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모든 것은 그렇게 진실하다.
한번은 법공부를 할 때 갑자기 법은 그렇게 진실하며, 법의 내포, 우주 중의 신불 세계를 느꼈는데 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 펼쳐졌다. 나는 닫혀서 수련한다. 하지만 그때 법의 펼쳐 보임은 확실히 그렇게 진실이고 마치 내가 진실하게 본 것 같다.
신불 세계와 나는 단지 문 하나의 거리이고 그 문을 열면 나는 육안으로 신불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듯한 그런 상태였다. 긴 복도를 걸어 그 문 앞에 가는 과정은 바로 전체 수련 과정이며, 일체는 모두 그렇게 진실하고 전체 수련 과정을 포함했다. 하지만 나의 수련 과정의 많은 일에서 모두 그렇게 진지하게 마음을 기울여 대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발견했다. 법공부에서 비록 법을 배우지만 법공부 한 강의를 배운 후 회억하면 법에서 무엇을 말한 것이 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수련생이 말한 그런 것처럼 “법을 배우고 법을 얻지 못한” 상태다. 연공도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자정에는 잠들어 발정념도 발하지 못한다. 자료도 적지 않게 배포했지만, 기본적으로 대면해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진실이면 이런 수련 상태는 어찌 합격된 대법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법공부를 진지하게 대해야 하고 열심히 법공부를 해야 한다. ‘전법륜’ 제1강을 배울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은 자는 얻지 못하고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다.”[1] 이전에 법공부를 하면 겉으로 그 말을 보고 알았다고 생각하면 지나갔다. 이번에 나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법을 대해야 하고 법에 우주 중의 이치가 있는데 나는 기억했는가? 이해했는가? 나는 기억하고 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려면 잃어야 한다. 나의 지금 상태와 비교해 보면 나는 늘 핸드폰 보기를 좋아하고 특히 활용하고 있는데 늘 ‘구매하면 증정’ ‘담청 됐으니 수령하세요’ 등 제시어가 있으면 나는 자신도 모르게 터치하고 선물과 상품을 받는다. 자신도 알고 있다. 이런 것은 무슨 소용이 없지만, 매번 자신도 모르게 터치하고 수령한다. 이번에 나는 알게 됐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면 잃는다. 나는 매번 사람 속의 이런 것을 얻는 것은 수련인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덕, 공, 층차, 경지, 법공부와 사람을 구하는 시간 등)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람 속의 이런 것을 가지지 말아야 심성의 제고가 있고 경지의 제고가 있고 상태가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것은 단지 가장 얕은 사례다.
연공, 발정념,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 자신도 방법을 찾아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노력 중이다.
물론, 진정으로 돌파하려면 법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나는 ‘법은 진실하다’라는 이런 상태에서 법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법은 진실한 존재다. 사부님께서 우주의 법을 말씀할 때, 마치 (적절하지 않을 수 있고 단지 자신의 이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큰 건물을 말씀하시는 것 같고 우리에게 이 건물의 구조는 어떠하고 어떤 재료로 건축했고 어떻게 형성됐고 건물의 안에는 몇 층이 있고 매 층에 어떤 생명이 안에 살고 이런 생명은 어떤 모양이고 어떻게 하고 있고 최후 결과는 무엇이고 이 건물의 최종 결과는 무엇이고 많고 많은 내용이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우리에게 많은 좋은 사례를 들으셨다. 나는 이 작은 이야기, 사례에서 모두 우리가 이해하고 알아야 하는 내용이 있고 각자 다른 각도에서 각자 다른 층면에서 이해하고 알면 모두 수확이 있고 우리를 지도하여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전법륜’ ‘대근기지인’에서 예를 하나 들으셨다. 온종일 그렇게 많은 번거로움을 만난 이 사람, 백 점을 맞은 초등학생, 모두 작은 이야기다. 사례 중에 모두 당사자가 처한 외부 환경이 있고, 당사자의 생각은 어떠하고 어떻게 했는가? 기타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어떻게 했는가? 등등이다. 사부님께서 일련의 발생한 일에서 우리를 위해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문제의 표현 형식과 그 중의 원인을 말씀해주셨고 아울러 당신의 심성을 어떻게 제고하는 것을 보게 했다.
이 속의 매 한 가지 사건, 매 한 가지 인물, 매 한 가지 생각, 모두 자신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백 점을 맞은 초등학생을 자신과 대조하면 자신이 한 일을 잘 완성했을 때 자신이 아주 기뻐하고 기뻐하여 이 일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아마 환희심을 지니고 있고 심지어 과시심이 섞여 있고 더욱이 명을 구하고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섞여 있다) 희망한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이 말한 것 “그저 백 점 맞은 거 아니냐? 뭐 호들갑 떨 게 있느냐! 누구는 백 점을 못 맞아본 것처럼!”[1]을 대조하면 남이 좋아할 때 혹은 어떤 성적을 이룰 때 비록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은근히 불쾌해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1]가 아닌가?
또 예를 들면 ‘질투심’에서 대화상(大和尙)과 소화상(小和尙)이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소화상이 당초 자신의 신통을 내놓지 않았으면 기타 화상은 그를 에워싸고 이것저것 묻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기타 화상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숭배도 없을 것이며 소화상 자신도 득의양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대화상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최종 모순이 격화(각자 사람 마음을 폭로)돼 소화상은 쫓겨났다. 모든 것은 집착심에서 비롯된 것이다(물론 제공의 상태는 소화상과 다르고 이런 원인이 아닐지도 모르고 이것은 여러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만약 기타 화상이 소화상의 신통을 보고 만약 호기심을 가지지 않고, 숭배하지 않고 그에게 마음 닦는 것을 일깨워주고 마음대로 신통을 꺼내면 안 되고, 신통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을 실증하거나 재미있는 일이 아니며, 법을 실증하고 귀신을 없애는 일이라고 알려주었으며 아마 최종 그런 결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대화상이 질투심이 없고 한마음 한뜻으로 주지로서 아래 많은 제자를 데리고 수련해야 하는 것을 책임지고, 소화상과 기타 화상의 표현은 많은 제자의 수련 요소에 영향을 주기에 제지해야 한다. 만약 법리가 똑똑하지 않으면 제지해야 하는데 뭇 제자가 모두 수련으로 돌아가고 초심으로 법을 배우는데 더욱 좋은 것이 아닌가? 비록 소화상을 쫓아내 이 일을 해결했지만, 최종 결과는 아마 수련과 승화, 원만과 더 멀어질 것이다.(만약 수련인이 겉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마음 닦는 것을 하지 않으면 결과는 더욱더 나쁠 것이다.)
사부님은 단지 우리에게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를 말씀해주시고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주셨지만, 그 속에 많고 많은 것이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
물론 나의 이해는 아직 법에서 마땅히 멀 것이다. 우리가 수련해 올라가면 법의 펼쳐 보임은 더욱 많을 것이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법에 대한 약간의 인식이고 부족한 점은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10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25/4141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