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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내어야 수련이로다’에 대한 얕은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아침에 사부님의 법이 갑자기 떠올랐다. “해내어야 수련이로다”[1] 사부님께서 나에게 점화해주신 것이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내가 깨달은 것을 여러분과 교류하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1] 내 개인 인식으로는 사부님께서 “해내어야 수련이로다”[1]라고 하셨는데, 그럼 해내지 못하면 수련이 아닌데, 그럼 내가 수련에서 얼마나 해냈는가? 예를 들어 대법 수련자로서 날마다 법공부, 연공에서 내가 착실하게 했는가? 부족한 경우는 많은데, 몇 퍼센트 해냈다고 할 수 있을 뿐, 그럼 못 해낸 부분은 수련이 안 된 것이 아닌가?

만약에 수련 중에서 단지 사상적으로 인식하고 깨닫는 것에 불과하다면, 깨달았지만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수련인가? 착실한 수련이 아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체돼 자신이 깨달은 것을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정말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착실히 해내야 수련이고, 그래야 진정하게 법에 동화(同化)된 것이다. 그리고 법공부과 연공,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깨달을 것도 없다. 사부님 요구에 따라 우리는 잘해야 한다.

왜 잘하지 못하는가? 하나는 타성이다. 이것은 수련한 사람이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모두 정진(精進)하고 착실하게 수련하고 싶지만 ‘해내야만 수련이고 법에 동화해야 한다’를 실천하지 않거나 소홀히 했고, 그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우주 중에는 누가 잃으면 바로 그가 얻고, 누가 수련하면 바로 그가 공을 얻는다는 이치가 있다.”[2] 만약 우리 수련인이 수련을 실제로 행하지 않았다면, 자기 수련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수련에서 확실한 손실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며 얼마나 많이 해내지 못하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수련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정으로 수련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대법제자는 지금 조사정법(助師正法) 시기에 있다. 개인 수련과 사부님의 정법은 연결되어 있다. 지신을 잘 수련하고 발정념, 중생을 구하는 것은 조사정법이고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를 다 해내고, 잘 해내고, 실제로 해낸다는 것은 의의가 매우 크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8/4138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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