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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수련생이 환희심을 버리고 대법을 실증하다

글/ 베트남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대법을 수련한지 2년 반쯤 되며 전에는 표면에서 법을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좋은 법문을 만나 속으로 매우 감동한 나머지 환희심과 과시심이 일어나 수련에서 극단적인 길을 걸었다.

그 당시 나는 늘 이상한 표현을 했고 일언일행이 이지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표현에 대해 수련생들은 내가 매우 정진(精進)하는 것으로 여겼으나 사실상 나는 이미 극단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예를 들면 수련 전 나는 외모에 매우 신경을 썼으며 멋을 부렸고 또 색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 남편은 사업을 하므로 자신의 아내가 예쁘게 치장하고 잘 입기를 바랐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생명의 의의를 알게 되면서 모든 미련과 욕망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돈과 시간으로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켰던 이 마음을 내려놓고 예전과 다른 나로 변하려 했다.

나는 아주 빨리 멋쟁이가 되려는 이 마음을 내려놓았다. 차림새가 단순해졌고 심지어 너무 대충 입었으며 예전의 나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상하게 개변된 나를 보고 남편은 이런 차림새에 원망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안으로 찾기는커녕 자신에게 변명을 찾았다. ‘지금은 수련하고 있으니 굳이 멋을 부릴 필요가 없으며 대충 입어도 된다. 남편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그는 속인이잖은가.’

나는 수련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공원에 연공하러 갔으며 밤늦게 자고 다음날 아침에는 매우 일찍 일어났다. 평소에는 수련생들의 법공부에 참가하고 세 가지 일을 했다. 그때는 일과 가정, 수련을 잘 배치하지 않아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집안일은 대충했고 집에서 식사하는 문제도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수련하기에 좀 단순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음식에 맛을 추구하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전혀 타인을 위해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은 수련인이 아니었으며 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는 나를 따라 함께 수련했다. 그때는 남편에게 관심이 없어서 남편이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남편에게 애써 홍법했으나 가끔은 너무 높게 말해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웃기까지 했다. 이런 남편의 태도를 보고 나는 그가 대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사람의 마음이 매우 많아 겉으로는 참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참음을 해내지 못했다.

한동안의 발생한 갈등 속에서 사람 간의 심성 마찰, 수련생 간의 마찰을 겪은 후 나는 자신을 수련하는데 공력을 들였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착실한 수련과 심성을 제고하고 수구(修口)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에 대해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잘 알게 됐다. 그제야 자신의 수련상태가 승화됐다.

나는 법공부에 매우 몰두했는데 잡념의 교란이나 졸리는 현상이 없었으며 법공부할 때 오직 나와 법만 있는 느낌이 들었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내 머리에 들어왔다. 읽을수록 법공부에 더 빠져들었고 조용해졌다. 어떤 때는 법공부하면서 복부에 나뭇잎 같은 것이 회전하는 느낌이 있었으며 아울러 전신이 따뜻해지고 매우 미묘했다. 3개월 내에 가부좌 시간을 원래의 60분에서 150분으로 늘려 수련에 더 노력을 들였다. 나는 업력이 전화되는 과정을 매우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인대가 파열’되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었으나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나는 다리가 고통스러워 움직이던 데에서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게 됐고 가부좌 중에 찌르는 듯한 아픔이 없는 상태를 누리게 됐다. 그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행복으로 다가왔다. 업력이 전화되고 본체(本體)가 개변되는데 이것을 고통으로 느낄 필요가 있겠는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와 내 업력을 제거해주심에 감사드린다. 가부좌 시간을 늘려 고생을 겪으며 소업하는 동시에 또한 ‘인(忍)’을 닦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수련에서 참음을 해내고 자연스럽게 참는 중에서 나는 ‘성명쌍수(性命雙修)’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서로 보충되는 관계며 동시에 매우 빠르게 제고되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 나는 고요해질 수 있으며 연공 중 잡념의 교란이 없다. 몇 번은 입정(入定)에 들어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미묘한 상태에 들어갔다.

법공부에서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1]해야 하는 법리를 깨달아 사회나 가정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이전의 나는 극단의 길을 걸어왔고 환희심으로 인해 타인의 눈에 나는 세인과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한동안의 엄숙하고 착실한 수련을 통해 수련생 간에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며 연공할 때에도 옷차림은 정결해야 좋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가정을 돌보면서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 했고 일상생활에서 심성을 제고해야 했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은 수련인임을 잊지 말아야 했고 언제나 법에 비춰 그 일과 마주해야 했으며 기점이 법에 있는지 봐야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우선은 타인을 위해 생각해야 했다. 나는 제고할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수련 전, 심지어 수련하는 중에도 시부모님께 선하게 대하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매우 개성 있는 사람이었는데 사실은 모두 후천적 관념과 강렬한 집착심으로 인한 것이다. 시부모님께서 나에게 불만이 있거나 오해로 나를 욕하시면 나는 바로 대꾸했고 얼굴에 깔보는 빛을 드러냈으며 그들에게 많은 불만을 품어 매우 깊은 혐오가 있었다. 지금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내 언행을 많이 바꿨다. 나는 예전 같은 표면적인 관심이 아닌 진심으로 시부모님께 관심을 기울였다. 한번은 시어머님이 넘어지면서 팔이 골절돼 나는 매일 시부모님 댁에 달려가 목욕시켜드렸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면서 일하면서도 불만을 드러냈던 내가 아니었으며, 번거롭다고도 느끼지 않았고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대했다. 누구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나는 열정적으로 도왔으며 예전처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마트에 야채나 과일을 사러 갈 때도 더는 보기에 좋은 것만 고르지 않고 쥐여지는 것이라면 연분으로 여기면서 겉모습이 좋고 나쁨에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상했으면 좀 더 구매해 보충했다. 과일을 구매할 때 썩은 것이 발견돼도 좋은 것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구매했다. 가게주인도 얼마 벌지 못하는데 그들에게 바꿔줄 것을 요구하면 선을 해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로써 대법에 호감이 생기고 대법에 바른 태도를 갖는다면 그들도 복을 받는 것이다. 꿈에서 심성에 대한 시험에 봉착해도 수련인의 표준으로 대했다. 법공부를 많이 해야 법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체현과 더욱 깊은 내포를 볼 수 있으며 각종 상황에 마주쳐도 법이 나타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어디에서 넘어졌으면 그것을 수련의 교훈으로 삼았고 일어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우선 자신을 잘 수련해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대법에 호감이 생길 수 있으며 또 그들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이상은 개인의 체험으로 층차의 제한이 있으며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연(煉)(1999.7―오늘)>신 수련생 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6/4137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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