 구할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다시금 감사드렸다. 진심으로 “참음을 닦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맞은쪽 이웃뿐만 아니라 위층 아래층, 전체 건물 이웃에게 나는 다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평소 나의 일언일행에서 모두 대법제자의 선량함과 자비로움을 보고 구원됐다.

참음을 닦는 과정을 통해 명리정(名利情)의 뿌리가 사(私)라는 것을 깨달았다. 참지 못한 원인도 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선 참음을 닦아내야 일의 본질과 자신의 근본 문제를 볼 수 있다. 나에게 원망이 있을 때 원망을 겨냥해 닦았고 두려움이 있을 때 두려움을 겨냥해 닦았다. 사실 원망이든 두려움이든 이 마음을 닦을 때 모두 수련의 실질과 내포를 깨달은 것이다.

(2)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다

나는 2005년부터 사람을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지역에는 나 혼자 걸어 나와 진상을 알렸다. 매일 오전에 법을 배우고 오후에 진상을 알렸다. 당시 하루에 11명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나중에는 점점 많아졌다. 줄곧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과정 중에 놀라움, 위험, 기쁨이 있었는데 모두 사부님께서 가지하고 보호해주셨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셔서 때로는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한눈에 알아봤다.

한 번은 내가 길을 가다가 두 여성을 만났다. 인사한 후 나는 그중 한 명을 가리키며 “선생님은 강사죠. 대학 강사”라고 말하고 다른 한 명을 가리키며 “선생님은 경리죠”라고 말했다. 내가 그녀들의 직업을 정확하게 말하자 그녀들은 모두 매우 놀라워하며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점쟁이인가요?” 나는 “점쟁이가 아니라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천목이 열리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그녀들의 직업을 알았고 때론 심지어 상대방의 이름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선생님들은 모두 지식인입니다. 전통문화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말합니다. 선생님에게 왜 오늘날의 직업이 있느냐 하면 선생님 조상이 덕이 있고 자신에게 행운이 있고 선생님 자신에게 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온 가족이 행복하고 평안하길 희망합니다.” 다음 그녀들에게 삼퇴하면 생명을 보존한다는 말을 들었느냐고 묻고 진상을 알렸다. 내가 한 말을 그녀들은 모두 받아들였고 모두 삼퇴했다.

나의 자비가 그들의 미시적인 데까지 닿을 수 있었기에 몇 분이면 세인을 삼퇴시킬 수 있었다. 나는 우리 자비심과 선량함이 표준에 도달하면 사악이 중생에 대한 통제를 해체할 수 있고 중생이 삼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 먼저 몇 마디 속인 말을 하여 거리감을 줄였다. 예컨대 “매우 품위 있으시네요”, “옷이 보기 좋네요”, 다음 주제로 진입해 진상을 알렸다. 나는 지금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전염병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어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선생님 온 가족이 행복하고 평안하고 큰 재난에서 생명을 보존하길 희망합니다. 하늘이 왜 전염병이 일어나게 했을까요? 공산당은 부정부패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대법제자의 인체 장기를 생체적출해 폭리를 도모했기에 하늘이 용납할 수 없고 하느님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을 들고 일생을 중국공산당에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것은 갖은 악행을 다 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에게 생명을 바쳐서야 되겠습니까? 재수 없는 일을 우리는 하지 말아야지요. 마음속으로 탈퇴하면 온 가족이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선생님을 축복할게요.”

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나 경찰을 만나도 나는 똑같이 말한다.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사부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시는 것을 알기에 사부님께 가지를 빌고 나서 다가가 말한다. 한 번은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를 타고 있었다. 얼굴색이 시커멓고 인상이 흉악한 한 남성이 있었는데 나는 보자마자 사복경찰인 것을 알았다. 그의 등에 멘 가방에는 자료가 꽉 담겨 있었고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나는 내 남동생을 대하듯이 그에게 말했다. “동생, 뒤에 멘 가방 속 물건이 튀어나왔어요. 얼른 잘 챙기세요.” 그는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동생이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동생의 온 가족이 행복하고 평안하길 희망합니다. 공산당을 탈퇴하세요.” 그는 나에게 “내가 탈퇴해도 됩니까?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나쁜 일을 많이 했음을 알고 나는 말했다. “동생이 마음속으로 동의하면 신이 구해주십니다. 대법을 인정하면 대법은 동생을 구할 수 있고 동생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으며 행복하고 평안할 수 있어요.” 그러자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본명으로 삼퇴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탈퇴시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내 가족의 남동생, 여동생이나 친척을 대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말하기에 그들은 나의 선량함과 친절, 배려심을 느낄 수 있으며 내가 진심으로 그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탈퇴에 동의한 것이다.

한 번은 키가 큰 50대 품위 있는 독특한 남성을 만났다. 나는 다가가 말했다. “나는 멀리에서도 선생님이 품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좋은 직장에 다니십니까?” 그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할머니도 품위가 있고 매우 좋습니다!” 말도 평온하게 했다. 그는 베이징의 모 중앙기관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선생님이 그곳에서 일한다면 나는 선생님에게 파룬궁(法輪功)이 박해받은 사실과 삼퇴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사실을 더더욱 말해야 합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자 그는 매우 인정했고 그도 자기 마음속 말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서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그의 위치에서 정의를 펼칠 수 없고 파룬궁을 지지할 수 없기에 매우 무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 진상을 듣고 그는 격동하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마음속 말을 할 기회가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외지에서 온 많은 농민공이 도로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단체로 일하는 이런 사람에게 나는 먼저 대장을 탈퇴시킨다. 나는 다가가 한 젊은이에게 말했다. “자네가 저 사람들을 거느리고 일하나? 자네가 행복하고 평안하길 기원하네. 아내, 자녀와 부모가 모두 행복하고 평안하며 큰 재난이 있을 때 생명을 보존하기 바라네. 삼퇴하면 생명을 보존한다는 말을 들었나? 공청단에 가입했었나?” 그는 가입했다고 말했다. 내가 탈퇴하라고 하자 그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자네는 생명을 보존했네. 나는 저 사람들도 구해야겠어.” 그는 내가 말하는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다가가서 다른 사람에게 따로 말했다. “자네들이 집을 떠나 나와서 일하기는 쉽지 않아. 자네가 행복하고 평안하길 기원하네! 삼퇴하면 평안을 보존할 수 있고 재난 속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지.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 가입한 적이 있는가? 가입했다면 탈퇴해야 해.” 그들은 모두 동의했다. 나는 한 명씩 말했는데 약 20여 명이 모두 탈퇴했다.

때로는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심지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말한다. “화내지 마세요. 나는 진심으로 선생님을 위한 겁니다. 돈을 속이고 먹고 마시는 것을 속이는 사람은 있어도 생명을 보존하라고 속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어지면 믿고 믿기지 않아도 나는 선생님에게 앞으로 이해할 날이 있길 기원합니다. 선생님은 누굴 위해 삽니까? 자신을 위해 사는 게 아닙니까? 선생님의 온 가족이 모두 평안하고 큰 재난 속에서 남을 수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어떤 사람은 삼퇴에 동의한다. 탈퇴하지 않아도 내가 “화내지 마세요. 선생님을 축복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도 악의가 없었다.

이번에 전염병 때 도시를 봉쇄한 후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거리에 사람이 있든 없든 오후 1시면 나는 진상을 알리러 나간다. 아파트단지를 봉쇄해도 나에게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어디에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 진상을 알렸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만 구했다.

대학생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 있는데 나는 자주 그곳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어느 날 한 청년 남녀 대학생이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네들의 학업과 사업이 성과 있길 바라고 두 사람이 영원히 변치 말고 평생 화목하길 기원하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마음속으로 소선대, 공청단에서 탈퇴하면 큰 재난이 올 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어! 공산당에 가입했나? 당원이면 탈퇴해야 해.” 그들은 모두 탈퇴에 동의했다.

한 여대생이 손에 꽃을 들고 걸어왔다. 나는 마찬가지로 다가가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자 여학생은 기어이 나에게 꽃을 주겠다고 했다.

진상을 안 후 나에게 식사에 초대하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고 끊임없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생에 내가 운 좋게 당신을 만나게 됐다는 뜻이다. 나는 “선생님은 구원받았어요”라고 말했다. 중생은 진상을 안 후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중생은 명백한 일면이 있다! 호신부를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고 당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는 사람도 있었다.

(3) 수련생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다

몸이 그다지 좋지 않은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수련생들은 그에게 대법 책을 만들게 했다. 이 수련생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련생들도 인식하지 못한 일부 법에 부합되지 않은 현상이 있었다. 나는 수련생에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에게 바로잡길 희망했으나 결과는 미미했다. 수련생은 집에서도 부적절한 행동을 했기에 가족은 정말로 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수련생은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반신불수가 되어 온종일 똥오줌 속에 앉아 있었다. 침대며 바닥에 모두 똥오줌이 있었고 옷과 바지, 신발에도 모두 똥오줌이 있어 방안은 온통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가족은 그를 잘 대하지 않았고 그가 똥오줌 속에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가끔 밥을 가져다줬는데 방식도 매우 특별했다. 그의 문을 틈만 나게 작게 열고 긴 판자로 한쪽 끝에 죽 한 그릇을 놓고 문틈으로 수련생 옆에까지 닿게 놓았다. 그 수련생은 이렇게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교류했다. 이 수련생이 수련에 어떤 부족한 점이 있든 그는 대법제자다. 그가 어떻게 했든 우리는 그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릴 계기로 삼아야 하고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원용해 그의 가족을 구해야 한다.

그의 가족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했다. 우리는 침대에 가서 그의 옷과 바지를 벗기고 몸에 묻은 똥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신발 안에 있는 똥을 꺼내고 깨끗하게 빤 후 그의 집 문밖에 있는 막대기에 걸어뒀다. 침대 위 침구와 바닥 구석구석을 모두 한 번 깨끗하게 닦았다. 우리는 특히 그의 몸을 모두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세탁한 옷은 밖에 내다 널었고 일부 수련생은 생활용품과 음식을 가져왔다.

그의 가족은 보고 매우 감동하며 진심으로 말했다. “우리 가족이 못하는 것을 당신들 대법제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 수련생의 형, 형수, 여동생과 매부, 어머니는 모두 진상을 알고 삼퇴해 구원을 받았다.

그 수련생은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족은 구원받았다.

그의 형은 원래 대법을 반대했는데 이 일을 통해 대법제자는 어떤 사람이고 파룬궁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그의 남동생의 표현은 그의 개인적인 상태이지 파룬궁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법제자의 행동은 그와 그들 온 가족의 마음을 감화시켰다.

그 수련생에게 부족한 점이 있지만 우리는 수련생의 모습을 보지 않고 정체 협력 중에서 열심히 했고 자비롭게 중생을 감화해 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래 대법에 오해를 가진 중생이 진상을 알고 대법을 인정하게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점을 바로 잡아야 중생을 구할 수 있다.

(4) 국가안전보위국, 610 관계자에게 진상을 알리다

몇 년 전 노동교양이나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련생이 석방될 기한이 될 때면 현지 ‘610’, 국가안전보위국(이하 국보) 관계자나 파출소 경찰이 수련생을 데려간 후 계속 박해했다. 수련생들은 교류한 후 이런 사악한 배치를 인정해서는 안 되고 우리는 능동적으로 수련생을 데려와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한 남성 수련생은 불법 감금 중에 정정당당했다. 감옥에서 나오는 날 사악이 계속 그를 박해하려 했는데 우리가 그 남성 수련생을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A시 수련생이다. 수련생을 감금한 감옥은 B시에 있고 불법 감금된 수련생의 집은 C시에 있었다. 수련생을 데리러 간 날, 우리 지역 수련생은 차 두 대를 몰고 A시에서 B시로 갔는데 남성 수련생 집 지역의 ‘610’, 파출소 경찰들도 C시에서 차 두 대가 B시를 향했다. 감옥 문 앞에서 우리는 그들을 만났다. 네 대의 차가 동시에 감옥 문 앞에 멈췄다. 그들은 수련생을 강제로 데리고 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차가 멈추자마자 차에서 7~8명의 키 크고 표정이 사나운 남성이 내렸다. 그러나 우리 이쪽은 수련생 가족을 합쳐서 6~7명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두려웠고 가슴이 줄곧 뛰었다. 감옥 안에 수련생을 데리러 간 사람은 나와 다른 두 명뿐이었다. 우리 세 사람 중에 남자 수련생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려워도 수련생을 집으로 데려와야 한다! 수련생은 반드시 집에 돌아가야 한다! 한 차례 정사(正邪) 대전이 다른 공간에서 시작됐다.

국보, ‘610’ 관계자가 우리를 가로막고 수련생을 데려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수련생이 나오길 기다릴 때 감옥 문 앞에 가 안에서 수련생을 내보내는 감옥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말했다. “대법을 잘 대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 받을 겁니다.” 시간을 다그쳐 그에게 삼퇴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산당에 가입했어요? 매우 선량해 보이는데 탈퇴하세요!” 그는 동의했다. 나는 그에게 수련생을 C시 ‘610’과 경찰에게 넘기지 말고 우리에게 넘겨달라고 말했다.

수련생이 옷을 갈아입고 걸어 나왔을 때 우리 세 사람은 즉시 남성 수련생의 팔을 끼고 우리 차에 들어갔다. 국보 관계자는 보고 조급해 우리 차를 막고 가지 못하게 했다. 한 여성 경찰은 다리로 우리 차 앞을 막고 가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우리를 사진 찍고 녹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들을 사진 찍었다. 이때 나와 다른 한 여성 수련생이 이미 차 안에 있었다. 차 밖에 있는 그 남성 수련생이 경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경찰들은 또 우리 차를 둘러쌌다. 지역 파출소(B시 파출소)는 경찰을 불러오겠다고 위협했다. 그 여성 경찰은 악독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이름을 적으세요.”

고개를 돌려 차 밖에 있는 남성 수련생을 보니 그는 평온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많은 국보 관계자 앞에서 의젓하면서도 침착하고 친절했다. 나는 매우 두려웠었는데 이 장면을 보고 갑자기 두렵지 않았다. 나는 ‘나는 뭘 하러 왔는가? 대법제자는 사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차에서 내려 경찰에게 진상 알리러 갔다.

잠시 후 이 지역 파출소에서 세 명의 경찰이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악인명단에 올라갔기에 당신들이 나를 폭로할까 봐 두렵지 않다. 나는 끝까지 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정념이 나왔다. 나는 그를 끌어당기며 그에게 말했다. “젊은이, 아직 기회가 있네. 나쁜 일을 하지 말게.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네. 대법제자를 잘 대해야지 마지막에 당신들은 모두 행복하고 평안할 수 있네.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면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악인명단에 올라갔으나 우리가 악을 버리고 좋은 사람으로 바뀌면 여전히 악인명단에 오를 수 있겠나?” 나는 한 사람씩 진상을 알렸고 선과 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이치, 인간 세상에 온 진정한 의의와 공산당이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죽이는 역사 등을 말했다.

진상을 알림에 따라 형세가 변했다. 그들은 사람 수가 많았으나 힘이 달려 했다. 우리는 사람은 적었으나 정념이 점점 강했다. 일부 경찰이 차를 탔다. 나는 차 문을 열고 차 안에 들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의 선심이 나와 나는 그 경찰에게 자녀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나쁜 일을 그만두면 자네는 좋은 사람인 거야.” 나는 정말 가족을 대하듯이 진상을 알렸다. “자네들도 모두 좋은 사람이야.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쉬운 게 아니지. 자네들의 일을 나는 이해해. 더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에게 퇴로를 남기게나.”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과 모순에 직면했을 때, 모두 선량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체를 대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3]

나는 그 여경에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하지 맙시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을 잘 대하면 복 받을 겁니다. 장쩌민,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했고 법을 어긴 것이니 선생님은 그것을 위해 목숨 바쳐서 되겠어요? 선생님에게 좋은 미래가 있길 바랍니다.”

대법제자의 선심이 나오고 정념이 나오니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다. 우리는 그들을 둘러싸고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다른 공간의 사악이 제거되자 기세등등하던 그들은 점차 누그러들었다.

마지막에 그들은 우리를 떠나게 했지만 그들의 차는 뒤에서 B시에서 줄곧 A시까지 따라왔다. 수련생은 지혜롭게 차를 한 빈집으로 몰고 갔다. 우리는 그들이 기왕에 여기에 왔으니 그들을 청해 식사에 초대하고 그들에게 계속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그들에게 방에 들어오라 하고 그들을 초대하겠다고 할 때 그들은 오히려 방에 들어오지 않고 밥을 먹지 않겠다면서 차를 돌려 가면서 마지막에 한마디 했다. “2시간 동안 뭘 한 거지!”

나중에 우리는 사부님께서 바로 우리 옆에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하시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신 것이다. 우리의 자비심이 표준에 도달했고 정념이 강해지자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결정하신 것이다. 당시 수련생들은 모두 자비로웠고 진상을 알렸으며 반드시 수련생을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발정념을 했다.

또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여성 수련생은 감옥에서 대법에 매우 확고했다. 형기가 만료됐는데도 감옥에서 그녀를 석방하지 않아 우리는 감옥장을 찾아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 그는 마침내 수련생을 석방하는 데 동의했다. 우리는 감옥에 가서 박수를 치며 수련생을 맞이했다. 감옥 경찰은 말했다. “이 파룬궁은 정말 대단한데, 감옥 문 안에까지 들어와 박수를 치다니.”

그때 납치된 수련생이 돌아올 때가 되면 ‘610’, 국보 관계자도 수련생을 데려가려 했다. 우리는 돌아오는 수련생이 있기만 하면 사악이 계속 수련생을 박해하지 못하게 수련생을 데리러 감옥에 갔다. 동시에 수련생을 데려가러 온 ‘610’과 국보 관계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중에는 현지인이 있었고 외지인도 있었다. 평소 그들을 찾기도 어려운데 이때가 그들을 구할 좋은 기회였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했고 탈퇴할 수 있는 사람은 탈퇴시키면서 줄곧 이렇게 견지했다.

처음에 그들은 매우 흉악했다. 우리를 사진 찍고 녹화했다. 우리는 그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 거꾸로 우리가 곳곳에서 그들을 찾아 진상을 알렸고 그들을 쫓아다니며 진상을 알렸으며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국보, ‘610’ 관계자들이 오히려 우리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더는 우리와 수련생을 빼앗아가지 않았다. 정법 형세가 추진됨에 따라 대법제자의 정념정행에 그들은 감히 오지도 못했다.

신사신법 하고 항상 안으로 찾고 자신을 바로 잡으며 자신을 수련했다. 오직 자비와 정념만이 모든 사악을 해체할 수 있다.

보잘것없는 생명이었던 나를 대법제자로 되게 하신 사존과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기적이고 마성이 강한 나를 조금씩 깨끗하게 씻어 나에게 무엇이 좋은 사람이고 수련인인지 알게 하셨고, 어떻게 진수(眞修)하는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지 알게 하셨으며, 나는 점차 무엇이 자비이고 자비를 어떻게 닦는 것인지를 이해했다. 한 걸음씩 자비의 내포를 깨달았으며 이번 생에 중생을 구하러 온 것임을 깨달았다.

오늘 말하고 싶은 말은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파룬따파하오!”이다.

가장 큰 소원은 중생이 모두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존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4- 미혹의 올가미를 풀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6/4122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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